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과(정도전)

 

1. 소개
2. 작중 행적
3. 기타


1. 소개


정도전의 등장인물. 배역은 이태림. 이성계의 차남으로 원래는 21세부터 이성계를 수행해 황산 대첩에도 참전했으나 드라마에서는 모두 편집되었고, 13화에서 처음 등장했다. 관복을 입은 이방우와는 대비되게 갑옷을 입고 등장하여[1] 무인 출신이라는 점이 표현됐다.

용의 눈물에서의 정종은 조선 건국 이후인지라 무장다운 면보다는 형제들간의 다툼에 휘말리지 않으려 한 온화한 이미지지만, 사실 무용이 뛰어나다는 점에서는 아버지를 제일 빼닮은 아들이 이방과이다. 반면 이방원은 왕자의 난과 유동근의 카리스마 덕분에 흔히 무인으로 인식되는 편인데 사실 문과에 급제했으므로 문인 적성도 강하다. 본 드라마는 이방원에 대해서도 무인적 기질을 다루는 동시에, 이방우가 이방원이라면 문재가 출중해 우리 가문에서 처음으로 과거에 급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방원의 본래 경력에 대해 그리는 걸 잊지 않았다.


2. 작중 행적


가끔 갑옷을 입고 다니면서 은근슬쩍 무인 존재감을 표출하다가, 마침내 21화에서 이성계가 칼질이 제법이라며 최영과 함께 움직이라고 지시했다. 최영이 임견미를 추포할 때 제법인 칼질을 보여주면서 '나 무장 맞아!'라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인증했다. 그런데 무장이 되겠다는 이방원에게는 거골장 노릇은 나까지만 할 테니 너희는 사람답게 살라고 말렸던 이성계가 이방과는 무인으로 놔둔 것이라거나 최영에게 자기가 딴 짓 할 것 같으면 베라고 반쯤 인질로 맡기는 걸 보면 방과가 호구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거기다 임견미에게 칼질에서 살짝 밀리는 굴욕도… 어째 이방과<임견미<최영 순이라는 식으로 최영을 띄워주기 위해 전투력 측정기 용도로 희생된 느낌이다.

이인임을 체포할 때까지만 해도 장남 이방우보다 비중이 더 많았지만 31화 이후부터는 밀리면서 공기 신세가 되었다(...) 38화에선 이성계의 아들 중 가장 무골인데도 형 이방우에게 밀쳐지는 굴욕까지 당했다. 형에게 힘으로 맞설 수는 없었겠지만.

이후 주로 배극렴과 함께 다니며 묵묵히 역성혁명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인다. 40화에선 역사상 기록대로 정몽주 참살 이후 공양왕을 압박하여 정몽주 참살의 정당성과 그의 세력을 탄압하는데 앞장 서는 모습을 보였다.

조선 건국 후 방석이 세자 물망에 오르자, 다른 형제들과 이성계 앞으로 가서 자신은 세자 자리에 욕심이 없으나, 자기가 마땅찮으면 정안군이 있는데 어린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한다. 한편 이방원은 반대로 자신이 세자 자리에서 떨어졌다는걸 알고 "세자는 방과 형님입니까?" 라고 물어보는 것을 보면 실제 방과가 세자가 되는 것까지는 별 불만이 없었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2] 이후 그 또한 이방원처럼 정도전과 대립을 하게 되는데, 명나라에 다녀오고 나서 일단은 발톱을 숨기려 하는 이방원과는 달리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드러내보이며 정도전에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양 연회에서 세자가 정도전을 국가의 대들보라 칭하자 이방원도 조용히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대들보는 전하라며 크게 반발한다.

진법 훈련에서 왕자들을 먼저 불러놓고 정시에도 나오지도 않고[3] 기다리게 하는 정도전에게 분노하여 칼을 내팽개치는데 이방과도 동생인 이방원 못지 않게 성깔이 장난이 아닌 것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46화에서는 표전문 사건으로 정도전이 궁지에 몰리자 우리들이 '''직접''' 나서서 아버지를 압박하자며 정도전 타도에 있어 적극적인 면모를 보인다.

49화에서는 이성계의 병세가 위중하자 정도전 일파가 후환 제거를 위해 한씨 소생의 왕자들을 죽이기 위해, 그들을 이성계의 위독을 명분으로 한 밤중에 궁궐로 불렀는데, 궁궐은 전혀 인기척도 없고 불도 꺼져있어 불길 그 자체였다. 이방과는 궁궐이 위혐하다고 판단하고 병을 핑계로 궁문 앞에서 도망친다. 사실 정도전은 일부러 궁을 수상쩍게 꾸며 도망치면 보위를 노릴 깜냥이 없는 놈이고 들어오면 그럴 배짱이 있는 놈으로 판단하여 들어오는 놈을 죽일 생각이었다.[4] 덕분에 이방과는 졸지에 겁쟁이가 되고 말았다(...).
에필로그에서는 직접적인 등장은 없고 왕이 되었다가 이방원에게 보위를 물려주었다는 내레이션만 나온다.

3. 기타


조선 건국전까지는 그다지 비중도 없고 수동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 인상이 옅었는데, 정도전과 왕자들이 척을 지게 되면서 비중이 올라갔다. 더불어 정도전의 이방과는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많이 보여, 이방원에 휘둘리는 형이란 종래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왔다. 덤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온건하고 나약한 인상은 일체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무인 출신이란 게 납득이 갈 정도로 성깔있는 모습도 많이 묘사되었다. 하지만 에필로그에서 태종으로서의 이방원은 등장했는데 정종 이방과는 이방원에게 보위를 물려주었다는 한 마디 외에는 등장은커녕 묘사도 없어 결국 정종의 안습 전설을 이어 나갔다.
진짜 안습인 것이 무엇이냐면, 동생 이방원이 툭하면 형들을 자기 집으로 부르는데 거길 매번 간다. 그리고 동생 방원이 상석에 떡하니 앉아 있는데 그 앞에서 부하들과 섞여 앉아 있다. 이쯤 되면 이방원은 무개념 그 자체고 이방과는 보살이거나 바보거나 둘 중 하나다. 이건 오늘날로 치면 열 살이나 많은 큰형이 찾아왔는데 침대에 드러누운 채로 맞이하는 격이니, 당연히 상석을 양보해야 한다.[5]

[1] 다만 전시도 아닌데 집안에서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은 대단히 비현실적인 표현이다.[2] 물론 이방원이 극중에서 세자 자리 및 용상에 욕심을 내고 있기에 방과가 세자가 된다고 해서 난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방과는 이성계의 아들 중에서 가장 정통성에 문제가 없는 아들이고 또한 정도전 그리고 용의 눈물에서도 이방원은 자신의 피섞인 친가족에 대해서는 부드럽고 원만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방과가 세자가 되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어쨋든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3] 명나라 사신이 왔기 때문이다.[4] 들어간 건 이방원뿐. 하지만 정도전은 그만 자신의 인간성에 휘둘려 이방원을 죽이지 못한다.[5] 그런데 방과의 성정을 생각하면 이게 맞는걸수도 있다. 여러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방과는 정말로 자기 가족들에게 한없이 착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