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

 




[image]
2011년까지 사용한 로고
[image]
2011년부터 쓰는 로고
'''Chrysler '''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
[image]
''' 정식 명칭 '''
Chrysler Automobiles
''' 한국어 명칭 '''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
''' 설립일 '''
1925년
''' 본사 소재지 '''
[image] 미국
''' 핵심 인물 '''
존 엘칸(회장)
마이크 맨리(CEO)[1]
''' 기업구분 '''
대기업
''' 업종 '''
자동차 제조업
1. 개요
2. 연혁
3. 상세
4. 대한민국과의 관계
5. 생산 차량
6. 단종 차량
7. 묘한 튜닝문화
8. 그밖에
9. 둘러보기

[clearfix]
공식 사이트

'''"미국에서 만듭니다. (America's Import.)"'''

- 현재 브랜드 슬로건.


1. 개요


미국자동차 회사. 한때는 포드 모터 컴퍼니, GM과 함께 미국 자동차 업계 삼대장이었다. 이 삼대장이 손잡고 영화 터커로 알려진 프레스턴 토머스 터커(1903~1956)의 터커 모터스[2]를 뭉개 버린 흑역사도 존재한다.
2009년부터 서서히 피아트에게 지분이 잠식되었고, 2014년 공식적으로 인수되어 FCA(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 산하의 브랜드로 남아있다.
같은 계열의 브랜드로 닷지, 지프, SRT[3] 등이 있다. 플리머스, 드 소토(De Soto), 이글, 임페리얼 브랜드도 있었지만 폐기되었으며, 지프AMC로부터 인수했다. 현재는 닷지, 크라이슬러, 지프의 3사 형태로 밀고 나가고 있는 중. 그중 크라이슬러는 GM뷰익과 비슷한 준 프리미엄 브랜드이자 미니밴 전문 브랜드로 밀고 있으며, 각각 닷지는 퍼포먼스카 및 기타 대중차 브랜드, 지프는 SUV 및 오프로드 전문 브랜드로 구성하고 있다.
한때 오각별 마크가 유명했고 1990년대 초까지 크라이슬러는 물론 닷지, 플리머스에서까지 공통으로 써 왔으나 지금은 쓰지 않는다. 1993년부터는 1930년대 엠블럼을 되살린 "메달리온" 엠블럼이, 그리고 다임러크라이슬러 시절부터는 여기에 날개를 추가한 날개모양 로고가 도입되었는데, 당시에는 모회사 입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삼각별과 혼동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그리 되었다고 한다. 미국 정부의 금융구제를 받던 시절에 잠시 오각별 마크를 부활시켰지만, 피아트 산하가 된 뒤로 다시 날개모양 로고를 쓰고 있다.

2. 연혁


캐나다계 미국인 월터 크라이슬러(1875~1940)가 1925년에 설립했다. 설립 초창기에는 가격 대비 첨단기술을 많이 적용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포지셔닝했으며, 설립 10주년 기념으로 출시한 신차 에어플로우가 크라이슬러 자체 브랜드의 본 의도를 보여준 절정이었다.#
1950년대에는 헤미 엔진과 포워드 룩 디자인, 대량생산 모노코크 바디처럼 혁신적인 이미지[4]를 심어 잘 나갔으며 1960년대에도 머슬카 시장에서 흥행했지만 1960년대 후반 들어 마케팅 전략 실패로 판매 부진을 겪으며 고전하였다.[5]
1976년, 포드에서 명성을 쌓다가 헨리 포드 주니어와의 갈등으로 해임된 리 아이아코카가 사장으로 영입되었다. 아이아코카는 먼저 35명에 달하던 부사장급 임원 중 33명을 자르고 그가 일했던 포드 출신을 포함한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하였다. 더불어 노동조합을 설득하여 2번이나 임금 삭감을 이끌어 냈으며, 1980년 한 해만 1만 5천 명의 정규직원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5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 절감을 이루었다. 그리고 워싱턴 D.C.에 가서 상원, 하원 청문회에 불려 다니며 노력한 결과, 연방 정부로부터 15억 달러 규모의 융자금 보증을 얻어 냈다.
이런 노력 끝에 1982년 여름, 부채 15억 달러를 일시에 갚고 7억 달러의 순이익을 남기는 신화를 일궈 냈다. 5% 삭감했던 노동자 연봉도 원래 수준으로 올려 놓았고 해고했던 직원들의 상당수도 다시 불러들였다. 이 시절 나온 대표적인 작품이 미니밴인 닷지 캐러밴이다.[6][7][8] 1980년대 중후반에는 람보르기니AMC/지프를 인수할 정도로 정상 궤도를 달릴 수 있었고, 1992년 아이아코카가 은퇴한 뒤에는 로버트 이튼 회장[9]밥 루츠 등의 경영진들이 회사를 이끌면서 캡포워드 스타일과 탁월한 성능을 지닌 신차들, 그리고 AMC 인수 이후 자리잡은 유연한 기업문화와 신차개발 과정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시 크라이슬러는 미국에서 수익성이 가장 좋은 축이면서도 눈에 띄는 제품들을 내놓으면서 엄청난 흥행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고질적인 품질 문제로 무상수리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1998년 이튼 회장의 주도 하에 품질 문제를 해결하고자 메르세데스-벤츠로 유명한 다임러 그룹과 합병해서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되었다.[10][11] 애초 동등한 합병을 모토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으나, 어느 새 다임러가 점령군이 되어 독일 문화를 마구 주입한 결과 융화 실패[12][13]답이 없는 상태가 되자 결국 다임러에서 크라이슬러를 뱉어내기로 결정, 2007년에는 서버러스 캐피탈 매니지먼트라는 사모 펀드 업체에 팔렸다가[14]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부의 금융구제를 받았고 2011년에는 이탈리아 최대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에 상당수 지분을 매각했다. 2014년 1월에 피아트 계열로 완전히 편입됐다.
2021년 1월, 스텔란티스가 성립되자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존속이 확정되었다. 닷지, 램과 함께 미국 브랜드 3종으로 분류되었으며,[15] 크라이슬러 브랜드는 닷지를 담당하고 있는 팀 쿠니스키즈가 수장 자리를 같이 담당하게 된다. 장기적인 브랜드 전략과 정체성이 불투명한 탓에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존속 가능성이 미국의 크라이슬러 계열사 딜러점 내에서 화제가 되자, 카를로스 타바레스는 크라이슬러 브랜드를 푸조, 피아트와 함께 스텔란티스의 대들보격 브랜드이자 한때 미국에서 가장 최고의 기술, 미국 기술의 상징이었던 브랜드임을 잊지 않았다며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존속 및 개편을 공언했다.#

