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덕

 

1. 개요
2. 상세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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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의사. 응급의학과 전문의. 본관은 해남(海南)[1].

2. 상세


1968년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율동리 용덕마을[2]에서 아버지 윤재태의 늦둥이 아들로 태어났다. 그 후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광주에서 자랐다.# 이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를 졸업했다.[3]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된 이후 2002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응급의료기획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2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되었다.
이국종 교수와 함께 닥터헬기, 권역외상진료센터 도입에 힘썼으며, 국가응급진료정보망 구축에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기실 이 사람이 초창기 의사 수련 할 때까지만 해도 현재 한국의 통념적 '응급실'은 없었다고 보면 된다. 각 과 인턴 레지던트 등이 당직 서면서 돌아가며 내려가보는 의료 사각지대에 가까웠고 KTAS 같은 공식 환자 분류 체계도 없어서 대형 재난이 터지면 병원 복도에 매트리스 깔고 누워 있다 죽기도 하는 곳이 응급실이었다. 여러 사람의 노력이 있었지만 2020년 한국 병원 응급실의 틀을 구상한 건 윤한덕 중심의 일련의 그룹의 공헌이 맞다.
2019년 2월 4일 설 연휴 중 사무실에서 과로로 인한 급성 심정지로 사망하였다. 같은 해 4월 7일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고, 8월 13일 정부는 응급의료정책 발전에 힘써온 그의 공로를 인정해 그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3. 여담


  • 응급의료의 위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지하철 내 제세동기에 '심쿵이'라는 이름을 붙여 홍보했다고 한다.
  • 이국종 교수가 그를 찾으러 갔을 때 그는 이국종 교수에게 "당신이 이러는 동안 환자가 갑자기 오면 누가 수술하느냐"라고 말하며 꾸짖었다고 한다.
  • "자신이 응급의료 전반에 대한 정책의 최후 보루라는 자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일평생을 산" 평범한 영웅 윤한덕에 대한 이국종 교수의 기고다. 기고문
  • 2020년 2월 "의사 윤한덕 I, II"가 출간되었다.#
[1] 28세손.[2] 해남 윤씨 집성촌이다.[3] 어릴 때부터 라디오를 뜯었다 조립하는 등 기술에 관심이 많았고 의대 점수가 남을 정도로 학업 성적이 좋아 본인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가길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고, 위 형제자매들도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집안에 의사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진학한 것. 애초에 의학 공부에 뜻이 없었던 터라 학습량이 버거워 중도 휴학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호방한 성격이라 의대 산입생 때 오리걸음 기합을 주자 왜 이걸 해야 하냐며 들고 일어난 적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