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오

 

濡須塢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인 여몽유수구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보루.
211년에 여몽은 조조가 오나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유수구가 격전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여기다가 보루를 세우자고 건의한다.
하지만 수전에는 자신이 있는 오나라 무장들이라 "해안가에 올라가서 화살 쏘다가 적이 가까이 오면 배타고 튀면 되는데 그 짓은 뭐하러 함?"같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여몽은 그들의 주장에 있는 심각한 결점을 지적한다.

군사를 다루는 일에는 날카로움과 둔탁함이 있는 것이고 싸움에는 모두 다 이길 수 없는 것이니, 만일 우연히 만나서 적의 보병과 기병이 쫓아오게 되면 사람들이 물에 도달할 겨를도 없는데 그들이 배로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오군이야 배에서 내리고 화살 쏘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을 순전히 도보로 해야 되지만 위나라 군대는 기병을 휩쓸고 온다는 것. 손권은 그 말을 듣고 "훌륭하다"고 칭찬하고 유수오라는 조조를 저격한 방어 요새를 만든다.
이 요새는 언월의 형태를 띠고 있어 언월오라고도 불렸으며, 소호에서 장강까지의 통로를 통제해서 조조가 남하해서 장강을 건너는 것을 막는 것 뿐만 아니라 회남을 공격하는 것에 유리한 이점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 곳의 위치는 안휘성 함산현 서남쪽 소현과의 경계처로 塢라는 한자에서 볼 수 있듯이 큰 성은 아니고 작은 보루지만 활용도는 결코 낮지 않았으니[1] 위나라 입장에선 유수구를 타고 장강만 넘으면 오나라의 수도 건업이 코앞이었기에 이를 의식해 여러번 유수구를 침공했지만 유수오를 넘지 못했다.
가히 오나라판 합비로 탐나는 위치에 적절하게 신설한 군사기지의 힘으로 매번 수비해냈으니 여몽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1] 오는 시기에 따라서 규모의 차이가 꽤 많은 개념이다. 둑이나 보루의 작은 거점 개념부터 시작해서, 성채 수준까지 커지기도 한다. 때문에 군사요새로서 오는 군사거점으로는 보다 유명한 진鎭에 자체적인 군량생산 기능을 더한 개념에 가깝다. 삼국지에서 유수오와 함께 유명한 다른 오로는 동탁이 짱박힌 미오가 있는데, '''미오의 성벽은 장안성과 같은 수준'''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