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성
1. 개별 문서가 있는 이윤성
- 전 기자, 정치인 이윤성(1944)
- 배우 이윤성(배우)
- 시티헌터(드라마)의 이윤성(시티헌터(드라마))
- 축구선수 이윤성(축구선수)
2. 조선시대 인물
李潤成
(1719 ~ ?)
조선의 영조, 정조 때의 인물로 자는 집경(集卿).
조선 후기의 문신인 서명빈의 비장(裨將)을 지낸 적이 있으며, 1736년에는 박문수의 천거로 남행선전관(南行宣傳官)을 지냈다가 이후 경주영장(慶州營將)을 지냈다.
1753년에는 윤태연과 함께 무승지(武承旨)로 발탁할 인물로 거론되었으며, 영조 31년인 1755년에 남병사를 지내다가 최진해와 교대하여 충청 병사에 임명되었다. 1758년에는 황해 병사에 임명되었다가 제주 목사로 임명되어 호마(胡馬)의 방목에 힘쓰다가 다음 해에는 통제사로 임명되지만 1760년에 통제사에서 파직되고 평안 병사에 임명되었다가 1763년에는 북병사로 임명된다.
1765년에는 금위대장에 임명되었지만 스스로의 행동을 조심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해 다음 해에 금위대장에서 파면되었다가 다시 임명되지만 1767년에 구선행과 교체되면서 금위대장에서 물러난다. 1769년에 양주 목사에 임명되었다가 파직되고 이후 금위대장에 임명되지만 1774년에 다른 사람에게 빚을 요구하려고 여러 사람을 잡아가둔 것 때문에 금위대장에서 파면되었다가 자헌대부로 임명된다.
1777년에 이찬을 추대하는 반정을 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찬의 처족이라는 이유로 연류되어 절도로 유배되었다가 1782년에 사면되었으며, 1784년에는 정조의 명에 따라 직첩을 환급했다. 사후 병조판서로 추증되었다고 하며, 1786년에 이윤성이 지은 죄가 많다면서 집안에서 편안히 죽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분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1784년에서 1786년 사이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2.1. 창작물에서
야뇌 백동수에서 등장. 평안병마절도사로 실력은 임수옹과 동급 정도로 느껴진다고 백동수가 생각했다. 실제로도 백동수를 가볍게 제압했고 백동수가 사도세자의 행방을 묻자 검으로 질문을 해보라고 백동수와 싸우지만 실전이었으면 백동수는 여러번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말하며 여러번 제압했다.
명나라에서 만들어져서 조선 어영청에서 발전시킨 제독검법의 달인으로 이후에는 함경도의 북병사로 전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