오윤선

 


성명
오윤선(吳潤善)
이명
오윤선(吳允先, 吳允善)·오춘수(吳春洙)
본관
해주 오씨[1]
생몰
1893년 2월 2일 ~ 1960년 5월 10일
출생지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덕봉리[2]
사망지
경기도 안성군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오윤선은 1893년 2월 2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덕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일 밤 동리사람들과 함께 산 위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쳤고, 다음날 오세경·오관영 등의 지휘하에 수백명의 시위대와 함께 9시 30분경 양성면 경찰 주재소로 몰려가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때 1천여 명의 시위대가 몰려오자 이들과 합세하여 선두에 서서 투석으로 주재소의 정문 유리창을 부수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쌓아둔 솔잎에 불을 질렀다.
오후 10시경 주재소에 도착하여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며 원곡면 사람이 건네 준 횃불로 부엌에다 불을 질러 건물을 불태워 버렸다. 다시 양성 우편소로 가서 그곳의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 토자 토요테(外里與手)가 경영하는 잡화점과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타카 히데토모(隆秀知)의 집을 파괴했다. 그 다음엔 양성면 사무소로 가서 서류의 기물을 파괴하고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안성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0년 5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오윤선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23세 선(善) 항렬.[2] 해주 오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오복영·오세경·오세학·오용근·오정근·오창문·오창선·오홍근이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