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겐 왕축

 


'''ཨོ་རྒྱན་དབང་ཕྱུག'''
'''공싸 우겐 왕축'''
'''Gongsa Ugyen Wangchuck'''

[image]
'''우겐 왕축 국왕의 사진'''
'''재위기간'''
'''1907년 12월 17일'''
'''1926년 8월 26일'''
'''즉위일'''
'''1907년 12월 17일'''
'''출생일'''
'''1862년 6월 11일 [1], '''붐탕 종카그[2], 왕두에촐링 성(Wangduecholing Palace)
'''사망일'''
'''1926년 8월 26일[3]'''
1. 개요
2. 왕 이전의 삶
3. 부탄을 건립하다
4. 불교 국가


1. 개요


'''부탄의 국부이자 초대 국왕'''이다. 1907년 12월 17일, 왕축 왕조가 다스리는 전제군주제부탄을 건립하였고, 그 후 18년간 부탄을 통치했다. 현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의 고조할아버지 이기도 하다.

2. 왕 이전의 삶


그는 1862년 부탄의 종카그 중 하나인 북부 붐탕 종카그의 왕두에촐링 성(Wangduecholing Palace)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정치가 및 전략가였다. 그의 리더십과 전쟁 기술은 매우 뛰어났으며, 어렸을 때 전쟁 속에서 자라나서 그런지 숙련된 전투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23살 될 때에, 그는 2400명의부대를 이끌고 연전연승했다.

3. 부탄을 건립하다


그는 1907년 12월 17일, 왕축 왕조가 다스리는 절대군주제부탄을 건립했고, 당시 부탄을 통치하던 영국의 승인을 받고 공포하여 그의 국가는 부탄 내의 유일한 국가가 되었고, 그는 왕으로서 부탄 일대를 통치했다. 이후 인도와의 조약을 맺어 부탄의 외교권을 모두 인도에게 이양하였다.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그는 재위하는 11년여 동안 민심을 얻고 나라를 단결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나중에 왕축 왕조에서 부탄 국민에게 펼치는 행복정책의 근본 바탕이 되었다.

4. 불교 국가


그는 부탄의 국교로 불교를 선택했다. 사실 이것은 부탄이 원래부터 티베트의 영향을 받아 불교 문화권이었던 탓도 있겠지만 왕축 자신이 불교의 승려들과 친분이 있던 것도 한 몫 했다. 그는 불교를 위해 많은 사원들을 건립하였다. 이러한 불교 문화는 110여년간 쭉 이어져 내려오면서 부탄 국민의 삶 구석구석에 녹아들게 된다.

5. 교육


그는 공약으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내걸었는데, 그는 말로만 하지 않고 인도의 콜카타와 델리를 방문한 뒤 본격적으로 당시 인도에 있었던 서양식 학교를 부탄에 들여오기로 하였으며, 국력 향상의 길은 교육이라 믿고 부탄이라는 나라의 뿌리를 더욱 더 견고하게 하기 위해 교육을 발전시켰다.

6. 사망


1926년 8월 26일, 우겐 왕축 국왕은 64세의 나이로 부탄의 종카그 중 하나인 중서부의 포드랑(Phodrang) 종카그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부탄이라는 국가의 건립을 이끌고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민족의 화합과 나라의 단결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후세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즉위일은 부탄의 공휴일이다.

[1] 이 당시 부탄에서는 태어난 월일이 불명이었는데 드디어 태어난 월일이 밝혀졌다.[2] 우리나라 말로 하면 현인 부탄의 행정구역[3] 당시 64세의 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