3. 상세


크라이슬러 자체의 브랜드로는 1970년대부터 닷지에는 퍼포먼스를, 크라이슬러에는 럭셔리를 기반하는 브랜드 구축이 계속되었다.[16] 따라서 같은 플랫폼의 차종이더라도 닷지와 달리 고급 세단형 이미지가 부각된 차량을 생산하긴 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리 효과가 없었다. 고급 브랜드[17]였던 크라이슬러가 브랜드 정체성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해 시간이 지나면서 고급 이미지가 희석되는 등, 그 브랜드 자체를 운용하는 능력이 문제가 있다 보니 포드링컨이나 GM캐딜락 등에 속절없이 밀렸다는 것. 믿기 힘들겠지만, 크라이슬러 자체 브랜드는 이 브랜드들과 경쟁을 하려는 계획이었으나 결론적으로 별로 끝이 안 좋았다. 1960년에 중산층 중심의 드 소토 브랜드가 사라지자 뉴포트를 도입해 크라이슬러로 대체했으며, 이전에는 임페리얼이 크라이슬러 윗급으로 있었으나 1975년부터 크라이슬러로 흡수되었다. 또한 1960년대에도 한동안 대형차만 고집하다가 석유파동에 대응하고자 중형차인 코르도바를 시작으로 중~소형 라인업을 추가하고 1977년부터는 코르도바의 하위급인 레 바론이 도입되었다. 1980년대에는 레 바론이 K-바디 플랫폼을 토대로 다운사이징을 거쳤고, 레 바론만이 아닌 뉴요커, 임페리얼도 전륜구동 K-바디 기반으로 전환해 대폭 다운사이징을 거쳤다. 이후 미국에서는 세브링, 시러스 등의 중형차 라인이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가장 낮은 마지노선이었으나, 다임러크라이슬러로 넘어가면서 PT 크루저, 보이저같은 플리머스 계열 차들까지 라인업으로 편입되었다. 또한 원가절감 문제도 다임러크라이슬러 때 심해져서 "고급" 이미지가 거의 다 사라졌다.
전반적으로 미국적인 차를 많이 만들다 보니 닷지 쪽에서는 미국차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컬럼식 자동변속기를 달고 나왔지만, 크라이슬러의 200과 300처럼 재규어-랜드로버에서 많이 이용 중인 로타리식 기어레버에 맛을 들인 이후에는 닷지도 아예 컬럼식을 버리고 센터페시아에다가 로타리식 자동변속기를 달아 놨다(...). 2017년 현재로서는 CES에 컨셉트카를 출품하거나 BMW-인텔, 구글 웨이모 등과 협력해서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을 위한 제휴관계를 맺는 등, 자율주행자동차 기술 및 미니밴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18] 이 때문인지 웨이모와 계약하여 퍼시피카 미니밴을 꾸준히 자율주행차 베이스로 납품하고 있으며, 2017년의 포털 컨셉트카와 2020년의 에어플로우 비전 컨셉트카도 자율주행과 인테리어 패키징 중심의 컨셉트로서 CES에 출춤했다.
포드, GM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럽 쪽의 기반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알다시피 유럽 포드오펠(영국에서는 복스홀)이 각각 버티고 있었으나 그 중 오펠/복스홀은 GMPSA 그룹에 매각했다.(대신 망한 사브는 제외하자. 쉐보레대우 브랜드를 대체하여 10여년간 있었으나 2013년에 철수 결정.) 이들에 비하면 크라이슬러는 안습. 영국의 루츠 그룹과 프랑스 생카 등을 인수해 차량을 개발하고, 스페인에서 현지 생산을 진행하는 등으로 유럽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본사의 경영 악화로 무산되었고, 유럽 지사를 푸조에 매각했다. 그 당시 크라이슬러는 유럽 시장용 미니밴을 유럽의 회사 마트라에다가 개발 및 생산을 위탁한 후 크라이슬러의 로고를 붙여서 판매하려고 했는데, 유럽 진출이 무산되어 유럽 지부가 매각된 후 그 미니밴은 르노에 넘어가서 현재의 르노 에스파스가 되었다. 그리고 한때 벤츠와 손잡고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되었다가, 벤츠가 이 회사는 해로운 회사같다 싶어서 2007년 사모 펀드인 서베러스에다가 크라이슬러를 갖다 버렸다.[19]
