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1. 정의
敎育 / Education / 教育(jiàoyù)
지식이나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교사나 교수를 통해 지식을 배우는 것과 기술자로부터 기술을 배우는 활동을 총칭하며 특히 교육학에서는 '바람직한 인간이 되게끔 가르치는 것'이라는 뜻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테러, 범죄 등 비윤리적인 것들은 교육으로 묶지 않는다.
국어학적 측면에서 볼 때, 신조어 참교육 역시 엄밀히 말하면 교육학적 정의를 모르고 쓴 중의적인 단어이다. 또한 '누군가를 교육하다'라고 표현해야 하며, '누군가를 교육시키다'는 잘못된 사동 표현이다.
1.1. 교육의 요소와 종류
- 교육의 3요소: 교육자와 학습자(상황에 따라 교육자와 학습자가 동일한 경우도 있음) 그리고 교육수단(주로 교재)
- 장소: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따라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으로 나눈다.[1]
- 가정 교육: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으로서 가치관, 태도, 도덕관념등을 습득하게 된다. 가정교육은 다른 교육과는 달리 시기를 놓치면 받기가 불가능하고,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나중의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에서 잘 적응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 학교 교육: 학교에서 정해진 교육과정(curriculum)에 따라 이행된다.
- 사회 교육: 넓은 뜻으로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연스럽게 행해지고 습득하는 교육이며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육이다. 좁은 뜻으로는 성인학습자(adult)를 대상으로 능력을 계발하고, 지식의 이해를 높이며, 기능 및 전문적 자질을 향상시키려는 일체의 조직적 교육 활동.
- 방향성 - 교육은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때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만, '바람직하다'의 기준이 사회 체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2]
1.2. 학습 · 수업과의 차이
- 학습: 교육자 없이 일어나는 개인의 변화는 학습이라고 한다. '교육의 요소'엔 교육자(또는 교수자)와 학습자, 그리고 교육의 대상인 교재[3] 가 있는데 학습은 교육자가 부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들어 특별한 교육자 없이 교육(새로운 지식이나 기능을 습득하게 하는 활동)이 빈번히 벌어지게 되어 뜻을 혼용하지만 학습은 개인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 중 '생득적인 반응에 의한 변화', '성숙에 의한 변화', '일시적 변화'를 제외한 영속적인 변화만을 의미한다.
- 수업: 수업은 어떤 의도나 계획에 따라 학습자와 학습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 말하는 '계획'이란 크게 보면 교육과정이 된다. 교육과정은 계획을 담은 문서의 의미로 축소했을 때 국가[4] 와 지자체의 교육청, 학교와 교사가 만드는 것이다.
- 그 밖에 교육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것: 훈련, 교정, 교화와 혼동해서 잘못 쓰기도 한다. 교정은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지, 인간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교육의 범위에 비하면 상당히 축소된 의미이며, 교화는 교도소에서 쓰이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비도덕적이고 비교적 강제적인 방법이 많이 쓰이는 데다가 학습자의 의도와 자발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 하물며 세뇌도 교육과 상극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1.3. 교육(敎育)의 어원
교육(敎育)이란 한자어는 《맹자》의 득천하영재이교육지(得天下英才而敎育之)에서 따온 단어이다.[5] 한자를 풀이해보면 갓난아이를 때려서 가르친다는 뜻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부연을 하자면 敎는 爻와 子의 합친자(이끌 교)에 攵(치다 복)가 합친 글자다. '爻+子'는 자식이 본받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고, 거기에 회초리가 들어가는 식이다. 즉, 본받도록 하고 사랑의 매를 든다는 소리지, 무턱대고 때려키운다는 뜻이 아니다. 지식인이나 교육자의 경우에는 결국 누군가가 배우라고 준 것이다.
