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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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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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大韓民國
Republic of Korea

일본국
日本国
Japan

1. 개요
2. 상세
3. 왜 한일전은 치열한 경쟁구도로 열기를 뿜는가?
3.1. 축구
3.2. 야구
3.3. e스포츠
3.4. 반응들
4. 양국 선수들의 사이
5. 여담
6. 한일전과 비슷한 국가대표 간 더비 매치가 일어나는 경우
7. 역대 한일전 전적
7.4. 동계 종목
7.4.1. 컬링
7.5. 하계/기타 종목
8. 대중매체에서의 한일전
8.1. 한국 작품
8.1.1. 축구
8.1.2. 탁구
8.2. 일본 작품
8.2.1. 축구
8.2.2. 야구
8.2.4. 그 외
9. 물론, 예외는 있다
10. 관련 문서


1. 개요



한일전()은 문자 그대로는 한국과 일본의 전쟁, 대개[1] 한국과 일본의 스포츠 더비 매치를 일컫는 말이다. 제아무리 비인기 스포츠 종목이라고 해도 한일전이라면 사람들의 관심이 대폭 증가하는 버프가 있다. 단두대 매치의 예로 거론될 정도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관심이 많아서 특히 축구야구같은 열기가 높은 스포츠 종목은 한일전의 평균 시청률이 30% 정도는 우습게 넘어간다.[2] 일본은 지상파 TV 채널 수가 한국보다 많다는[3] 점을 생각하면 상당한 수치며, 양국의 방송사 및 스폰서들은 한일전 매치가 잡히기를 항상 손꼽아 기다린다.
경기가 열리면 네이버, 다음야후 재팬 양 쪽에서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떠오르고, 끝난 뒤에는 다음날 양국 스포츠뉴스 1면을 장식한다. 해당 경기에서 뛰는 선수와 코치, 감독들의 경우도 굉장한 부담감을 갖게 되는데 협회장부터 구단주, 스폰서, 시민들까지 모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이 경기의 승패가 자신들의 명성과 커리어에서 아주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일전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어떤 스포츠 종목에서든지 약한 전력이라고 평가해도 수십배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힘을 낼 수 있는 아주아주아주아주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우스갯소리로, "한일전에서 승리하면 10번 이긴 거나 마찬가지다." 같은 농담도 있다.
한일전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그동안 아무리 성적이 부진했던 선수라도 구국의 영웅 취급같은 대스타로 떠오르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그 이름이 기억되지만, 실수하거나 패배하면 그야말로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이 되면서 인터넷상에서 이름 석 자가 쌍욕을 먹고 내부에서도 눈칫밥을 얻어먹게 된다. 특히, 축구나 야구 같은 메이저 스포츠의 경우 한일전의 패배는 바로 감독의 경질 여론까지 나올 수도 있다.
하다 못해, 인터넷상의 찌질이들끼리의 키배라도 한일전 양상이 되면 이목이 집중된다. 디시인사이드5ch1차, 2차 사이버 전쟁처럼, 한국의 경우 한일전에서 이기면 다른 나라와의 경기와는 다르게 '대첩'이라고 부를 때가 종종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한일전'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닛칸센(일한전)'이라고 부른다. 2002 한일 월드컵도 한국에서 '한일 월드컵'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일한 월드컵'이라고 부르는데 나 먼저 원리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4]
한일전의 중요성을 만화 하나로 잘 나타낸 와탕카. # 여기서 나오는 긴가메 공화국은 가상의 국가이다.
영국의 언론 가디언은 가장 치열한 10대 국가대표 축구 더비 중 하나로 선정했다. #
우스갯소리로, 면제로이드와 비슷하게 한일전에서 강력한 동기부여로 좋은 활약을 보여줄 때 반일로이드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2018년 9월 1일에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 정구, 남자 축구, 남자 야구 종목이 같은 날 시차를 두고 한일전 결승전이 치러졌으며 여자 배구에서도 한일전 동메달 결정전은 모두 한국의 승리로 끝났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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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의 축구툰 중 한 컷.[5]

"모든 팀에 다 이겨도 일본에 지면 전패고, 다른 나라에 다 져도 일본에 이기면 전승이다."[6]

- 김응용. 야구 대표팀 감독 시절의 발언.기사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져선 안된다잖아요."

- 김원중.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에 3:0으로 승리한 후 인터뷰에서.

"일장기가 우리 태극기 위에 올라가는 건 눈 뜨고는 볼 수 없다."

- 김학범 감독이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대표팀 선수들에게 했던 말. 기사

다른 경기를 모두 지더라도 일본만 이기면 해피엔딩이다.

한국인: "딴 놈들에겐 져도 돼. 하지만, 일본만큼은 무조건 꺾어야 해!"[7]

일본인: "우린 그 반대다!"

-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한일전을 생각하는 기본적인 자세.

대한민국과 일본의 숙명적인 경쟁 구도의 한일전은 그 어떤 경기보다도 가장 중요한 경기다. 대한민국이나 일본이나, 본래의 실력과 상관없이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전승을 했다가도 이 경기에서 패배하면 비난이 쏟아지며 패배의 원인이 된 선수는 역적,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8][9]
어느 정도냐 하면 1997년 11월 1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최종예선 일본전에서 그 전경기까지 5승 1무로 승승장구[10]하여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0대2로 패하자 이날 KBS 뉴스 9에서 기자가 "한국축구 치욕의 날이었습니다."하고 일갈했을 정도였다. 또한 이날 MBC 뉴스데스크에서 권재홍 앵커는 "오늘 하루 종일 온 마음을 잠실벌에 묶어 두었던 온 국민들에게 큰 죄를 진 것입니다."라며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꼬집었다.
가령, 월드컵이나 올림픽같은 세계무대에서 우리가 목표로 한 월드컵 16강 이상이나 올림픽 메달 등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그 토너먼트 상대가 한일전이 된다면 그게 16강이 됐든 결승이 됐든 절대 져서는 안 되는 경기가 된다. 그 대회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이 나온다 하더라도, 한일전에서 패한다면 대한민국의 입장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모두 결코 졌지만 잘싸웠다 라는 말을 들을수가 없다.
남자 선수단 한정으로,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의 한일전에서 패배한 경우, 대부분의 선수가 예술체육요원으로 지정되지 않아 현역으로 조기 군입대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11]
반면, 다른 경기는 부진해도 한일전에서 승리하면 (심지어 메달을 따지 못해 곧 군대에 입대하게 되어도)[12] "그래도 일본은 이겼으니까 됐다."라고 까임방지권을 받게 된다.
사실 한일전은 당연히 1920~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경쟁심이 애들 장난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 축구에서는 더더욱 그랬는데 한국인 선수들이 주축인 팀이 일본인이 주축인 팀이랑 맞붙으면 무슨 독립군 전투가 벌어질 지경이었다. 일본 선수들에게 거친 플레이를 벌여 일본 선수들이 실려나갈 정도였다고 한다. 사실, 식민지 시절의 국가들은 대부분 이렇다. 인도만 해도 크리켓에서 영국이랑 사생결단 경기를 벌여서 이긴 실화가 인도에서도 영화로 나온 바가 있으며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네덜란드와 축구 경기를 하면 역시 사생결단으로 경기를 한다. 결국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팀이랑 경기를 금지할 정도였다.
남성잡지 맥심에서는 스포츠에서 가장 보기 싫은 이벤트로 일본전 패배를 꼽았다. 그래서 대표팀은 무조건 일본을 이겨야 한다!라고 하지만 실상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이 지금처럼의 승률을 자랑하는 것도 얼마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1980년대 후반까지 축구, 농구, 양궁 정도 제외하면 한일전에서의 대한민국의 승률은 높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은 대한민국이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쇼트트랙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열세로 밀렸던 적도 있었다. 물론, 반대 케이스로 1990년대까진 일본에게 앞서다가 2000년대에 들어설때쯤 부터 상대전적이 열세로 돌아선 여자배구의 사례도 있지만 드문 편이다.
실제로 1970-1980년대 초중반까지는 한일전보다 남북한의 남북대결 매치가 국민정서상 관심이 많았고 승패에 연연하며 피를 말리게 했던 경기였다. 물론 여기에는 1960~1980년대의 남북한의 라이벌 정서가 심했던 사회적 시대적 측면이 많이 반영돼서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일본도 일본이지만 반공 정서의식이 강한 시대였고 당시엔 경제력 면에서도 비교가 의미가 없을정도로 일본의 압도적인 우위였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선 북한이 더 위협적으로 다가와서였다. 과거 1960년대 북한 축구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자 이에 열등의식을 느낀 당시 대한민국 정부가 정부 주도하에 북한만을 꺾기 위해 뛴다는 양지 축구팀을 정보부 산하에 만들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해당 국가의 종합적인 스포츠 실력 수준이 어디까지 인가를 살펴보는 척도로 대표적인 우리가 잘 아는 올림픽을 꼽을 수 있다. 올림픽에서의 메달 순위와 금, 은, 동메달의 분포도 등을 따져보면 해당 국가의 전체적인 종합 스포츠 실력을 대충 가늠해 볼 수 있는데 과거 일본이 6.25 전쟁 이후(그 이전은 전범국이라 참전제한, 2차대전으로 참전안함 등으로 제외) 1960년대(1964년도엔 개최국으로서 좋은 성적 물론 홈 어드벤티지 감안)와 특히 일본의 버블 경기가 올라가며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시기였던 1970~1980년대에는 일본의 메달순위는 거의 대부분 한국보다 앞서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후 1990년대 들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버블경제 붕괴 등 국가경제력이 악재를 달리며 스포츠 수준도 그에 비례해 추락해 올림픽 메달 종합 순위에서 대한민국에 역전당하고 밀리게 되었다.
실제로 관련 분야(스포츠와 경제)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해당국가의 국력(경제력을 바탕으로 나머지들)과 스포츠 실력은 비례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하는데 그것이 그대로 시기별로 반영된 것이라 보면 되겠다. 물론, 올림픽이라는 여러 종목을 통틀어 종합적인 스포츠 실력이 세부적으로 개별 종목 단위에서 따져본다면 국력에 비례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력 = 스포츠성적 이렇게 연계성이 있다는 것이고 무조건 100% 예외가 없다는건 아니니까 말이다. 예를 들자면, 축구에서는 한국보다 경제력이 약한 아프리카권 국가도 상대적으로 부유한 아시아권 국가보다 실력이 좋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마라톤에서는 아시아권 국가들보다 아프리카권 국가들이 대체로 좋은 성적을 유지한다.
이러한 분위기를 선수들도 잘 알고 있는 지라, 다른 때 같으면 해외에서 경기를 치르고 귀국할 때 공항에서(크게 털린 경우가 아니면) 평범한 모습으로 기자들을 맞이하지만, 유독 한일전에서 일본에게 지고 돌아오는 경우라면 고개를 푹 숙이고 어두운 얼굴로 기자들을 맞이한다. 불쌍해보여야만 국민들에게 덜 까이니까 멀이다.
양국 사람(네티즌)들 대부분은 막상 한일전이 벌어지기 전에는 '실력도 없고 상대도 안 되는 것들이니까 신경 따위 쓸 필요도 없다.'며 서로 안중에도 없는 척, 쿨한 척을 한다. 하지만 한일전이 시작되면 그런 거 없고 미친듯이 응원을 한다. 그리고 패배한 나라의 국민들은 모든 것을 잃은 듯이 허탈감에 빠진다.
역사상 최초의 한일전은 1945년 8.15 광복 이후, 1953년에 있었던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아시아 예선전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출정식을 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일본에 패하면 대한해협에 빠져서 죽으라고까지 했다고 한다.[13]
결국, 첫 한일전은 5:1로 압도적으로 대승했고, 이어서 일본에서 또 벌어진 2차전에서는 2:2로 무승부를 이끌어내서 대한민국 최초 월드컵 본선 진출(+아시아 독립국가 최초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뤄 낸다.[14] 해방이 된 지 10년이 되었던 즈음이라 국민들은 승전보에 더욱 기뻐하였는데, 무엇보다도 일본에 35년간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기억 때문에 경기에서 압승했으며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냈다는 것에 환호를 보냈다.

