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운(캡틴 츠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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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龍雲
캡틴 츠바사 월드유스편에서 한국 U-20 청소년 대표팀의 주장으로 나오는 선수다. 분데스리가 VfB 슈투트가르트의 1군 플레이어다. 포지션은 포워드. 유연하고 테크니컬한 스타일의 플레이어라는 설명이 나온다.
그의 투톱 파트너인 차인천이 부상 때문에 토너먼트 내내 나오지 못하던 와중 홀로 한국팀을 준결승전까지 이끌었으며, 직접 묘사되진 않았지만 조별에선 이라크전에서는 1-0으로 뒤지고 있던 당시 동점골을 넣어서 1-1 무승부를 이끌었다고 언급된다. 준결승전인 사우디 아라비아 전에서는 사우디의 마크 오와이란과 발칸의 개미지옥 디펜스를 상대로 1-0으로 끌려가며 고전한다. 이에 한국은 결국 풀 컨디션이 아니었던 차인천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둔다. 차인천의 중전차 드리블에 이은 강한 미들슛으로 동점골을 터트린 후 기세를 되찾은 한국은 다시 사우디를 몰아붙이나, 차인천은 또 한번 중전차 드리블를 하는 과정에서 오와이란의 육탄 태클에 막히면서 다리가 부러지게 된다. 이대로 연장으로 가면 승산이 없다 판단한 이용운은 차인천이 헤딩해준 볼을 잡은 후 원터치 플릭으로 최후방까지 내려와서 수비하고 있던 발칸을 제끼고 그의 육탄방어를 피해 최대한 몸을 낮춘 후 오버헤드킥을 작렬, 종료를 알리는 휘슬과 함께 결승골을 터트린다. 이 승리로 한국은 월드유스 진출을 확정짓는다.[1]
이후 결승전에서는 부상이 재발한 차인천 없이 주인공의 팀인 일본과 대결하나, 공세를 거의 펼치치 못하고 최후방까지 내려와서 수비나 하고있는 안습한 모습만 보인다. 허나 오오조라 츠바사는 그의 슬라이드 태클을 쉽게 피하고 미사키와 원투패스를 한 후 오버헤드킥으로 두번째 확인사살 골을 작렬, 결국 일본이 2-0으로 승리하고[2] 아시아 유스대회 우승을 한다. 월드유스에서 한국이 1승 2패로 게임 묘사가 없이 예선 탈락하는 바람에[3] 그의 재등장은 없었고 그 이후로도 등장이 없다. 현재 캡틴 츠바사는 올림픽 대표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한국이 2012년 올림픽에서 일본을 제물로 동메달을 땄던 걸 생각해보면 아마 조만간 재등장 하지 않을까도 싶다.
첫 등장 당시에는 작품 내에서 몇 없었던 유럽리그 1군 포워드라는 타이틀에 뭔가 대단한 수준의 선수로 묘사됐지만 실질적으로 활약한 모습은 사우디전 빼고는 없다. 조별예선 당시에는 이라크와도 비기는 등 차인천 없이는 매우 힘겨워하던 모습만 보였다. 게다가 그 흔한 필살기마저 특별한게 하나도 없다! 사우디전에서 보여준 로빙 플릭과 저공 오버헤드킥 정도는 있지만 그런 기술들 정도야 캡틴 츠바사의 세계관에서는 거의 기본기 수준이니 필살기라 하기 민망할 정도다. 중국 청소년대표팀의 에이스 킬러 소준광도 일본팀의 두 괴물들을 만나기 전 까지는 아시아에서 본인의 표적이 될만한 선수는 차인천 뿐이었다고 하는 등 그에게도 완전 무시당하는 굴욕을 겪었다.[4]
허나 그 어린 나이에 분데스리가에서 1군 소속으로 뛰고 와카바야시 겐조나 칼 하인츠 슈나이더 등 다른 분데스리가 실력자들도 이용운을 보고 인정하는걸 보면 수준 높은 선수임에는 틀림 없다[5] . 작가도 이용운과 차인천의 투톱은 아시아 최강이라 했으며, 실로 그 투톱이 나온 사우디전에서는 후반 막판의 짧은 시간 안에 게임의 흐름을 완전 뒤집을 정도로 막강했다[6] . 그저 사우디 전 외의 작중에서 보여진 장면들이 너무 안습했을 뿐...
어느 실존선수가 베이스인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아마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연재 타이밍을 생각해보면[7] 그 당시 독일 리그에 진출도 하고 일본을 상대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김주성과 황선홍을 합친 게 아니었을까 싶다.[8]
李龍雲
캡틴 츠바사 월드유스편에서 한국 U-20 청소년 대표팀의 주장으로 나오는 선수다. 분데스리가 VfB 슈투트가르트의 1군 플레이어다. 포지션은 포워드. 유연하고 테크니컬한 스타일의 플레이어라는 설명이 나온다.