서구권에서의 교육이란 단어는 Education과 Pedagogy다. Pedagogy는 고대 그리스의 교육노예(Paidagogos)에서 유래했는데 교육노예가 어린이를 배움의 장으로 이끈다는 의미다. 잘 알려진 Education은 라틴어 'educo', 'educare'와 'educere'에서 유래했다. 어원적으로 해석하면 e(밖으로), duco(꺼낸다)는 뜻으로 각각 '양육하다', '바깥으로 끄집어내다' 라는 의미이다. 즉 인간의 선천적 능력을 발현시킨다는 의미.
2. 교육의 기능
- 개인의 발전과 완성
- 사회의 발전에 기여
- 일반적으로 의도한 목적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시 교육의 역기능이라고 부른다.
- 교육에 기능적인 부분만 있다고 보지 않는 사회학자(사상)들도 있었다. 자세한 것은 교육/논쟁 문서를 참조.
3. 교육의 역사
- 교육사 참조.
4. 교육의 종류
- 공교육: 국가 및 자치단체가 운영한다.
- 사교육: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교습과 학원. 역사적으로 부유층과 권력층은 사교육을 선호했다. 교육이 대중들에게 보급된 이후 학원교육체계가 들어섰다. 어학, 기술을 위한 학원이 일반적이지만 한국, 일본 등의 특수한 사정이 있는 국가에서는 대학입시를 위한 학원도 널리 존재한다.
- 유아교육: 유치원에서 이루어지며 일반적으로 어린이집, 유치원생 등 유아들이 받는 교육을 지칭. 유아교육과에서 교사를 양성한다.
- 초등교육: 초등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며 1차 교육이라고도 한다. 여러 국가에서 의무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기초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 주로 교육대학교에서 교사를 양성한다.
- 중등교육: 중등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다. 2차 교육이라고도 한다. 국가에 따라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되어있는 국가도 있고 통합되어 있는 국가도 있다. 주로 사범대학의 각 교육과에서 교사를 양성하거나 교직과정, 교육대학원 과정으로 교사를 양성한다.
- 고등교육: 고등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며 주로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다. 전문 대학 이상의 수준이 이루어지며 3차교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오해: 흔히들 고등학교가 고등교육이라고 착각하는데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왜 고등교육이 아닌데 고등학교라고 불리는지는 하단의 교육사 속 통감부 시절 교육을 보면 나와 있다.
- 직업교육: 취업을 목표로 당해 직업이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 및 태도를 습득하기 위한 교육. 중등교육과정에는 특성화고교가 담당하고 고등교육은 전문대학이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에서 허가받고 운영하는 직업전문학교가 있다.
- 평생교육: 인간은 학교를 졸업하면 끝인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우고 또 배우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도 한다. 게다가 자격이 필요한 경우 자격을 갱신하기 위해서 또 교육을 받거나, 이수해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여가를 즐기거나 취미를 갖기 위해서도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있는 것이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며 좁게는 각 회사나 기업의 교육팀과 각 대학별 평생교육원에서 평생교육과정을 경험해볼 수 있다.
- 가정교육
5. 여러 사상가들의 입장
- 영국의 교육 철학자 피터스(R. S. Peters)는 교육이 '가치어'라는 점과 교육의 준거에 주목했다. 교육은 가치 있는 것이며 이처럼 교육은 좋고 선한 의미에만 쓰여야 한다는 것이 피터스의 주장이자 현대 교육학에서 유의미한 이론이다. 교육의 준거란 규범적 준거, 인지적 준거, 과정적 준거를 말한다. 규범적 준거란 교육목적으로 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하며 다른 것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지적 준거는 교육내용에 관련된 것이며 교육받은 사람이란 부분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적인 지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정적 준거는 교육이 교육받는 학습자를 존중하여 인간의 이해와 자율성에 토대를 두고 도덕적인 방법으로 실현해야 함을 말한다. 최소한 이 3가지 준거를 가지지 못하면 교육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
- 이마누엘 칸트는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인간이 된다.'라고 하여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고, 교육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하며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인간은 교육을 받는 유일한 동물이며, 교육을 통해 동물성 대신 인간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격자 양성을 주요목표로 보았고 도덕적 인격교육을 강조했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도, 왜 교육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의미 있는 물음으로 남아 있다. 만약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고 가정하면,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왜 인간에게 교육이 없어서는 안 되는가?', '왜 사람에게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근거를 교육의 정당성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교육의 필요성과 가능성 차원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 플라톤은 '덕(德)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교육이 과연 사람을 훌륭해지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며 철인 통치자의 자연적 소양을 중시하였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교육 가능성의 문제가, '교육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방법의 문제나 '교육이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하는 한계의 문제로서 인식되고 있다. 즉, '사람을 교육하는 것이 가능한가?'하는 질문에 대한 근거를 교육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에게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교육은 역시 정당성을 잃게 된다.