3. 왜 한일전은 치열한 경쟁구도로 열기를 뿜는가?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말대로 이웃나라와 사이좋은 나라는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고, 한일관계 역시 이웃나라라서 서로 부딪칠 일이 많다. 과거의 역사나 정치적인 문제를 파고들면, 또 여러모로 복잡해지기 때문에 양국 사람이 괜히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싸우기도 딱 좋을 만큼 서로 그 점에 대해서는 민감하다. 이런 감정이 간접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바로 한일전이다. 어느 정도는 직접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러한 근본적인 요인은 주변 국가 중에서 한국과 일본만큼 스포츠에서 라이벌 관계를 이룰 나라가 없어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기껏해야 중국, 몽골, 대만, 북한 정도인데, 한국일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그나마도 과거에는 중국의 스포츠 실력이 좋지 않았던 데다가 중국은 전통적으로 축구야구 같은 구기종목보다는 탁구체조, 역도 등의 개인 스포츠에서 강세를 보이기 때문에 임팩트가 그리 크지 않다. 그나마 탁구가 한 때 한중전으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중국의 독주로 사라졌다. 대표적인 예로는 축구에서 중국이 한국을 만나면 매번 무승부 내지 패배를 기록하는 공한증을 들 수 있다. 만약 중국이 과거에 스포츠(특히 팀 스포츠)를 조금 더 잘했더라면 한중전, 중일전이 한일전만큼 성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농구바둑처럼 한중전이 더 재밌는 종목도 있긴 하다. 중일전이 재밌는 경우는 배구.
2000년대 초중반 한류 열풍의 영향이 일본으로 넘어가고 특히 중반 중후반 들어 문화 경제적으로도 일본 내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커져가고 야구 등에서 일본이 메이저리거까지 총동원한 대표팀이 몇 번이나 한국에게 무너지면서 특히 일본 쪽에서는 이미 한국을 야구→모든 스포츠 종목을 경쟁 상대로 한일전이 주목을 받는 요소가 된 지 오래다.
특히, 2010년대 부터는 일반 뉴스 등에서도 여전히 한일전은 국내 스포츠를 대표하는 최고의 관심사이며 말 그대로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처럼 아주 치열하고 사생결단의 무대다. 프리미어 12는 예선전에 일본은 전승을 거두고 대회 자체에 국민들 관심도 상당했다. 하지만 4강에서 한국에게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뒤 고쿠보 감독은 인신공격까지 당하면서 어마어마한 비난 속에 차기 대회를 지켜나가야 했다.
일본에서도 한일전의 실패가 주목받는 것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카디프 대첩에서 말 그대로 4위라는 멕시코 올림픽 이후 최고의 성적을 올렸고, 스페인까지 격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한국에게 패배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귀국 현장에 나와있던 기자는 겨우 4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요시다 마야는 이런 행태에 상당히 서러운 감정을 토로했는데, "일본의 올림픽 도전 중에 상당히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런데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다."라고 푸념했을 정도였다.
요시다 마야의 저 발언이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일본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8강 이후로, 조별리그에서 승리조차도 런던까지 하지 못했었다. 리우 올림픽에서도 나중에 1승은 했지만 한일전 패배로 인해 모든 것이 끝난 상황이라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것도 토너먼트 준결승까지 진출했는데도 그저 한일전을 패배했다는 이유로 그냥 욕만 먹었다.

3.1. 축구


일반적으로 '한일전'이라고 하면 양국간의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쉽게 떠올리는데 역대 전적은 한국이 일본보다 더 앞서는 편이다. 역대 전적만 봐도 한국이 훨씬 압도적이고, 1990년대~200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에게 일본은 전혀 상대도 되지 못했다.
한국축구의 레전드이자 슈퍼스타 차범근, 최순호가 활약하던 시기였던 1970~80년대에는 일본의 눈 앞에서 한국이 언제나 아시아권의 최종보스로 군림했던 시대라 항상 쪽도 못 쓰고 깨지면서 상대도 되지 못했다. 그야말로 일본은 언제나 한국밥이었고, 승점자판기였다.[15] 물론, 더 윗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최정민이나 이회택처럼 기라성같은 대형 공격수들이 활약하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으며 2010년대인 현재에도 일본은 여전히 한국을 상대로 실력적인 부분에서 쉽게 압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심지어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에서 한국을 1:0으로 승리했지만, 이라크에 경기 종료 30초 전에 통한의 동점골을 먹히면서 월드컵 본선진출권을 한국에게 넘겨 준 도하의 기적을 보면, 일본은 뒷목을 잡고 쓰러질 정도였다. 그래도, 최근에는 일본이 1993년 J리그를 야심차게 창설하면서 AFC 아시안컵 우승 횟수에서도 한국을 앞서게 되었으며[16], 한국 축구에 대한 연구와 엄청난 투자로 인해 어느덧 동아시아권에서 한국과 일본이 양강구도를 형성하게 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되었다.
한국이 축구에다가 돈을 많이 쓴다고들 하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축구와 관련된 예산을 2, 3배 정도는 우스울 정도로 더 많이 사용하면서도 여전히 한국을 쉽게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니고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줬던 종목은 그동안 야구가 압도적이었던 터라 축구는 만년 2인자였다. 최근에는 일본 국내에서 야구 열기가 좀 사그라들고 축구 열기도 많이 올라가긴 했지만[17], 금전적인 지원도 역시 생각하는 것처럼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다.
더구나,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의 경우는 특히 1990년대 들어서 버블경제 붕괴의 여파로, 국가 경제력이 많이 후퇴하던 상황인지라 스포츠에 그리 많은 돈을 쓸 여력이 안되기도 했다. 어쨌든, 일본은 많이 쓴 돈에 비해서 실력향상이 잘 안되는 편이었지만 그나마 2010년대 이후 조금씩 실력이 대등해지면서 한국과 일본의 전력이 점점 비슷해지는 상황이다.
한일전 축구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대체로 일본은 스피드 위주의 섬세한 패스축구에 유리하고, 한국은 힘으로 밀어붙히는 식의 강력한 피지컬 축구에 발달되었다. 사실, 2018년 현재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피지컬은 세계적으로 비교해봐도 평균 이상은 된다. 또한, 한국 국대의 평균 신장도 180cm 중반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경쟁국가들과 비교해도 상위권에 속했다.[18]
다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국대의 피지컬은 세계적인 수준에는 모자랐지만, 일본 국대는 여전히 한국 국대보다도 못한 피지컬을 가진 선수들이 모여있던 팀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피지컬만 놓고 보면 한국 국대가 항상 일본 국대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단 한 번도 피지컬적인 부분에서는 뒤쳐진 적이 없었다.
물론 축구는 피지컬로만 플레이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전술 스타일이 이른바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는 압박 축구뻥축구인데, 이게 한결같이 잘 통해서 계속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이 패배하는 경기에서도 저 킥 앤 러시나 롱볼패스 때문에 일본이 위기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결국, 헤딩볼로 공중전을 잘 따낼 선수가 없다는 것과 수비수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그나마 공중볼을 잘 막아줬던 선수는 일본의 레전드 축구선수 야마구치 모토히로, 엔도 야스히토 정도였다.
요즘에는 불구대천의 원수 이란과의 악연이 깊어지고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일전이 계속 무산된 덕에 예전보다는 분위기가 좋아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피터지게 치고 받던 1990년대에 비해서 약간 좋아졌을 뿐이다. 여전히 한일전에서 패배하는 쪽은 나라를 잃은 것처럼 분노가 치솟고 기분이 허탈해진다.
2010년대에는 대리 한일전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는데, 태국의 축구 국가대표 감독을 일본인 니시노 아키라가 맡게 되고, 베트남은 한국인 박항서가 맡게된데다가, 이 국가들 또한 한일처럼 양국이 상당히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 동남아, 국제 축구 대회에서 이들이 맞붙게 되면 예선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 우연히도 베트남과 태국은 각각 한국과 일본과의 경제적 협력도가 높은 편.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 초반은 국내파로만 무장해 친선전에 가까운 동아시안컵이나 연령별 대표팀 외에는 만난 적이 없다. 두 팀 모두 상위 시드를 배정받아 월드컵 예선이나 아시안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다른 조에 배치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리고 A급 대표팀 경기는 양측 모두가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서로가 꺼린다고 한다. 차라리 중동이나 동남아의 소국에게 어이없게 져서 욕먹는게 낫다고 느낄 정도로 한일전에서의 패배는 선수들에게 지옥을 맛보게 해준다. 그리고 과거보다 유럽, 남미의 강팀들과의 A매치 협상도 쉬워진터라 굳이 양측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한일전을 성사시킬 필요도 없긴 하다.
그리고 선수들간의 감정문제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다. 물론 과거에도 한국 선수의 J리그 진출 사례가 많아 정작 한일 선수들끼리의 사이는 좋은 편이었지만 현재는 한일 선수들 모두 유럽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 그곳에서 친구처럼 지내는 선수들이 많아졌고 일본 선수가 한국 선수를, 반대로 한국 선수가 일본 선수를 본받고 싶다는 인터뷰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다른 종목에 비해서 한일 축구 선수들끼리의 감정은 좋은 편이다.

3.2. 야구


야구는 두 번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쓴 맛을 봤지만, 올림픽에선 2차례 목메달을 안겨준 전적이 있다.
1999년 시드니 올림픽 예선 부터는 아시안 게임을 제외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프리미어 12, 올림픽 야구에는 베스트 라인업이 출전한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부터 2015년 까지 한일전에서 전력차가 난 상황에서 맞붙은 경기는 도하 참사 당시 일본의 사회인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 국대에게 10대 7로 패배한 경기가 유일하다.
참고로, WBC의 대진이 이렇게 병맛스런 이유는 "한일전이 돈이 가장 되니까."라는 설득력 있는 가설이 존재한다. 일본이 프로급 선수들로 꾸려서 본격적으로 맞붙은 2000년부터 2020년까지 20전 9승 11패로 한국이 근소한 차이로 뒤지고 있다. 일본이 이것을 당황스럽게 여기는 것은 프로야구 역사가 긴 일본이 30년이 갓 지난 한국 프로야구를 압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리그를 씹어먹은 일본리그 진출을 꿈꿀 정도로 일본리그의 수준은 KBO보다 휠씬 높은 편이다. 특히 팀의 부동의 1번타자이자 리그를 씹어먹던 선수가 일본에 진출 후 극도의 부진을 겪었으나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리그를 씹어먹던 선수가 됐던 것만 보아도 KBO와 NPB의 격차를 알 수 있다.