그 덕에 크라이슬러의 컨버터블인 크로스파이어SLK후륜구동 플랫폼을 이용했으며, 닷지 스프린터는 아예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배지 엔지니어링도 아니고 뱃지 체인징 수준으로 출시되었다. 피아트가 인수한 후에는 크라이슬러 및 닷지의 차량을 다른 브랜드로 출시하기도 했다. 300, 그랜드 보이저, 200의 경우 란치아 브랜드로 팔았다. 닷지 저니는 피아트 프리몬트와 같은 형태로, 입실론 플랫폼의 오펠 인시그니아의 경우 뷰익 리갈로 팔리는 중이다.
커먼레일 디젤 엔진이 달린 승용 모델에는 산하 브랜드에 상관없이 CRD라고 붙는다. 주로 대한민국이나 유럽에 팔기 위해 수출용에 달리는 커먼레일 디젤 엔진은 메르세데스-벤츠제를 쓰다가, 벤츠와 갈라선 이후에는 한때 폭스바겐TDI 유닛을 이용했다. 크라이슬러 세브링 디젤, 닷지 캘리버 디젤(대한민국에는 미출시)이 폭스바겐의 2.0리터 TDI 엔진을 이용했다. 단, 자동변속기는 주로 게트락의 유닛과 맞물렸다. 현재는 4기통은 피아트, 6기통은 VM모토리 유닛을 쓴다.
[image]
품질이 영 좋지 않기로 유명했었는데다가 하필 유럽에서 제일 품질이 멍청하기로 유명한 피아트에 인수되면서 미국에서 신뢰도, 품질 평가에서 늘 바닥을 친다. 이번 컨슈머 리포트 결과에서 굴욕을 맛보고 품질관리 부사장을 해고했다.
2018년부터는 닷지 브랜드와 함께 남아프리카 공화국, 일본 등에서 파는 우핸들 사양[20]을 단종시킬 예정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시장에서는 2018년 초에 판매를 중단하며, 피아트, 지프, 알파로메오 차종들을 대신 투입하기로 방향이 잡혔다. 반대로 호주 시장에서는 2018년 이후에도 판매 계획이 있다는 공식 발언이 있어서 변수가 남아 있다. [21][22]
2018년 5월, 크라이슬러 브랜드가 FCA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루머가 있었지만, 2018년 6월 초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FCA 회장은 크라이슬러와 닷지 브랜드를 계속해서 이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23] [24][25] 2018년 12월의 어느 이메일에서는 크라이슬러가 미니밴과 크로스오버, SUV에 집중하며 300을 단종시키되 2023년까지 총 5종의 라인업을 투입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26]
2019년 2월, J.D. 파워에서는 크라이슬러 브랜드를 최근 3년 간 내구품질이 가장 크게 개선된 브랜드로 선정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품질 및 신뢰도가 나아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27] 그리고 2019년 말에는 닷지가 미국 브랜드 중 유일하게 컨슈머 리포트의 2019년 신뢰도조사 10위권에 진입했다. 단 지프나 알파로메오 등이 신뢰도 조사에서 최하위권에 있고, 닷지 자체도 챌린저와 그랜드 캐러밴같은 사골 라인업들이 점수 개선에 기여하여 더 두고봐야 될 일이다.[28]

