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1975)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로, 현역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
2. 선수 경력
2.1. 안양 LG 치타스
이상헌은 경주에서 태어나 이후 인천으로 이사를 갔으며, 부평고등학교를 거쳐서 동국대학교에 진학했다. 동국대 시절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목을 집중시켰고, 드래프트를 통해 안양에 지명되어 프로에 입성했다. 그러나 소속팀에서의 활약은 기대치에 비해 아쉬웠는데, 국가대표 차출이 잦았으며 선수 본인도 부상이 많아 경기를 소화하기 힘든 경우가 잦았다.
2.2. 인천 유나이티드
2004 시즌을 앞두고 이상헌은 새롭게 창단된 인천으로 이적하였다. 인천으로 이적한 시점에서 이상헌은 노쇠화가 시작되고 있었고, 인천이 영입한 수비수들 중에는 '''임중용'''을 필두로 김학철과 같은 경쟁자들이 많아 주전 경쟁이 쉽지만은 않았다. 인천에서 뛴 세 시즌 간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으나 기회를 얻으면 헌신적인 플레이를 선보였고, 2006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이후 지도자 연수를 받다가 2009년 용인시 축구센터 산하의 신갈고등학교 코치로 부임했다. 이 때 잠시 용인시민축구단에 등록되어 현역 복귀를 하기도 했다. 2012년 이후로 신갈고를 떠났다가, 2016년에 잠시 복귀한 바 있으나 1년만에 다시 떠났다.
그이후 삽교고등학교 fc예산이라는 팀의 수석코치로부임했다.
4. 국가대표
1994년 AFC 청소년 선수권대회,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어 청소년 대표로 활약했고, 차범근 감독의 눈에 들어 1998년에는 성인 국가대표에서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다. 심지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로도 선발되었을 정도. 월드컵 본선에서도 벨기에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활약했지만 소화했지만 차범근 감독이 물러난 이후 국가대표에서도 서서히 밀려났으며, 2003년에 마지막으로 한 경기를 치른 이후 국가대표에 돌아오지 못했다.
5.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파이터 스타일의 수비수로, 차범근이 이상헌을 중용한 것도 그의 스타일을 눈여겨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피지컬 조건이 상당히 좋아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약점으로는 드리블러에게 약했던 점과 잦은 부상이 있었는데, 부상 빈도도 이상헌의 플레이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는 추측이 있다.[1]
6. 여담
- 동명이인으로 울산 현대의 미드필더 이상헌이 있다.
- 와일드한 인상이나 플레이와 달리 성격은 부드럽고 낯가림도 조금 있다고 한다.(...)
[1] 말 그대로 부상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쉽게 말해 '''몸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