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거인
'''王巨仁'''[1]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통일신라 말기의 인물. 유학자로 대야주(大耶州)에 은거하고 있었다. 888년 신라의 정치를 비난하는 벽서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도성의 감옥에 갇혀 처형위기에 놓였다. 거인은 원통해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지었다고 한다.
그날 저녁 구름과 안개가 덮이고 우박이 떨어지자 진성여왕이 두려워하면서 거인을 풀어줬다고 한다. 이를 보면 실제 범인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우공(于公)이 통곡하자 3년간 가물었고于公慟哭三年旱,
추연(鄒衍)이 슬픔을 품으니 5월에 서리가 내렸는데鄒衍含悲五月霜
지금 나의 근심을 돌이켜보면 옛날과 비슷하건만今我幽愁還似古
황천은 말이 없고 단지 푸르기만 하구나皇天無語但蒼蒼.
2. 기타
김부식의 삼국사기 열전에서 박인범, 원걸, 김운경, 김수훈 등과 함께 묶여서 나온다. 다만 이들의 행적이 역사 기록에 남아있지 않았다면서 전기를 못세웠다고 나오고 끝. 그나마 이름만 언급되고 언제 활동했는지 알 수 없는 인물들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왕거인의 사건 이후 신라는 원종과 애노의 난(889년) 이후 후삼국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1918년생으로 촬영당시 81세였던 원로배우 장인한[3] 이 이 인물을 맡아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