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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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오익표(吳翼杓)
이명
오익표(吳益豹)
본관
보성 오씨#
생몰
1888년 6월 8일 ~ 1922년 10월 15일
출생지
충청도 공주목 동부면 옥룡동
(현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사망지
러시아 연해주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오익표는 1888년 6월 8일 충청도 공주목 동부면 옥룡동(현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주 영명학교서울 감리교협성신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로 유학하여 아오야마가쿠인(青山學院)에 재학했다. 1918년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귀국한 뒤 3.1 운동이 발발하자 공주에서 3월 12일과 15일에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한 뒤 일본 경찰에게 쫓기다 상하이로 망명했다. 1919년 4월 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충청도 의원으로 피선되었고, 5월 4일 상해한인청년회(上海韓人靑年會) 내에 청년단을 조직하고 동 통신 부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임시정부를 지원할 것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1919년 5월 6일 제4회 임시의정원회에서 그는 충청도 구급의연금모집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으며, 8월에는 연해주 소왕영(蘇王營)의 한민학교(韓民學校)에서 조직된 전국청년연합회에서 유영락(柳永樂)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그 자신은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항일운동을 계속하였다. 이후 연해주에서 소성학교(蘇城學校)를 설립 운영하다가 1922년 10월 15일에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오익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