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오카 세이쥬로
吉岡清十郎
생몰년도 미상.
일본 전국시대의 검호. 그 당시 유명했던 유파인 요시오카류 3대 당주로 요시오카 나오타카의 삼남이며, 요시오카전에서 보이는 요시오카 겐자에몬 나오츠나(吉岡源左衛門直綱)와 동일 인물로 보인다.
교토 사람으로 검술에 뛰어나서 당시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가문의 사범을 맡아서 병법소라고 불렸으며, 기온 토지에게 병법을 배웠다고 한다. 정신수양의 일환으로 심야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교외의 숲에서 지관의 수행을 했다고 한다.
1604년에 미야모토 무사시와 대결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무사시 측의 사료인 이천기, 고쿠라 비문, 단치봉균필기, 무공전, 요시오카 측에 사료인 요시오카전, 제 3자의 기록인 고로다화, 혼초 무예 소전 등이 있다.
1654년에 미야모토 무사시의 양자인 미야모토 이오리가 남긴 무사시의 송덕비(고쿠라 비문)에 따르면 무사시에게 목검으로 시합하여 단 일격에 쓰러졌다고 한다. 이천기에서는 무사시에게 머리를 강타당하여 제자들이 널빤지로 실어서 나갈 정도로 이후에 회복했지만 검을 버리고 불문에 들어갔다고 하며, 무사시의 전기를 기록한 단치봉균필기와 무공전에서는 1604년에 무사시와의 싸움으로 중상을 입고 맞아 죽었다고 한다.
1684년에 발견된 요시오카전에는 무사시가 미간을 맞아 출혈하여 끝났다고 하며, 요시오카의 승리 또는 무승부로 보는 판결이 나와서 세이쥬로가 격노하여 다시 시합을 신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사시는 세이쥬로와의 승부는 끝났다면서 다음에는 덴시치로와 겨루겠다고 했지만 시합 당일에 나오지 않아서 요시오카는 앉아서 이겼다고 세간에 나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기록들은 무사시 측과 요시오카 측이 자신의 입장에 따라 서술하여 서로 자기 쪽이 이겼다는 기록으로 엇갈리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고로다화에서는 교토 키타노의 시치혼마츠에서 싸우는데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 무사시를 기다리다가 무사시의 죽도를 상대로 목도로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으며, 무사시에게 왼쪽 어깨의 약간 뒤 쪽을 쳤지만 머리띠의 왼쪽을 살짝 맞았다고 한다. 혼초 무예 소전에도 무승부였다고 기록했다.
그 밖에 일설에는 하얀 머리띠를 하여 붉은 머리띠를 한 무사시와 싸웠으며, 똑같이 이마에 맞았는데 세이쥬로 쪽이 피가 더 빨리 흘렀다고 한다. 또는 세이쥬로가 무사시의 머리띠를 베려는 찰나에 무사시가 세이쥬로의 하카마를 베었다는 얘기도 있다.
세이쥬로가 주목받게 된 것은 무사시와의 승부 때문이 아니라 그 성격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시츠코이(しつこい)와 동일한 히츠코이(ひつこい)라는 표현으로 집요한 모양을 뜻하는 것이 있는데, 그 정도가 심해지면 히츠코이에 도(ド)를 붙여서 도빗코이(ドびっこい)라고 한다.
도빗코이는 교토 사람들이 혐오감과 공포를 느낀 사람들에게 붙이는 것이었는데 이 도빗코이라 불린 인물들 중에는 세이쥬로가 있었다고 한다.
경팔류 요시오카 도장의 당주로서, 요시오카 겐보[1] 의 장남이다. 동생은 요시오카 덴시치로. 덩치고 크고 성격도 우직한 동생과는 달리 체구도 작고 여자같은 얼굴의 미청년인데가 허구언날 술이나 마시고 색주가를 드나드는 한량이다. 명실공히 무사시에게있어 '''최강의 목표.'''
