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연

 


※ 두 사람 모두 한자 이름이 '''李斗淵''' 이다.
1. 울진군 출신 독립운동가
2. 원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1. 울진군 출신 독립운동가


성명
이두연(李斗淵)
일본식 성명
松谷斗淵

성순(聖順)
본관
전의 이씨#
생몰
1915년 9월 5일 ~ 1944년 1월 22일
출생지
강원도 울진군 원남면 매화리
(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이두연은 1915년 9월 5일 강원도 울진군 원남면(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서 이석용(李錫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38년 10월 28일 임시헌·남원수·노하순 등 울진 출신 인사들이 중일전쟁의 장기화에 대비하면서 조선독립 및 농민사회제도의 개혁을 목적으로 주도·조직한 창유계(暢幽稧)에 가입·활동하였다. 창유계는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계' 형태를 가장하여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되었으며 1942년 11월까지 5차례에 걸쳐 회합을 가지면서 조직의 결속 강화와 반일선전 활동의 확대, 동지 규합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1943년 3월 일본 경찰에 의해 조직이 탄로나 와해되면서 그도 검거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1943년 12월 18일 대구지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중지로 불기소처분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
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1944년 1월 22일 순국하였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 원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성명
이두연(李斗淵)
이명
이공진(李公進)
생몰
1881년 8월 4일 ~ 1949년 11월 18일
출생지
강원도 횡성현 고모곡면 분일리
(현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매호리)
추서
대통령표창
이두연은 1881년 8월 4일 강원도 횡성현 고모곡면 분일리(현 원주시 호저면 매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2일 횡성군 서원면 분일리에서 송병창(宋秉昌) 집에 모여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였는데, 그는 주민 70여명을 규합하여 봉화를 올리며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일본 경찰의 무력탄압으로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