3.3. e스포츠


e스포츠의 경우, 일본과 한국이 주로 하는 게임이 달라서 그런지 많이 갈리는 편인데, 한국은 PC 게임 위주인 데 비해 일본은 콘솔 게임 위주이기 때문이다.[19]
슈팅게임을 포함한 오락실 게임의 경우 한국이 무난하게 진다. 이걸 대표하는 말이 "일본 동네 기록이 전한기록". 대전격투 게임의 경우 e스포츠 씬이 기능하지 않는 고전게임의 경우 그쪽에서 인기있는 게임과 이쪽에서 인기있는 게임에 따라 우세가 천차만별로 갈리는지라, 비교는 거의 의미가 없는 편이고 활발하게 현역으로 대회가 돌아가는 게임은 세계적으로 인기많은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를 포함해 전부 일본이 압도적이고 한국이 꽤 오랫동안 최강으로 군림했던 철권 시리즈 정도가 비등한 편이다.[20] 예외적으로 버추어 파이터가 3시절 한국인 플레이어 두 명이 초청받아 세계 대회를 치른 적이 있다. 결과는 둘이서 모든 플레이어들을 쳐발라버리고(...) 1, 2위를 나누어 먹었다.[21] 덕분에 당연히 일본 선수가 우승하리라 생각했던 주관사 세가는 체면을 구겼고 한국 선수들의 인터뷰를 공식 비디오에서 통편집 및 분량 대부분을 일본 선수들의 선발전으로 채우는 등 등한시했고 계속적인 초청을 해준다는 약속과는 달리 다시는 세계대회를 열지 않았다. 이 여파로 버파는 한국에서 무관심 속에 잊혀졌다.
리듬게임의 경우 한국이 꽤 따라잡아서 KAC 2012 사운드 볼텍스 부스 부문[22], KAC 2013 유비트[23], 리플렉 비트[24] 부문에서 한국인이 챔피언 자리를 가져갔다. 게다가 The 4th KAC에서는 유비트 본선진출한 8명중 5명이 한국인[25]이고 DDR[26]에다가 리플렉비트[27]까지 우승에 성공. 참가하는 족족 최소 1종목은 우승자를 배출하는 중이다. 모바일 리듬 게임 중에서도 가끔 1등이 나오고 있는데,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스타라이트 스테이지의 경우 한국인 '무서운닭'이 피어라 Jewel 이벤트에서 1위를 기록한 적이 있고, 아이돌 마스터 밀리언 라이브! 시어터 데이즈의 경우 FairyTale로 남을 수는 없어 이벤트에서 한국인 '워프P'가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PC 리듬게임으로 가면 한국인의 최상위권 등록 확률이 더 높아진다.[28]
PC 게임의 경우는 일본에서는 인기가 별로인 데 비해 한국에서는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아서 PC게임 한일전은 마주치기 쉽지않아 승부가 성사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2, 리그 오브 레전드까지 갈 것도 없이, 도타 2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이 한국에서 인지도가 낮은 종목들도 나름대로 강력한 데 비해 일본에서 카스는 그나마 SCARZ Absolute라는 팀이 있지만 한국의 MVP PK와 GOSU 두 팀에게 상대전적도 밀리고 있다. 도타 2에서는 프로게임단 조차 없다. 심지어는 콘솔버전이 있는 오버워치도 마찬가지라 2018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e스포츠 최초로 국제대회에서 한일전이 성사되긴 했지만 올 셧아웃이라는 일방적인 결과로 끝났다.[29]
스포츠 게임은 대부분 일본 성적이 더 좋다. FIFA 시리즈에서는 만난 적이 없다지만 그래도 일본에선 꾸준히 세계대회 본선 진출자가 나오는데 한국은 씨가 완전히 말라버렸고[30], 위닝일레븐도 최근 하였던 아시안 게임 지역 예선에서 한국을 무난히 이기고 본선에 진출하였다.

3.4. 반응들


기업의 경우도, 특정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이 경쟁구도로 되어 물고 뜯고 싸우는 모습을 볼수 있다.
과거 인조이재팬 등의 사이트는, 한일전의 승자에 따라 사이트의 주인이 바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쪽이 득세하였다. 주요 떡밥은 독도인데, 승자가 바뀌어도 주제는 안 바뀐다.
이걸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31]
시키면 한다! 약간 위험한 방송에서는 한일전 때 일장기를 가지고 한국에서 일본을 응원하면 어떻게 되는지 실험했다. 일본인 설정이 상당히 잘 어울리는 비주얼의 대신맨이 한국인이라는 의심을 전혀 받지 않으며 활약했다. 험악한 분위기가 일어날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마음씨 좋은 아저씨들에게 제지정도만 당하면서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결론과 함께 상황해결.

4. 양국 선수들의 사이


물론 이건 국가대표전의 이야기. 비록 한일전에서 목숨걸고 싸웠어도, 해외의 같은 소속팀에서 한국 선수와 일본 선수가 뛰는 경우에는 서로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
구자철이 임대갈 때, 하세베 마코토호소가이 하지메에게 전화해서 챙겨달라고 했다거나#, 볼튼 원더러스로 임대간 미야이치 료이청용을 가장 친한 친구로 뽑기도 했고#, 박지성J리그에서 뛸 때 동료들과 친하게 지냈다. 박주호구자철의 팀메이트인 오카자키 신지(레스터 시티로 이적)도 그 둘과 매우 친하게 지낸다.
이외에도 박주호가 같은 팀 동료인 카가와 신지에게 생일 케이크를 선물받았을 정도.# 박찬호노모 히데오도 좋은 관계를 맺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 그 외에 펜싱 대표선수들끼리도 사이 좋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더구나 추신수는 같은 텍사스 레인저스 동료인 다르빗슈 유를 가리켜 팀의 월드 시리즈 진출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을 정도였다.
[image][32]
특히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의 가장 유명했던 장면중 하나인 울고있던 이상화 선수를 고다이라 나오 선수가 격려해주었던 장면을 통해서 한일 양국의 선수들은 그리 괴멸적이지 않다는걸 한 번 더 볼 수 있다.
사실 국가간의 경쟁 의식을 굳이 개개인의 문제까지 가져올 이유도 없고, 가깝고 자주 부딪치는 만큼 오히려 인간적으로는 서로를 잘 알고 정이 드는 경우도 있다.
어쩌니저쩌니 해도 유럽이나 미국같은 외지에서는 어쨌거나 같은 문화권인 동아시아인끼리 서로 의지도 되고 친해지기 쉽다. 게다가 야구나 축구 등의 스포츠의 경우 아무래도 동양인들은 메이저리그나 프리미어 리그 등 높은 레벨의 무대에 진출하여 도전하는 입장에 가까운 만큼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상대에 대한 동질감 내지는 전우애에 가까운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박찬호마이너리그 시절 때 스즈키라는 마이너리거 동료가 있었는데 신라면이나 김치를 즐겨먹고 한국노래를 즐겨듣으며 굉장히 친하게 지냈다. 오죽하면 박찬호는 너 혹시 한국계 아니냐? 이렇게 질문했을 정도인데 물론 그는 아니야~ 즉시 답했다고 한다. 스즈키는 아쉽게도 메이저리거로 성공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박찬호가 매우 아쉬워하며 일본에 편지까지 보내자 고맙다면서 답장을 한 적도 있다.
이외에도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희찬미나미노 타쿠미가 투톱으로 팀에서 미친 활약을 하며 주목을 받았느데, 둘 다 1살 차이의 절친이라는 점 덕분인지 매우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이외에도 EPL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서 뛰고 있는 기성용무토 요시노리도 오히려 서로 절친이 되었다고.
물론, 프로 구단에서 서로 적대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긴 하다. 김선우같은 경우 메이저리거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활동하던 시절 일본인 팀 동료 오카 토모카즈와 멱살잡고 서로 욕하다가 결국 싸움을 크게 벌인 바 있다. 당시 둘 다 2군 소속이었지만 김선우는 당시 7승 2패로 1군 선발을 앞뒀던 반면에 오카는 6승 5패로 부진하여 이런 점으로 열폭한 듯. 연습경기 도중 사소한 다툼이 벌어지더니만 이후로 충돌을 벌였고 결국 호텔 로비에서 둘다 말다툼이 있었고 김선우가 먼저 선빵을 날렸다고 한다. 그리고 김선우 압승(....) 오카는 입가가 찢어지고 눈탱이가 멍이 들면서 제법 다쳤지만 김선우는 얼굴에 약간 멍이 들었을뿐. 결국 오카는 이후로 몬트리올로 방출되었다. 헌데 나중에 몬트리올에서 다시 동료로 만났는데 거기선 둘 다 사이좋게 지냈고 김선우가 사과하자 지난 날이라면서 오카는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김선우의 당시 회상
허나 이런 경우는 꽤 적다. 같은 팀으로서 우선 친하게 지내는 게 먼저이고, 서로 이랬다간 팀워크가 깨지게 되니 당연히 감독에게 둘 다 찍히기 일쑤이다.
정리하자면, 경기가 지니는 의미로 인해 한일전에서는 치열하게 싸우지만[33] 한일전을 벗어나 한 팀이나 같은 리그에서 뛴다면 동업자 정신 하에 얼마든지 친분을 쌓을 수 있으니 한일전의 모습만 가지고 선수 개개인에게 적대감을 강요하지 말자.
그럼에도 의심스럽다면 이 문서의 복싱특집을 참고하도록 하자.

5. 여담


삿포로 돔에서 야구, 축구 모두 발린 영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2003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만일본에게 지면서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에서 떨어졌던 일이나, 2011년 한일 정기 전에서 졌던 일이 대표적이다. 반면 도쿄는 야구, 축구 모두 대첩이라는 이름이 붙은 경기가 존재할 만큼 한국에 좋은 기억이 많은데, 특이한 것은 삿포로 참사 때마다 돔구장 자체에 익숙하지 못한게 문제였던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도쿄에서 야구 경기가 열리고 한국이 일본을 꺾곤 하던 곳도 다름아닌 도쿄 돔이라는 것. 자세한 것은 도쿄 대첩(축구), 도쿄 대첩(야구) 참고.
참고로, 남자 스포츠 선수들 한정으로 병역특례가 한일전에 포함된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데스 매치로서 손색이 없다. 이기면 그 어떤 때보다도 기쁨이 증가하나 패배하면 역적 + 즉시 입대 크리를 맞게 된다. 이에 대한 위기의식이 빛을 발한 경기가 바로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3-4위전과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3-4위전. 둘 다 해당 종목 첫 올림픽 메달이었던 데다 일본에게 목메달을 선사하고 병역문제를 탈출한 명경기로 회자된다. 그리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결승 진출이 확정되면서 한국은 이번에도 면제로이드가 걸린 숙명의 데스매치를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승리하면서 또 다시 병역 면제를 따내는데 성공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는 유독 한일전이 많았다. 특히 9월 1일은 여자 배구 3,4위전, 야구 결승전, 또 위에도 언급된 남자 축구 결승전이 있다. 결과는 3경기 모두 대한민국 승리.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도 드라마틱한 한일전이 많았다. 특히 여자농구 및 여자배구는 금메달결정전이 한일전이었고, 남자 축구는 전년도에 도하에서 대한민국에 통한의 패배를 안겼던 미우라 카즈요시 앞에서 난타전 끝에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두었다.
재일교포 내지 일본 거주중인 한국인들에게는 최고의 이벤트이자 최악의 이벤트. 도통 누구의 편에서 서야할지를 모르겠다고. 이는 한국에 거주중인 일본인들도 마찬가지다.
둘의 경쟁 의식에 비해 서포터즈간 현장 충돌은 없는 편에 속한다. 원래 응원단 간 충돌은 국내 리그에서 더욱 많이 일어나고, 국제사회 눈치를 감안해야 할 수도 있겠으나 유럽이나 남미에서는 국제 경기에서도 경악할 정도의 충돌이 일어나는 걸 보면 국제 라이벌전 치고는 조용하긴 하다.

