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

 

'''국립중앙의료원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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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의료원'''
'''NMC'''

'''
중앙응급의료센터
'''
'''
서울권역외상센터
'''
[image]
'''정식 명칭'''
국립중앙의료원
'''한자 명칭'''
國立中央醫療院
'''영문 명칭'''
'''N'''ational '''M'''edical '''C'''enter
'''국가'''
대한민국
'''설립일'''
2010년 4월 2일
'''설립목적'''
공공의료의 효율성과 만족도를 높여 공공의료를 선도함으로써 국민 건강증진과 국가보건의료의 발전에 이바지
국립중앙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전신'''
'''중앙의료원'''
(1958년 10월 2일 ~ 1960년 8월 11일)
'''국립의료원'''
(1960년 8월 12일 ~ 2010년 4월 1일)
'''대표자'''
정기현
'''주무기관'''
보건복지부
'''주요 주주'''
해당사항 없음
'''기업 분류'''
기타공공기관
'''상장 여부'''
비상장기업
'''종류'''
종합병원
'''병상 수'''
613병상
'''직원 수'''
1,409명(2020년 3분기 기준)
'''자본금'''
255억 5,090만 2,450원(2019년 기준)
'''매출액'''
1,138억 9,425만 1,200원(2019년 기준)
'''영업이익'''
-339억 8,823만 7,205원(2019년 기준)
'''순이익'''
-18억 1,490만 6,402원(2019년 기준)
'''자산총액'''
446억 6,688만 8,413원(2019년 기준)
'''부채총액'''
358억 3,582만 9,642원(2019년 기준)
'''미션'''
'''더 건강한 미래, 함께'''
'''비전'''
'''사람 지역 미래를 잇는 국립중앙의료원'''
'''소재지'''
'''본원''' -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45 (을지로6가)
'''관련 웹사이트'''
'''국립중앙의료원 공식 홈페이지'''
'''공식 SNS'''
'''국립중앙의료원 공식 블로그'''
'''국립중앙의료원 공식 트위터'''
'''국립중앙의료원 공식 페이스북'''
'''관련 전화번호'''
통합번호: '''1588-1775, 02-2260-7114'''

'''▲ 국립중앙의료원 공식 홍보영상'''
1. 개요
2. 역사
3. 역대 원장
3.1. 법인화 이전
3.2. 법인화 이후
4. 사업
5. 병원 이전 논란
5.1. 원지동 이전 추진과 파행
5.2. 방산동 이전?
6. 문제점
7. 여담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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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립중앙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 이 법은 국립중앙의료원을 설립·운영하여 공공의료의 효율성과 만족도를 높이고 수준 높은 공공보건의료기관으로 육성하여 공공의료를 선도하게 함으로써 국민건강 증진과 국가보건의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법인격)''' 국립중앙의료원은 법인으로 한다.
'''제24조(「민법」의 준용)''' 국립중앙의료원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된 것 외에는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45 (을지로6가)에 소재한 국립의료기관. 직제상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이자 공공기관으로 별도 법인이라는 점에서 국립암센터와 비슷하다.[1] 보통 의학전문언론에서는 NMC라고도 많이 부른다.

2. 역사


1958년 10월 2일,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 3국의 지원으로 '중앙의료원직제'에 근거하여 보건사회부 소속기관인 '중앙의료원'으로 설치되었다. 1960년 8월 12일 '국립의료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68년 10월 1일 대한민국 정부로 운영권이 이관되었다. 2000년 1월 1일에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되었고, '국립중앙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2010년 4월 2일 지금의 명칭으로 특수법인화 되었다.

