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작위)
1. 개요
오등작 중 첫째 등급으로 왕의 바로 아래이다.
2. 역사
2.1. 중국
대표적으로 상나라의 왕족인 미자계(주왕의 숙부)에게 분봉한 송나라가 이 작위라 송나라의 영주를 송공이라고 했다.
주나라#s-2(周) 왕실에서 경사(재상)를 맡은 제후(주, 소나라, 괵나라 등)를 빼면 공작은 매우 드문 작위였다. 그렇다고 경사들이 다 공작인 것도 아니었는데 예를 들자면 정나라(鄭)는 초기에 경사를 지냈으나, 백국이었다. 춘추 12제후의 범주에서는 송나라만이 공국이었고 그 외를 찾아봐도 우나라(虞), 주나라#s-4(州), 순우나라(淳于) 정도밖에 없었다.
송나라는 상나라의 유민으로 주나라에서도 손님 대접을 받았다고 하며, 우나라는 주나라 왕실 선조 계력(주 문왕의 아버지)의 작은형 중옹의 집안, 괵나라는 문왕의 두 아우 괵중과 괵숙의 자손으로 모두 그 위계가 장난 아니게 높았다. 주나라와 순우나라에까지 이게 적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왕의 아들을 왕자라고 하듯이, 공작(公爵)의 아들(子)을 공자라고 부른다.[1] 춘추전국시대 때는 실질적으로 권력을 지닌 군주들의 칭호가 공작이었다. 공작의 손자는 공손(公孫)으로 불렀으며, 아예 이걸 성씨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공손찬이나 요동의 공손씨 정권 또한 이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공(公)은 높은 관직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지체가 높은 집안의 아들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됐다. 공자라는 단어는 지금은 무협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에서나 볼 수 있다. 이를 테면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은 '''홍 공'''이다.
공자의 후손들은 당나라 시대부터 공의 지위를 받아왔으며(당-문선공, 송-연성공) 왕조가 바뀌었어도 황제들은 이걸 대대로 공자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가 중화민국이 들어서면서 공의 지위는 폐지되고 새롭게 대성지성봉사관이라는 직책을 승계한다. 하지만 국부천대 이후 대만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족보를 따질 때 자주 나오는 것이다. 00 0씨 000공파라는 식으로.
2.2. 한국
현존 사료상 우리나라서 "공작" 작위는 신라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백제 때 오등작을 사용했다고 추정하나 사료상으론 왕작위과 후작위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남북국시대 발해도 공작위를 내린 사료가 존재한다.
한국에서 "공작" 작위는 고려에서 가장 많이 사용 되었다. 문종의 "오등봉작제"가 제정 되고 체계화되어 사용되었다. 문종 이전엔 오등작호, 군호, 태자호를 섞어서 사용했으나 문종 이후 오등작만 사용하게 되면서 왕자와 왕족들, 대신들에게 봉작했으며 봉건제인 유럽의 사례와는 다르게 군현제인 고려는 형식상 봉국(封國), 봉지(封地)를 주어[2] 왕족의 권위를 내세우거나[3] 대신의 공로를 치하할 때 사용하였다.
고려 왕조에선 개성, 평양, 대방, 낙랑 같은 유명한 지방이나(봉지)[4]조선, 부여, 변한, 진한, 마한, 삼한, 계림, 금관 같은 옛 국가를 봉해주었다.(봉국)[5] 또한 신하들을 봉해 줄땐 신하들의 본관을 봉해주기도 했고 개국공(開國公), 양국공(讓國公) 같이 공덕을 찬양하는 의미로 봉해주기도 했다.[6]
고려의 공후백 왕족(제왕)은 "영공 전하(令公 殿下)"로, 공이나 후가 된 신하는 "영공 저하(令公 邸下)"로 불렸다.[7]
고려에는 대공(大公)과 그 부인인 대비(大妃)가 있었던 적이 있다. 공양왕의 부모인데 공양왕은 허수아비 군주였음으로 부모를 왕으로 추존하지 못하고 삼한국 공작, 삼한국 대비로 한단계 낮게 추존했다. 하지만 왕의 아버지였던 만큼 ''''대공(大公)''''으로 특별 취급해준 것이다. 공작의 부인은 보통 'ㅇㅇ국 대부인' 작위를 받는데 대비 작위를 받은 것도 왕모이니 특별 취급해준 것.
조선 왕조는 초기에 고려를 본따 잠시 오등작을 시행해서 이방원 같은 왕자들이 공작위를 받기도 했다.[8] 하지만 얼마 안가서 폐지 크리... 나중에 태종 이방원이 아들 성녕대군이 죽자 변한국 공작으로 한번 추증해준 적이 있다.