6. 교육에 관한 논쟁
- 해당 문서 참조.
7. 각종 오해와 통념들
- 모든 사람은 대학교까지 나왔을 것이다.
- 외고, 특목고 등 명문고에 다니는 학생은 모두 부잣집 귀족 자제다.
- 일단 성적이 중요하다. 물론 부유한 집안일수록 확률은 높겠지만 당사자가 성적을 안 맞추면 말짱 꽝이다.
- 사실 이런 편견이 생긴 이유는 입시 과정에서 금수저들의 비리가 개입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왜 학생부종합전형이 비판을 받는지 생각해보자.
- 고3들은 항상 공부만 한다. 노는 고3들은 막장이거나 이미 자기 갈 길을 정한 사람들.
- 자기가 고3이 되면 알게 된다. 공부만 하는 로봇마냥 할 수 없다는 걸 직접 알게 된다 그러나 겉보기에 논다고 정말로 매일 노는 것은 아니다. 학교나 학원에서는 열심히 할 수도 있는 것. 또한 대학 진학의 뜻이 없는 고3들도 위탁교육을 하는 교육기관에 가서 자신만의 적성을 살리기도 하며, 이런 곳도 경쟁률이 높다.
- 수포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수학 교과목의 학습 분량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 수포자 문서의 수학 학습량 감축과의 연관성 부분으로. 수포자가 늘어나는 원인은 학습 분량의 많고 적음과는 거의 연관성이 없다. 아니, 학습 분량을 줄여도 오히려 변별력 유지를 위해 문제가 더 어려워지고 그렇다 보니 수포자가 줄기는커녕 더 늘어난다. 또한 그 부작용으로 한두 문제만 틀려도 1등급이 2등급으로 떨어지는 엿같은 상황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 실제로 모 단체를 위시한 몇몇 단체의 서명운동 등에 의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수학 학습 분량이 확 축소되었으나, 그럼에도 수포자 수의 유의미한 감소는 없었다.
- 아이돌이 되는 데 전념하기 위해 학업을 생략했다가 은퇴한 뒤 검정고시를 보는 연예인도 있다. 이렇게 직업을 위해 학업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 연습생 문서로.
-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가 늦게나마 배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검정고시를 보는 사람도 있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의무 교육이 중학교까지 확대된 뒤로는 점점 드문 사례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 1980년대 이야기. 70년대 이전에는 우수한 성적의 학생이 실업계로 오는 일이 다반사였으며 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인문계 중하위권 보다 실업계 상위권이 더 성적이 좋았다.
- 일부 지역의 경우 일부 특성화고는 커트라인이 50%다. 그리고 옆동네 일반계고에 중학교 때 내신 80~90%대가 오는 경우도 있다.
- 특성화고 출신이라도 공공기관 정규직 특채에 합격해서 공무원이 된다면 웬만한 대학 출신보다 훨씬 낫다. 자세한 것은 고졸 항목으로.
- 근래에는 이런 특성화 고등학교가 진화한 마이스터 고등학교[12] 가 생겨 특성화 고등학교보다 더 우수한 학생들을 모으고 있다.