3. 역대 원장



3.1. 법인화 이전


  • 초대 이종진 (1958~1960)
  • 2대 박주병 (1960~1963)
  • 3대 이용승 (1963~1964)
  • 4대 윤유선 (1964~1965)
  • 5대 김수명 (1965)
  • 6대 유기원 (1965~1966)
  • 7대 윤유선 (1966~1969)
  • 8대 홍종관 (1969)
  • 9대 차윤근 (1969~1971)
  • 10대 안병훈 (1971~1974)
  • 11대 박승함 (1974)
  • 12대 나도헌 (1974~1979)
  • 13대 박찬무 (1980~1981)
  • 14대 장경식 (1981~1984)
  • 15대 주양자 (1987~1990)
  • 16대 박인서 (1990~1993)
  • 17대 이세일 (1993~1996)
  • 18대 조덕연 (1996~1999)
  • 19대 도종웅 (2000~2004)
  • 20대 강재규 (2005~2010)

3.2. 법인화 이후


  • 21대 박재갑 (2010~2011)
  • 22대 윤여규 (2011~2014)
  • 23대 안명옥 (2014~2017)
  • 24대 정기현 (2018~ )

4. 사업


국립중앙의료원은 다음 각 호의 사업을 행한다(국립중앙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임상진료지침의 개발 및 보급
  • 노인성질환의 예방 및 관리
  • 희귀난치질환 등 국가가 특별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질병에 대한 관리
  • 감염병 및 비감염병 또는 재난으로 인한 환자의 진료 등의 예방과 관리
  • 남북의 보건의료 협력과 국제 보건의료 관련 국내외 협력
  • 민간 및 공공보건의료기관에 대한 기술 지원
  • 진료 및 의학계, 한방진료 및 한의학계 관련 연구
  • 전공의의 수련 및 의료인력의 훈련
  • 고위험 임산부 및 미숙아등의 의료지원에 필요한 각종 사업의 지원
  •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각종 업무의 지원
  • 그 밖에 공공보건의료에 관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이 위탁하는 사업

