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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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殷
1905∼1976
1. 개요
대한민국의 철학자, 교육자. 본관은 양성(陽城)#, 호는 경로(卿輅)이다.
2. 생애
1905년에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익혔으며, 1919년 열다섯살의 나이로 한격순(韓格順)과 혼인하였다.
1921년 열일곱의 나이로 중국유학을 떠나 베이징의 안후이중학(安徽中學)에 입학했다. 톈진(天津)의 난카이중학(南開中學)에 편입하였다가 1925년 고급1학년 수료자격으로 베이징대학(北京大學) 예과에 응시, 합격하였다.
1927년 9월 베이징대학 철학과에 입학, 1931년 9월 졸업한 뒤 귀국하였다.
1932년 경성외국어학원 강사가 되었다가 다음 해 경성주재 중국총영사관에서 한문비서(韓文秘書)가 되어 1945년까지 재직하기도 하였다. 1933년 4월부터 1940년까지 보성전문학교 강사로 위촉되었다.
1945년 한중문화협회(韓中文化協會)를 창설하여 기관지 『한중문화(韓中文化)』를 발간하였으며, 그 해 우익정당조직에 참가하였다가 정치활동에 뜻을 버리고 1945년 11월 보성전문학교에 돌아와 교수로 임용되었다. 1946년부터 퇴임하던 1970년까지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 기간 중 1952년부터 1960년까지 8년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장을 지냈다. 그리고 1956년 중국학회를 조직, 초대회장에 임명되어 1962년까지 재임하였다.
1956년 미국무성초청 교환교수로 도미하여 하버드대학교·예일대학교 등에서 동서비교철학을 연구하였다. 그 후 귀국하여 고려대학교 부설 아세아문제연구소의 초대 소장에 취임하였다. 연구소가 설립된 1957년부터 1969년까지 13년간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이 연구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주요 사회활동으로는 한글전용반대운동을 들 수 있다. 그리고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재경교수단궐기대회 소집인의 일원으로 4.19 혁명 당시 시국선언문을 기초하고, 교수단 시위에 앞장섰다. 그 덕분에 5.16 군사정변 후에는 정치교수명단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중국철학연구에 힘을 기울여 중국철학의 현대적 의의를 모색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60년 학술원 추천회원에 임명되고, 그 해 한국휴머니스트회 회장이 되었으며, 1962년 58세 때 고려대학교로부터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3년에는 한중협회호적장학금관리위원, 갑오혁명기념사업협회 이사와 부회장에 추천되었다.
저서로는 『현대와 동양사상』(1963)·『퇴계의 생애와 사상』(1973)·『유학(儒學)과 동양문화』(1976) 등이 있다. '맹자의 성선설에 관한 연구'(1955)·'휴머니즘에서 본 유교사상'(1961) 외 많은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