- 교육부가 2017년에 의뢰하여 진행한 어느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특수학교들 대다수의 경우 표준지가와 단독주택가격의 변화율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으며, 그나마 차이가 나타난 일부는 오히려 이전보다 지가가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공동주택가격의 경우에도 압도적인 비율로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데일리 관련기사
- 학생들의 두발을 규제하기 때문에 생겨난 편견으로 선후관계가 바뀌었다. SKY생이 머리 기르고 염색했는데 양아치로 볼 사람이 있을까?
- 게다가 최근에는 공식적으로 염색, 파마도 허용되는 학교도 늘어나는 추세라 절대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
- 공부를 못 하는 학생들의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어떤 학생들은 정말로 그렇게 게으른 학생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공부 못 하는 학생들[13] 이 전부 게을러서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기성세대가 직접 낳은 자신의 자녀들ㅡ먹을것 안 먹고 입을것 안 입으면서 악착같이 길러 낸, 자라나는 대한민국의 다음 세대ㅡ에 대한 도 넘은 모욕이자 기성세대 본인들에 대한 셀프디스가 되고 만다. 당장 학업부진에 대한 내적인 요인들만 찾아보더라도, 개인의 성실함 이외에도 수많은 요인들이 있다.자신이 관심 있는 몇몇 과목만 들입다 파는 성격이거나, 정체감 유예(identity moratorium) 상태에 있거나, 타인보다 인지적 발달이 선천적으로 조금 뒤떨어지거나, 지병을 앓고 있어서 학업에 집중하기 힘들거나, 장애인도 있다.
- 위의 편견은 행위자 - 관찰자 편향이라는 개념으로 일부 설명될 수 있다. 해당 편향은 쉽게 말하면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와 유사한 개념인데, 자신이 보이는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의 영향을 탓하고, 타인이 보이는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본성과 성품, 타고난 내적 기질을 탓하려는 인지적 함정이다. 세상에 자기 자녀에게까지 위의 편견을 고스란히 들이대는 부모는 놀랍도록 많지 않다. 설령 아무리 못났어도 하면 되는 아이 정도로 생각하지, 자신의 자녀에게까지 저런 식으로까지 냉혹하고 잔인하게 다그치고 몰아붙이는 것은 차마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싸잡아 욕하는 그 밑바닥 인생 들도 결국에는 자신과 같은 어느 성실한 소시민 가정의 자녀라는 사실까지는 깨닫지 못한다.
- 클론이라는 아주 모범적인 반례가 존재한다. 애초에 강원래와 구준엽은 춤에 미쳐 사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공부를 등한시한 것일 뿐이지 양아치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클론으로 가수 데뷔를 해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 이를 과학사의 인물들과 비교해 보면 대략 에디슨, 아인슈타인, 모차르트의 대중적으로 왜곡된 이미지가 한꺼번에 뒤섞여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각 분야에서 노벨상 급의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 의외로 기존 교육과정에서 엘리트였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19세기 후반 이후 수학, 물리학 분야에서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엘리트 중등학교를 거쳐서 우수한 연구중심대학에서 똑똑한 학생으로 인정받고 출세가도를 달리면서 업적들을 남겼다.
- 국내에서는 김웅용부터 송유근까지 천재로서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역량을 진도보다 빨리 배우는 속진학습만으로 제한하여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 답이 나와있는 교과서의 표준적인 문제를 어릴 때 풀어내는 것은 천재의 특징이 아니다. 천재의 진짜 특징은, 자기 또래 수준의 문제이더라도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기발한 발상으로 풀어내던가[14] 아니면 대학원 수준에서 탁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적분을 남들보다 10년쯤 빨리 풀어내는 것은 주입식 속진학습의 결과일 뿐이지 천재성이 아니다[15] . 자료
- 흔히 대한민국의 공교육 시스템을 비판할 때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 재기발랄하고 자유분방한 천재성을 죽인다' 같은 주장들이 나오곤 하는데, 대한민국 공교육이 천재성을 죽인다는 비판 자체가 이미 자신이 비판하고자 하는 패러다임에 종속된 것이다. 얌전하고 말 잘 듣는 범재와 자유분방한 천재는 상호대립항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다. 이런 식의 논리에서는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천재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천재성을 놓치면 놓칠수록 더 많은 인재들이 제대로 쓰여지지 못할 수 있다. 권위에 저항하는 인재상도 물론 중요하지만, 권위에 저항하는 것과 천재성은 서로 별개의 개념이며 둘 다 따로 강조될 필요가 있다.