5. 병원 이전 논란



5.1. 원지동 이전 추진과 파행


1958년 지어진 현 병원 건물은 너무 낡았기에 1990년대 부터 신축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IMF 환란과 이후 공공분야에 대한 구조조정에 따른 법인화로 지연되다, 2003년 경 서울시에서 원지동으로 이전을 제안하면서 계획이 가시화 되었다. 사실 서울시가 강남의 가장 남쪽의 경부고속도로변 개발제한지역인 원지동 이전을 추진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당시 서울시가 추진한 납골당인 '''원지추모공원'''[2]을 설립하려 했는데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일어나자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반대급부로 이명박 시장 시절 의료원 이전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 계획은 해당 자치구인 서초구는 환영하고 현 의료원이 소재한 중구는 당연히 반대했다.
당시에도 원지동 이전에 대한 비판은 상당했는데 강북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의료취약계층의 접근성이 좋은 현 위치에 비해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강남에서도 최남단이라는 점. 또한 이미 강남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같은 대형 의료기관들이 밀집되어 있으면서 소득수준이 높은 강남으로 이전하는 점도 비판점이였다. 물론, 국가중앙병원이 현재와 같은 노숙자와 주취자들만이 찾는 병원이라는 오명은 좋은 점이 아니며, 이제는 환자진료가 아닌 공공의료의 컨트롤 타워로서 위상을 변경했기에 비판점에 대한 반박도 가능은 하다. 그러나, 주변 주민들의 이전 환영은 이전에 따른 의료환경의 개선은 안중에 없었고, 대형병원 이전에 더해 종 상향 규제를 풀어서 추모공원에 건립에 따른 지역의 가치하락에 반대의 이익을 바라는 상황이 되었다.
2006년경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교통 등 입지문제를 들어 반대하며 행정복합도시 이전을 주장하였고 국토교통부가 그린벨트 해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원지동 이전은 물건너간듯 싶었다. 그러나, 이전을 제안한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상황은 변하게 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다시 원지동 이전을 다시 제안하자 당시 정부는 원지동 이전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고 딱히 대안도 없는 병원 사정상 원지동 이전을 당연하게 추진하게 되었다. 여기에 2010년대 중반 이후 신축이전을 염두에 두고 현 낡은 건물에 대한 투자는 거의 억제되었기에 가뜩이나 낡은 시설은 더 열악해지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얽힌 원지동 이전은 더디게 진행되고 간신히 2014년 말에 사업계획이 최종 승인되었다. 이전 이야기 나온지 11년만에 간신히 승인이 난 것이었다.
문제는 14년 이후에도 사업 진행은 답보를 면치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서울시는 추모공원건립의 보상차원의 병원 건립과 종상향을 요구한 주민들의 요구를 난개발을 이유로 거부했는데 이점으로 인해 각종 민원과 반발이 거듭되었고 병원 이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한 지역이기에 도로에서 나는 소음 문제가 강화된 의료기관의 소음규제로 인한 건립이 문제되게 되었다.
참고로 03년경 계획때와 달리 고속도로 체증에 따른 영향으로 왕복 12차로 이상으로 확장되면서 고속도로는 병원부지와 더 인접하게 되었다. 환경영향평가에 따른 법적인 요건을 만족시킬려면 현재 매입한 병원 부지에서 70% 이상 축소를 하거나 혹은 2층이하로 건축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겼다. 결국, 더 안쪽의 땅을 추가 매입해야 하는데 그럼 예산문제에 다시 부지용도를 해제해야하는 난관도 발생하게 된다. 애초 원 건축계획은 4-5천억원의 예산으로 지상 18층 700병상 이상 규모에 국가중앙외상센터, 중앙감염병병원(100병상 규모), 최첨단 BL4(생물안전 4등급 밀폐 병실) 설치 등 공공의료의 랜드마크를 목표로 했는데 이게 불가능해진 거였다.
문제는 이렇게 되었음에도 서울시나 보건복지부는 서로 뒷짐만 지고 있었고, 거기에 2018년 메르스 사태 이후 사업 추가된 중앙감염병원을 핑계삼아 지역 국회의원과 주민들은 종 상향을 재압박하기 위해 중앙감염병병원 반대운동에 나섰다. 여기에 서초구는 한술 더떠 중앙감염병병원에 대해서는 별도로 구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식의 어그로를 자행하기 시작했다."국립의료원은 기피시설" 이전반대 나선 서초구, 속내는 '개발 이권'? 여기에 국립중앙의료원의 이전이 늦어지고 어려워지다보니 자기 지역으로 유치에 나선 지자체도 생겨났다.파주시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추진
결국, 2019년 7월 8일 견디다 못한 정기현 원장은 모 의학전문매체를 통해 원지동 이전사업 16년만에 사실상 백지화한다고 밝히고 대안으로 현 부지내 재건축, 인근 미공병단부지(국방부 소유) 신축, 세종 이전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원지동 부지는 사실상 신축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셈.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바로 이전 백지화는 결정되지 않았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전 백지화 선언에도 서울시와 복지부는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자 9월 7일 다시 '원지동 이전 전면중단 및 관련 인력도 해체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9일 중앙일보는 [이슈추적] “3번씩이나 부탁했는데 뭉갰다”…박능후ㆍ박원순 겨냥한 국립중앙의료원장이라는 심층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7월과 마찬가지로 백지화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히면서 의료원과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한 의료전문기자는 첫 단추 잘못 끼운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바로잡자라는 기사를 통해 국립중앙의료원측의 입장을 대변해줬다.
원지동의 부지는 막대한 예산인 445억을 사용하여 전부 토지 구매가 완료된 상태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16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만약 사업 백지화 후 새로 시작하면 이미 갈 데까지 노후화가 진행된 의료원으로서는 더 이상 지체될 시간은 없는 문제와 인프라의 한계에 달한 문제 때문에 원지동 이전을 사실상 확정으로 보는 게 중론이다. 다만 서울시와 복지부는 현재 핵심 문제인 경부 고속도로 소음 문제에 대한 처리에 대해서는 현재 어떠한 확답도 없다.
복지부는 국립의료원 내 외상센터 설립 등은 원지동 이전을 전제로 한 정책임을 강조하며 국립의료원 원지동 이전이 단순한 이전이 아님을 언급했다. 이에 정원장도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 이럴 바엔 동대문 지금 위치에서 신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5.2. 방산동 이전?


