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에르난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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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Duque'''
쿠바 출신의 야구 선수. 국적 때문에 33살이라는 무척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누적 기록은 많이 부족하지만, 가을 야구에서의 강력한 모습을 바탕으로 무려 4차례나[1] 우승 반지를 챙긴 것과 독특한 투구폼 덕에 한국 팬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엘 듀케'란 별명은 1960년대 쿠바 리그에서 야수로 활약한 아버지 아르날도 에르난데스(Arnaldo Hernandez)의 별명을 올랜도가 물려받은 것이라고 한다.출처 에르난데스라는 성이 흔한 탓인지, 보통 한국에서는 엘 듀케 혹은 공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덧붙여서 동시대에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한 고무팔 리반 에르난데스의 형이기도 하다.[2]
1980년대 후반부터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축으로 활동하면서 세 차례의 야구 월드컵 우승[3] 및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을 경험했다. 쿠바 프로야구 리그인 세리에 나시오날의 강호 인두스트리알레스(Industriales)라는 팀에서 활동하면서 통산 126승[4] 및 두 차례의 리그 우승을 경험했지만, 1995년 동생 리반이 쿠바를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야구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올랜도 역시 리반의 뒤를 이어 미국으로 망명할 것을 우려한 쿠바 당국은 그를 체포하기도 하였으며[5] , 1996년에는 아예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자격 정지를 당하고 만다. 결국 1997년 올랜도 역시 망명을 선택하여 보트를 타고 망명을 감행하고,[6] 코스타리카로부터[7] 망명을 승인받은 뒤[8] 자유 계약자 신분으로 4년간 660만불을 받는 조건으로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다.
33살이라는 늦깎이 신분의 데뷔에도 불구하고 에르난데스는 데뷔 시즌이었던 1998년 지옥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12승 4패에 방어율 3.13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고[9] 양키스 제국의 일원으로 당당히 1998 월드시리즈를 제패한다. 다음해인 1999년 시즌은 에르난데스의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 17승 9패를 기록했고 2000년 시즌에도 12승을 기록하면서 98년부터 00년까지 대망의 월드 시리즈 3연패에도 성공한다. 하지만 이미 나이가 나이였던지라, 2000년 시즌 이후 부터는 방어율이 4점대 중반으로 치솟고, 부상에 시달리면서 시즌의 30% 정도는 늘 결장했다. 결국 2003년 시즌을 앞두고 양키스는 그를 몬트리올로 트레이드하는데, 양키스의 혜안은 대단히 옳아서(...) 2003 시즌 올랜도는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인하여 시즌을 통째로 날린다.
그렇게 몬트리올에서 1년을 날리고는 2004 시즌 1년 단기계약을 맺고 양키스로 돌아오는데, 막상 양키스로 돌아와서는 또 준수한 모습을 보이면서 몬트리올 팬들만 복창이 터졌다(…)
이후로는 내리막의 연속. 선발 및 불펜을 오가며 시카고 화이트삭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 메츠를 오갔지만 나이와 부상 탓에 예전의 기량은 사라졌다. 그래도 그 와중에 2005년에는 다시 한 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며 4번째 반지를 적립. 2007 시즌 종료 후 은퇴한다. 여러모로 전성기를 지난 33살에야 미국에 진출한게 아쉬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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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l Duque'''
쿠바 출신의 야구 선수. 국적 때문에 33살이라는 무척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누적 기록은 많이 부족하지만, 가을 야구에서의 강력한 모습을 바탕으로 무려 4차례나[1] 우승 반지를 챙긴 것과 독특한 투구폼 덕에 한국 팬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엘 듀케'란 별명은 1960년대 쿠바 리그에서 야수로 활약한 아버지 아르날도 에르난데스(Arnaldo Hernandez)의 별명을 올랜도가 물려받은 것이라고 한다.출처 에르난데스라는 성이 흔한 탓인지, 보통 한국에서는 엘 듀케 혹은 공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덧붙여서 동시대에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한 고무팔 리반 에르난데스의 형이기도 하다.[2]
2. 경력
1980년대 후반부터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축으로 활동하면서 세 차례의 야구 월드컵 우승[3] 및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을 경험했다. 쿠바 프로야구 리그인 세리에 나시오날의 강호 인두스트리알레스(Industriales)라는 팀에서 활동하면서 통산 126승[4] 및 두 차례의 리그 우승을 경험했지만, 1995년 동생 리반이 쿠바를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야구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올랜도 역시 리반의 뒤를 이어 미국으로 망명할 것을 우려한 쿠바 당국은 그를 체포하기도 하였으며[5] , 1996년에는 아예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자격 정지를 당하고 만다. 결국 1997년 올랜도 역시 망명을 선택하여 보트를 타고 망명을 감행하고,[6] 코스타리카로부터[7] 망명을 승인받은 뒤[8] 자유 계약자 신분으로 4년간 660만불을 받는 조건으로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다.
