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들러 리스트

 


''' 쉰들러 리스트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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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
[image]
'''최우수 작품상'''
''' 제65회
(1993년) '''

''' 제66회
(1994년) '''

''' 제67회
(1995년) '''
용서받지 못한 자#s-1

''' 쉰들러 리스트 '''

포레스트 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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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 (1993)
''Schindler's List''

'''장르'''
드라마, 전쟁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각본'''
스티븐 제일리언
'''원작'''
쉰들러의 방주 (토머스 케닐리)
'''제작'''
스티븐 스필버그
캐슬린 케네디(기획)
브랑코 루스틱
제럴드 R. 몰렌
'''출연'''
리암 니슨
벤 킹슬리
레이프 파인스
'''음악'''
존 윌리엄스
'''제작사'''
[image]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image] 유니버설 픽처스
'''개봉일'''
[image] 1993년 12월 15일
[image] 1994년 03월 05일
2019년 1월 24일 재개봉
'''상영 시간'''
194분
'''제작비'''
2천 2백만 달러
'''월드 박스오피스'''
$321,306,305
'''북미 박스오피스'''
$96,065,768
'''대한민국 서울 관객 수'''
847,259명
'''국내 등급'''
[image]
'''미국 등급'''

1. 개요
2. 원작 소설
3. 판권 구매부터 제작까지
4. 제작과정
5. 예고편
6. 등장인물
7. 흥행 및 비평
8. 유대인의 피해의식?
9. 논란거리
10. 기타


1. 개요


'''제6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음악상, 편집상, 촬영상, 미술상 수상작 /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음향상, 분장상, 의상상 후보작'''
'''1997년 미국 영화 연구소(AFI) 100대 영화 9위 선정'''
'''2007년 미국 영화 연구소(AFI) 100대 영화 8위 재선정'''

이자크 슈텐[1]

: "탈무드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

쉰들러: "더 살릴 수 있었어, 더 살릴 수 있었을 지도 몰라, 좀 더 구할 수 있었을 거야. 좀 더 구할 수도..."

이자크 슈텐: "사장님 덕분에 천백 명[2]

이 살았어요. 보세요."

쉰들러: "돈을 좀 더 벌었더라면… 난, 난 너무 많은 돈을 낭비했네. 자넨 상상도 못해. 내가 만약…"

이자크 슈텐: "사장님 덕에 많은 후손이 태어날 겁니다."

쉰들러: "충분하지 못 했어."

이자크 슈텐: "그 이상을 하셨어요."

쉰들러: "이 차, 괴트가 사줬을 텐데… 왜 팔지 않았을까? 열 명은 더 구했을 텐데… 열 명, 열 명이나 말이야. 이 핀[3]

은 두 명... 이건 금이니까 두 명은 구했을 거야. 아니, 적어도, 한 명은 더 구했을 거야. 한 사람...! 한 사람은 더 구했을 거라고… 한 명은 더… 한 사람을 말이야. 슈텐, 이거 하나로... 더 구할 수 있었는데... 내가 안 한 거야! 내가...!"

영화 말미, 종전날 밤에 이자크 슈텐과의 대화 중 쉰들러의 절규.[4]

[5]

영화 대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위의 장면은 Hebrew(히브리어. 탈무드 글귀를 알려주는 슈텐의 대사 부분이다.)로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리암 니슨 주연의 전쟁 드라마 영화이다. 1993년에 개봉했다.
제목 "쉰들러 리스트"는 주인공 쉰들러가 유대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 위해서 작성했다는 명단 아홉 개에서 따왔고, 자기 이익을 위해 유대인들을 고용했던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1,100여 명[6]의 유대인들을 구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룬, 러닝타임 3시간에 달하는 대작이다.

2. 원작 소설


원작은 호주 작가 토머스 케닐리(Thomas Keneally)가 쉰들러의 일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쉰들러의 방주(Schindler's Ark)이다.
로스엔젤레스의 베벌리 힐스에서 가죽제품 사업을 하던 리어폴드 페퍼버그(Leopold Pfefferberg)가 이 이야기를 소설로 쓸 수 있도록 소재를 제공했다. 페퍼버그는 쉰들러가 구해낸 유대인들을 통칭하는 '쉰들러 유대인(Schindlerjuden)' 중 한 사람이었고, 쉰들러의 이야기를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 그에 대해 알리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 페퍼버그는 가게에 온 토머스 케닐리에게 쉰들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케닐리는 쉰들러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소설화 작업에 착수했다. 소설은 1982년 출간되었다.
한국에는 영화가 개봉한 1994년경에 영화 제목인 "쉰들러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고, 현재는 모든 판본이 절판되어 구하기 힘들다.[7]