이전 문제가 여전히 지지부진한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는 초대형 감염병 사태 이후 공공의료체계 강화를 위해 국립중앙의료원의 낡은 시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2020년 4월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은 현 위치 바로 옆인 방산동 70번지(을지로39길 29) 소재 옛 주한미군 극동공병단(FED)[3] 부지에 이전 신축하자고 보건복지부와 국방부에 제안했다. 해당 부지는 현재 국방부가 소유하고 있다.
지역 특성상 인근에 주거하는 주민들이 적고 공병단 부지는 현 의료원 부지보다 넓은데다 기존 병원 인근에 새 병원을 짓는 일인 만큼 원지동 이전 추진과 달리 반대 여론에 부딪힐 가능성이 적다. 일단 정기현 의료원장도 방산동 이전에 대해 동의했고 관계부처 간의 협의가 잘 이뤄진다면 병원 이전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제안은 위에도 상술했지만 원지동 이전이 지지부진하자 2019년 정기현 원장이 대안으로 제시했던 안이였고 이에대해 서울시가 원지동 이전이 원칙이라면서 반대를 했던 전례가 있었다. 일견 보기에는 옆의 비어있는 국유지에 병원이전은 정부의 결단만 있다면 쉬워보이지만 사실 쉽지 않은 어려운 문제가 얽혀있다.
일단, 부지의 가치가 조단위까지 평가되는 시내의 요지인데 이 부지를 국방부가 쉽게 내놓을리가 없다. 주한미군 이전 사업에 들어간 막대한 예산을 부지매각 등으로 회수해야 하는 국방부의 입장을 생각하면 단순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요지에 위치해 있기에 국방부 이전 소유주였던 서울대학교가 이 부지를 놓고 소송전까지 갔었던 전례도 있다. 서초구 요지에 위치해 있었던 정보사령부 부지도 한예종의 이전지로 거론된 적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대략 1조원대에 부동산투자회사에 매각된 일도 있었다.
그렇기에 당장 급한 의료원측은 서울시의 입장 변화에 반색하겠지만, 실질적으로 결정권을 가지며 국방부 부지를 매입해야 하는 보건복지부와 소유주인 국방부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방산동 이전 제안은 그냥 공염불 수준의 제안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일단 2020년 7월 보건복지부서울특별시, 국립중앙의료원은 의료원의 방산동 이전을 추진하자는 내용을 담은 3자간 업무 협약을 체결하며 방산동 이전에 한걸음 더 다가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업무 협약 체결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박원순 시장이 자살하는 바람에 이전 문제가 다시 꼬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2020년 11월에 방산동 극동 공병단 부지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반환된 데 이어서 2021년 1월 6일에 보건복지부국방부간의 업무 협약을 체결함으로서, 본격적인 신축 이전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6. 문제점