4. 대한민국과의 관계



의외로 대한민국과 인연이 깊은데, 엔진 개발비를 아끼기 위해서 현대/미쓰비시/크라이슬러가 각자 4, 6, 8기통 엔진을 개발하고 글로벌 엔진 얼라이언스(GEMA)라는 이름의 법인을 통해 엔진을 공유해서 각각 커스터마이징을 따로 해서 쓰기로 했다. 이 때 현대가 맡아 개발한 4기통 엔진이 바로 세타 엔진이고, 미쓰비시와 크라이슬러가 개발을 맡기로 했던 6기통과 8기통은 흐지부지되었다. 따라서 크라이슬러의 월드 엔진과 미쓰비시의 4B1 엔진은 현대 세타 엔진을 기반으로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가 각각 커스터마이징한 것이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닷지 브랜드로 일부 차량을 OEM 수출하고 있으며, 4세대 그랜드 보이저의 디젤 모델이 나왔을 적에는 크라이슬러가 대형택시 기사들을 위해 현대자동차의 영업망을 통해 그랜드 보이저 디젤 택시 100대를 판매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우성그룹 계열 우성타이어[29]에서 크라이슬러 및 산하 브랜드의 차량[30]을 수입하여 판매했다가 1994년에 우성유통으로 이관했으며, 1996년 9월에 미국 본사에서 대한민국 법인인 "크라이슬러 한국판매"를 세우고 직판 체제로 운영 중이다. 피아트에 넘어간 후에는 2015년부터 FCA 코리아로 이름을 바꾸었다.
모회사 피아트의 이미지가 워낙 똥망이기도 하지만, 크라이슬러도 이미지는 좋지 않다. 인테리어가 좋은 것도 아니고 디자인이 좋은 것도 아니고 성능이 좋은 것도 아니고 AS가 좋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매우 나쁘다. 품질이야 이미 이탈리안 감성(...)으로 증명된 사실인 데다가 인지도가 떨어지니, 산하 브랜드의 랭글러를 제외하면[31] 감가율도 상대적으로 커서 중고차값도 낮은 편이다.
밀리터리의 경우, 크라이슬러가 대한민국 전차 개발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전차 제작 노하우를 익히는데 쓴 M48 패튼과 그 전신인 T43 전차를 개발 및 생산했고, K-1 전차와 그 전신인 M1 에이브람스를 개발하는데 관여했다.[32] 알다시피 군용 1¼톤 트럭(K-311)은 군 복무를 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닷지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실제로 이 군용차의 원형인 M37을 만든 곳이 닷지라서, 원조의 제조사 이름을 본뜬 별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판매 부진으로 대한민국과 일본 한정으로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판매는 중단됐으며, FCA는 인기가 좋고 판매량이 좋은 지프 브랜드에 집중하기 위해 크라이슬러 전시장을 지프의 전시장으로 바꾼다. 크라이슬러는 2017년 11월을 마지막으로 300C의 판매를 중단했고, 피아트는 2018년까지 재고를 소진한 후 판매를 중단했다. 이후 2019년까지 전부 지프 전시장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지프는 2019년에 처음으로 볼보, 미니와 함께 1만대 클럽에 가입했으며, 수리비가 비싼 랜드로버를 제치는 중이다.
대한민국가솔린 엔진 픽업트럭을 처음으로 정식 발매한 곳이 크라이슬러다. 닷지픽업트럭인 다코타 크루 캡을 들여와서 판매했는데, 주한미군이 아닌 이상 픽업트럭이 당시 생소한 장르의 차량이었고 이 때문에 형식승인을 놓고 쌍용자동차와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V8 가솔린 엔진의 연비 때문에 다코타는 인기를 얻지 못하고 수입이 중단됐으며, 2020년에 지프 글래디에이터를 들여오며 픽업트럭 판매를 재개했다.

5. 생산 차량


2020년 현재 크라이슬러 브랜드로는 다음 차량이 주로 생산되고 있다. 2009년에 경영난을 겪은 후 라인업이 대거 정리된 것.
  • 300 - 크라이슬러의 주력 플래그십 준대형 세단이다.
  • 퍼시피카 - 아래의 크로스오버 퍼시피카와는 이름만 똑같고 사실상 미니밴 그랜드 보이저의 후속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 새로 나온 2세대 모델은 유려한 곡선 디자인으로 좋은 평가를 듣고 있다. 다만 2세대 모델의 플랫폼은 200의 플랫폼을 개조해서 쓴다고 한다.

6. 단종 차량


  • 크로스파이어 : 나름 인지도가 있고 수집가들에게는 꽤 인기가 있는 차량이긴 한데, 어중간한 엔진 성능과 어중간한 룩으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판매고 등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결국 2007년 12월에 생산이 중단되면서 후속 없이 단종되었다. 4년 동안 총 76,014대가 판매되었다.
  • 프라울러 : 2001년 플리머스 브랜드 폐기 이후 2002년까지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판매되었다.
  • PT 크루저
  • 스트라투스 : 닷지의 모델인데 대한민국에서는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판매했다. 크라이슬러 브랜드로는 차명이 시러스다.
  • 세브링: 시러스의 후속으로 출시했다. 페이스리프트 후 200으로 개명했다. 본래는 플리머스의 중형 라인업 명칭이었으나 1990년대 크라이슬러의 중형 쿠페와 컨버터블로 등장했고, 2000년 이후에 세단이 등장했다.
  • 콩코드: 한국에서는 이 차의 형제차인 이글 비전이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수입되었다.
  • 네온: 본래는 닷지의 모델이다. 이 차량의 후속이 닷지 캘리버.
  • 퍼시피카: 메르세데스-벤츠 R클래스와 플랫폼을 공용했던 4WD 크로스오버. 다만 엔진은 크라이슬러 자체 엔진을 이용했다.
  • 타운 & 컨트리[33][34]
  • LHS
  • 임페리얼[35]
  • 아스펜: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내놓았던 최초의 SUV. 닷지 듀랑고와 형제차였다.
  • 에어플로우: 크라이슬러에서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뜨려 시동을 거는 테스트를 선보였던 차량, 엄청난 인기와 달리 생산능력이 따라가질 못해 단종되었다.
  • 로얄
  • 크라이슬러 에어스트림
  • 윈저
  • 뉴요커
  • 사라토가
  • 뉴포트
  • 코르도바[36]
  • 컨퀘스트
  • 레 바론/레 바론 GTS
  • 알파인[37]
  • 180/2-리터
  • 선빔
  • 호라이즌
  • 헌터[38]
  • 어벤저[39]
  • 입실론
  • 델타
  • 200
  • TC 바이 마세라티
  • 크라이슬러 바이 크라이슬러[40]
  • 밸리언트[41]
  • 보이저
  • 양산되지는 못한 크라이슬러사의 슈퍼카(혹은 하이퍼카)
  • E클래스 - 크라이슬러 뉴요커의 염가 사양이었다.