그의 투톱 파트너인 차인천이 부상 때문에 토너먼트 내내 나오지 못하던 와중 홀로 한국팀을 준결승전까지 이끌었으며, 직접 묘사되진 않았지만 조별에선 이라크전에서는 1-0으로 뒤지고 있던 당시 동점골을 넣어서 1-1 무승부를 이끌었다고 언급된다. 준결승전인 사우디 아라비아 전에서는 사우디의 마크 오와이란과 발칸의 개미지옥 디펜스를 상대로 1-0으로 끌려가며 고전한다. 이에 한국은 결국 풀 컨디션이 아니었던 차인천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둔다. 차인천의 중전차 드리블에 이은 강한 미들슛으로 동점골을 터트린 후 기세를 되찾은 한국은 다시 사우디를 몰아붙이나, 차인천은 또 한번 중전차 드리블를 하는 과정에서 오와이란의 육탄 태클에 막히면서 다리가 부러지게 된다. 이대로 연장으로 가면 승산이 없다 판단한 이용운은 차인천이 헤딩해준 볼을 잡은 후 원터치 플릭으로 최후방까지 내려와서 수비하고 있던 발칸을 제끼고 그의 육탄방어를 피해 최대한 몸을 낮춘 후 오버헤드킥을 작렬, 종료를 알리는 휘슬과 함께 결승골을 터트린다. 이 승리로 한국은 월드유스 진출을 확정짓는다.[1]
이후 결승전에서는 부상이 재발한 차인천 없이 주인공의 팀인 일본과 대결하나, 공세를 거의 펼치치 못하고 최후방까지 내려와서 수비나 하고있는 안습한 모습만 보인다. 허나 오오조라 츠바사는 그의 슬라이드 태클을 쉽게 피하고 미사키와 원투패스를 한 후 오버헤드킥으로 두번째 확인사살 골을 작렬, 결국 일본이 2-0으로 승리하고[2] 아시아 유스대회 우승을 한다. 월드유스에서 한국이 1승 2패로 게임 묘사가 없이 예선 탈락하는 바람에[3] 그의 재등장은 없었고 그 이후로도 등장이 없다. 현재 캡틴 츠바사는 올림픽 대표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한국이 2012년 올림픽에서 일본을 제물로 동메달을 땄던 걸 생각해보면 아마 조만간 재등장 하지 않을까도 싶다.
첫 등장 당시에는 작품 내에서 몇 없었던 유럽리그 1군 포워드라는 타이틀에 뭔가 대단한 수준의 선수로 묘사됐지만 실질적으로 활약한 모습은 사우디전 빼고는 없다. 조별예선 당시에는 이라크와도 비기는 등 차인천 없이는 매우 힘겨워하던 모습만 보였다. 게다가 그 흔한 필살기마저 특별한게 하나도 없다! 사우디전에서 보여준 로빙 플릭과 저공 오버헤드킥 정도는 있지만 그런 기술들 정도야 캡틴 츠바사의 세계관에서는 거의 기본기 수준이니 필살기라 하기 민망할 정도다. 중국 청소년대표팀의 에이스 킬러 소준광도 일본팀의 두 괴물들을 만나기 전 까지는 아시아에서 본인의 표적이 될만한 선수는 차인천 뿐이었다고 하는 등 그에게도 완전 무시당하는 굴욕을 겪었다.[4]
허나 그 어린 나이에 분데스리가에서 1군 소속으로 뛰고 와카바야시 겐조나 칼 하인츠 슈나이더 등 다른 분데스리가 실력자들도 이용운을 보고 인정하는걸 보면 수준 높은 선수임에는 틀림 없다[5] . 작가도 이용운과 차인천의 투톱은 아시아 최강이라 했으며, 실로 그 투톱이 나온 사우디전에서는 후반 막판의 짧은 시간 안에 게임의 흐름을 완전 뒤집을 정도로 막강했다[6] . 그저 사우디 전 외의 작중에서 보여진 장면들이 너무 안습했을 뿐...
어느 실존선수가 베이스인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아마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연재 타이밍을 생각해보면[7] 그 당시 독일 리그에 진출도 하고 일본을 상대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김주성과 황선홍을 합친 게 아니었을까 싶다.[8]
[1] 사우디는 탈락했으나 나중에 가상의 아프리카 월드유스 개최국이 내전으로 인해 일본에게 개최권을 반납하고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나오게 되자 극적으로 진출권을 획득한다. 3/4위 전에서 이라크를 이긴 듯하다. 허나 월드유스에서는 1무 2패로 맥없이 탈락한다.[2] 첫번째 골은 묘사되지 않았지만 휴가 코지로가 넣었다.[3] 이 당시 한국의 그룹에는 축구 최강국들의 반열에 드는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가 있었으니 운이 안 좋았던 셈이다. 하지만 그래도 가나 상대로는 승리했다.[4] 물론 소준광은 츠바사와 휴가에게 깝치다가 예전 차인천과 격돌하다 생긴 부상만 재발했고 중국팀은 사우디에게 지면서 조별리그에서 광탈했다.[5] 참고로 이용운의 클럽팀인 슈투트가르트에서 그의 팀메이트들 중 하나는 독일의 괴물 주전 골키퍼인 뒤터 밀러다. 상당한 전력의 팀에서 1군 선수란 셈이다.[6] 게다가 차인천은 풀 컨디션도 아니였다![7] 월드 유스 편은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연재했다.[8] 먼저 김주성의 경우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독일 리그에 진출했다가 다시 K리그로 복귀했었고, 황선홍은 1988년 AFC 아시안컵 한일전에서 데뷔골을 넣은 이후에도 한일전에서 꽤 강한 면모를 보여줬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독일 리그에 진출했다가 부상 이후 K리그에서 다시 시작을 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