  • 1958년 한국전쟁 이후 북유럽 3국의 지원으로 설립된 의료원으로 68년까지 해당 3국이 직접 의료장비와 시설, 인력을 지원해주던 당대의 최고 병원이였다. 이 당시만 해도 가장 수준이 높은 병원으로 저렴한 수가로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던 병원으로 명성을 떨쳤다. 1968년 운영권이 한국 정부로 이양된 이후에도 동양 최고 수준의 장비와 시설, 선진화된 의료기술을 보유하고 공공병원으로 의료시혜를 크게 확대해 취약계층도 큰 부담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도 타 병원과의 차이가 넘사벽인 시설로 수요가 몰리면서 대기시간이 하염없이 길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다가 90년대부터 국민소득이 크게 증가하고 관련 질환이 대한민국 사망원인 1위 질환으로 급부상하면서, 병원 사업의 수익성이 상당히 개선되고[4]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시설과 인력 면에 아낌없는 투자를 진행한 대학병원들에 비하면 이미 국립중앙의료원의 수준이 많이 뒤쳐진 것이 사실.
이에 더해 2000년대 넘어 IMF이후 공공분야에 대한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법인화로 인해서 낙후된 병원으로 전락해버렸다. 현재는 국가의 중앙병원이라는 이름에 무색하게 환자들에게 외면 받는 병원이 되어 버렸다.
  • 현재의 국립중앙의료원 병원 자체가 58년 세워진 후 어느정도 리모델링만 하면서 버틴 낙후된 건물이라는 문제부터 심각한 편이다. 정부의 투자가 멈춰졌고 그에 따라 경영이 악화되면서 다시 정부가 경영효율화를 외치는 악순환이 오게 되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정부의 정책기조가 공공의료가 아닌 민간의료에 치중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는 2010년 법인화로 국가가 출자만 해주는 형태로 바뀌었으나 매년 300억원의 국비로는 인건비 외에 투자가 불가능하기에 말 그대로 ‘공공성’이라는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결국, 정부의 방관으로 인해 의료시설 역시 낙후돼 시민들이 이용은 사라지고 지금은 노숙자와 행려자, 주취자 등이 주로 찾는 시설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 이에 따라 낙후된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확장이 어려운 관계로 서초구 원지동으로의 이전을 추진중이나 서울시와의 협의 문제로 지금은 사업 자체가 지연중이다. 또한, 가까이에 삼성서울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같은 초대형 병원들이 위치한 강남으로 국립병원이 굳이 가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도 상당한 편이다. 문제는 원지동 이전을 전제로 시설 투자도 못하고 더 낙후되고 있다는게 문제다
  • 위에서 언급한 구조조정의 문제로 1958년 국립의료원 부설 간호학교로 시작해 의료원의 역사와 함께한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이 2007년 사립대학인 성신여자대학교로 넘어가 버렸다.
  • 외래진료는 진료잘보는 의사들도 있지만 어떤 분야 의사는 대충대충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가병원치고는 진료수준이 높아보이진않는다는 후문인데 여러가지 문제로 특히 법인화 이후 인력이 많이 나가면서 인력의 질 문제가 이후 커졌다는 평이다.
  • 의료원 이전을 조건으로 한 서울 추모공원은 이미 건설이 끝났으며 운영중이다. 이로인해 주변 주민들은 추모공원도 운영을 중단하고 다른곳으로 옮기라는 등의 의견을 내며 서울시의 약속 파기에 분노하고 있다. 원지동 이전이 힘든 원인으로 꼽히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부지 앞에 있는 경부고속도로의 소음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 의료원 예정 부지였던곳에 공공의료타운과 종합병원을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한다‘서울시 공공의료타운’ 들어서는 원지동은?. 국립의료원은 소음때문에 건립이 안된다는데 또다른 종합병원을 건립한다는건 아이러니.

7. 여담


  • 2018년 4월 11일,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재단이 파산하여 폐교된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을 국립공공의과대학으로 2022년까지 전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현재 전북대와 원광대로 임시 배정된 49명 정원과 남원 지역을 그대로 유지하고 수련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으로 한다는 계획이다. 사관학교경찰대학[5]처럼 교육비는 전액 국가가 지원하는 대신 졸업 후 9년간 국가가 지정하는 장소에서 의무복무를 하는 조건이라고 한다.관련기사 이후 9월 21일 상기 내용을 담은 국립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었으며, 의무복무기간은 10년으로 정정되었다. 관련기사
  • 국내 최초의 뷔페 식당 스칸디나비아클럽이 영내에 있었으나 경영난으로 2012년 폐점했다. 북유럽식 정통 뷔페 식당으로 수십년간 유명한 곳이었으나 결국 시대의 흐름을 이겨내진 못했다.
  • 행정부분은 최악중의 최악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낙하산 인사가 있는건 이미 소문으로 돌아다닐정도로 유명하다.

8. 둘러보기





[1] 참고로 국립재활원 및 국립병원,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산하기관이 아닌 복지부 소속기관(정부기관이므로 정부 태극문양 사용, 공무원 근무 조직)이므로 직제상 상위이고 해당 기관 직원은 보건복지부 국가공무원들이다. 국립중앙의료원과 같은 복지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으로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등이 있으며 기타 공공기관의 임직원들은 비공무원이다.[2] 現 서울추모공원으로 1998년부터 사업을 추진했으나 무려 7년의 법적분쟁과 수백번의 주민설득절차를 거쳐서 2011년 12월에 완공되었다.[3] 2018년 11월에 부대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로 옮겼다.[4] 오래오래 아프면서 환자로부터 천문학적인 비용을 챙길 수 있는 암 질환은 사실상 다른 사업부의 적자마저 다 매꿔주는 대형병원의 돈줄이다. 때문에 이사회에서도 암 질환 관련 의사 출신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5] 경찰대학 개혁으로 2020학년 입학생부터는 4학년 학비를 제외하고 고스란히 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