- 통념과 달리 교사들 중에도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체벌 대신 상벌점제로 징계를 하는 곳이 많아졌다.
- 대학생들이 과외알바를 구할 때 자신의 학교와 전공을 OO대 OO과 식으로 기재해서 광고를 내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좋은 대학'으로 인식되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과외를 하려는 대학생 본인이나 그에게 과외를 받으려는 초중고생과 그 학부모나 「과외선생님이 '좋은 대학'에 갔으니 그만큼 잘 가르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 물론 자기가 가르치는 내용을 자기도 이해 못 할 정도면 곤란하다. 중고교 영어 교사를 대상으로 한 감사에서는 토익 400~500점대가 적발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고, 수학 올림피아드나 자연계 논술의 경우 명목상으로는 중고교 수준이지만 대학원 졸업생들도 잘 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그 이상의 실력일 경우 교수법이 더 중요하다. 공부를 잘 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별개다. 만약 학업 성적과 교수력이 비례한다면 왜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에서 교수법을 따로 가르치는 걸까?
- "우리 방학하는 걸 선생님들은 싫어하실 거야!"
- 국내 대학교에 다니는 미국인 & 영국인 & 프랑스인 & 독일인 & 러시아인 & 중국인 등 외국의 유학생들은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것을 힘겨워한다.[16]
- 실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들 생각보다 덜 힘겨워한다. 외국인 유학생들을 조사했을 때 "한국인이 생각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적응 스트레스 점수"와 "외국인 유학생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적응 스트레스 점수"를 각각 조사했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더욱 높게 나타났다는 얘기다. 국내 대학교들의 만족스러운 행정 시스템과 각종 정착지원 혜택, 자신과 함께 지내는 수많은 외국인 친구들 등이 그 이유로 꼽혔다고. 반면 대조적으로, 외국인 유학생들은 한국에서의 한국어 강의내용과 교육과정, 조별과제 등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해 힘겨워하고 있지만, 한국 대학생들은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외국인 유학생들의 학업수행 스트레스 점수를 양쪽에서 내어 보면, 외국인 유학생들은 점수가 높게 나오고 한국인 대학생들은 점수가 낮게 나온다고.
- 학원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교육 시스템이다.
- 세계적으로는 보기 드문 제도인 건 맞으며,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같은 서양 선진국들에서는 학원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물론 이들 중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같은 일부 비유럽권 영미권 국가들에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학원들이 존재하기는 하나, 이런 곳의 학생들은 죄다 아시아 유학생들이며 백인 학생은 사실상 전혀 없다.(...)[17] 이 때문에 한국식 학원은 그냥 Hagwon(…)이라고 번역되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중국, 인도, 태국, 일본[18] 등의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학원 비스무리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뭐 아시아권이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으니까.
- 이 편견이 생긴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학원'으로 불리우는 사교육 기관이 외국, 적어도 한자 문화권에서 똑같은 이름으로 불리울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당장 구글 이미지 검색에 '숙(쥬쿠, 塾)', '예비교(요비코, 予備校)'[19] 라고 쳐봐라. 우리나라의 학원에 해당하는 온갖 사교육 기관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 대치동 거주 학생들을 비롯하여 강남8학군의 학교 재학생들은 모두 학원을 다니고 있을 것이다.
- 대한민국 최대의 사교육 메카라고 불리는 대치동이더라도 학원을 다니지 않는 학생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대치동 거주 학부모들 중에서도 자녀들의 학업에 집착하지 않고 자녀들의 장래희망을 잘 인도해주기도 하는 학부모도 당연히 존재한다. 거기에 인터넷 강의가 발달하면서 학원에 비해 싸고 스케쥴에 영향이 가지 않는 인터넷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늘어났기에 현재로서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탈무드나 토론 같은 그들만의 특별한 공부비법이 있기에 전세계적으로 학업성취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높다.