6. 한일전과 비슷한 국가대표 간 더비 매치가 일어나는 경우


  • 브라질 VS 아르헨티나 - 브라질은 포르투갈,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서 독립국가로 독립한 이후에 전쟁을 벌여 아르헨티나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브라질에게 폭압적인 지배를 받던 인접국가였던 우루과이를 브라질로부터 독립시키는 등의 일들을 겪었다. 코파 아메리카 등 남미 축구 지역 예선 경기 전이나 월드컵, 올림픽 본선에서 두 나라 간의 축구 시합이 벌어지면 크게 라이벌 전이 일어나는데 패배 국가의 치안이 심각하게 안 좋아진다.[34]
  • 우루과이 VS 브라질 -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나 브라질에게 강제 합병을 당했다가 아르헨티나브라질과의 전쟁에서 아르헨티나의 지원으로 독립하기도 하는 등 역사적인 이유로 사이가 좋지 않다.
  • 온두라스 VS 엘살바도르 - 축구전쟁까지 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다.
  • 에콰도르 VS 페루 - 코파 아메리카 남미 축구 지역 예선 경기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같이 라이벌 전이 일어나며 과거 영토 갈등으로 전쟁도 치뤘었고, 잉카 제국 시절때에도 수차례 싸운 이력이 있어서[35] 역사적으로도 사이가 좋지 않다.
  • 페루 VS 콜롬비아 - 에콰도르와 페루가 맞붙으면 콜롬비아는 에콰도르를 응원하지만[36] 반대로 페루와 콜롬비아가 맞붙으면 여기서도 라이벌 전이다. 이 쪽도 역사적으로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 파라과이 VS 볼리비아 - 전간기였던 1930년대에 차코 지역의 영유권을 놓고 전쟁도 치렀을 정도로 축구에서도 앙숙전으로 대결한다.
  • 독일 VS 프랑스 VS 잉글랜드 VS 이탈리아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과 추축군의 대전이라 봐도 무방하며 이 넷 서로가 월드컵 라이벌이다. 그 때문에 카잔의 기적 당시 독일을 다들 신나게 비웃어줬다.
  • 프랑스 VS 스페인 - 이쪽은 플라티니 시대 지단 시대 현 프랑스 세대 모두 만난 만큼 악연이며 서로 자주 맞붙는다. 특히 지단 세대에는 무려 3번이나 만났다. 그리고 두 나라는 프랑크 왕국서고트 왕국 시절부터 이어져온 기나긴 역사적 악연을 가진 나라들이기도 하다.
  • 스페인 VS 포르투갈 - 대항해 시대 시절 남아메리카의 식민지를 두고 대립하던 경쟁관계였고, 축구에서도 은근히 라이벌 전이 일어난다.
  • 스페인 VS 모로코 - 모로코인들의 조상인 무어인들이 스페인을 지배했다가 훗날 반대로 스페인이 모로코를 지배하는 등[37] 역사적으로 수틀린 관계다.
  • 이라크 VS 이란 - 이란-이라크 전쟁까지 했을 정도로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그럴만도 한게, 8년 가까이 총력전을 벌였을 정도로 박터지게 싸웠기 때문이다. 사실, 이란-이라크 전쟁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사이가 영 아니올시다인데, 그 악연은 한중관계, 남북관계, 한일관계, 중일관계, 양안관계, 영불관계를 능가할 만큼 바빌로니아 VS 페르시아 구도로 5000년도 넘게 해묵은 대립 관계인 만큼 악감정은 비교할 수도 없는 최악의 수준이다. 농담이 아니라, 두 국가간의 더비 매치는 한일전 따위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매우 치열한 혈투와 집단 난투극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2015년 아시안컵 8강전 경기처럼 집단적으로 모여서 크게 언쟁을 하면서 강하게 서로 밀치기도 하는 정도면 심하다. A매치 중에서도 꽤 권위있는 아시안컵에서 이 정도 수준의 벤치클리어링이라면 정말 보기 힘든 상황이다. 아니나 다를까, 2019년 아시안컵에서도 조별리그에서도 두 국가가 만났고 당연히 집단으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 이라크 VS 쿠웨이트 - 언어, 민족, 역사성이 다른 이라크와 이란과는 달리 언어적, 문화적으로 비슷한 아랍권 국가들이지만,[38] 1990년대 초에 벌어진 걸프 전쟁으로 인해 양국관계가 몹시 안 좋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이라크와 이란 못지 않게 상대국들을 비방하며 양국 응원단끼리 폭력사태가 일어난다.
  • 인도네시아 VS 말레이시아 - 인종, 언어적으로 같은 말레이 계통의 국가들임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영국 식민지배[39]에서 독립한 이후에 보르네오 섬에서 전쟁 수준의 싸움도 벌이고 현재에도 서로 상대국을 견제하려고 군비경쟁까지 할 정도로 사이가 무척 나쁘다. 축구 등 스포츠 경기에서 상대국 응원단끼리 충돌이 벌어지기도 한다.
  • 영국 VS 아일랜드 - 대영제국 시기 영국의 아일랜드 식민지배 등 역사적인 이유.
    • 잉글랜드 VS 아일랜드 - 사실 대영제국 이전의 잉글랜드 왕국도 아일랜드를 지배하면서 아일랜드인들을 탄압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인들 중에서도 특히 잉글랜드인들에 대한 악감정이 강하다.
    • 스코틀랜드 VS 아일랜드 - 잉글랜드와 맞붙으면 서로 응원하지만 반대로 자기들끼리 붙으면 잉글랜드전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경기가 벌어진다.
  • 잉글랜드 VS 스코틀랜드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독일 VS 아르헨티나 - 이 둘은 마라도나 시절 때 월드컵 결승에서 2연속 만났으며 1승 1패를 주고받았다. 메시 시절에는 2006년 2010년 2014년 3연속으로 만나 격전을 벌였다.
  • 잉글랜드 VS 아르헨티나 -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을 비롯해서, 디에고 마라도나신의 손 사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마이클 오언할리우드 액션 때문에 국민감정을 비롯해서 사이가 매우 안 좋다고 볼 수 있다.
  • 러시아 VS 독일 - 사이가 좋았던 시기도 있긴 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사이가 안 좋았던 시기가 워낙 많았다.
  • 러시아 VS 오스트리아 - 러시아의 입장에서 오스트리아는 독일(프로이센)과 더불어 양대 독일어권 숙적이었다.
  • 러시아 VS 폴란드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루스 차르국 침공, 폴란드 분할, 카틴 학살 등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서 국민감정이 최악으로 좋지 않다. 결국, 유로 2012에서는 관중들 간의 패싸움이 벌어졌다.
  • 우크라이나 VS 러시아 - 물론, 스포츠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외교 관계역사적으로도 철천지 원수지간이다.
  • 폴란드 VS 우크라이나 - 러시아와 맞붙으면 서로 응원하지만 반대로 자기들끼리 붙으면 러시아전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경기가 벌어진다.
  • 폴란드 VS 독일 - 폴란드 분할, 제2차 세계 대전 등 역사적 이유가 맞물려있다.
  • 폴란드 VS 오스트리아 - 러시아나 독일과 맞붙으면 서로 응원하지만 반대로 자기들끼리 붙으면 러시아전과 독일전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경기가 벌어진다.
  • 독일 VS 네덜란드 - 이쪽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네덜란드 점령 등 역사적인 이유가 맞물려 있다.
  • 세르비아 VS 알바니아 - 코소보 사태를 비롯한 역사적인 이유가 맞물려있다.
  • 그리스 VS 터키 - 오스만 제국 시기 터키의 그리스 지배 등 역사적인 이유가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 터키 VS 불가리아 - 이 쪽도 그리스 VS 터키와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 때 터키에게 지배를 겪는 등 역사적인 이유가 크다.
  • 불가리아 VS 그리스 - 터키와 맞붙으면 서로 응원하지만 반대로 자기들끼리 붙으면 터키전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경기가 벌어진다.
  • 세르비아 VS 불가리아 -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과거에 도 몇 번 치뤘고 실제로 축구나 배구, 테니스 같은 운동경기에서도 라이벌전 수준으로 맞붙기도 한다.
  • 세르비아 VS 터키 - 세르비아는 그리스, 불가리아와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다.
  • 인도 VS 파키스탄 - 외교, 역사적으로도 앙숙이고, 크리켓 같은 운동경기에서도 라이벌 전이 격렬하게 일어난다.
  • 파키스탄 VS 방글라데시 - 방글라데시의 전신인 동파키스탄의 벵골인들이 파키스탄의 전신인 서파키스탄에 의한 토착 문화 말살 정책 때문에 결국 전쟁을 거쳐 독립한 역사가 있다.
  • 헝가리 VS 루마니아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기 헝가리의 루마니아에 대한 지배와[40]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둘러싼 영토 갈등 등 역사적인 이유가 맞물려있다.
  • 미국 VS 멕시코 - 북중미 맹주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더비. 물론, 역사적으로도 사이가 매우 좋지 않고 악감정이 가득하다.
  • 캐나다 VS 미국 or 러시아 - 아이스하키 한정. 미국은 양성 모두에 해당하고, 러시아는 남자 하키에만 해당한다. 여자 하키는 러시아가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다.
  • 카타르 VS 사우디아라비아 - 스포츠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2017년 사우디의 대카타르 단교사태로 인해 서로 앙숙이다.
  • 중국 VS 타이완 - 청나라의 타이완 정벌과 양안관계 등 심히 꼬여있는 역사/정치적인 이유. 중국이 다른 국가와 경기하면 타이완은 중국을 응원하지만, 반대로 중국과의 스포츠 경기가 시작되면 라이벌 전이 일어난다.
  • 중국 VS 영국 - 더러운 전쟁으로 악명 높은 아편전쟁만 봐도 답이 나온다. 게다가 아편전쟁 자체가 단순히 청나라의 패전으로 그치지 않고 중국이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중국인들의 아편전쟁 트라우마는 더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 포르투갈 VS 브라질 - 포르투갈의 브라질에 대한 식민지배 등 역사적인 이유 때문이다.
  • 스페인 VS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페루, 파나마, 콜롬비아, 칠레, 멕시코, 쿠바 등 구 스페인 식민지령 출신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 스페인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대한 식민지배 등 역사적인 이유. 많기도 많다.
그 밖에도 여러 국가의 대진이 있다. 자세한 사항은 더비 매치, 먼 나라/안 좋은 사이, 이웃나라/안 좋은 사이에서 확인해 보자.

7. 역대 한일전 전적



7.1. 축구




7.2. 야구




7.3. 배구


한국 V-리그와 일본 V.프리미어 리그가 끝나고 각 리그의 1, 2위 팀들이 모여 치르는 대회. 05-06시즌 후인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
한일 배구 역사상 메달(3위 결정전)을 놓고 겨루는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보기 힘든 최고 최악의 데스매치. 남자축구와 똑같은 대진표가 나온 건 우연이다. 세계랭킹 1위 미국에게 패한 한국과, 세계랭킹 2위 브라질에게 패배한 일본이 대결하게 되었다. 사실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이런 매치업이 나올 줄은 예상조차 못했다. 일본은 2010년 세계선수권 대회 3위 이후 다시 세계랭킹 Top 5에 올라('10 세계선수권 대회 이후 최고 성적은 세계랭킹 3위) 난적 미국, 브라질, 러시아, 이탈리아, 중국을 잘 피한다면 내심 금메달을 바라는 입장이었지만, 한국은 2004 아테네 올림픽 이후 국제전에서 그리 좋지 못한 성적을 거뒀고, 2012년 7월 세계랭킹에서도 15위를 기록, 8강 토너먼트 진출은 언감생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최종예선전에서 일본을 정말 오래간만에 꺾었고, 강호들[41]을 꺾은 자신감까지 더해진 상황. 그러나 실력이 비슷한 편으로 평가받고 있었던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의 한일 매치와 달리 배구는 일본 쪽 성적이 더 좋다는 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 한국이 이길 거라고 기대하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았다. 한국은 나름 분투했지만 세트 스코어 0:3으로 완패하였다. 김연경을 제외하면 한국의 공격은 일본의 수비를 뚫기 역부족이었고, 수비력에서 차이가 나면서 끝끝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여자배구대표팀이 어째서 '김연경과 아이들'이라고 불리는지 깨닫게 해준 경기. 그러나 예상치 못한 올림픽 4강 진출에 배구협회의 연회비 소식이 전해지면서[42][43] 비난보다는 많은 격려를 보내고 있다.
김연경 선수의 활약이 컸다. 19:25로 일본에게 1세트를 넘겨주며 불안하게 시작하였다. 일본은 주 공격수인 사오리 선수의 오픈 공격으로 득점을 올렸다. 이어 다른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면서 한국 수비진 가운데를 뚫으며 1세트는 일본이 이겼다. 그러나 2세트부터 청신호가 켜졌다. 7:7로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한국은 김연경과 양효진의 공격이 잇달아 성공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김연경 선수의 후위 공격과 김희진 선수의 퀵 오픈 공격이 터지면서 일본의 수비벽을 무력화시켰다. 나가오카 선수의 서브 실수와 수비진의 더블 콘택트 등 실수를 범하면서 일본 측은 무너졌다. 한국이 2세트를 25:15로 따냈다. 3세트에서는 김연경과 이재영의 공격이 터졌다. 김연경은 직선 공격과 자신의 장점인 대각공격을 잇따라 선보이며 일본 수비진을 흔들어놓았다. 이재영은 15-14 상황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오픈 공격을 성공하며 점수 차를 3점으로 벌였다. 3세트에서 김연경은 직선 공격과 자신의 장점인 대각공격을 잇따라 선보이며 한번 더 일본 수비진을 흔들어놓았다. 이재영은 15:14로 일본이 앞서는 상황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오픈 공격을 성공하며 점수 차를 3점으로 벌였다. 마지막 4세트에서는 양효진 선수가 나가오카 선수의 오픈 공격을 연속으로 블로킹하며 승리에 한 발짝 다가섰다. 4세트에서까지 한국은 일본에 역전할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25:21로 이겨 세트 스코어 3:1로 한국이 승리했다.