7. 묘한 튜닝문화


다음은 크라이슬러 차량에서만 볼수 있는 이상한 튜닝문화들이다.
  • 300 컨버터블: 이상하게도 크라이슬러 300은 맨날 사람들의 밥이 된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의 300과 달리 과거 300은 미국의 대형 럭셔리카의 대표주자이기도 했고 4도어가 아닌 2도어 쿠페, 컨버터블이 주력이였다. 300 컨버터블모델의 실제로 출시가 고려되기도 했고 쿠페가 나올거라는 떡밥이 돌았는데, 그 떡밥대로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냥 어떤 용자들이 스스로 만든 버전들이 몇 있다. 이밖에도 과거의 가죽 비슷한 비닐 재질 지붕 씌우기... 등등 빈티지 룩이나 레트로 튜닝이 꽤 많다.
  • 롤스로이스 팬텀 킷: 왠지 떡대하고 형상이 비슷해서인지 롤스로이스 프론트를 씌운 레플리카 킷도 존재한다. 뭐 미니 롤스로이스로 생각해 봐도 좋을 듯. 이외에도 벤틀리 프론트 역시 존재한다고... 이건 보통 세브링에 많이 쓴다.[42]
  • 벤틀리 컨티넨탈 GT 컨버터블 & 쿠페 레플리카: 이건 신형이 아닌 구형 300M이나 세브링을 기반으로 하는 풀킷인데,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다. 멀리서 보면 진짜 벤틀리처럼 보일 정도. 용자들 중에서는 아예 구동도 후륜[43]으로 바꾸고 헤미 스왑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마 그정도면 비용과 시간도 많이 들텐데 차라리 중고 벤틀리를 사는것이 더 나을수도...?
  • 매그넘 세단: 크라이슬러 300의 경우는 닷지 매그넘과 플랫폼이 같아서 프론트페시아만 바꾸면 매그넘을 300 왜건으로, 300을 매그넘 세단으로 만들수 있다는 이점(...)이 존재한다. 그 구닥다리 룩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경우 실제로 이걸 스왑해 버리는 경우가 있었고, 2008년도 매그넘 프론트의 경우가 가장 태가 나온다는 의견이 많다.(...) 뭐 닷지는 차저가 있으니 매그넘 세단을 만들 생각이 없었고, 차저보다는 왠지 각진 인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개인 취향이 만들어 낸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면 대략 이해가 갈 듯 하다. 이건 뭐 바디킷이라기 보다는 그냥 매그넘 프론트를 달아 버리는 거니 굳이 튜닝이라고 해야 할지도 애매한 경우. [44]

8. 그밖에


허영만의 만화 아스팔트 사나이에서는 리 아이아코카가 현직 회장으로 있을 때 재정악화로 휘청거려서 한국 천마 모터스에 팔려 합병된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품질불량 이미지를 넘어서 일종의 물귀신으로까지 취급받고 있다.[45] 현재의 미국차 이미지는 GM이랑 크라이슬러가 사이좋게 물 말아 먹은 걸로 유명하고, 포드라고 마냥 그 쪽에서 자유롭지만도 못하다[46]. 혼자 있을 때도 위기를 거듭하더니 어디에 인수되든 개선이 없고, 결국 인수자까지 수렁에 빠드리고 있는데, 천하의 다임러 벤츠도 견디지 못한 것을 보면 답이 없어 보인다.[47][48] 현재 주인인 피아트도 부진을 겪다가 어느 정도 회생하게 되면서 시장확대를 하겠답시고 10조 원이나 들여서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것인데 그러자마자 다시 나락으로 빠져서 그룹이 망할 위기에 처해 있다.[49] 사실 이탈리안 감성의 고-품질 자동차 제조사미국에서도 유명한 고-품질 자동차 제조사가 합쳐지니 다임러-크라이슬러 시절에 그리도 노래를 부르던 시너지가 아예 환장 의 하모니를 이루어 이제는 얼마 되지도 않는 구매자들의 복장을 뒤집어 놓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수입차 시장은 독일 유수의 고급차 브랜드들이 석권하고있는데, 비주류인 미국차 중에서도 품질이 조악하기로 소문난 크라이슬러는 일반 대중차 브랜드 답게 비교적 낮은 가격을 무기로(...)들었다. 적당한 값에 수입차를 타고싶은 고객들을 주 타겟삼아 판매한 결과 그나마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옛날 말인것이 중저가 수입차 대체제로 독일의 폭스바겐이나, 미국의 포드 일본의 토요타, 혼다, 닛산 등 품질 면에서도 검증 된 중저가 브랜드들이 큰 인기를 받고있는 상황이라 미래는 불투명해 보인다. FCA 코리아에서 크라이슬러는 지프 브랜드만 남겨 놓고 크라이슬러/피아트 모델의 수입을 중지하는 대신, 알파로메오를 새로 들여온다는 설이 들리고 있다.
[image]
[50]
여담이지만 2016년 현재 사용되는 변속기가 중구난방인 것으로 유명하다. 5단 자동변속기벤츠의 고토크 변속기로 유명한 5G-Tronic을 NAG1[51]이란 이름으로 채용하고 있고, 컴패스에 들어가는 자동변속기는 아예 현대파워텍제 6F24/6F26을 사용하고 있다.[52] 이외 8단 및 9단 미션은 ZF의 것을 사용 중. 한 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굴지의 자동차 메이커가 이젠 미션도 자체적으로 못 만들어서 여기저기서 긁어다 쓰는 꼴[53]
일본의 미쓰비시 자동차와 뿌리 깊은 관계가 있다. 1970년대에 미쓰비시 갤랑이나 미라쥬 등을 크라이슬러 자체 브랜드인 닷지, 플리머스로 판매해주는가하면[54] 1980년대~90년대 크라이슬러 차들에 미쓰비시제 엔진 옵션이 제공되기도 했고, 1990년대에는 더 나아가 합자회사인 다이아몬드 스타 모터스를 통해 플랫폼을 공용하는 차들을 공동생산한 바 있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시기에도 기술제휴가 이어져서 다임러 측이 미쓰비시와 크라이슬러를 더 폭넓게 제휴토록 했고,[55] 피아트크라이슬러 시대에도 트리톤 픽업[56] 등의 미쓰비시 차량이 일부 시장에서 피아트크라이슬러 계열사 명의로 판매되었다.
1930년에 건설한 크라이슬러 빌딩은 이 회사의 상징이다. 다만, 크라이슬러 본사가 이 빌딩에 입주한 적은 없다.[57]