- 오히려 학업성취도가 OECD 하위권에 든다. OECD 가입국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학업성취도를 비교하고, 평균점수를 500, 표준편차를 100으로 설정할 경우, 이스라엘은 수학 466점, 과학 470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학 554점, 과학 538점으로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 일본과 함께 공부 잘 하는 나라로 유명하며, 버락 오바마가 그렇게 공부 못 한다고 까대는(…) 자국인 미국 조차도 수학 481점, 과학 497점으로 이스라엘보다 더 높다.# 물론 우리 위키러들은 이스라엘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가 하레디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 이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미국 내의 미국 유대인들과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혼동하고 있다. 미국 국내에서 미국 유대인들이 집단 규모에 비해 고학력자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이스라엘의 소위 '본토 유대인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은 사람들이다.
- OECD-PISA 데이터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적어도 과학 교육의 경우,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통해 설명되는 학생 간 학업성취도의 차이의 크기"는 한국의 경우 8% 정도인데, 핀란드 역시 8%이고 스웨덴은 10%이다. 데이터에 등록된 국가 중에 가장 교육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동네는 다름아닌 중국(광둥 성 일대). 한편 미국의 경우 대략 15~16%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
-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자식 공부시켜 주겠다는데 싫어할 학부모는 적을 것이다. 하지만 야간자율학습이 강압적이라고 싫어하는 학부모도 있을 것이며, 학원이나 과외 때문에 야자를 빼달라는 학부모도 제법 존재한다. 강남8학군을 예로 들을 수 있는데 학원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낼려는 학부모들의 엄청난 압력에 야간타율학습이 만연해있던 1980~2000년대에도 그 학교들은 강제가 아니였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로 옛날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20~30대 젊은 교사들은 오히려 야간자율학습을 싫어하는 교사가 더 많다. 위에서 시키니까 학생들을 억지로 시키는거지 젊은 교사들은 학생들을 학교에 붙잡을려고 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오히려 하고싶지 않으면 하지 말라고 한다. 괜히 붙잡아봐야 야자시간 분위기 개판나고 학생들 여기저기 힘들게 통제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교사들이 누가 있을까?
- 인서울 명문대학은 모두 영어 강의 수강이 의무다.
- 그렇지 않다. 물론 과거에 고려대학교 한정으로 영어 강의 수강을 의무적으로 했으나, 이마저도 고려대학교 측에서도 요즘 학생들의 학력 저하 현상 때문에 영어 강의 수강 의무를 폐지했다.
8. 여담
- 국가에서 세우는 교육 정책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20] 라고 할 만큼 개인과 사회에까지 큰 영향을 준다.
- 가장 효율성을 추구하는 분야이지만, 목표가 광범위하고 심지어 서로 상충되는 목표들이 혼재하고 있는데다 교육에서 다루는 각종 지식들의 학습적 연관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에, 지상목표 달성을 위해 필연적으로 효율성을 포기해야 하는 분야의 대표격이다. 또한 교육의 효율은 늦게 나타나며 또 효율적이었는지 측정하기도 어렵다는 면도 교육과 효율을 가까우면서도 멀게 만든다.
9. 교육 관련 어록
한 인간에게 교육을 시작할 때의 방향이, 훗날 그의 삶을 결정할 것이다.
The direction in which education starts a man will dermine his future life.
'''교육이 가장 훌륭한 노후 대책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면 하루를 먹일 수 있지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을 먹일 수 있다.'''