7.4. 동계 종목


한 시대를 풍미한 라이벌로 축구와 야구 한일전과 대등한 위치로 주목받는 한일전이다.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피겨스케이터들이면서, 둘 다 자국의 국민 히로인급 위치에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맞대결은 개인적인 라이벌 구도를 넘어, 한일전 그 자체로 취급된다. 해외 해설가들도 이를 잘 알고 있어, 한일 양국의 역사적 상황을 거론하며 이에 대해 언급한다. 주요 대회 직전만 되면 한국과 일본에서는 두 선수의 전력, 기량, 경기 프로그램을 비교 분석하는 기사와 방송들이 쏟아지는 등, 그야말로 범국가적인 이벤트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둘 다 1990년 9월 출생으로 김연아가 딱 20일 먼저 태어났다. 두 사람이 주니어로 데뷔한 2004-2005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 처음 맞붙었던 것을 시작으로, 줄곧 국제 대회에서 경쟁해왔다. 상대 전적에서는 2008-2009시즌부터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에 우위를 점하고 있다. 사실 2010년대 이후에는 마오의 경기력이 꽤 하락한데(물론 그래도 월드클래스지만) 비해 김연아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은퇴 때까지 세계 톱클래스를 유지하는 상황이라 다소 격차가 벌어졌다. 김연아와 마오가 둘 다 은퇴한 이후에는 포스트 김연아 vs 포스트 마오가 사실 안나오는 상황이기도 하다.
  • 아이스하키 2016 IIHF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디비전 1 그룹A 3차전
1982년 스페인 하카에서 열린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C풀 에서 0:25로 진이후 일본에게 연패를 했었지만[44] 이번에는 일본을 이길 수 있는지 의문이였으나 34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을 이겼다. 1피리어드 마이클 스위프트(하이원)[45]의 골과 김기성 , 신상훈(둘다 안양한라 소속)의 골로 일본을 3:0으로 이기면서 34년만에 처음으로 이겼다. 이후로도 유로아이스하키챌린지와 레거시컵, 아시안게임 등에서도 만났다 하면 한국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까지는 올림픽 2연패(連覇)에 성공한 이상화의 완승이었다. 그 후 고다이라 나오가 자비량으로 2년간 스피드 스케이팅의 종주국 네덜란드에서 유학한 결과 포텐이 터져 2016-17 시즌부터 이상화를 넘어서기 시작하더니 대한민국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드디어 이상화의 아성을 허물고 한국나이 33세에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경기 후 이상화를 격려하는 고다이라의 모습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한일전의 모습이었다.

7.4.1. 컬링


단순히 돌 굴리기 정도로만 알던 비인기 종목을 전국민의 관심을 갖게 한것도 한일전의 효과가 크다. 스포츠 자체가 한일전의 효과를 아주 톡톡히 누렸다고 볼 수 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사상 처음으로 비장애인[46] 컬링 종목에 참가하게 됐다. 컬링이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다지 인기있는 종목은 아니지만, 컬링 종목의 첫 경기 상대가 하필이면 일본이었고 이 경기가 하는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오후 2시라 한국인들이 생방송으로 보기 쉬운 편이었으므로 많은 관심이 쏠렸다. 마침 이 시간대에 한국 선수가 참가하는 다른 경기가 없었던 탓도 있다. 얼마나 관심이 쏠렸는지 경기 당시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 10위권에 '컬링', '컬링 규칙', '컬링 생중계' 등의 검색어가 오르락내리락했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컬링'과 '컬링 규칙'이 인기 검색어 10위권에 있었을 정도. 초반에는 일본에 뒤지다가 6엔드에서 7:5로 역전승을 하면서 주도권을 잡고, 리드를 마지막 10엔드까지 유지하면서 긴장 끝에 12:7로 승리했다. 컬링 첫경기가 우연히 한일전이었고, 우연히 타 경기가 없어 국내에 중계되고, 또 그 경기를 짜릿하게 역전승을 하는 등 여러가지 요소가 겹쳤지만 이 한 경기의 승리가 우리나라의 컬링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치열했던, 최고의 한일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예선전 에서 처음 맞붙었을 땐 한국이 초반에 앞서가고 있었으나 5대7로 아쉽게 역전패 당했다. 그 뒤 2018년 2월 23일날에 있었던 4강에서 다시 리벤지 매치가 열렸다. 8승1패 1위로 올라온 한국과 5승4패 4위로 올라온 일본의 컬링 준결승전. 1엔드에 3점을 선취하면서 경기 내내 앞서가던 한국이지만 일본이 막판 집중력을 발휘했고 마지막 엔드에서 김은정의 컴어라운드 미스가 나오면서 연장전까지 가게 되었다. 연장 11엔드, 일본의 가드가 점점 두터워지며 한국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으나 서드인 김경애의 샷이 일본의 가드를 벗겨냄과 동시에 원안으로 들어갔고, 다시 승기를 잡았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일본의 에이스이자 스킵인 후지사와 사츠키가 기적의 샷으로 전세를 다시 역전시키면서 한국의 스킵인 김은정의 마지막 샷에 모든것이 걸려 버리는 상황이 연출됐고[47] 여기서 마지막 샷을 던졌는데, 이게 조금 힘이 부족해보여서 한국이 지는 듯 했으나 스위퍼가 달라붙어 결국 원 중심에 밀어넣었고 1번 스톤을 만들면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끝에 대한민국 컬링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결승에 진출했다. 역대 최고의 한일전 중 하나로 꼽히는 명경기로, 용호상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경기로 불린다. 일부 사람들은 심장이 멎을 듯한 경기였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컬링 남자부도 예선전에서 한일전 경기를 치러 승리를 거두었는데, 여기서는 이 한일전의 승리가 고춧가루 부대의 역할을 하는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예선 마지막 경기의 결과로 일본의 토너먼트 진출이 달렸었는데 그걸 대한민국이 이겨버린 것. 그 경기로 인해 일본은 남자부 4강에 진출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상대전적에서 3팀(노르웨이, 대한민국, 일본)이 1승 1패로 동률을 이루자 DSC까지 포함한 결과 일본을 8위로 떨어뜨리고 대한민국은 7위로 올라섰다.


7.5. 하계/기타 종목


일제강점기이던 1936년 8월 9일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일본 선수단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딴 지 정확히 56년 후인 1992년 8월 9일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대한민국의 황영조가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를 22초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공교롭게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당초 1936년에 열릴 예정이었고, 황영조와 모리시타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한 프라이강이 독일 선수라는 점에서 묘하게 인연이 깊다.
취소선이 그어져있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한일전이라고 볼 수 있다.
취소선이 그어져있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한일전이라고 볼 수 있다.
  • 스포츠 클라이밍
보통 유럽권 선수들이 잘하는 스포츠 종목이지만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서 월드컵, 세계선수권에서 메달, 랭킹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선택 종목으로 채택하면서 메달권 경쟁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 수구 3, 4위전
카타르와 홍콩을 크게 이겼지만 중국과 일본에게 예선에서 크게 패배하면서 빛이 바랬던 한국남자 수구 대표팀은 예선에서 4:14로 완패당한 일본과 3, 4위전에서 또 만났다. 설욕을 노리고자 열심히 나섰지만 이 경기도 5:9로 패하면서 20년만에 아시안 게임 수구 메달[48]은 무산되었다.
  • 2012 런던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준결승전이었고, 한국의 압승. 결승전에서 만난 중국이 더 어려운 상대였다.[49]
  •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 결승전
한국의 오진혁이 일본의 후루카와를 7:1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땄다. 사실, 준결승전에서 만난 중국의 다이 샤오샹이 더 어려운 상대였다(연장전까지 간 끝에 승리).
한국 국가대표팀인 CJ 블레이즈와 일본 국가 대표팀인 램페이지의 맞대결. 킬 스코어 7:1로 일본팀이 압도적으로 쳐발리며 CJ 블레이즈 압승. 그나마 일본이 얻은 1킬은 혼자 떨어져있던 플레임을 노리고 다섯 명이 모여서 기습을 하고 겨우 얻었다. 그리고 바로 항복. WCG 이후에도 NLB에 LJL 1위 팀 rascal jakal이 8강 시드를 받아서 출전한 적이 있다. 물론 준프로급도 안되는 아마팀을 상대로 완패를 당하는 결과. 그 이후에도 detonation같은 팀이 나이스게임TV 주최 대회에 나온적이 있지만 세트승조차 딴 기록이 없다.
2차 리그에서 중국을 이기는 등 나름 승승장구하고 있던 일본 농구대표팀은 4강전에서 숙적이자 홈팀인 한국을 만나게 된다. 일본이 좋은 스타트에 힘입어 2쿼터 중반까지만 해도 리드하고 있었으나 그 후 한국이 리듬을 찾기 시작했고, 그 후로 쭉 리드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4쿼터 막판에 6점차까지 따라오긴 했으나 한국이 결국 71-63으로 이긴 뒤 결승에서 이란을 꺾으면서 부산 아시안게임 후 12년만에 남자농구에서 금메달을 따는데 성공했다. 참고로 일본도 3/4위 전에서 카자흐스탄를 꺾고 동메달을 받았다.
당시 세계랭킹 탑 텐 안에 들어있는 니시코리와 아직 별다른 성적을 못낸 정현의 대결이였고 니시코리가 승리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풀세트 접전에 4세트에선 정현이 6:0 베이글 스코어까지 만들어 냈다. 다만 우천으로 인해 경기가 순연 되었고 그 사이 재정비를 하고 온 니시코리가 대등한 경기를 하게 되었고 5세트 마지막에 정현의 아쉬운 더블 폴트로 니시코리가 승리하였다. 그러나 그 여파인지 니시코리는 8강에서 앤디 머레이에게 1세트를 잡고도 체력에 열세를 보여 탈락하였다.
4대0로 일본의 대참패
여성 단체전 결승에서 한국 대표팀이 일본에게 패하자, 이에 남자 대표팀이 남자 단체전 결승전에서 복수해 금메달을 수상했다. 남녀 모두 일본을 결승에서 만난 케이스로 여성이 패한 대신 남성이 복수했다. 덤으로 김진웅은 개인전, 단체전 모두 금메달을 따면서 병역면제까지 받았다.

8. 대중매체에서의 한일전


한일전이 현실에서도 많은 관심을 불러들이는 라이벌전인 만큼 만화, TV 애니메이션, 영화 등 에서도 한일전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가대표 차원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스포츠 만화나 TV 애니메이션인 경우에는 거의 필수요소급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스토리를 다루는 작가가 한국인이냐 아님 일본인인가에 따라서 당연히 내용과 결과가 보통 한쪽으로 치우치는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축구가 주제인 일본측의 만화나 애니의 경우 축구에서 꽤 오랜 시간동안 한국에 열세를 보여서 그런지 결과만큼은 무승부로 마무리 짓는 모습도 꽤 자주 볼수 있다. 단, 바둑이 주 소재인 히카루의 바둑에서는 한국이 최종보스며 한국이 이긴다.
그리고 원작에서 한국이 이기는 내용은 애니화때 높은 확률로 삭제당한다.
네이버 웹툰 극야에서는 작중 인물인 한국팀 대원 승권과 일본팀 대원 사토시와 한일전을 한다고 같이 탁구를 쳤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선 남한으로 넘어간 리정혁을 무사히 데려오기 위해 북한군 5중대 대원들이 남한으로 갔다가 치킨을 먹는데, 다른 손님들이 축구를 보느라 난리법석이었다. 대원들은 처음엔 유흥의 끝이라며 탐탁치 않아 하지만, 경기가 한일전이란 말을 듣고 돌변해서 다같이 축구에 빠진다.