겉모습이 그렇다보니 항간의 평도 좋지 않은 편. 하지만 요시오카 도장에서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작품 초반부에서 일검에 무사시의 이마를 베어버리는 포스를 자랑한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검을 지닌 작품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다. 적들 중에는, 인슌과 함께 천재인 인물. 인슌 역시 어린 시절 우연히 그의 검술을 구경했을 때 '나 말고도 또 천재가 있군!'하면서 전율을 느꼈다. 근처 요정집 주인 오코의 딸인 아케미에게 홀딱 빠져있다.
무사시와 덴시치로의 대결이 예정되자, 동생이 질 것을 예감했던 세이쥬로는 무사시를 추적해 렌다이지 벌판에서 무사시를 기습하고 대결을 펼치게 된다. 암기를 던져 무사시를 암살하려 했지만 무사시가 이를 회피하면서 진검대결로 간다.
치열한 접전끝에 몸통이 두 동강이 나며 사망. 비록 패하긴 했지만 무사시도 생사를 넘나들 정도로 강한 상대였다. 무사시 머리에 난 두개의 흉터는 모두 세이쥬로와의 대결에서 생긴것이라는 점을 보면 생각하면 손꼽히는 강자. 흉터는 무사시가 패한 첫번째 대결에서, 무사시가 승리한 두번째 대결에서 각각 하나씩 생겼다. 그리고 무사시는 이 두번째 대결에서 눈꺼풀까지 베였다. 말 그대로 한끗차이 승부였던것.
무사시의 명대사 '이 남자는, 내 모든 것을 부딪히게 해준다, 싸움의 신이여! 나를 낳아줘서 고맙소.'가 바로 세이쥬로와의 대결에서 나온 대사.
이후 한량 이미지였지만 실은 동생을 지키기 위해 수 많은 싸움을 벌여왔었던 것이 밝혀진다.[2] 실제 대결전 무사시를 수리검을 던져 암살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무사시가 '이전에도 이런일을 해왔다는 것인데?' 라고 놀라하자 아무 대답도 안한것으로 보아 요시오카에 위협이 되는 인물들에 대한 암살도 자주 한듯.
세이쥬로의 시체에 난 수 많은 검상을 보고 이를 눈치챈 우에다 료헤이는 눈물을 흘린다.
재미있는 사실은 동일 작가의 전작인 슬램덩크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상양(소요) 고교의 김수겸(후지마 켄지) 선수와 비슷한 포지셔닝이라는 것이다. 당주가 (감독이) 없는 소년 가장, 가문을 (팀을) 혼자 이끌어야 하는 고독한 부담감, 상대적으로 작은 키, 동안의 미소년, 스킬은 뛰어나지만 무게감이 없는 검술 (농구 실력), 야규에 (해남-카이난에) 비교되는 콩라인, 야규와 (해남-카이난과) 싸워보기도 전에 갑툭튀 무사시에게 (강백호-사쿠라기에게) 발려버린다거나 결국 혼자서 모든걸 다 해보려다 몰락하는 최후까지 이미지가 상당히 겹쳐있다.
요시오카 도장을 찾아왔다가 덴시치로에게 문전박대당한 키류-무사시와 싸움으로써 그를 받아들여주는데, 키류는 세이쥬로가 사용한 검이 가검이었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란다.
나중에는 또 다른 미야모토 무사시를 찾으러 온 키류와 렌다이노에서 만나게 되는데, 키류가 무사시임을 확신하며 검을 휘두르고, 당하고만 있을 수 없는 키류도 이도류를 빼들어 무사시임을 드러낸다. 허나 결국 키류에게 패배해 그를 보낸 기온 토지가 요시오카의 배신자임을 알려주고, 동생 덴시치로를 부탁하며 죽는다. 직후 배반자 문하생들이 몰려와 키류를 죽이려들지만 때마침 이토가 달려와준 덕에 키류는 덴시치로가 있는 삼십삼간당으로 달려간다.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일본 전국시대의 검호. 그 당시 유명했던 유파인 요시오카류 3대 당주로 요시오카 나오타카의 삼남이며, 요시오카전에서 보이는 요시오카 겐자에몬 나오츠나(吉岡源左衛門直綱)와 동일 인물로 보인다.
