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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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문에 실렸던 기사. '살아(殺兒) 혐의자 이관규 무죄 판결 / 증거가 불충분하다 하야(하여) / 6일 오기(荻) 재판장 언도(言渡)[1]' 라고 적혀 있다.
1. 개요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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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李寬珪(1890?~?)
국내 최초 연쇄살인범 '변태성욕자 이관규 사건'
우리나라에 연쇄살인으로 언론을 탄 최초의 연쇄살인마.[2]

2. 상세


1929년 여름 한 달 간격으로 11살과 9살의 남자 어린이 2명을 성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 남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추행 전과가 있던 이관규가 범행 이후 종적을 감추자 지명수배하였다.
범행당시 39살이었던 이관규는 이미 결혼하여 아이가 다섯명이나 있었음에도 여자를 혐오하며 남자 어린이를 탐하였다. 그리고 원래 성격도 문제가 있어서 사소한 트러블에도 도끼를 휘두르는 자였다. 반사회성 성격장애가 의심되는 행적.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성이라는 점에선 유영철, 김일곤과 유사한 면이 있다.
전국을 도망다니던 이관규는 사건발생 1년 6개월만에 자신의 집에서 검거되었다.
그러나 1932년 12월 7일자 중앙일보 보도를 보면 이관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았고, 그 이후의 자료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같은 날짜 동아일보 기사
오늘날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관규는 사이코패스페도필리아적 성향을 가진 살인마라고 규정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나 당시의 관점에서는 남자 어린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무죄판결이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의 이해할 수 없는 이상심리 때문에 무죄 판결이 나왔다면 대량살인범 이판능과 유사한 경우. 이판능도 현대 기준으로 사이코패스로 추정된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모두 조선인이고, 조선인들이 죽는 것에 대해서는 일본 법정에선 별 신경쓰지 않았으므로, 더 죽이라고 풀어 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3] 또한 그 시절에는 아이들은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아이를 죽이는 죄는 그다지 심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4]
김명철 실종 사건의 주요 용의자 중 한 명이자 17억 보험 친구 집단 살인 사건의 주범인 범죄자와는 한자는 다르나 한글 이름이 같다. 그 이관규도 잔혹 살인을 이미 확정된 것만 2건, 추정으론 3건을 저지른 사이코패스[5] 연쇄살인범인 것을 생각하면 참 묘한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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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고(宣告)와 같은 말이다.[2] 이판능을 최초라고 보는 견해도 일부 있으나, 엄밀히 따지면 이판능은 연쇄살인이 아닌 대량살인이므로 이관규로 보는 견해가 더 많다.[3] 언뜻 보면 이해가 안 가겠지만 흑인들만 관련된 살인사건에서는 가해자를 풀어 주는 경우도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심심찮게 있다. 자기들끼리 죽이는 데에 신경쓰지 않겠다는 태도다. 2년 후 1931년 평양에서 2명을 살인한 심종성은 탈옥하다가 잡혀 사형되었으나, 심종성은 운이 없었다. 바로 그 해에 평양에서 중국인 학살이 일어나 민심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짓을 한데다, 탈옥까지 해서 법정의 화를 극도로 돋구어 놓았기 때문에 실제로 사형까지 이른 것이다.[4]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모, 생부가 아이를 죽이면 집행유예로 마무리되는 것이 관례였다. 지금도 그다지 형이 높지는 않다.[5] 프로파일러 배상훈의 이관규 형제에 대한 추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