8.1. 한국 작품


당연히 한국의 승률이 높다. 단, 첫 판은 지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8.1.1. 축구


  • 슈팅
    • 한국 U-19 vs 일본 U-19 AFC U-19 챔피언십 결승전 - 2-1 한국 승: 일본에서 열린 AFC U-19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한국이 전반전에 이한얼의 프리킥 골로 앞서나가다 일본의 에이스 스트라이커인 마사요시에게 동점골을 먹고 밀리는 와중 주인공인 나동태의 결승 헤딩골에 힘입어 한국이 2-1로 승리, AFC U-19 대회의 우승을 차지한다.
    • 한국 U-20 vs 일본 U-20 FIFA U-20 월드컵 4강전 - 3-3 무승부 후 PSO 5-4 한국 승: AFC U-19 결승 후 청소년 월드컵 본선 4강에서 다시 만난 이 두 팀은 나동태의 선제 헤딩골을 시작으로 게임 내내 엎치락 뒤치락하며 호각의 모습을 보였다가[50] 후반 21분 경에 천인성이 헤딩으로 골을 넣으며 한국이 3-2로 앞서나간다. 하지만 종료 직전 마사요시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먹으며 승부는 연장까지 가고, 연장에서도 승부가 가려지지 않자 승부차기까지 가게 된다. 승부차기에서 양측이 두 번씩 실축[51]하며 승부차기까지 연장으로 가는 치열함을 보이는데 결국 일본의 일곱번째 키커 오타케가 실축한 후 천인성이 결승골을 넣어서 한국이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그 후 일본은 가나에게 3/4위전에 1-0으로 패하고 한국은 결승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동태의 해트트릭에 힘 입어 3-3까지 따라붙으나 동태가 해트트릭을 한 뒤 실신해 교체아웃된 후 6-3으로 뒤집어지며 패배, 우승에 실패한다.
    • 한국 vs 일본 2002 한일 월드컵 4강전 - 3-2 한국 승: 북한과 남북 단일팀을 이룬 대표팀은[52] 평양능라도 경기장에서 일본과 4강전을 치루게 된다. 일본은 초반에 에이스 스트라이커 마사요시가 선제골을 넣는 등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였으나 나동태가 공포의 슛[53]으로 동점을 만들고, 그 이후 이어진 한국의 찬스에서 동태의 중거리 슛을 골키퍼가 펀칭으로 쳐낸 것을 전도현이 받아 침착하게 역전골을 넣고, 후반전에 박영철의 프리킥 패스를 현철석이 스콜피온 킥으로 골을 넣는 등 한국이 어느새 3-1로 앞서게 되었고, 일본은 후반 막판에 마사요시가 만회골을 넣고 끝까지 밀어붙이지만 종료 직전 에이스 마사요시의 슛이 살짝 빗나가며 결국 패배, 한국이 결승에 오른다.[54] 그 후 일본은 2-1로 스페인에게 3/4위전에서 패하고 한국은 이탈리아와 결승에서 2-2로 비긴 후 연장전에서 주인공 나동태의 골든골로 승리[55], 일본 요코하마에서 아시아 국가 최초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다.
  • 폭주기관차
    • 한국 vs 일본 프로축구 올스타 친선전 - 5-2 한국 승: 원래 정식 A매치 한일전이 될 예정이였으나 일본측에서 이 게임을 프로축구 올스타 전으로 격하시켜서 A매치가 아니였지만[56]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나카타 히데토시의 클론인 하카타와 오노 신지의 클론인 고노 등 베스트가 다 참여한 게임이였다. 초반 일본에 밀리던 한국은 주인공 중 한 명인 괴력의 슈퍼루키 김호천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5-2로 대승. 여담으로 이 만화는 초반에 상당히 반일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며[57] 한국 독자들에게도 비난을 받았었다.
    • 한국 vs 일본 2006년 월드컵 대비 친선전 - 1-0 한국 승: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06 월드컵 대비차원에서 열린 친선경기. 이 게임은 위 게임과 달리 그냥 별 특징없는 친선전으로 짧게 묘사됐고 한국이 네덜란드로 귀화한 김호천의 쌍둥이 동생인 김호야의 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58]

8.1.2. 탁구


  • 극야
    • 한국 vs 일본 비공식 탁구 - 11-9 한국 승: 작중 인물인 남극팀 한국팀측 대원 승권이 일본팀 대원 사토시와 탁구를 쳐서 11대9로 승권이 이겼다. 게임 끝나고 승권이 김연아 드립을 치는 등 어그로를 끌었다.

8.2. 일본 작품


당연히 일본의 승률이 더 높다.

8.2.1. 축구


  • 캡틴 츠바사 월드 유스
    • 예전의 어느 월드컵 예선전 - 3-0 한국 승: 일본 유스팀의 가모 미나토 감독, 미카미 타츠오 감독, 카타기리 무네마사 등 코치진의 예전 월드컵 진출 좌절에 대한 회상에서 나오는 장면. 시기를 대충 잡아보면 아마 80년대 초반의 월드컵 예선전이였는 듯하다.[59]
    • 한국 U-19 vs 일본 U-19 AFC U-19 챔피언십 결승전 - 2-0 일본 승: 양측이 이미 U-20 월드컵 진출권을 획득한 상태라서 승리를 향한 집념이 다소 떨어져 있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일본이 오오조라 츠바사, 휴가 코지로 등 베스트 멤버로 임했던 반면 한국은 스타 플레이어인 차인천이 부상으로 빠진 상태였고, 이용운이 홀로 분발했지만 결국 츠바사와 휴가의 골로 일본이 우승한다.
  • 캡틴 츠바사 골든 23
    • 한국 U-19 vs 일본 U-19 AFC U-19 챔피언십 결승전 - 1-1 무승부 후 PSO 6-5 일본 승: 츠바사나 휴가 등 주요 캐릭터들은 이미 이 연령대를 지나서 그들에게 해당되는 올림픽 세대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 만큼 이 경기는 딱히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예전에 휴가의 보조 역할이였던 사와다 타케시의 외전 수준. 토너먼트가 한국에서 열렸다는 언급이 나온다. 일본은 종료 직전까지 0-1로 뒤지고 있었으나 그 후 컴백의 묘사도 없이 경기 후 스포츠 신문의 뉴스 스토리로 사와다가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은 후 승부차기에서 6-5로 이겨서 우승했다는 기사가 짧게 나온다.
  • 우리들의 필드
    • 한국 vs 일본 1998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 0-0 무승부: 어느 중립국에서 펼쳐진 리그방식의 최종예선에서[60] 주인공인 다카스기 가즈야의 일본팀이 한국과 2차전에서 붙는다. 한국팀은 유명우라는 홍명보 클론, 장정구라는 최용수 클론과 윤성용이라는 최성용 클론들을 주축으로 일본에 맞서고 일본팀의 중심인 가즈야를 윤성용에게 철저하게 맨마크 시켜서 무너트린다는 게임플랜을 쓴다. 후반전 중반까지 이 작전은 잘 먹혔지만 윤성용이 가즈야의 활동량과 스태미너를 버티지 못하고 토하고 쓰러지는 바람에 이후 한국이 극단적인 수비전술로 전환해서 0-0 무승부를 겨우 사수하는 식으로 끝낸다. 이후 일본팀과 더불어 한국팀도 본선진출에 성공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 휘슬
    • 도쿄 선발팀 vs 서울 선발팀 - 3-3 무승부: 특이하게 국가대표 차원의 경기가 아니라 도쿄와 서울의 대표 선발팀들의 친선 게임으로 펼쳐진다 (경기가 펼쳐진 장소는 서울). 천재적인 플레이메이커형의 미드필더인 이윤경이란 선수의[61] 활약과 홈 팬들의 응원에 힘입은 서울선발팀이 초반에 2-0으로 앞서지만 이 만화의 주인공인 카자마쓰리 쇼를 교체투입한 도쿄 선발팀이 이후 페이스를 찾아가며 2-2 무승부를 만들었고, 종료 직전 재일교포인 카쿠 에이시[62]의 프리킥 골로 3-2로 역전시키는데, 종료휘슬이 울리기 전 뻥축구를 이용한 마지막 역습으로 서울선발팀이 극적으로 무승부를 사수하는데 성공한다. 무승부였지만 일본만화인데도 불구하고 한국팀의 일격을 끝으로 경기가 끝났고 일본팀이 안타깝게 비겼다는 점에서 꽤 특이한 전개였다고 할 수 있다[63]. 여담으로 이 한국 원정 편은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가는 에이시의 고충에 대해서도 나름 진지하게 다루는 듯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꽤 호평을 받았다.[64]
  • 에어리어의 기사
    • 한국 vs 일본 U-22 친선전 - 1-1 무승부: 일본의 홈에서 일본과 한국의 올림픽 대표가 친선전 게임에서 붙는다. 한국은 프랑스의 리그앙에서 뛰고 있고 "아시아의 지단" 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종현이라는[65] 스타 플레이어와 홍정수와 임동국 등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을 앞세워 일본에 도전. 그리고 본작에서 불과 몇주 전 에노시마 고교의 골키퍼로 나왔던 리 아키토시라는[66] 재일교포 선수도 한국팀에 깜짝 뽑히게 된다. 아나운서가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많은 한국이 대부분 국내 고교생인 일본팀에게는 큰 테스트가 된다는 언급도 한다.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박종현이 선제골을 뽑아내지만 일본은 그 후 그를 철저히 마킹하면서 무력화시키고 후반에 동점골을 넣으며 경기는 1-1로 끝난다.
  • 이나즈마 일레븐 애니메이션
    • EP81 FFI 이나즈마 재팬 vs 파이어 드래곤 (한국) - 4-3 이나즈마 재팬 승: 파이어 드래곤 팀에 일단 작품내에서 아무래도 보스캐 들이 소속되다 보니 아시아 최강팀으로 대접받고 있었으며, 준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인 더 바라크다를 4:0으로 격파하고 아시아 지역예선 결승전에 진출해 이나즈마 재팬과 겨룬다. 우승후보까지 오른 팀답게 이나즈마 재팬과 밀고 당기는 박빙의 승부를 펼치지만, 결국 4:3으로 패배, 세계대회행 티켓을 넘겨주게 된다. 여담으로 한국팀의 주요 캐릭터들중 은 아무리 귀화를 했다고 쳐도 한국인이라 보기 매우 힘드니 이걸 진정한 한일전으로 봐야 하는지 매우 애매하다.
    • 갤럭시 2~3화 FFI V2 아시아 예선 신생 이나즈마 재팬 vs 파이어 드래곤(한국) - 2-1 신생 이나즈마 재팬 승:전작의 FFI와는 달리 여성선수들을 출전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차이점이지만,대표팀 결성 때부터 초보자들로 구성되었고 팀원들의 마음도 잘 맞지않아 분위기가 어수선했고 제국학원과의 연습시합에서도 엄청난 점수차로 질정도로 약체신세인 신생 이나즈마 재팬이 수많은 난관을 짊어진채 아시아 예선에서 파이어 드래곤을 첫 상대로 맞이하게 된다. 전반전에서는 파이어 드래곤의 막강한 공세와 수비에 신생 이나즈마 재팬은 제대로 경기에 임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던 중 이충윤이 래피드 파이어로 1점을 따내 파이어 드래곤의 승리로 확정되는듯 했으나, 후반전에서는 텐마의 갓 윈드와 츠루기의 데빌 버스트로 2점을 내면서 신생 이나즈마 재팬의 역전승으로 끝났다. 경기가 끝난 직후 파이어 드래곤의 선수들은...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J드림
    • 한국 vs 일본 1994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4-3 일본 승: 하프라인에서 일본 골대에 골을 넣는 홍명보 클론에다, 한국 골대에서 일본 골대까지 드리블하여 골을 넣는 최용수 클론 등 내용면에서 이 한국팀은 실로 괴물들이 모인 집단이었다만 결국 일본팀의 주인공의 활약으로 한국에게 4:3으로 승리한다. 하지만 하필이면 이게 도하의 비극을 다루는 만화라[67] 현실과 똑같이 일본은 마지막 경기인 이라크전에서 이라크와 비기면서 한국이 월드컵 진출에 성공.

8.2.2. 야구


  • 메이저
    • 한국 vs 일본 WBC 2차리그 2차전 - 1-0 일본 승: 메이저의 한국 독자들 중 많은 이들의 등을 돌리게 한 게임. 이승엽 클론인 이승남과 박찬호 클론인 안종권 등을 거만하고 포수 싸인이나 훔치는 비열한 형편없는 선수들로 묘사했다. 그나마 1-0으로 끝났으니 뭐 그래도 그렇게 심하진 않았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한국이 리그에서 다른 팀들인 도미니카 공화국과 베네수엘라에게 9-0, 6-0으로 지며 단 한 득점도 없이 탈락시킨걸 보면 진짜 악의적으로 묘사됐다고 할 수 밖에 없는듯...그리고 나름 인기가 있던 메이저는 이 사건으로 국내에서 완전히 인기가 붕괴되었다. 현재는 번역본조차도 올라오지 않을 정도.

