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구

 



1. 개요
2. 생애와 명지학원 수난사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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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0월 3일생
명지학원 이사장, 명지건설 회장, KBO 총재

2. 생애와 명지학원 수난사


1946년 충청남도 대전부에서 명지학원의 설립자인 방목 유상근(1922~1992)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아버지인 유상근이 1992년에 사망하자, 47살의 나이로 명지학원(명지대, 관동대, 명지 중, 고등학교) 이사장에 오른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 관동대학교 의대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일이 꼬이면서 유영구 이사장은 명지학원을 완전히 말아먹고 만다. 의대 부속병원이 필요하다보니, 서울 서대문구의 세영병원을 인수한 다음, 의료진을 그대로 고용승계하여 고양시 덕양구 화정지구에 종합병원인 명지병원을 세운 것인데, 여기서 명지학원의 수난사가 시작되었다.
1997년에 명지병원을 설립하였는데, 당시에 외환위기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대학병원 특성상 건설비나 장비를 마련하는 비용은 천억이 넘어갔다. 시공은 명지건설이 맡았는데, 명지병원이나 명지병원의 수혜자인 관동대[1]는 당시 건물들을 올리느라 재정이 영 시원찮던 상황이었다. 문제는 명지병원은 생각보다 수익성이 안 나왔고, 이는 명지건설에게 큰 타격을 주게 되었다. 또한 유영구 본인이 연대보증인이었던 탓에 명지건설의 부도는 곧 유영구 본인도 파산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속에서 명지학원은 서울시내 노른자땅에 명지빌딩을 올리고 정원고 시설을 인수해서 경기외고를 만들고 있었다는거... 결국 여기서 건설비가 밀리면서 2004년과 2006년에 명지건설이 부도가 난다.
명지건설의 회장이기도 했던 유영구는 천억대의 연대보증이 자신의 이름으로 걸려있었고 명지건설 비리도 있었기에, 명지빌딩을 매각하는가하면 관동대, 명지대의 돈을 빼돌리는 짓까지 하고 만다.[2],
2004년에 명지대 소유의 부지 340억원을 매각한 대금을 명지건설 채무변제에 사용, 그리고 명지학원 산하 부동산 매각대금 1700억 상당을 명지건설 증자에 사용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동대 양양캠과 명지대 용인캠에 실버타운 운운하면서 나름 수를 써보려고 싶었지만 별 수가 없었다.
결국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나빠지자, 2008년에 명지외고[3] 를 시작으로, 명지건설을 대한전선에 매각했고[4] 명지의료재단[5]도 매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장인 본인은 참여정부의 낙하산(...)이었던 신상우 총재가 사임하자, 새로이 2009년 2월말에 KBO 이사장에 취임했다. 다만 유영구 본인이 이 시기에 '''명지학원 비리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었기에''' 여러모로 답이 없던 상황이었는데, 정권의 친이계 낙하산이 내려올까 우려되었던 야구계가 부랴부랴 앉혔다고 한다.
유영구 본인은 KBO를 나름 잘 운영하기 위해서 KBO 회계감사도 두고, 2010년에는 프로야구 최대관중(592만),제 9 구단(NC 다이노스) 창단, 서울대학교 베이스볼 아카데미 창설 등의 치적을 세웠다.
그러나 명지학원 비리가 워낙에 커서, 2011년에 구속되었고, 2012년에 징역 7년을 선고받으면서 일선에서 물러났다. 현재 동생인 유병진이 관동대 총장을 거쳐서 명지대 총장을 지내고 있다. 또한 그의 아들인 유재훈은 명지학원 이사를 지내고 있다.

[1] 1995년부터 양양캠퍼스가 개교했으며, 강릉캠퍼스 역시 의대건물과 경영대학 건물(청송관)을 짓고 있었다.[2] 명지건설이 망하면 유영구 본인도 같이 수백억대의 부채를 고스란히 뒤집어 쓰게 된다. 명지학원 자체를 빼앗길 수도 있단 소리.[3] 의왕 정원고의 물적자산을 명지학원이 인수하여 해당 부지에 2004년에 명지외고로 개교했으나, 부실재단이 경영을 포기했고, 결국 자산가치가 높아서 1번으로 대교에 매각되었다.[4] TEC건설로 사명변경, 다만 2012년경까지 협력관계는 유지되었다. 이후 대한전선이 망하면서 양우건설이 인수하여 양우종합건설로 사명을 바꾸었다.[5] 관동대 의대와는 협력관계에 있었다. 애초에 관동대 의대를 위해서 고양시에 2003년에 신설된 병원이었으나, 명지재단의 자금난으로 인천사랑병원 이왕준 이사장에게 매각되었다. 이후 이왕준과 명지학원(관동대)와의 관계악화로 관동대 의대는 존폐위기에 몰리기 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