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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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k
1. 개요
끝이 최소 두 갈래 이상 갈라진 형태의 식기. 음식을 찍어 먹거나 얹어 먹을 때 사용한다. 끝으로 찌르기에 적합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보통 음식은 포크 하나만 이용해 떠먹거나 나이프와 함께 이용하여, 포크로 찌르고 나이프로 썰어먹는 게 서양 식사 방법.
2. 역사
흔히들 서양의 식사용 도구로 알려져있지만, 고고학적 증거물로 볼 때, 아프로-유라시아 대륙 곳곳 고대 문명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도구이다. 중국 치자 문명(기원전 2천년 경)에서 사용한 뼈로된 포크가 발견되기도 하였고, 후한 시대 무덤에선 돌로 조각한 포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1] 고대 이집트에서는 포크를 조리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고대 로마에서는 은으로 포크를 만들기도 하였다. 영어 단어 Fork는 라틴어 furca에서 유래하였는데, 쇠스랑을 의미한다. 포크를 보편적인 식사용 도구로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고대 그리스로 여겨지는데, 4세기 경에는 동로마 제국 전역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보편화 되었다. 가까운 근동과 페르시아로도 포크 문화가 전파되어, 9세기에는 중동지역에서도 널리 쓰이는 식사용 도구가 되었다.
서로마 제국 붕괴 이후 서유럽에서 포크 문화는 사라지고 게르만족의 수식(手食)문화가 자리잡는다. 이런 과거 서양의 흔적은 현재도 곳곳에 남아 있는데 특히 지금도 서양 식사법에서 주식인 빵만큼은 포크나 나이프를 쓰지 않고 손으로 떼어 먹는 것이 기본적인 식사예절이다. 또 격식이 있는 서양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식후에 핑거볼이라고 하여 손가락을 씻는 물이 담긴 그릇을 식탁에 내놓는데, 이게 원래 서양식 진짜 식사의 흔적이다. 중세 시절부터 서양에서는 음식을 모두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고, 그래서 식사를 마친 후 음식이 묻은 손가락들을 핑거볼에 넣고 씻었다.[2]
포크가 다시 서유럽 세계로 전파된 것은 베네치아 공화국을 통해서였다. 10세기 동로마 제국의 중흥기를 만든 황제들 중 하나인 요안니스 1세의 조카 테오파노가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2세의 황후로 갈 때 포크가 서유럽에 다시 소개되었는데,[3] 이렇게 전해진 포크는 11세기 이후 베네치아 공화국을 통해 이탈리아 반도에 널리 보급되었다. 다름 아닌 파스타 식문화 때문.
이탈리아가 이렇게 고대 로마의 문화를 중흥 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등 타 서유럽에서 포크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팽배했었는데, 가령 베네치아 총독의 후계자인 도메니코 실비오(Domenico Silvio)가 동로마 공주인 테오도라와 결혼했을때 테오도라가 포크를 가져 왔는데, 이를 보고 페트루스 다미아니(Petrus Damiani) 주교가 강력하게 비판하며 일련의 스캔들들이 될 정도였다. 문학 작품을 봐도 포크에 대해서 '이탈리아 놈들이나 쓰는 것' 혹은 '계집애들이나 쓰는 것'이라 폄훼했다. 일부 교회학자는 하느님이 주신 손은 본질적으로 깨끗하기 때문에 포크를 써서 식사하는 것은 과도한 섬세함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가톨릭의 총본산인 이탈리아에서는 잘만 썼는지라 교리 차원에서 일치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고, 각 지역마다 다른 문화를 각지 성직자들이 성경을 끌어와서 정당화한 상황으로 이해해야한다.
이후 중세 서유럽 지역에 포크의 존재는 곳곳에서 등장하지만 이는 실 사용보다는 과시용에 가까웠다.