9. 둘러보기




[1] 세르지오 마르치오네의 사망(2018년 7월 25일) 이후 승계.[2] 1940년대에 획기적인 자동차 기술과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으나, 이들이 노골적으로 박살낸 업체다. 미국에서도 터커가 망하지 않았더라면 자동차 기술은 수십년을 앞당겼다는 정설이 전해질 정도. 1988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 제프 브리지스 주연 영화 터커가 이 터커를 그린 영화다.[3] 고성능 서브 브랜드이며 대체로 닷지의 차종에 SRT 라인업이 많다.[4] 다만 1934년에 출시한 크라이슬러 에어플로우가 실패한 이후로는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해 있었고, 스타일링과 편의성 중심으로 흘러가던 1940~50년대 자동차 트렌드도 반쯤 무시했다. 그러다가 1950년대 중후반에 다시 혁신적인 시도를 한 것이 헤미엔진과 포워드룩 등으로, 수석디자이너 버질 엑스너가 입사하면서 큰 영향을 끼쳤다.[5] 1973년에 출시된 신형 대형차 라인은 등장하자마자 석유파동의 직격탄을 맞았으며, 반면에 소형차 라인은 영국 지부인 루츠 그룹과 제휴업체인 일본 미쓰비시에서 끌어와 적당히 땜빵하는 수준이었다. 크라이슬러 및 임페리얼같은 경우는 대형차만 고집한다고 선언한 게 발목을 잡은 건 물론, 서비스점을 염가 브랜드인 플리머스와 공유하던 전략이 크라이슬러 고객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그 이전인 1950~60년대에도 각 브랜드별로 가격대, 사양, 사이즈가 겹치기 시작하는 문제를 가만히 내버려둬서 중산층 브랜드인 드 소토가 사라지고 독립 딜러점이 막 생긴 플리머스를 크라이슬러 딜러로 통합하는 등, 마케팅 쪽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었다.[6] 형제차로 플리머스 보이저가 있었고, 1세대 미니밴이 끝물일 때에 크라이슬러 그랜드 보이저/타운 앤 컨트리를 추가했다. 우성유통에서 크라이슬러를 수입했을 적에는 닷지 캐러밴 3세대가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팔렸다.[7] 기아산업에서 기아 봉고 코치를 내놓았을 때 김선홍 당시 회장을 대한민국의 아이아코카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8] 또한 리 아이아코카는 광고와 토크쇼, 신차 발표회 등을 통해 대중 앞에 자신을 자주 노출시키고, 회사 사정과 제품의 개발 배경을 스스로 털어놓기까지 해 미국 국민들의 신뢰를 사기도 했다. 반면 이러한 "쇼맨쉽" 전략이 문제가 될 때도 있었고,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회장 자리 및 회사 주가에 집착하거나 보수적인 디자인을 계속 고수하는 등의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9] GM 출신의 인물로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창설에 기여했다. 회사 내부의 비용을 효율적으로 다뤄 꾸준한 이익을 내는 데 기여한 반면, 비용 절감이 지나쳐 품질과 평판을 깎아먹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10] 참고로 이 때의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그 유명한 마이바흐를 부활시키는 강수를 두었다. 메르세데스-벤츠 SLR 맥라렌도 내놓는 등 새로운 시도를 여럿 했는데, 결과는 모두 실패. 2000년대 초반 벤츠에 달린 서스펜션 기술인 ABC는 중고 벤츠의 가격을 똥값으로 만들었고 SLR은 맥라렌 욕만 잔뜩 먹고 판매량도 실패했다. 마이바흐 또한 벤틀리플라잉스퍼 때문에 판매량이 망해서 결국 S클래스 상위 브랜드 수준으로 변경. 사실 5억 원이 넘어가는 엄청 비싼 차를 내놓으면서 매일 한 대씩(...) 팔리리라 기대한 벤츠의 잘못도 크지만.[11] 참고로 다임러와 합병하기 전에는 BMW와 제휴하여 닷지 네온과 신형 미니가 1.6L 엔진을 공용하기도 했다. 로버 그룹의 재정상황을 안정시키려는 BMW와 유럽 진출을 확대하려던 크라이슬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12] AMC 인수 이후 1990년대 내내 존재했던 크라이슬러의 유연한 기업 분위기가 없어져 버렀으며, 품질 문제도 원가절감을 강요받으면서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 당시 크라이슬러에서 일한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다임러 출신 임원들은 크라이슬러 임원들을 하대하고, 이들의 의견을 흘려듣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사항들이 여럿 있었던데다가 다임러의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을 낸 인사들이 얼마 안 가 퇴출당했다는 제보도 나오는 등, 제대로 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크라이슬러가 기존에 보유하던 제품개발팀까지 반쯤 와해되는 사태(미쓰비시와의 제휴 강화에 앞서 2천명이 감축되었던 사례에서는, 네온 등을 개발한 소형차 개발팀원 상당수가 정리되었다)로 이어졌다. 