교토 사람으로 검술에 뛰어나서 당시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가문의 사범을 맡아서 병법소라고 불렸으며, 기온 토지에게 병법을 배웠다고 한다. 정신수양의 일환으로 심야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교외의 숲에서 지관의 수행을 했다고 한다.
1604년에 미야모토 무사시와 대결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무사시 측의 사료인 이천기, 고쿠라 비문, 단치봉균필기, 무공전, 요시오카 측에 사료인 요시오카전, 제 3자의 기록인 고로다화, 혼초 무예 소전 등이 있다.
1654년에 미야모토 무사시의 양자인 미야모토 이오리가 남긴 무사시의 송덕비(고쿠라 비문)에 따르면 무사시에게 목검으로 시합하여 단 일격에 쓰러졌다고 한다. 이천기에서는 무사시에게 머리를 강타당하여 제자들이 널빤지로 실어서 나갈 정도로 이후에 회복했지만 검을 버리고 불문에 들어갔다고 하며, 무사시의 전기를 기록한 단치봉균필기와 무공전에서는 1604년에 무사시와의 싸움으로 중상을 입고 맞아 죽었다고 한다.
1684년에 발견된 요시오카전에는 무사시가 미간을 맞아 출혈하여 끝났다고 하며, 요시오카의 승리 또는 무승부로 보는 판결이 나와서 세이쥬로가 격노하여 다시 시합을 신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사시는 세이쥬로와의 승부는 끝났다면서 다음에는 덴시치로와 겨루겠다고 했지만 시합 당일에 나오지 않아서 요시오카는 앉아서 이겼다고 세간에 나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기록들은 무사시 측과 요시오카 측이 자신의 입장에 따라 서술하여 서로 자기 쪽이 이겼다는 기록으로 엇갈리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고로다화에서는 교토 키타노의 시치혼마츠에서 싸우는데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 무사시를 기다리다가 무사시의 죽도를 상대로 목도로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으며, 무사시에게 왼쪽 어깨의 약간 뒤 쪽을 쳤지만 머리띠의 왼쪽을 살짝 맞았다고 한다. 혼초 무예 소전에도 무승부였다고 기록했다.
그 밖에 일설에는 하얀 머리띠를 하여 붉은 머리띠를 한 무사시와 싸웠으며, 똑같이 이마에 맞았는데 세이쥬로 쪽이 피가 더 빨리 흘렀다고 한다. 또는 세이쥬로가 무사시의 머리띠를 베려는 찰나에 무사시가 세이쥬로의 하카마를 베었다는 얘기도 있다.
세이쥬로가 주목받게 된 것은 무사시와의 승부 때문이 아니라 그 성격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시츠코이(しつこい)와 동일한 히츠코이(ひつこい)라는 표현으로 집요한 모양을 뜻하는 것이 있는데, 그 정도가 심해지면 히츠코이에 도(ド)를 붙여서 도빗코이(ドびっこい)라고 한다.
도빗코이는 교토 사람들이 혐오감과 공포를 느낀 사람들에게 붙이는 것이었는데 이 도빗코이라 불린 인물들 중에는 세이쥬로가 있었다고 한다.
2. 대중매체에서
2.1. 배가본드
경팔류 요시오카 도장의 당주로서, 요시오카 겐보[1] 의 장남이다. 동생은 요시오카 덴시치로. 덩치고 크고 성격도 우직한 동생과는 달리 체구도 작고 여자같은 얼굴의 미청년인데가 허구언날 술이나 마시고 색주가를 드나드는 한량이다. 명실공히 무사시에게있어 '''최강의 목표.'''
겉모습이 그렇다보니 항간의 평도 좋지 않은 편. 하지만 요시오카 도장에서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작품 초반부에서 일검에 무사시의 이마를 베어버리는 포스를 자랑한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검을 지닌 작품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다. 적들 중에는, 인슌과 함께 천재인 인물. 인슌 역시 어린 시절 우연히 그의 검술을 구경했을 때 '나 말고도 또 천재가 있군!'하면서 전율을 느꼈다. 근처 요정집 주인 오코의 딸인 아케미에게 홀딱 빠져있다.