한국 왕조의 공작들은 이하 항목을 참조.
2.3. 일본
화족 문서 참조.
2.4. 유럽
Duke. 로마 제국 시대의 라틴어 Dux에서 유래했다. Dux란 원래 두루뭉술하게 "군대를 지휘하는 사령관"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3~4세기 이후로 각 속주별로 배치된 둘 이상의 군단을 지휘하는 관직명이 되었다. 고대 말에서 중세 초 사이 성립한 유럽의 게르만계 국가들은 로마의 관직을 자칭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Duke이다. 여성형은 Duchess.[9][10]
간혹 공작 중에서도 특히 높은 인물을 대공(Grand Duke)으로 칭하기도 한다. 보통은 독립 공국의 군주를 대공이라고 하지만 유럽 각국의 작위체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정형화된 법칙은 없다. 깊게 들어가면 대공이라는 단어로 번역하는 것 자체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정도.[11] 현존하는 대공국(Grand Duchy)으로는[12] 룩셈부르크가 유일하다. 대공국보다 한 단계 낮은 공국(Duchy: 실질적으로 "영토를 가지는 제후령"으로서의 공국을 말한다)은 독일 혁명으로 독일 제국의 연방소속이었던 5개 Herzogtum(안할트, 브라운슈바이크, 작센알텐부르크, 작센코부르크고타, 작센마이닝겐)이 폐지된 1918년 이후로는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2.4.1. 역사
(유럽에서) 일반적인 작위 중에서는 가장 높은 작위로 관례적으로는 왕족들이나 반독립적인 대영주들이 이 작위를 가졌다. 프랑크 왕국의 등장 이후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 공작은 귀족의 대표격인 존재였다. 봉건제하에서 공작으로 번역되는 Duke나 Herzog는 가장 강대한 세력을 가진 귀족들만이 쓰는 칭호였고, 독립 공국들의 경우 역시 세력이 강한 국가들은 거의 어김없이 공작의 칭호를 사용했으며, 이런 이유로 보헤미아나 폴란드와 같은 국가의 군주들은 왕국으로 승격하기 이전 대부분 공작 혹은 대공으로 불렸다. 실제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을 위협했던 대립왕들이나 프랑스의 라이벌이었던 부르고뉴 공국, 이탈리아의 공국들의 작위 변천 과정만 봐도 공작이란 작위는 중세시대 가장 강대한 세력을 가진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족 출신이 아닌 공작들은 대개 옛 게르만 부족들이 프랑크 왕국이나 신성 로마 제국 등에 편입되면서 권위를 보장받은 경우로, 이런 공작들은 반독립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왕족 공작들은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는 차남이나 삼남, 혹은 부마 등에게 공작위를 수여하는 식.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가 이렇게 생겨난 가문이다.[13] 중세 봉건제도하에서 왕보다는 낮은 작위였지만, 봉건제도 아래에서는 일반적으로 아무리 왕이라도 봉신의 영지 내에는 간섭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거대한 영지를 소유한 공작들은 왕보다 막강한 권력을 지니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영지들이 더욱 강력해지면 공국과 같은 형태로 실제로 한 나라의 군주가 되기도 하였다. 대부분이 왕실의 원로격 입장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유럽이 중앙집권사회에 접어든 이후로는 공작의 힘이 그리 크지 않은 나라가 많았다. 근세 이후 유럽 역사에서 실세인 중앙 귀족은 백작이 대부분이었다. 후작은 오늘날로 치자면 국경지대 야전사령관이라서 중앙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독립적 세력에서 기원하였던 공작은 그 권력이 막강하였기에 역설적으로 군주와의 투쟁이나 집요한 견제 끝에 몰락하였고, 왕족으로서 공작인 경우도 혈통 상 충분히 왕위 찬탈을 일으킬 명분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서, 국왕이 상식적이라면 공작들에게 많은 사병과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놔둘 리가 없었다.[14]
결국 근세에 접어들면서 왕족이나 그에 준하는 오래된 가문만이 아니라 일반 귀족이나 심지어 기사들조차 공적이 높을 경우 승격하여 공작위를 받게되는 경우도 생겼다! 이는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어 감에 따라 발생한 현상이다. 또한 토지와 다른 재산이 귀족 '''작위'''에 따라붙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소유하는 것으로 여겨짐에 따라 공작위의 성격은 점점 변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왕족이 아닌 노퍽 백작이 노퍽 공작으로 승작하거나 존 처칠이 다대한 전공을 쌓으면서 기사에서 말버러 공작으로 승작한 것, 그리고 나폴레옹을 꺾은 아서 웰즐리가 웰링턴 공작, 워털루 대공 등[15] 으로 임명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웨스트민스터 공작 같은 경우는 아예 그 시조가 평민 출신이다.[16] 즉, 공작, 정확히 작위제도의 의미는 작위 그 자체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높은 영예를 누리는 명예직위로 성격이 변하였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 프랑스에는 나폴레옹이 상당히 많은 인물들에게 공작위를 수여했다(Prince, Duke 모두).