8.2.3. 권투


  • 내일의 죠
    • 김용비 vs 켄모치 켄 스파링매치 - 김용비의 KO승: 김용비는 야부키 죠와 붙기 전에 자기보다 두 체급 위인 라이트급의 켄모치 켄 선수와 시합을 벌였는데 말그대로 안드로메다 우주관광을 보내버렸다. 본인은 전혀 티나는 상처 하나도 없이 1라운드가 끝나기도 전에 상대를 이미 걸레로 만들었는데, 이때도 조금만 욕심을 부리면 바로 KO로 끝낼 수 있지만 어차피 10라운드 안에 쓰러뜨리면 똑같은 KO라고 여기며 모든 공격 때마다 상대의 반응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냉정하게 시합을 이끄는 무시무시한 포스를 보여줬다.
    • 야부키 죠 vs 김용비 동양타이틀매치 - 야부키 죠의 TKO승: 죠는 자신보다 더 처참한 인생역정을 걸어온 한국전쟁 경험자인 김용비의 시합 전에 한 말들에 의해 위축되어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시합내내 김용비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다. 하지만 두들겨 맞는 도중 자신과의 대결을 위해 스스로의 의지로 금식의 고통을 감수한 리키이시를 생각하며 깨달음을 얻은 죠의 어퍼에 의해 김용비는 링 바깥으로 나가떨어지면서 패배. 사실 김용비의 패배의 더 결정적인 부분은 그의 피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피투성이로 미친듯이 덤비는 죠를 보고 결국 몸이 굳어버려 버텨내지 못한 부분도 있다.

8.2.4. 그 외


  • 고스트 바둑왕
    • 당시 한국 대표중 자타공인 1인자였던 고영하가 작중에서 전형적인 잘난척 악역 최종보스 기믹이었다. 오해 + 마케팅성 발언이기는 했지만, 혼인보 슈사쿠를 비난하면서 히카루의 어그로를 잔뜩 끌어 모았다. 하지만 북두배 최종전에서 주인공인 신도우 히카루가 졌다.

9. 물론, 예외는 있다


의외로 한일전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없는 경우가 있는데, 한 종목에서 실력이나 기량 차이가 너무 나서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경기를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경우가 바로 그 때다. 예를 들어 핸드볼의 경우 대한민국의 남녀 핸드볼은 세계급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 반해 나머지 아시아 팀들은 안습 그 자체. 럭비는 반대로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는 반면, 나머지 아시아 팀들은 샌드백 수준이다. 그리고 쇼트트랙도 한국과 중국이 동계올림픽 금메달 1,2위인 반면에 일본은 아예 메달권에 언급조차도 안된다. 양궁의 경우도 대한민국의 전력이 압도적으로 앞서기 때문에 2012년 올림픽 남자 개인전 결승전이 한일전이 되긴 했지만 이전 준결승에서 중국선수와 맞붙었을때 보다 승부가 싱겁게 나면서 긴장감이 떨어졌었다.
또한 농구에서도 남녀 모두 일본이 한국과 중국의 수준에 넘사벽으로 밀리기 때문에 농구는 한중전이 더 재미있다는 평이 있다. 실제로도 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 한국과 중국은 자주 만나는 편이다. 하지만 2012년 들어 슬슬 이런 양상도 변화하고 있다. 2013년 중국은 남녀농구 모두 몰락하는 대신 대만 남자농구가 고개를 들은 상태에다, 그 동안 여자농구에서 한수 아래라 생각해왔던 일본은 센터 도카시키 라무와 파워포워드 마미야 유카라는 신예들의 등장으로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부터 기존의 아시아 강국들을 밀어내고 있다. 2013년 아시아 여자농구권대회에서도 일본이 20점차 이상으로 승리하고 한국을 두 번 이기며 우승하는 등 대파란을 일으키며 대한민국 여자농구에 경계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2014 FIBA 세계 여자 선수권 대회 터키에선 정작 일본은 13위 한국보다 못한 실력을 보여주며 순위도 바로 밑인 14위였고 되려 중국이 6위까지 진출하며 가장 좋은 성적을 냈기에 중국 여자농구가 살아있음을 보여줬다.게다가 한국조차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위하여 2진급을 보내 비록 일본과 같은 3전전패지만 선전했던 평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아시안 게임에서 여자 한국농구팀이 남자팀과 같이 동반 금메달을 수상했다. 하지만 엄청난 인구에 시장성과 투자를 하는 중국 농구는 부활 가능성이 컸고 2015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중국에게 역전패를 당하며 한국은 6위로 탈락, 2016 올림픽 진출 플레이오프조차 나가지 못했던 반면, 중국이 우승하며 올림픽 본선 진출, 필리핀이 2위, 이란이 3위, 일본은 4위를 차지하며 셋이 플레이오프로 나가 대조를 이뤘다.
그리고 배구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강호에 속하는 것도 맞긴 하고 아시아에서도 상위권이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중국과 일본이 한국보다 더 상위에 있기 때문에[68], 배구는 중일전이 더 재밌다는 평이 많다. 거기에 2000년대 후반부터 여자배구 한정으로 태국까지 끼어든 상태라 중태전 혹은 일태전이 더 재밌다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한국은 이 두 나라를 이길 전력은 아직까진 충분하다. 실제로 2010년대 들어 남자배구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을 3:0 셧아웃으로 발라버리는 경기가 많으며, 여자배구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22연패를 했으나 2012년 들어 일본 여자배구도 세대교체를 겪고 있는 중이라[69] 판도가 바뀔 수 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와서 남자배구 및 농구에서 이란이 아시아 최강급으로 발전해버려 한중일이 이란에게 고전 중이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남자 농구는 극적으로 이란을 제치고 우승했지만 남자배구는 4강전에서 일본에게 패했다. 그리고 그 일본은 이란에게 패하며 이란의 첫 아시안 게임 남자 배구 금메달을 넘겨줘야 했으니. 더불어 한국남자배구는 2000년대와서 이란만 만나면 연패를 기록 중이다. 그나마 2015년 이란을 이기며 설욕했지만... 하지만 2016년 리우데자이네루 올림픽에서 여자배구 한일전을 김연경의 캐리로 이겼다. 자세한 건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참고.
일본이 저런 딜레마를 겪는 종목은 바둑이다. 바둑 역시 인기가 많고 실력도 좋은 편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과 한국의 등쌀에 밀린지 오래다. 그나마 2013년 이마야 유타라는 신성이 나와서 6관왕을 휩쓸면서 점점 고개를 들고 있다.
여자축구는 비인기 종목인데다가 상기 예시들과는 반대로 일본이 너무 강해서 한일전이 재미가 없는 케이스. 최근 들어서 일본의 기량이 급상승하면서 2011 FIFA 여자 월드컵 독일에서는 한국이 예선광탈, 일본이 우승, 2015 FIFA 여자 월드컵 캐나다에서는 한국이 첫 16강 진출, 일본이 결승진출 등 한일간의 실력차가 넘사벽급으로 벌어지면서 주목받지 않는 한일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나마 한국 입장에서 조금 위로가 될 만한게 2015년 여자 동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 여자 국가대표팀이 일본 여자 국가대표팀을 2:1로 누르는 이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변이라 하기도 좀 그런게 일본여자대표팀은 바로 직전에 월드컵 우승에 취해서 이 대회는 주전 다 빼버리고 나온 대회라서 일본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냥 한국이 오랜만에 정신승리는 할 수 있는 자양분은 될 듯~ 일본 내에서는 물론 2011년 우승을 통해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져있었던 터라[70] 한국 남자 축구의 오만 쇼크 이상급의 굴욕 분위기일 듯 했는데 생각보단 조용했다. 어차피 이미 일본은 직전 월드컵 우승에 바로 전 대회서 준우승으로 2회 연속 결승에 올라가 잘했기 때문에 일본 축구협회에서는 한중일 이벤트성에 지나지 않는 동아시아대회는 고생한 1진급 핵심 선수들 좀 쉬게 해주고 이번엔 그냥 2진급들에게 기회주자며 월드컵 핵심 주전 멤버들을 대거 제외한 2진 3진급으로 꾸렸다. 따라서 일본 내에서도 어느정도는 성적은 체념한지라 별 반응 없었고(실제로 일본은 2015년 동아시아 대회 여자부에선 꼴찌 차지) 무관심의 대한민국에서는 그냥 "한일전 이겼네, 아싸" 정도의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여자축구가 얼마나 비인기종목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71]
그 이외에도 E-스포츠도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는데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스타크래프트 같은 AOS나 RTS 게임에서는 그야말로 한국 vs 전 세계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지만[72] 일본 같은 경우에는 애시당초 E스포츠 리그가 활성화되지 않아 그야말로 천지 차이. 2018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한일전이 성사되며 어느 정도 관심을 받았으나 한국의 압도적인 기량으로 일본은 단 1점도 따내지 못한 채 완패했다. 아케이드 대회라도 DanceDanceRevolution은 일본이 약세.