- 노자
'''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심는다 (十年樹木百年樹人) '''
- 관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
10. 관련 문서
[1] 장소와 무관한 교육으로 원격교육이 있다.[2] 교육학자들은 교육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싶어하나 어려운 부분이다. 자세한 것은 교육/논쟁 문서의 '교육에 관한 부정적인 의견' 문단 참조.[3] 좁게 보면 교재나 교과서나 실험도구, PPT 같은 매체 같은 것이지만 크게 보면 교과, 학문 등 교육을 통해 경험하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4] 교육부라거나 한국으로 치면 한국교육개발원[5] 원문은 맹자 진심장의 구절이다. 해당 구절을 소개하자면 孟子曰 君子有三樂 而王天下 不與存焉 군자에게는 세 기쁨이 있는데, 천하에 왕노릇은 이에 없다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부모가 계시고 형제가 탈이 없으니 그것이 첫 번째 기쁨이요,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하늘에 부끄럼이 없고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음이 두 번째 기쁨이며,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천하의 영재를 가르치고 기름을 얻는 것이 세 번째 기쁨이다. 다시 말해서 군자는 영재를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이라는 소리다. 삼락#s-1이라는 한자어의 연원이기도 하다.[6] 아시아권에서는 선두주자이나, 열강 기준에서는 후발주자이다.[7] 학력에 따라 생애 임금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차이의 폭이 크지는 않음[8] 단, 빈민층과 부유층은 교육제도가 의도한 계층이 아니다.[9] 스위스나 대한민국는 예외. 스위스의 경우는 법을 바꿀려면 전부 다 투표로 찬성이 결정나야 법을 바꿀 수 있다.[10] 대한민국만 해도 80년대까지 민주주의 교육을 거의 안 했고 반공 교육 위주만 하였다. 다만, 90년대 이후부터 '정치·경제' 교과서에 민주주의 교육을 크게 다루었고, 2010년대 들어서는 노동삼권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교육 수준과 민주화가 무관하다라고 볼 것은 아니며, 민주화가 교육 수준 상승만으로 당연히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11] 대표적인 케이스가 중국이다. 중국은 개혁개방이후 지속적인 경제개발로 2010년이후로 중산층이 확대되고 고등교육 기획가 확대되면서 고등교육 이수자가 늘어났지만 아직도 공산당 1당독재체제이고 시진핑 집권이후 시진핑 1인독재로 가고있다.[12] 졸업 후 3년동안 대학진학이 불가능하며 특성화고등학교에 비해 정부 지원금액이 많고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13] 그 기준과 정의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이야기하자면 한도끝도 없다.[14] 가우스가 어릴 때 1부터 100까지 더하기를 등차수열법을 스스로 고안해서 풀었다는 일화 같은 것.[15] 물론, 남들보다 진도가 빠르다는 것이 곧 천재성을 발견하게 될 징후일 수는 있다. 위의 각주에 나온 가우스가 어린 나이에 등차수열의 합 공식을 머릿속에서 유도해서 1부터 100까지의 총합을 구하는 데 쓴 것이 그 예다. 현재 한국의 교육과정에서는 고등학교 과정에서나 나오는 부분을 햇병아리 초딩이 유도해냈다는 점에서 이미 싹수가 보였다고 할 수 있다.[16] 일본인의 경우 교육 및 학교 문화가 한국과 매우 유사하므로 포함하지 않음.[17] 오히려 백인 학생 및 학부모, 교사들 사이에서 이런 아시아식 학원들은 비판과 욕만 먹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시험 문제풀기에만 특화된 커리큘럼이 창의성과 토론, 독서, 논술, 외부 경험, 그리고 평소 학교 수업에서의 성실성 등을 중요시하는 서양의 교육관과 맞지도 않는 데다가 이런 학원들의 교육과목은 지나치게 공학이나 경영학 같은 실용학문에만 치중해 있기 때문에 인문학과 순수과학 같은 기초학문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서양인들의 가치관과도 대립되기 때문이다.[18] 일본의 경우, 교육관의 서구화로 학원이 몰락하는 추세에 있다.[19] 우리나라의 재수학원에 해당된다.[20] 말 그대로 100년 앞, 즉 먼 미래를 내다보고 세워야 할 계획. 저위에 관자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 원래의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