2.4.2. Duke와 Prince
Prince(獨 Fürst)라는 호칭 또한 공작으로 번역되고는 하나, 둘은 어원부터 다른 별개 작위이므로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프린스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고.
국가별로 살펴보자면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17] 에선 Prince가 Duke보다 우위에 있다. 따라서 프랑스의 Prince는 대공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Prince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중동부 유럽, 그리고 러시아인데 러시아에선 Duke가 없는 관계로 논외로 두고 독일에서는 영국, 프랑스와는 반대로 Duke가 Prince보다 높은 직책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독일어권에서 Prince를 뜻하는 Fürst는 공작(Herzog)보다는 낮은 작위이며 백작(Graf)보다는 높은 작위로, 말하자면 후작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18] 따라서 역시 공국으로 번역되는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등은 프린스가 다스리는 Principality이지, Duchy가 아니다.[19]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독일어 정식 명칭은 Fürstentum Liechtenstein이다. 리히텐슈타인은 본래 신성 로마 제국 내의 Fürstentum이었으므로 구분해야 하나, 초기 번역과정에서 모호한 번역을 취하여[20] 지금까지도 Duke와 Prince의 구분이 명확하지 못하다. Duchy와 Principality에 대해서는 공국 문서 참고.
2.4.3. 현존하는 공작위 중 일부
현재 전 세계 군주 중에서 대공(Grand duke) 군주호(君主號)를 사용하는 인물은 룩셈부르크 대공뿐이며, 공(Prince) 군주호를 사용하는 인물은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21] 의 군주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공국 문서에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말 그대로 "군주의 신하"로서 받는 작위만을 서술한다.
- 영국 - 현재 영국에는 30명의 현직 공작들이 있으며, 그중 6명은 왕족이다. 非 왕족 공작이 마지막으로 서임된 것은 1900년(파이프 공작위)이며, 그나마도 부마를 공작으로 서임하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진짜 非 왕족으로써 공작에 서임된 작위는 1874년에 서임된 웨스트민스터 공작위이다.
- 왕족 작위: 에든버러 공작(Duke of Edinburgh), 콘월 공작(Duke of Cornwall), 요크 공작(Duke of York), 케임브리지 공작(Duke of Cambridge), 서식스 공작(Duke of Sussex), 글로스터 공작(Duke of Gloucester), 켄트 공작(Duke of Kent)
- 비왕족 작위: 말버러 공작(Duke of Marlborough, 초대: 존 처칠), 웰링턴 공작(Duke of Wellington, 초대: 아서 웰즐리) 웨스트민스터 공작(Duke of Westminster, 초대: 제3대 웨스트민스터 후작, 휴 그로스베너[22] ) 등.
- 스페인 - 스페인에서는 공후작 작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많은 편이다.[26] 프란시스코 프랑코 시절에 4명, 후안 카를로스 1세 치세에서는 6명의 공작이 서임되었다.
- 알바 공작(Duke of Alba)[23] : 현 종손인 19대 카를로스 피츠제임스 스튜어트 공[24] (公)은 40여 가지의 귀족칭호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25]
- 메디나셀리 공작(Duchess of Medinaceli): 현 20대 빅토리아 호엔로헤 여공은 43개 작위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 벨기에 - 벨기에의 공작위는 모두가 중세에서 내려온 작위들이다. Duke 작위 보유자는 왕위계승자의 칭호인 브라반트 공작 외에 아렌베르크 공작(Duke of Arenberg), 뷰포르스포르탱 공작(Duke of Beaufort-Spontin)[27] , 크로이 공작(Duke of Croÿ), 로즈코르스바렘 공작(Duke of Looz-Corswarem), 우르셀 공작(Duke of Ursel)위가 있으며, Prince 작위 보유자도 여럿 있다.[28] 그 중 대표적인 작위가 바로 워털루 대공 (Prince of Waterloo)으로 영국의 웰링턴 공작(Duke of Wellington)이 겸하고 있으며 워털루 대공은 벨기에의 작위이면서 네덜란드의 작위로 인정된다.
- 스페인의 왕태자/왕태녀는 대대로 아스투리아스 공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벨기에의 경우는 브라반트(브라방) 공.