3. 판권 구매부터 제작까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우연히 '쉰들러의 방주'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스필버그 감독은 1983년에 바로 유니버설을 통해 판권을 사들였고, 리어폴드 패퍼버그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당시 언제 영화를 만들 것이냐는 페퍼버그의 질문에 스필버그 감독은 10년 후에 만들겠다고 했다... 영화는 1993년에 개봉했다.
스필버그 감독을 중심으로 이 책을 영화로 만들려는 시도가 많았다. 영화 제작을 위해 여러 사람을 거쳐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스필버그 감독 본인은 감독직에는 아무래도 부담감을 느꼈는지 처음에는 다른 감독에게 연출을 맡기려고 했다. 고심 끝에 스필버그 감독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연출을 맡기려고 했는데, 스콜세지는 이탈리아계인 자신보다 유대계 감독이 연출해야 할 프로젝트라며 거절했다. 원래 스필버그 감독이 케이프 피어의 판권을 가지고 있었고, 스콜세지가 이 영화의 판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서로 바꾸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를 홀로코스트로 잃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게 연출을 부탁했지만, 폴란스키는 스필버그 감독과는 달리 본인이 직접 홀로코스트를 겪은 사람이라서[8]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내게는 너무 개인적인 내용"이라며 객관적인 연출이 불가능할 것 같다며 거부했다. 그리고 폴란스키는 후에 '피아니스트'로 자기 버전의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찍었다.
마지막으로 스필버그 감독은 빌리 와일더 감독을 찾아갔고, 와일더 감독도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쉰들러 리스트를 원했다. 빌리 와일더 감독 역시 유대계로, 이분은 실제로 1933년까지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가 나치가 집권하자 미국으로 도망쳐왔다. 하지만 와일더는 스필버그 감독에게 직접 메가폰을 잡으라고 독려했다.
쉰들러 리스트는 결국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했다. 무엇보다 스필버그 감독이 직접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짓을 저지르는 네오 나치들에 대해 듣게 되면서부터였다. 그걸 보고 누군가가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결국 스스로 영화를 만든 것.

4. 제작과정


감독과 배급사 양쪽에서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다. 일단 스필버그 감독 본인이 촬영 기간 내내 심각한 멘붕을 겪었다. 자기 조상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전까지 문서상으로만 홀로코스트를 알고 있던 스필버그 감독은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 사건의 심각함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은 작중에서 그려지는 온갖 충격적인 광경들을 보면 이해가 간다. 게다가 담담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그려냈기 때문에 오히려 충격이 더 배가 된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시달려온 유대인으로서의 위치와 정체성 문제가 겹치면서 이성을 유지한 상태로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당시에 엑스트라 중 누군가 밤 10시 30분에 칼퇴근해야겠다고 투덜거리자 뛰쳐나와 누가 그랬냐고 불같이 화를 냈을 정도로 히스테릭해지고, 절친한 친구인 로빈 윌리엄스에게 전화해서 날마다 '''나를 좀 즐겁게 해주게! 제발…….'''이라는 식으로 하소연했다고 한다.
스필버그의 아내 케이트 캡쇼(인디아나 존스 2편 여주인공이다. 영화 제작이 끝나자마자 결혼하여 아직도 같이 살고 있다)와 아이들과 부모님까지 촬영장에 함께 있었고 심지어는 랍비까지 한 명 대동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트콤 '사인펠드' 방영분 VHS를 미국에서 폴란드로 수시로 배송했다고 한다.
진작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낀 배급사 유니버설은 이 영화를 제작하는 조건으로 딱 한 가지를 내걸었다. '''쉰들러 리스트 찍기 전에 쥬라기 공원부터 끝내라.''' 사장은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면 쥬라기 공원은 못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1992년 8월 쥬라기 공원의 촬영을 시작해 11월에 촬영을 끝냈고, 임시편집본은 촬영이 끝난 지 1주만에 나왔다. 이게 다 끝나고 나서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은 다음 해 3월에 시작되었다. 쉰들러 리스트 이후 스필버그의 영화들이 상당히 바뀐 것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예지력 상승.
94.03.27-정성일-쉰들러 리스트 정은임 라디오
배급사에 문제가 된 또 하나는 바로 흑백 촬영. 컬러 영화가 당연해진 시기에 흑백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희한한 요청이었다. 일단 흑백으로 극장 개봉까지는 받아준 것 같은데, 사장이 돈을 더 벌어볼 생각으로 '영화를 컬러로 찍어서 나중에 VHS 발매할 때 컬러 버전도 내보자.'는 식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필버그가 거절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게 현장에서 아무도 흑백 영화 촬영을 해본 적이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컬러 영화를 찍던 식으로 세트를 만들면 면과 면의 명암차가 크지 않아서 화면이 뭉개진다든지 하는 문제들을 사전에 발견한 제작진은 인위적으로 페인트를 칠해 세트의 명암을 조절하는 등의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이 영화에서는 총 다섯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흑백이다. 영화 시작부분에서 나오는 유대교 예배, 후반부에 나오는 쉰들러 묘소 참배 장면, 그리고 쉰들러가 안식일(토요일) 유대교 예배를 허용할 때 나오는 촛불, 그리고 가장 유명한 장면인 빨간 코트를 입은 여자아이(Girl in the Red Coat)(두 군데에 걸쳐서 등장). 작중에서 결국 희생당하고 마는 이 소녀는 개봉 후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또한 첫 장면이 컬러로 진행되다가 흑백으로 바뀌며 본 내용이 시작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시점이 현재로 바뀌며 다시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기법도 고전적인 기법으로 이미 오래전인 1939년 오즈의 마법사가 썼던 기법을 반대로 적용한 것이다. 이건 관객에게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다.
이런 갖가지 고생을 하면서 희한한 흑백 영상을 함께 만들어낸 촬영감독 야누시 카민스키(Janusz Kamiński)(폴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폴란드계 미국인)는 이후 나온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의 촬영감독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다.
당시 뉴스위크 지 보도에 따르면 전부 폴란드에서 찍었다고 하는데 촬영 당시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스필버그를 알아본 폴란드 노인이 촬영현장에 다가오더니만 스필버그를 죽일 듯이 쳐다보며 '''"나는 히틀러 새끼가 싫지만, 유대인은 더 싫어. 왜냐면 네놈들은 히틀러는 악마, 유대인은 불쌍한 버러지. 이 따위로 떠벌리는 영화나 찍고 자빠졌잖아? 그렇게 너희는 언제나 자기들 유대인만 가엾다고 생각한다고! 당장 나가! 구역질 나는 놈들아!"'''라며 마구 폭언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이 말에 스필버그는 하얗게 질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배우인 리암 니슨이 화를 내면서 반론했지만 끝내 노인을 억지로 떼어내야 했다고 한다.[9][10]

