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승리하리라
조안 바에즈가 부른 원곡.
한국어로 번안한 찬송가 버전.
찬송가이자 미국, 한국의 민중가요.
원래는 찬송가로서 불렸지만 미국의 포크 가수 피터 시거가 포크 송으로 편곡하면서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3년 8월 23일(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 연설을 했던) 워싱턴 대 행진에서 포크 가수 조안 바에즈가 부르던 곡을 20만이 넘는 군중이 따라부른 것으로 유명해져 미국 인권운동의 성가로 자리잡았다. 이후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여러 나라에도 퍼져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불리는 곳이 많다.
한국에서 처음 이 노래를 민중가요로서 소개한 사람은 역시 포크 가수였던 김민기. 1972년 서울대 신입생 환영회 공연에서 처음 번안하여 부른 것을 시작으로 70년대 민주화와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서 많이 불리웠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반미 감정이 팽배해지면서 이 노래도 함께 그 위상이 사그라들었고, 이후 민중가요는 미국식 포크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현재는 시위 현장보다는 민주 항쟁이나 시민 운동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더 많이 불리는 편.
또한 내 이름은 칸 이라는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존 그리샴의 처녀작인 '타임 투 킬'에서 흑인들은 모임이 있을 때 마다 이 노래를 부른다.
보통 1절만 부른다.
곡의 길이가 많이 짧아졌다.
한국어로 번안한 찬송가 버전.
1. 개요
찬송가이자 미국, 한국의 민중가요.
원래는 찬송가로서 불렸지만 미국의 포크 가수 피터 시거가 포크 송으로 편곡하면서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3년 8월 23일(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 연설을 했던) 워싱턴 대 행진에서 포크 가수 조안 바에즈가 부르던 곡을 20만이 넘는 군중이 따라부른 것으로 유명해져 미국 인권운동의 성가로 자리잡았다. 이후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여러 나라에도 퍼져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불리는 곳이 많다.
한국에서 처음 이 노래를 민중가요로서 소개한 사람은 역시 포크 가수였던 김민기. 1972년 서울대 신입생 환영회 공연에서 처음 번안하여 부른 것을 시작으로 70년대 민주화와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서 많이 불리웠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반미 감정이 팽배해지면서 이 노래도 함께 그 위상이 사그라들었고, 이후 민중가요는 미국식 포크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현재는 시위 현장보다는 민주 항쟁이나 시민 운동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더 많이 불리는 편.
또한 내 이름은 칸 이라는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존 그리샴의 처녀작인 '타임 투 킬'에서 흑인들은 모임이 있을 때 마다 이 노래를 부른다.
2. 가사
2.1. 영어 원문
2.2. 한국어(개신교)
보통 1절만 부른다.
2.3. 한국어(가톨릭)
곡의 길이가 많이 짧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