무사시와 덴시치로의 대결이 예정되자, 동생이 질 것을 예감했던 세이쥬로는 무사시를 추적해 렌다이지 벌판에서 무사시를 기습하고 대결을 펼치게 된다. 암기를 던져 무사시를 암살하려 했지만 무사시가 이를 회피하면서 진검대결로 간다.
치열한 접전끝에 몸통이 두 동강이 나며 사망. 비록 패하긴 했지만 무사시도 생사를 넘나들 정도로 강한 상대였다. 무사시 머리에 난 두개의 흉터는 모두 세이쥬로와의 대결에서 생긴것이라는 점을 보면 생각하면 손꼽히는 강자. 흉터는 무사시가 패한 첫번째 대결에서, 무사시가 승리한 두번째 대결에서 각각 하나씩 생겼다. 그리고 무사시는 이 두번째 대결에서 눈꺼풀까지 베였다. 말 그대로 한끗차이 승부였던것.
무사시의 명대사 '이 남자는, 내 모든 것을 부딪히게 해준다, 싸움의 신이여! 나를 낳아줘서 고맙소.'가 바로 세이쥬로와의 대결에서 나온 대사.
이후 한량 이미지였지만 실은 동생을 지키기 위해 수 많은 싸움을 벌여왔었던 것이 밝혀진다.[2] 실제 대결전 무사시를 수리검을 던져 암살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무사시가 '이전에도 이런일을 해왔다는 것인데?' 라고 놀라하자 아무 대답도 안한것으로 보아 요시오카에 위협이 되는 인물들에 대한 암살도 자주 한듯.
세이쥬로의 시체에 난 수 많은 검상을 보고 이를 눈치챈 우에다 료헤이는 눈물을 흘린다.
재미있는 사실은 동일 작가의 전작인 슬램덩크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상양(소요) 고교의 김수겸(후지마 켄지) 선수와 비슷한 포지셔닝이라는 것이다. 당주가 (감독이) 없는 소년 가장, 가문을 (팀을) 혼자 이끌어야 하는 고독한 부담감, 상대적으로 작은 키, 동안의 미소년, 스킬은 뛰어나지만 무게감이 없는 검술 (농구 실력), 야규에 (해남-카이난에) 비교되는 콩라인, 야규와 (해남-카이난과) 싸워보기도 전에 갑툭튀 무사시에게 (강백호-사쿠라기에게) 발려버린다거나 결국 혼자서 모든걸 다 해보려다 몰락하는 최후까지 이미지가 상당히 겹쳐있다.
2.2. 용과 같이 켄잔!
요시오카 도장을 찾아왔다가 덴시치로에게 문전박대당한 키류-무사시와 싸움으로써 그를 받아들여주는데, 키류는 세이쥬로가 사용한 검이 가검이었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란다.
나중에는 또 다른 미야모토 무사시를 찾으러 온 키류와 렌다이노에서 만나게 되는데, 키류가 무사시임을 확신하며 검을 휘두르고, 당하고만 있을 수 없는 키류도 이도류를 빼들어 무사시임을 드러낸다. 허나 결국 키류에게 패배해 그를 보낸 기온 토지가 요시오카의 배신자임을 알려주고, 동생 덴시치로를 부탁하며 죽는다. 직후 배반자 문하생들이 몰려와 키류를 죽이려들지만 때마침 이토가 달려와준 덕에 키류는 덴시치로가 있는 삼십삼간당으로 달려간다.
[1] 여기서는 편의상 겐보로 나온 것 같지만 요시오카 나오타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며, 겐보는 요시오카의 당주 대대로 내려지는 호이다.[2] 그 외에, 작중에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의도로 돈으로 사들인 사형수와 진검승부를 펼치며 실력을 길러온 것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