밥 루츠, 프랑수아 카스탱, 톰 스톨캠프, 크리스 시어도어같은 인재들이 크라이슬러를 떠난 것도 다임러크라이슬러 초반의 일.#[13] 반대로 벤츠 임원들 사이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일부 임원들은 대우를 잘 받았으며, 개발 과정에도 동등하게 같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은 "실력을 검증받기 전에 시달리는 거만한 시선과 태도"를 견뎌내야 하는 점이 문제였다고 회고했다(#).[14] 메르세데스-벤츠와 공동 개발한 마지막 작품은 현재 크라이슬러의 주력 V6 가솔린 엔진으로 밀고 있는 펜타스타 V6 3.6리터 DOHC 가솔린 엔진과, 3세대 M-클래스 플랫폼이다. 따라서 그랜드 체로키 4세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벤츠의 차대가 사용된다. 단, 커먼레일 디젤 엔진피아트의 것을 사용한다.[15] 지프는 글로벌 브랜드로 분류.[16] 1960년대까지만 해도 닷지는 중산층 브랜드였는데, 머슬카포니카 붐을 계기로 "고성능", "스포티함" 이미지를 도입하기 시작했다.[17] 크라이슬러가 자체 브랜드의 첫 다운사이징 라인업이었던 코르도바를 준비했을 때만 해도, 크라이슬러 브랜드는 링컨, 올즈모빌 정도와 비교되는 최소 준고급 브랜드라는 인식이 있었다. 고급 이미지가 흐려져 있던 1990년대 중후반에도 올즈모빌, 뷰익 차량을 경쟁차로 직접 올려 명분상 프리미엄 브랜드임을 어느 정도 갖추려고 한 편.#[18] http://marketrealist.com/2017/09/fiat-chrysler-continues-to-collaborate-on-self-driving-cars/[19] 이 때 밥 루츠제너럴 모터스 부회장의 저서인 '빈 카운터스'에서 여러 장점이 존재했기에 GM이 크라이슬러를 인수하려고 시도했다는 내용이 언급되기도 했다.[20] 크라이슬러 300닷지 차저.[21] https://www.allpar.com/news/2017/10/chrysler-dodge-cancel-right-hand-drive-38586[22] https://www.allpar.com/news/2017/10/right-hand-drive-not-quite-dead-yet-38637[23] https://www.motor1.com/news/243557/merchionne-killing-chrysler-rumor/[24] https://www.motor1.com/news/243813/chrysler-dodge-to-continue/[25] 이 발언을 하고 한 달 후에 마르치오네는 FCA 회장에서 물러난 직후, 수술 합병증으로 타계했다. 후임은 마이크 맨리.[26] https://moparinsiders.com/the-future-of-the-chrysler-brand-is-coming-in-the-form-of-crossovers/[27] https://www.allpar.com/news/2019/02/chrysler-shows-dramatic-dependability-improvement-43793[28] https://www.caranddriver.com/news/a29812066/dodge-reliability-study-consumer-reports/[29] 전신은 우성산업이다. 우성타이어는 1999년 3월 흥아타이어에 넘어갔다. 그리고 사명을 바꿔 현재의 넥센타이어가 된다.[30] 당시 들어왔던 닷지의 모델은 (그랜드)캐러밴, 네온, 스트라투스(현재 200 모델의 전신인 세브링의 형제차). 이들은 닷지산양 로고 대신, 오각형 마크를 붙여서 판매했다. 다만, 네온과 스트라투스와 달리 캐러밴은 영문명으로 DODGE가 붙었다.[31] 랭글러는 대표적인 미국제 오프로더지만, 옛날 군용차윌리스 MB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최대한 유지하는 데다가 대한민국의 험로 사정에도 잘 맞아서 인기가 좋은 편이다. 게다가 본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차종들이 대한민국에 대부분 정식 수입되지 않아서, 랭글러는 수입차 치고 상대적으로 감가율이 낮다고 한다.[32] 이 모든 전차들은 Philip Wood. Lett라는 부사장 엔지니어 분께서 담당하셨다.[33] 지금은 미니밴이지만, 1988년까지만 하더라도 왜건 내지 컨버터블에 해당되는 차종의 명칭이었다.[34] 우리나라선 아직 팔고 있다.재고처리 중인 듯.[35] 초기에는 크라이슬러의 라인업 중 하나였으나 1930~70년대까지 독립 브랜드로 운영되었고, 1980~1983년에 잠시 부활했다가 1980년대 말에 기함급 차종으로 잠시 등장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때인 2005년에 컨셉트카로 다시 재등장했다.