3. 공작위를 가졌던 인물
※ 가상 인물은 작위/창작물 참조.
- 발해 왕조
- 고려 왕조
- 조선국공(朝鮮國公) 이자겸
- 개국공(開國公) 왕식렴[31]
- 개국공(開國公) 유금필[32]
- 양국공(讓國公) 왕송
- 계림공(鷄林公) 왕희
- 익양공(翼陽公) 왕호
- 평량공(平凉公) 왕민
- 한남공(漢南公) 왕오
- 안경공(安慶公) 왕창
- 상락공(上洛公) 김방경
- 낙랑공(樂浪公) 김경용
- 낙랑공(樂浪公) 송분
- 계양공(桂陽公) 이위
- 진강공(晉康公) 최충헌
- 진양공(晉陽公) 최이
- 진평군 개국공(晋平郡 開國公) 최항
- 변한국 영헌공(卞韓國 英憲公) 왕영
- 진한국 인숙공(辰韓國 仁肅公) 왕분
- 마한국 인혜공(馬韓國 仁惠公) 왕유
- 삼한국 인효대공(三韓國 仁孝大公) 왕균
- 경원군 개국공(慶源郡 開國公) 이자연
- 프랑스
- 리슐리외
- 생시몽 공작 - 루이 14세 때의 인물
- 미셸 네, 니콜라 장드듀 술트, 프랑수아 크리스토프 켈레르만, 오귀스트 마르몽 등 나폴레옹의 26원수 중 다수
- 루이 드 브로이
- 러시아 제국
- 독일 제국
- 오토 폰 비스마르크 - 비스마르크의 작위인 Fürst von Bismarck는 공작에 해당하는 Herzog보다 위계가 낮아 후작으로 번역하는 게 맞지만, 빌헬름 2세에게 라우엔부르크 공작(Herzog von Lauenburg) 작위를 당대에 한해 수여받았으므로 공작이기도 하다.(비스마르크 후작 겸 라우엔부르크 공작) 그러나 해당 작위는 빌헬름 2세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은퇴할 때 보상 개념으로 받은 작위라 정작 본인은 공식석상에선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1] 공작의 아들을 공자라고 하는 것은 맞지만 귀한 집 영식을 통틀어 공자라고 부르기도 한다.[2] 가뜩이나 고려는 지방이 중앙정부의 말을 잘 안들었는데 진짜 국가니 땅을 떼주면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3] 예기에 따르면 오직 천자만이 제후를 봉할 수 있는데 "내가 얠 봉해주었으니 난 천자고 얜 그 천자의 핏줄이다!"라는걸 은근쓸쩍 드러내는 것이다.[4] 개성과 낙랑은 국가로 취급 된 적이 있다. 개성국공이나 낙랑국 개국후 같은 경우.[5] 형식상 봉토. 오등작의 원조인 주나라는 진짜로 그 지역 땅을 떼줬지만 주나라 이후 국가들은 형식상으로만 지역을 나눠줬다.(전한 제외)[6] 조선 초기에 봉해진 왕자들이 이 케이스.[7] 고려사 형법지 용례, 동국이상국집 19권 참조[8] 이방원의 경우 정안공이라 했고 그의 둘째 형 이방과의 경우 영안공, 셋째 형 이방의는 익안공이라고 했다.[9] 게르만계 통치자들이 고대 로마의 관직을 자칭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우선 구 로마 제국령에 나라를 세운 경우 고대 로마의 행정체계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였던 점이 있고, 동시에 로마인이나 로마화한 현지인 유력자들과 융합이 용이해서 그랬던 점도 있다. 특히 독립 세력을 보유할 정도라면 (그것이 부족 단위 귀화든 동맹(foederati)이든 간에) 대개 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 경우가 많아서, 제국 정부에서 실질적으로도 해당 역할을 수행하도록 기대하고서 관직을 임명하고는 하였다. 그렇게 관직을 획득한 부족장들은 자기 부족 세력을 기반으로 권한을 행사하였고, 제국의 장악력이 약화하던 시기에는 자연스럽게 부족적 관습법을 따라 가산화하게 된다.[10] 유럽에서는 호칭이 남성형과 여성형으로만 구분되기 때문에, 공작과 여공작의 부군의 호칭이 같고 여공작과 공작부인의 호칭이 같다. 굳이 구분하자면 Consort를 붙혀 배우자임을 나타낼 수 있다.[11] 예를 들어 독일에서 대공(Großherzog)이라는 말은 영방 제후국들 중에 비교적 세력이 큰 제후국의 군주를 가리키는 데 비해, 오스트리아에서 대공(Archduke)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황족 남자들을, 제정 러시아에서 대공(Grand Duke 혹은 Grand Prince)은 로마노프 왕조의 황자와 황손들을 가리킨다. 단, 황제의 증손주부턴 그냥 Prince를 칭하게 되었다.[12] 대공작위를 칭하는 군주국이다.