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 펄만

 

'''이작 펄만의 주요 수훈 및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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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작 펄만
이름(영문)
Itzhak Perlman
출생지
텔아비브, 영국 위임 통치령 팔레스타인
생몰년도
1945년 8월 31일 ~
1. 개요
2. 연주 스타일

'''때로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을 갖고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예술가가 하는 일입니다.'''


1. 개요


이스라엘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4살때 소아마비에 걸려 몸이 불편하게 되었다. 항상 앉아서 연주를 하는 이유가 그 때문. 그리고 유난히 손이 큰 것도 그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음악원에서 리브카 골트가르트에게 처음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다. 이후 10살에 첫 리사이틀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하여 이반 갈라미안과 도로시 딜레이를 사사한다. 이후 1963년 카네기홀에서 데뷔하였고 티비쇼에도 몇번 출연하여 인지도를 얻게된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명이다.
바이올린은 1714년제 스트라디바리우스 'soil'을 사용한다. 이 악기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최고 황금기에 만들어진 악기이며, 예후디 메뉴인이 사용했던 악기이기도 하다. 1986년에 메뉴힌이 그에게 직접 악기를 물려주었다고 한다. 그 외 1743년에 제작된 과르네리 델 제수도 사용한다. 캐논과 동년도에 제작된 만큼 이것도 전성기 악기라 할 수 있다.

2. 연주 스타일


손이 다른 연주자에 비해 매우 크기 때문에 포지션 이동을 적게 하고도 하이포지션 음을 소화해내고, 4현 모두를 무리없이 짚을수 있기에 축이 안정된 상태에서 다른 연주자에게서 볼 수 없는 특유의 부드러운 비브라토를 구사한다. 하이포지션에서도 핑거 비브라토가 아닌 낭만주의 비브라토를 구사할수 있다는건 커다란 메리트다. 하지만 앉아서 연주를 한다는 한계와, 손이 매우 큰 것이 왼손의 세밀한 부분에서 불리한게 있을수밖에 없어서[1] 기술적인 곡들 보다는 바이올린 협주곡 1번(브루흐),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과 같은 낭만주의 곡들에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며 연주자 본인도 선호하는 편이다.
현존하는 바이올린 최고 대가중 한 명이다. 왼손 고난도 테크닉 구사에서 약간 떨어진다는 것도 말이 그렇지[2] 이작 펄만은 엄연히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일류 연주자다. 비에냐프스키 카프리스 연주를 들어보자.
연주 리사이틀에서는 자유 연주를 선호하는 편인데, 최근 한국 예술의 전당 방문에서도 (2012년, 2015, 2017년) 인터미션 이후 자유 연주를 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음악이나 비에니아프스키 카프리스 등의 소품들이나 크라이슬러의 소품들의 연주를 선호한다. 말그대로 자유 연주인지라 한 곡 끝나면 피아니스트와 상의해서 다음 곡을 정하고 바로 연주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덕분에 2부 시작할 때 페이지터너가 수십개의 악보 꾸러미를 낑낑대며 들고 나오는 것, 반주자가 악보를 못찾아서 헤매는 바람에 연주가 지체되기도 하는 것 등에서 소소한 재미가 있다.
뉴욕 링컨센터 초청 연주회에서 한 줄이 끊어지자 남은 3개의 현만으로 즉흥적으로 편곡/재작곡을하여 연주를 했다는 일화가 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고 본인이 밝혔다. #

[1] 사실 손이 저정도로 큰건 핑거링에 정확도가 떨어지고, 짧은 간격의 운지를 할 수 없으니 유리한 점이 아닌 오히려 불리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어릴적 소아마비를 앓아 거동이 불편하니 이건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2] 말만 그렇다는 거지 이작 펄만의 왼손 테크닉도 세계 최고라고 평가될 만큼 놀라움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