다만 다른 유럽 지역으로 퍼지는 건 상당히 늦었는데, 15세기경이면 지중해 국가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영국&프랑스&독일 등에서는 16세기 이후에 서서히 도입되기 시작했다. 당시까지도 사람들은 포크 사용에 대한 거부반응을 지니고 있었는데 한 예로 1608년에 영국인 토머스 코리어트가 유럽을 돌아다닌 여행기를 편찬했는데 유럽 곳곳에서 포크를 사용하면 퍼시퍼(furcifer), 즉 포크잡이라는 조롱섞인 별명을 얻게 되기도 했으며, 프랑스 왕국의 경우엔 17세기에도 보급이 덜 되어 루이 14세가 식사 때 자신은 손과 칼 외에는 다른 건 써본 적 없다며 다른 황족들도 포크를 못 쓰게 했다고 한다. 당시 포크를 쓰는 건 남자답지 못한 일로 여겼다고.[6] 전 유럽에서 포크를 사용하게 된 건 적어도 18세기 이후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포크가 대중화된 것도 18세기 후반 미국의 독립 혁명 이후의 일이다.1363년에서 1380년 까지 재위한 프랑스의 샤를 5세가 남긴 재산 목록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포크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식사용이라기보다는 과시용에 가까웠다.
1533년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느(Caterina de' Medici : Catherine de' Medici)가 프랑스의 알리 2세에 시집가면서 자신의 요리사들과 모든 식탁 도구들을 함께 가져간 것을 계기로 프랑스에 소개된 바 있지만 대중적으로 확산되기까지는 약 1세기라는 시간이 필요했다.(중략) 17세기경 이탈리아 일부 사람들이 포크를 쓰기 시작했지만 항간의 조롱거리에 불과했다.[4]
특히 남자가 포크를 사용하면 까다로운 성격을 지닌 사람 또는 여자 같다는 말을 들었다.
'''조경숙, 이미혜. 동서양 취식(取食)도구 문화에 대한 고찰 ― 포크와 나이프, 스푼식문화권(食文化圈)과 저식문화권(箸文化圈) ―'''[5]
초기 포크는 고기덩이를 요리하고 먹기 위한 도구로 갈래가 두개였지만 한쪽 축을 중심으로 고기가 빙빙 돌게 되는 문제점이 있어서 개량을 거친 끝에 19세기가 되어 네갈래 포크가 가장 이상적이고 표준적인 포크로 자리잡게 되었다.
3. 기타
숟가락 끝이 포크의 형태를 띄고 있는 스포크라는 물건도 존재한다.
어떤 라이트 노벨의 남주는 포크를 무기로 쓴다.
[1] 우스게 소리로, 중국은 포크랑 젓가락 둘 다 발명했으나 지금은 젓가락만 쓰고 있는걸 보면 젓가락이 훨씬 유용하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중국이 누구보다도 먼저 포크를 발명했다는 소리는 아니고 중국'도' 다른 고대 문명들과 마찬가지로 자체적으로 포크를 발명했다라는 소리로 알아들어야 한다.[2] 이 핑거 볼에 레몬을 태워 주기도 하는데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동아시아인들이 서구권 레스토랑에 갔다가 레몬수 정도로 생각하고 손을 씻어야 할 핑거볼을 마셔버려 망신을 당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3] 동로마의 황녀가 외국으로 시집간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전임 황제인 니키포로스 2세가 군사적으로는 탁월했지만 외교적으로 서유럽과의 관계를 망쳐놓았는데, 이 결혼을 통해 서유럽과 동유럽의 관계가 회복되었다.[4] 심지어 포크를 쓰는 사람들을 놀리는 코미디까지 있었다(...)[5] 한국조리학회지 제 9권 제1호(2003)[6] 당시 유럽의 식사 문화에서는 고기 처럼 메인이 되는 좋은 요리는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 식사 주최자 등 그 식탁에서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칼로 잘라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이 흔했다. 이 고기를 잘라 나눠주는 것도 식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권위를 나타내는 증표이기도 했고. 즉 이미 잘려진 음식이 제공되어 칼이 필요 없었기에, 보통은 포크 같은 식기를 쓰지 않고 손만 써서 먹었다. 이 전통은 지금도 일부 남아 있는데, 서양의 바베큐 파티 같은 곳에서 연장자가 고기를 굽고 나눠주는 게 그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