[36] 북미 크라이슬러 최초의 중형차급 라인업. 1970년대 중순에 인기가 높았던 중형 퍼스널카 시장에 진입해, 잠시 동안 흥행기를 달렸다.[37] 크라이슬러의 유럽 지사인 루츠 그룹에서 개발한 해치백 중형차. 일부 시장에서는 생카(Simca) 브랜드로 판매되었다.[38] 힐만 헌터의 뱃지 엔지니어링 버전인 중형차. 1976년에 힐만 브랜드를 폐기하면서 브랜드가 바뀌었다.[39] 힐만 어벤저의 뱃지 엔지니어링 버전인 준중형차. 1976년에 힐만 브랜드를 폐기하면서 브랜드가 바뀌었다.[40] 호주 시장용 고급차.[41] 북미 지역에서는 닷지와 플리머스 명의로 팔았지만, 호주를 비롯한 해외에서는 크라이슬러로 판매했다. 1971년에 나온 4세대 호주 사양부터는 북미 사양과 독립.[42] 애초에 300 SRT의 경우 아예 벤틀리같은 매쉬그릴이다...[43] 크라이슬러 300M은 LH 플랫폼에 기반한 세로배치 전륜구동이며, 세브링은 가로배치 전륜구동 플랫폼을 사용했다.[44] 300의 왜건 타입의 경우 호주와 유럽 시장에서 발매되었지만, 미국에서는 발매되지 않았다. 실은 발매 요구는 많았지만, CTS 왜건 등의 경쟁자를 상대하기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 크라이슬러에서 발매하지 않은 것. 그래서 그 프론트만 바꾼 닷지 매그넘이 출시되었다. 300과 워낙 많은 부품을 공유하는 문제로 인해서 그냥 스왑이 가능한 경우라 별다른 개조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45] 미국의 국토를 달리는 용도의 차량 기준으로 국내나 유럽의 소형차와 다르다.[46] 포드 산하에 있던 브랜드 대부분은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매각당했는데, 포드는 여전히 세단에서 죽쑤고 있는 반면 중국이나 인도에 매각된 메이커들은 현재 승승장구 중이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재규어와 볼보[47] 다만 이 시기의 품질문제는 1990년대 중후반의 크라이슬러에서도 과도한 비용절감 때문에 심각하다는 걸 알고 바로잡으려고 했는데, 인수 직후에 벤츠 측에서 비용절감을 또다시 강요한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인수 초반에 단행된 실내 개발비용을 40% 절감하는 목표가 있었고, 제조단가를 낮추려고 발악한 탓에 납품업체들과의 관계도 껄끄러워졌다. 벤츠도 가만 보면 안 보이는 쪽에서 비용절감에 만만찮게 집착하는 업첸데, C클래스 같은 메이드 인 미국 차량들 품질도 영 좋은 소릴 못 듣는 거 보면...[48] 1990~2000년대 크라이슬러의 엔지니어였던 크리스 시어도어는 최후기형 크라이슬러 PT 크루저를 렌트했을 때 "괜찮은 차를 다임러가 되려 망쳤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독립법인 시절 개발하여 다임러크라이슬러 시기에 판매한 PT 크루저가 각종 마이너체인지를 할 때 다임러의 손을 거치면서 말년에는 방음설비 하나하나까지 다 빠져버렸다고. 시어도어가 크라이슬러에서 근무할 당시 PT 크루저와 3세대 크라이슬러 미니밴, 2세대 닷지 네온 등의 개발에 참여했던 경력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눈물흘릴 만할 일.[49] 단, 수익구조로 보면 지프, 램, 닷지로 상당수의 수익을 차지하는 크라이슬러 파트가 FCA 그룹을 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피아트의 텃밭인 유럽이 그룹 수익구조상 미국보다 수익성이 낮아 고전하는 중.[50] 사진의 XC90 옆 차량은 타운 앤드 컨트리의 형제차인 닷지 캐러밴.[51] 뜻은 '새로운 1세대 자동변속기(New Automatic Gearbox Generation One)'[52] 본래는 CVT를 이용했다.[53] BMW도 미션은 사다 쓰지만 애초에 고정 고객이나 다름없어서 관계 자체가 다르다.[54] 크라이슬러 그룹의 소형차 라인을 보충해주면서 미쓰비시의 미국 진출로를 열어준 계기인 동시에, 미쓰비시에게는 한동안 미국에서 자체 브랜드 진출이 막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55] 크라이슬러 세브링 3세대, 닷지 어벤저 세단과 캘리버, 지프 패트리어트와 컴패스 등을 랜서, 갤랑 등의 플랫폼으로 옮겨 개발을 완료했다. 하지만 기술제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임러 측의 잘못된 결정들, 악화되어가는 재정난, 개발비 투자 부족 등으로 인해 개발에 차질이 심해져서 시장경쟁력을 크게 잃었다.[56] 시장에 따라 피아트 풀백, 램 1200으로 판매되었다.[57] 사실 이는 발주자가 회사가 아닌 월터 크라이슬러 '''개인'''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