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삼국지)

 


劉喬
(249 ~ 311)
서진의 인물. 자는 중언(仲彦). 유부의 아들, 유이의 손자.
남양군 사람으로 유교는 젊어서 비서랑에 임명되고 왕융의 부름으로 그의 참군이 되었으며, 279년에 오를 정벌할 때 왕융, 나상 등과 함께 장강을 건너 무창을 공격했다. 오나라를 정벌한 후에는 영양령, 태자선마 등을 역임하다가 291년에 양준을 주살하는 것에 공을 세운 것에 따라 관중후에 봉해지고 상서우승에 임명되었으며, 300년에 가밀 등을 죽이는 것으로 안중남에 봉해졌고 승진을 거듭해 산기상시가 되었다.
제왕 사마경이 대사마가 되어 혜소가 사마경에게 겸손하라는 충고를 했지만 사마경은 그 충고를 듣지 않으면서도 혜소를 항상 계단에서 내려와 그를 맞이했는데, 유교가 혜소에게만 경의를 나타내는 것을 중지하도록 이야기해서 혜소에게 경의를 나타내지 않게 되었다.
어사중승으로 옮겼다가 사마경의 심복 동애가 권세를 휘두르자 20일 동안 그의 죄를 상주하고 6번을 탄핵했으며, 유교는 동애로 인해 상서우승 구희를 통해서 면직되었다가 둔기교위가 되었다. 303년에 장창이 반란을 일으키자 위원장군, 예주자사 되어 형주자사 유홍과 함께 장창을 토벌해 우장군으로 승진했다.
305년에 사마충이 서쪽의 장안으로 옮기면서 유교는 혜제를 영접하려 했다가 사마월이 황제의 명을 받았다고 칭하면서 유교를 안북장군, 기주자사에 전속시키고 범양왕 사마효를 예주자사에 임명하자 유교는 천자가 임명한 것이 아니기에 교체를 인정하지 않고 군대를 내어 거부했으며, 사마효가 유곤을 사마, 사마월이 유번을 회복호군, 유여를 영천태수로 삼자 유교는 편지를 올려 이들 유여 형제의 죄악을 늘어놓았다.
유교는 허를 공격하고 유교는 장자 유우를 파견해 병사를 거느리게 하면서 소현의 영벽에서 사마월의 군사를 막았으며, 사마효가 사마무를 도독청주제군사에 임명했지만 사마무는 이를 듣지 않고 유교와 연합했다. 유교가 이 사건을 조정에 보고하면서 사마옹이 10월 18일에 진남대장군 유홍, 평남장군인 평성왕 사마석, 정동대장군 유준에게 유교를 도와서 유여 형제를 주살하도록 했으며, 유교는 진동장군으로 올려지고 가절을 받았다.
유홍이 유교, 사마월에게 편지를 보내 원한을 풀어 군사를 해산시키도록 했지만 유교는 듣지 않았고 유교는 허창을 공격해 격파해 유곤의 부모를 사로잡았으며, 유여, 사마효 등은 하북으로 달아났다. 유곤이 기주자사 온선에게 사마효에게 기주자사의 업무를 양보하게 하자 사마효는 기주자사가 되었는데, 왕천을 황하, 석초를 형양에서 죽이자 고성에서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사마무도 늠구에서 패해 봉국으로 돌아가고 유우도 초에서 전사하자 유교는 패해 5백명을 이끌고 평씨로 달아났으며, 306년에 혜제가 낙양으로 돌아오자 사마월은 유교를 태부군자제주로 임명하고 311년에 사마월이 죽자 유교는 도독예주제군사, 진동장군, 예주자사에 임명되었다가 관직을 역임하던 중에 사망하고 사공으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