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덩

 


Wendi D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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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세 번째 아내. 물론 단순히 재벌의 아내이기만 했으면 굳이 문서가 개설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신데렐라라고도, 팜므파탈이라고도 불리는 그 파란만장한 삶 때문에 유명해졌다.
1968년 12월 10일 산동성 지난에서 한 달 50달러 버는 중국인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다.[1] 출생시 이름은 邓文革(Dèng Wéngé, 덩원거)로 문화대혁명을 뜻하는 이름이었으나, 이후 10대 때 邓文迪(Dèng Wéndí, 덩원디)로 개명했다. 원디(Wendi)라는 이름은 묘하게 영어식 이름인 웬디(Wendy)를 연상시키는데 의도된 것일 수도...[2]
미국인이 되고싶은 그녀는 한 미국인 부부 가정에 입양되어 광저우의대부터 시작해 캘리포니아 주립대 그리고 예일대 경영대학원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50대 양아버지의 재력을 보고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기 시작했는데 결국 부부를 이혼시키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양아버지와 결혼까지 했다.(...) 하지만 2년 7개월 만에 이혼했는데 이 시점이 그녀가 미국시민권을 획득한 시기였다. 그렇게 예일대 경영학 석사를 졸업한 뒤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에 인턴으로 입사한다.
그런데 애초부터 입사 목적이 머독이었는지 회사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는데도 드레스를 갖춰입고 참석해서 머독에게 접근하여 와인잔을 머독에 옷에 쏟아 머독의 눈길을 끌었다. 막장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전형적인 수법이나 다름없는 상황. 머독은 젊고 똑똑한 웬디덩에게 관심을 보이며 비서로 승진시킨 후, 중화권 출장을 갈 때마다 통역으로 데리고 다녔다. 웬디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머독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하여 1999년 '''겨우 31살 때 68세의 루퍼트 머독과 결혼'''했다.(37살 차이) 당시 머독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시점이라 두뇌회전 빠른 그녀가 이점을 이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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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독과 웬디 덩
머독과의 사이에 그레이스(2001년생), 클로이(2003년생) 두 딸을 두었다. 1931년생인 아버지 루퍼트 머독과 이들 자매의 나이차가 70살 이상이다(!) 그리고 2013년에 14년간의 결혼생활 끝내고 이혼했다. 이혼한 주된 이유는 머독이 총리로 만들어줬다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전 총리 토니 블레어와 웬디 덩의 불륜이 들통났기 때문.(...) 블레어는 머독의 큰딸 그레이스의 대부이기도 하다.
그녀가 머독과의 이혼 위자료[3]로 받은 액수는 무려 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고, 세계 최악의 개썅년(bitch)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두 가정이나 파탄냈으니...[4] 웬디 덩은 자기 신분상승을 위해 명문대에 진학해 석사를 따고 머독 같은 대단한 지위에 있는 남자를 잘 이용했을 정도로 똑똑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걸 안 좋은 곳으로 이용하여 자기의 부를 축적한 케이스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현재는 20대 초반의 헝가리 출신 모델 Bertold Zahoran과 사귀고 있다. 지금까지 결혼하거나 사귀었던 남자들이 한참 연상이었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한참 연하인 잘생긴 남자를 만나고 있다. 골드 디거 항목에서도 보이지만 이런 이들을 슈가마미라고 부른다.
국내엔 TV조선 강적들 10회 방영분과 차트를 달리는 남자를 통해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
178cm로 상당한 장신이다.
[1] 이렇게 본다면 매우 가난하게 살아온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당시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100달러 안팍이었음을 생각하면 당대 중국기준으로는 결코 못먹고 못살지 않았다(...)[2] 한국에서도 이런 식의 이름들이 있다. 제인/Jane·Zane, 유진/Eugene, 새라·세라/Sarah, 산다라/Sandra, 철수/Charles[3] 유책 배우자- ‘혼인파탄의 결정적 책임이 있는 배우자’ 인 웬디 덩이 재산분할금이 아닌 위자료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현재까지 모든 미디어에서는 ‘위자료’로 표기중[4] 덤으로 토니 블레어도 대녀의 가정을 박살.(...) 근데 블레어는 부인에게 싹싹 빌었는지 어땠는지 이혼하지는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