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원지화

 

'''고사성어'''
'''燎'''
'''原'''
'''之'''
'''火'''
횃불 료
언덕 원
어조사 지
불 화
1. 개요
2. 유래
3. 여담


1. 개요


출전은 서경(書經) 상서(商書)의 반경(盤庚)편. 들에 불이 이는 모양을 칭한 말로, 그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맹렬한 상황을 비유한다. 바리에이션으로 '성성지화, 가이요원(星星之火 可以燎原)'이라는 말도 있는데 작은 불씨도 불을 태울 수 있다는 뜻으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격려형 문구로 쓰인다.

2. 유래


상(商)나라는 시조 탕왕(湯王)이 건국한 이래 정신없을 정도로 천도가 잦았다[1]. 심지어 조을(祖乙)과 반경(盤庚) 치세에는 두 번씩이나 천도를 했을 정도. 물론 고대국가였던만큼 정치적, 군사적인 문제 외에 자연적인 문제로 천도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반경의 두번째 천도가 바로 그런 케이스로 황하의 범람에 따라 수해를 피하기 위해 천도를 감행한 것.
아무리 고대국가였다지만 수도를 옮기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었고, 귀족관료들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반경은 천도 의지가 확고했기에 일단 관료들을 모아 설득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때에 이른 말이

"그대들은 어찌 짐에게 고하지 않고 서로 뜬소문을 부추겨 뭇사람을 겁에 질리게 하는가?

(汝曷弗告朕 而胥動以浮言 恐沈于衆)

이는 마치 들판에 불이 붙은 것과 같아 너희조차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데 어찌 그것을 끌 수 있다는 말이냐.

('''若火之燎于原''' 不可嚮爾 其猶可樸滅)

그러하니 이건 너희가 불안한 것을 자초한 것이지, 나에게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則惟爾衆 自作弗靖 非予有咎)


였다. 유래는 중구난방과 비슷한데 비유하는 뜻이 다르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

3. 여담


반경에게 풍수의 센스가 있었는지 그가 천도할 곳으로 지목한 지역이 상의 마지막 수도 은(殷)이었다. 그리고 상나라는 반경부터 마지막 왕 제신(帝辛)까지 12대를 은에서 보내게 되며, 이러한 까닭에 상나라는 후대에 '은나라'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2].

[1] 상세한 사항은 상나라/계보 참조[2] 상나라는 도읍의 이름을 국호 비슷하게 병용하는 전통이 있어 도읍의 위치에 따라 '박(亳) 시대', '비(庇) 시대', '엄(奄) 시대'하고 부르고는 했다. 이는 상나라가 아직 도시국가적인 성격을 보이고 있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이는 춘추시대까지도 어느 정도 이어지는 전통으로, 춘추시대의 진나라는 수도를 익(翼)에 두었을 시기 '익나라'라고 불린 적이 있으며, 전국시대의 위나라 역시 혜왕이 대량(大梁)으로 도읍을 옮기자 '양나라'라고 불린 바가 있다. 맹자에 나오는 양혜왕이 바로 위나라의 혜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