33살이라는 늦깎이 신분의 데뷔에도 불구하고 에르난데스는 데뷔 시즌이었던 1998년 지옥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12승 4패에 방어율 3.13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고[9] 양키스 제국의 일원으로 당당히 1998 월드시리즈를 제패한다. 다음해인 1999년 시즌은 에르난데스의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 17승 9패를 기록했고 2000년 시즌에도 12승을 기록하면서 98년부터 00년까지 대망의 월드 시리즈 3연패에도 성공한다. 하지만 이미 나이가 나이였던지라, 2000년 시즌 이후 부터는 방어율이 4점대 중반으로 치솟고, 부상에 시달리면서 시즌의 30% 정도는 늘 결장했다. 결국 2003년 시즌을 앞두고 양키스는 그를 몬트리올로 트레이드하는데, 양키스의 혜안은 대단히 옳아서(...) 2003 시즌 올랜도는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인하여 시즌을 통째로 날린다.
그렇게 몬트리올에서 1년을 날리고는 2004 시즌 1년 단기계약을 맺고 양키스로 돌아오는데, 막상 양키스로 돌아와서는 또 준수한 모습을 보이면서 몬트리올 팬들만 복창이 터졌다(…)
이후로는 내리막의 연속. 선발 및 불펜을 오가며 시카고 화이트삭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 메츠를 오갔지만 나이와 부상 탓에 예전의 기량은 사라졌다. 그래도 그 와중에 2005년에는 다시 한 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며 4번째 반지를 적립. 2007 시즌 종료 후 은퇴한다. 여러모로 전성기를 지난 33살에야 미국에 진출한게 아쉬운 부분.
3.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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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구를 할 때 엄청나게 높은 킥킹 동작으로도 유명했다. 한국 팬들은 '공작새' 투구폼이라 부르기도 했다.[10]
- 시속 50마일 후반~60마일 초반대[11] 의 초저속 이퓨스 볼을 이용해서 타자의 허를 찌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텍사스 시절 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게 2연속 이퓨스를 던졌다가 노리고 들어온 롸드에게 제대로 걸려서 초대형 홈런을 맞기도..
- 플레이오프에 가면 평소보다 훨씬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빅 게임 피처로도 유명했다. 특히 양키스의 98년부터 00년까지의 월드 시리즈 3연패 기간 동안에는 무려 8승 1패에 방어율 2.23이라는 흠좀무한 성적을 기록하며 양키 왕조의 부활에 크게 공헌했다.
[1] 1998년 월드 시리즈, 1999년 월드 시리즈, 2000년 월드 시리즈, 2005년 월드 시리즈.[2] 다만 페드로 - 라몬 마르티네스 형제와는 달리 이복형제 사이라고 한다.[3] 1988, 1990, 1994.[4] 10년 동안 126승 47패 평균자책점 3.05를 기록. 통산 승률 .728은 쿠바 혁명 이후 최고 기록.[5] 아예 누명은 아니고 올랜도가 메이저리그 쪽 에이전트와 접선을 하기는 했다고 알려져있다.[6] 여담이지만 망명을 감행한 날이 크리스마스였다고 한다.[7] 물론 보트를 타고 내린 곳은 코스타리카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아니라 코스타리카로부터 망명 자격을 얻은 이유는 미국으로부터 망명을 승인받아 미국 시민권을 얻으면 무조건 MLB 드래프트에 참여해야했기 때문. 반면 코스타리카 쪽 망명을 얻으면 즉각 FA 자격을 얻어 자유롭게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들과 입단 교섭을 진행할 수 있었다. 연봉도 연봉이거니와, FA 자격 재취득 측면에 있어서도 망명 당시에 이미 32살이었던 올랜도의 나이를 감안하면 후자가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셈.[8] 처음에는 미 해안경비대가 에르난데스를 그냥 불법이민자로 간주하고 쿠바로 추방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쪽 에이전트들이 적극적으로 로비를 한 끝에 망명이 승인되었다고(...)[9] 나이 탓에 신인왕 투표는 4위에 그쳤다.[10] 사실 공작새는 스페인어로 'el pavo real', 영어로 'peacock'이라 이들 언어에선 작위 '공작'과 연관성이 없다.[11]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대략 90후반~100초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