[13] 발루아 왕조도 비슷하게 왕자에게 내린 발루아 백작에서 유래되었다.[14] 사실 작위의 특성은 잘 모르더라도, 상식적으로 조선의 세종이 즉위할 때 그 형들이 희생한 것이나, 삼국지에서 조식이 재능을 못 이루고 한탄하면서 죽은 에피소드만 봐도 보통 왕위를 노릴 만한 귀족이 큰 힘을 갖도록 왕이 놔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왕족이 힘을 키워나가는 것을 방치해두었다 일어난 사태가 바로 서진의 팔왕의 난이다.[15] 유럽 각국의 국왕들로부터 수많은 작위를 수여받았다.[16] 1622년 준남작 작위 획득 → 7대 만인 1761년 남작, 1784년 백작 → 1대 만인 1831년 후작 → 3대 만인 1874년 공작.[17] ex)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등.[18] 서유럽의 후작으로 번역되는 Marquis는 변경백으로 번역하는 것이 본 의미에 더 적절하다.[19] 영문 위키에 따르면 Dukedom은 군주의 신하로써의 공작위, 그 자체를 의미하고 Duchy는 공작이 다스리는 영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Duchy는 지정학적인 개념이 포함된 것.[20] 우리나라는 일본의 번역 내용을 그대로 번역하여 사용했는데 당시 일본은 자신들만의 근대적 작위 체계였던 화족에서의 공작을 Prince로 번역하여 Duke와 Prince의 균형이 무너졌었다.[21] 프랑스 대통령과 우르헬 주교가 공동 prince.[22] 참고로 현재 웨스트민스터 공작인 7대 공작 역시 휴 그로스베너이다. 그는 케임브리지 공작의 절친으로 그의 아들인 케임브리지 공자 조지의 성공회 대부이기도 하다.[23] 스페인의 장군이자 3대 알바공작인 페르난도 알바레즈 데 톨레도가 잘 알려졌다. 16세기 유럽사의 굵직한 사건에 등장한 “알바 공작”은 이 사람을 지칭한 경우가 많다[24] 성 보면 알겠지만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당시 원수이자 알만사 전투와 3차 바르셀로나 공방전의 영웅인 제임스 피츠제임스 장군(프랑스어로는 자크 드 피츠제임스)의 직계후손이다. 피츠제임스는 이 두 전투에서 펠리페 5세의 왕위를 지켜내어 스페인 귀족과(리리카 공작, 베릭 공작-원래 자코바이트 공작위, 피츠제임스는 영국 제임스 2세의 사생아다. 즉 스튜어트 가문)프랑스 귀족 작위(피츠제임스 공작)을 가졌는데 스페인 귀족 작위는 장남에게 주고 프랑스 귀족 작위는 차남에게 주었지만 프랑스계는 1967년 단절된다[25] 그나마 형제들이 작위를 나눠서 상속 받아서 겨우 40여 가지이고 18대 여공작이었던 현 알바 공작의 어머니는 무려 52가지 칭호...[26] 가장 적은 작위는 자작으로,140개 정도뿐이다.[27] 현재 후계자가 없어 단절 예정[28] 기존에는 벨기에의 Prince는 신성 로마 제국의 후작 출신들이라 후작임을 의미한다고 나와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벨기에는 분명 신성 로마 제국의 영역이었지만 프랑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기에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벨기에의 Prince(프랑스어)/Prins(네덜란드어)는 프랑스의 Prince와 동일하게 Duke를 제치고 가장 높은 작위이다. 자세한 것은 영문 위키 Belgian nobility의 Structure of the Belgian nobility 부분 중 Princes in the Belgian nobility을 참고.[29] 명주군왕의 손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김정여가 명원공에 봉해졌다는 기록이 있다.[30] 발해고 기록. 어느 지역에 분봉 됐는지 알 수 없다.[31] 고려사 왕식렴 열전 기록. 개국은 일반적으로 작위에 붙는 미칭인지 진짜 개국에 일조하였기에 공덕 찬양 의미로 붙었는지 모른다.[32] 유자우 묘지명 기록. 고려사엔 개국공으로 떨어져있지 않고 '개국충절공' 처럼 시호에 붙어있다.[33] 대한 제국 때 대신[34] 그 지역 송악이다. 송악의 신을 공작으로 봉한 것. 태조실록 2년 1월 21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