10. 관련 문서


[1] 21세기에 무력으로 싸운다면 그건 진짜로 한일 전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전쟁을 하면 무력의 우위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둘 다 미국에게 털린다.[2] 그래서 2013년,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한국이 광탈하자 일본 쪽에서 내심 아쉬워했다고 한다. TV로 생방송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한일전의 광고단가도 타 국가대항전 때보다 높았기 때문이라고. 경기 흥행까지도 거론될 정도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3] 전국적으로 한국은 6개, 일본은 7개.[4] 다만 FIFA 기준의 공식 명칭은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 즉 한국-일본 월드컵이 맞고, 이는 일본 내에서 일본어로 표기할 때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2002 한일 월드컵 월드컵 문서에도 나와있듯, 결승전을 일본이 갖는 대신 명칭에서는 한국이 앞에 오는 것으로 공식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2002년 월드컵은 일본에서도 무조건 한국을 앞에 표기하여야 하는 것이다. 다만 FIFA가 순서를 바꾸지 말 것을 일본에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핑계를 대면서 암암리에 일한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5] 왼쪽은 박지성, 오른쪽은 혼다 케이스케. 혼다 케이스케가 한국에 우호적이고 박지성도 일본에 우호적이나, 그림에도 나와 있듯이 '친선'과 '대혈투'가 공존하는 게 한일전이라 어깨동무를 하면서도 서로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패는 장면으로 묘사했다.[6] 이는 일본 제국의 강점하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역사적 상징이기도 하다.[7] 이는 독불관계영독관계도 해당된다.[8] 대표적 사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임창용.[9] 다만 반대로 승리의 주역이 된 선수는 그 전까지 부진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해도 한동안 까방권이 주어지고 평가가 반전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2012년 카디프 대첩에서 원더골을 넣은 박주영은 그 전까지 와일드카드 값을 못한다고 대차게 까이다 순식간에 여론이 반전되었고, 2019년 동아시안컵 한일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넣은 황인범은 그 전까지 FC 코리아들에게 타켓이 되어 신명나게 까이다 이 골 하나로 여론이 좋게 바뀌었다.[10] 그 5승 1무에는 이민성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고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스포츠의 일본 원정 사상 최고의 유쾌상쾌통쾌한 순간으로 첫손에 꼽히는 도쿄 대첩이 포함되어 있다.[11] 보통 한일전에서 패배한 경우, 여론이 크게 악화되면서 조기 입대가 불가피해진다. 참고로 2018 아시안게임 축구에 출전한 김학범호는 19명이 미필이었고 1명이 경찰로 복무 중이었다. 만약 결승전(한일전)에서 졌다면 미필 19명은 조기 입대를, 복무 중 1명은 지속 복무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12] 남자 선수단 한정. 한일전에서 졌거나 나이가 초과된 경우를 제외하면 기회를 몇 번 더 주는 편이다.[13] 물론 절대로 해선 안될 말이지만 그만큼 국가적 감정이 심각했던 시기였다.[14] 왜 홈 & 어웨이가 아닌 두 경기 모두 어웨이인 일본에서 치렀냐면 역시 이승만이 "일본 놈들을 대한민국 땅에 발을 들이게 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 때문이라기보단 솔직히 조금 쫄렸는데 일본이 안방에서 승리할 경우,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이마저도 일본한테 질까봐 출전 자체를 포기하려고 했는데 당시 대한체육회장 이기붕이 이길 수 있다고 간곡히 설득했고 감독 이유형이 먼저 진다면 안 돌아오고 차라리 현해탄에 빠져 죽겠다고 간청하여 겨우 출전할 수 있었다(...). 6.25 전쟁 이후 북한과 맞상대는 극력 피하려 했던 모습과 비슷하다.[15] 이 시절의 일본이 어느 정도였냐면, 1980년까지 그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래도 1980년대 이후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2000년대 이후로는 중일전 무패를 기록하고 있지만 과거에 발린 기록 때문에 상대전적은 10:12로 여전히 열세다.[16] J리그 명문 구단에서 활약하는 한국 축구선수들도 과거부터 많았다.[17] 한국 내에선 그 어떤 스포츠도 감히 비교할수 없는 인기를 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는 달리 일본은 국대 축구조차 야구를 압도적으로 누르지 못할 정도로 야구의 인기는 어마어마하다.[18] 평균 신장 순위가 월드컵 본선 참가 32개국중 5위였다.[19] 물론 둘 다 나오는 인지도가 있는 게임이라면 한국 내 인기도가 척도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포트나이트가 있는데, 일본은 나름 자리를 잡았지만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PC방 순위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궤멸적이다.[20] 철권의 경우 아케이드 위주일 당시에는 한국이 압도적인 원탑이었지만 이후 철권7 부터 가정용의 발매로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일본을 포함한 타국 유저들의 실력이 가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그래도 전반적인 대회성적은 한국이 더 높았지만 2019년 Tekken World Tour 파이널 우승을 일본에게 넘겨주고 2020년 EVO JAPAN 에서는 8강에 일본인이 6명이거나 2019년 초와 2020년 초에 열린 대규모 한일전에서 두 번 다 일본에게 완패하는 등 날이 갈수록 빈말로라도 앞선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21] 이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아키라 꼬마' 신의욱과 '이게라우' 조학동이다. 두 사람은 대회가 끝나고 치바, 시부야 등 일본의 대도시 게임센터를 돌면서 일본의 버파러들을 상대했는데, 신의욱까지는 어찌어찌 꺾었어도 조학동한테는 여지없이 무너졌다고 한다. 당시 신의욱과 조학동 두 사람은 무려 50연승을 넘게 했는데, 시부야에서는 상대방의 주캐랑 똑같은 캐릭터로 플레이하는 미러전만으로 50연승을 이루어내는 미친 짓을 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 버파 선수들은 한국 현지에서 복수 겸 배워가겠다는 의미로 한국 오락실로 신의욱과 조학동을 찾아왔으나, 정작 두 사람은 만나지도 못하고 오락실에 있는 지나가던 고등학생들한테 박살이 났다고...[22] 레밀리아 우승[23] FEFEMZ*우승[24] NICHAN.T 우승[25] CORBY.QS, G.G.D.QS, SHION-Y, FEFEMZ*, 그리고 우승자인 A.K.R-Y[26] FEFEMZ* 우승[27] NICHAN.T가 2연패를 달성했다.[28] 오락실 게임에서 과거에 열세였던 이유는 일단 유저수 자체나 지명도가 너무 낮고 정발이 안된 기기가 많았는데 그 문제가 해결되면서 정발된 지 꽤 지난 기체 종목에서 많은 실력자가 양산되는 상황이다.[29] 참고로 일본의 오버워치의 인기는 e스포츠 선수권 오사카 예선에서 한 팀밖에 참가를 안해서 그대로 그 팀이 우승하는 웃픈 상황이 연출될 정도로 참담하다. 게임보다는 2차 창작에서의 인기가 훨씬 더 많을 정도다.[30] 피온3로 지역예선을 하고 최종예선에 오르는 방식이 추가되었음에도 최종예선에서 탈락하였다.[31] 요약하자면, 한일 친선경기때 붉은악마(즉 한국) 에서 만든 김연아, 박지성 얼굴 가면을 일본측에서 모욕하기 위해 만든 것 이라 날조하는 기레기들을 대차게 까는 내용이다.[32] 당시 고다이라의 손에 들려있던 건 무려 태극기. 본인이 우승했음에도 이상화를 배려해주기 위해 일장기를 두른 채로 관중석에서 던져준 태극기를 본인이 직접 회수해 와서 함께 들어줬다.[33] 한일전뿐만이 아니라 프로 의식을 지닌 선수라면 누구든 친분보다는 자신에게 돈을 지불한 구단과 그 구단을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 싸운다. 국가대표전은 물론 개인의 출세를 위한 바탕이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라에 대한 책임이니 사명이니 하는 것들이 들어간다. 사실 한국과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 터키랑 그리스랑 사이가 무지 나쁘지만 유럽 여러 리그에서 같은 팀에서 각자 잘 뛴다든지 종종 아랍 선수들이나 이스라엘 유대인 선수들이 한팀에서 뛸때도 우선은 같은 동료임을 먼저 생각하며 뛰기도 한다. 전쟁도 여러번 벌이며 원수지간인 인도와 파키스탄도 크리켓 리그에서 같이 사이좋게 같은 팀 동료로 경기에 임하듯이 이런 건 흔한 모습이다. 이런 곳에서 서로 싸워봐야 그 팀에서 둘 다 비난과 같이 징계대상일 뿐이다.[34]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이 대결이 어쩌면 열릴 수도 있었다. 그것도 결승전으로. 하지만 브라질의 4강전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면서... 그 뒤 결승에 진출한 아르헨티나의 국민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자 브라질 국민들은 결승전에서 독일을 응원했다고 한다. 숙적인 나라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 트로피를 드는것이 어지간히도 싫었던 모양. 그리고 브라질 국민들의 바람대로(?) 독일은 혈투 끝에 마리오 괴체의 연장전 결승골로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브라질이 자기들을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박살낸 걸 잊은 건 아닌지라 카잔의 기적 당시 독일에게 장례식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엄청 좋아했다. 그저 당시에는 아르헨티나가 더 꼴보기 싫었던 것뿐. 그 정도로 사이가 험악하다.[35] 페루 지역에서 일어난 잉카 제국에게 정복된 뒤에도 피지배 원주민들이 잉카의 지배에서 독립하려고 여러차례 반란을 일으켰다.[36] 실제로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는 스페인 식민지배에서 독립 이후에 대콜롬비아 공화국으로 과거에 단일국가를 이룬 적이 있었다.[37] 이프니, 타르파야 등 일부 남부 지역과 리프산맥 일대 등 북부 지역 한정.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들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38] 이란은 아랍이 아닌 아리안계 민족이다.[39] 인도네시아네덜란드의 식민지였고, 말레이시아영국의 식민지였다.[40] 서북부 지역 한정. 수도 부쿠레슈티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오스만 제국 시기 터키 지배하에 있었다.[41] 세르비아, 브라질, 이탈리아[42] 배구회관 건물 매입으로 인한 대출금 상환으로 애초에 배구협회 살림이 빠듯했고, NH농협금융지주(KOVO V-리그 공식후원사)의 지원금 2억원 중 출정식 연회에만 8,000만원을 써버리고 남은 1억 2천만원으로 빠듯하게 올림픽을 치렀다고 한다. 감독, 코치, 전력분석관 단 세 명만 코칭스탭으로 참여하여 대표팀 운영은 물론 행정적 업무도 병행한 일과 180cm 넘는 선수들이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타고 런던에 갔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진다. 거기에 배구협회장인 모 정당 대통령 경선후보의 입방정은 덤.[43] 국가대표 선수가 이코노미석이라는 것은 정말 말도 같지도 않은 것이다. 보통 대한민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국가대표선수라 하면 기본적으로 퍼스트 클래스 내지는 최소한 비즈니스 클래스로 비행기를 타게 되어 있다. 일례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디팬딩 챔피언 이탈리아와 지난 대회 준우승국인 프랑스가 조별리그에서 조 꼴찌로 나란히 탈락하자 그것 때문에 받은 벌이 비즈니스석에 탑승해서 귀국하는 것이였다.[44] 그나마 2001년 아시안컵에서 1:1로 비기면서 연패를 끊음.[45] 특별귀화 선수다.[46] 이전에 동계 패럴림픽 휠체어 컬링에 참가한 적은 있다.[47] 이는 컬링 믹스 더블에서 중국전과 오버랩 된다. 우리나라의 연장전 마지막 해머를 던질 차례인데 중국이 1번을 먹고 있던 상황이었다. 라인도 충분히 있는 상황이기에 1번만 우리나라 해머가 차지하면 그대로 게임이 끝나는 상화이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경기를 중국에 내줬다.[48] 1990년 아시안 게임 동메달 획득[49] 중국과는 1점 차로 승리했다.[50] 전반 16분에 마사요시에게 동점을 허용한 뒤 전반 21분에 키무라 요시히로에게 역전골을 내주고, 전반 30분에 나동태의 53미터 프리킥 슛을 골키퍼 키쿠치 카와모리가 간신히 막아낸 걸 전도현이 동점골을 넣었다.[51] 한국은 세번째 키커인 강찬과 네번째 키커인 이한얼이, 일본은 두번째 키커인 히사이시와 세번째 키커인 가토가 실축.[52] 사실 북한이 그들의 최고 선수인 박영철만 남한팀에 보낸 정도니 단일팀이라 하기에도 뭐하다.[53] 동태가 청소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 끝난 뒤 아버지와의 특훈을 통해 완성한 슛으로 그라운드에 낮게 깔리면서 초고속으로 날아가는 슛이다.[54] 이때 마사요시는 자신의 슛이 골로 연결되지 않자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대로 주저앉아 머리를 박고 그라운드에 쓰러진다. 물론 만회골을 넣기 전에 표백제의 바이시클 킥을 육탄 방어하다가 이마가 깨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55] 여담으로 이 만화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갓 시작할 쯤에 완결이 되었는데(다만 마지막 권 발매는 월드컵 이후였다.), 실제로 한국이 간발의 차이로 월드컵 결승 진출을 놓치며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고 만화에서처럼 한국이 진짜로 이탈리아를 골든골로 이겼다는 점을 보면 꽤 흠좀무 하다.[56] 이게 왜 중요하냐면 훗날 김호천이 네덜란드로 귀화하는데 그가 유일하게 한국 국가대표로 뛴 이 매치가 A매치로 인정되지 않은 덕에 그가 내덜란드 대표로 뛰는데 지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57] 일본 골키퍼의 코이즈미의 할아버지는 아예 대놓고 혐한이였고 코이즈미도 경기 후 반성을 하긴 하지만 그 전 까지는 조센징이라고 욕도 하며 한국을 도발하는 등 대놓고 어그로를 끌었다.[58] 이때 코이즈미는 호야의 드리블에 이은 골을 보고 "이런 초 그레이트한 드리블은 처음이다...!"라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이후 서로의 파인 플레이에 썸즈 업을 하는 건 덤이다.[59] 참고로 가모 감독은 수비수, 미카미 감독은 골키퍼, 카타기리는 공격수였다.[60] 이전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쓰였던 방식이다. 작가가 새로운 최종예선 방식이 발표되기 전에 이 만화를 그린듯 하다.[61] 일본 유학의 경험이 있었고 도쿄선발팀에 카쿠 에이시의 사촌.[62] 한국명 곽영사.[63] 작가가 이에 대해서 일본 내 혐한초딩 독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는지 애니메이션에서의 전개는 이와 반대로 서울팀이 4-3으로 앞서가다 도쿄팀이 종료 직전 극적인 골로 4-4 무승부를 거두는 식으로 바뀐다.[64] 하지만 일본 캐릭터들만 미형으로 그리고, 이윤경을 제외한 서울선발팀의 캐릭터들을 너무 험상궂게 그렸다고 혹평하는 이들도 있다.[65] 설정 상 박주영을 베이스로 한 선수 같다.[66] 한국명 이추준.[67]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도 맞대결에서 일본이 1-0으로 한국을 꺾었다.[68] 거기다가 심판이 한국인이 배정된다면 막장으로 흘러간다.[69] 세터 다케시타 요시에가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은퇴한 것을 비롯, 중앙에서 한국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센터 아라키 에리카는 출산으로 한동안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다.[70] 국대팀 전체가 일본의 국민훈장에 해당하는 국민영예상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71] 남자 축구로 입장을 바꿔서 대한민국 국대가 공식전에서 독일을 격파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생각해보자.[72] 그나마 리그 오브 레전드는 중국이 비빌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