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경

 


성명
오세경(吳世卿)
본관
해주 오씨[1]
생몰
1893년 5월 5일 ~ 1967년 8월 21일
출생지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덕봉리[2]
사망지
경기도 안성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오세경은 1893년 5월 5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덕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일 양성면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덕봉리 산 위에서 2백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고, 양성면내의 동항리에 있는 경찰 주재소로 행진하여 1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보통학교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친 뒤 해산하여 집으로 돌아오던 중, 원곡면에서부터 면장을 앞세우고 태극기와 횃불을 들고 그곳 주재소로 행진해 오는 1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합류하여 다시 주재소로 갔다.
오후 10시경 주재소에 도착하여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며 원곡면 사람이 건네 준 횃불로 부엌에다 불을 질러 건물을 불태워 버렸다. 다시 양성 우편소로 가서 그곳의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 토자 토요테(外里與手)가 경영하는 잡화점과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타카 히데토모(隆秀知)의 집을 파괴했다. 그 다음엔 양성면 사무소로 가서 서류의 기물을 파괴하고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이후 체포된 그는 1921년 2월 4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안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7년 8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오세경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27세 세(世) 항렬.[2] 해주 오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오복영·오세학·오용근·오윤선·오정근·오창문·오창선·오홍근이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