5. 예고편



25주년 공식 예고편[11]

6. 등장인물


배역
배우
KBS 성우
오스카 쉰들러
(Oskar Schindler, 1908-1974)
리암 니슨
(Liam Neeson, 1952-)
양지운
이자크 슈테른
(Itzhak Stern, 1901-1969)
벤 킹슬리
(Ben Kingsley, 1943-)
이완호
아몬 괴트
(Amon Goeth, 1908-1946)
레이프 파인스
(Ralph Fiennes, 1962-)
강구한
에밀리 쉰들러
(Emilie Schindler, 1907-2001)
캐롤라인 구덜
(Caroline Goodall, 1959-)
강희선
리어폴드 페퍼버그[12]
(Poldek Pfefferberg, 1913-2001)
조나단 샤갈
(Jonathan Sagall, 1959-)
김수중
헬렌 히르시
(Helen Hirsch, 1925-2018)
엠베스 데이비츠
(Embeth Davidtz, 1965-)
윤소라
그 외 등장인물은 여기에 나와있다.
그밖에 성우진은
김태연 - 루돌프 회스(한스 마이클 레베르그)
조달호 - 랍비(에자 다간)
문영래 - 롤프 크주다(프리드리히 폰 툰)
김정호 - 요제프 멩겔레(다니엘 델 폰테)
성선녀 - 단카의 엄마(미리 파비안)
장승길 - 율리안 쉐르너(안드레 세베린)
김익태 - 마르셀(마크 이바니어)
오인성 - 나치 군인(요아힘 파울 아스뷰크) / 유대인
이선 - 밀라(아디 닛잔)
1998년 3월 3일 KBS로 더빙 방영했다.

7. 흥행 및 비평
















스필버그는 이 영화가 망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대단한 호평 속에서 예산의 10배를 거둬들이며 스필버그에게 마침내 아카데미를 안겨준 영화가 되었다. 그전까지 스필버그를 상업 영화 만드는 감독으로 낮춰보던 사람들도 이 영화를 시작으로 스필버그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에서는 개봉 첫 날 표가 매진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국에서 배급을 맡았던 UIP 한국지사에 의하면 쥬라기 공원보다 이 영화가 성공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확실치 않다. 당시 서울 관객 집계에서 쥬라기 공원은 106만 관객이 관람했지만, 쉰들러 리스트는 84만 7천 명으로 나와 있다. 전국 관객에서 앞섰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2000년 초반부터야 전국 관객 집계가 이뤄진 탓에 자세한 전국 관객 집계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배급사인 UIP 한국지사가 이렇게 주장했기 때문(알다시피 쥬라기 공원이나 쉰들러 리스트 모두 UIP에서 직배)인데 배급사가 멋대로 부풀리던 것도 허다하므로 이게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극장 개봉 당시, 영화 앞뒤의 나레이션 자막(번역 자막 말고)을 모조리 한국어로 바꿔 넣을 정도로 배급에 공을 많이 들였다. VHS 출시본까지는 이 한국어화가 살아있었지만 이후 TV 방영 시에는 원래의 영어 자막 버전이 나왔다.

8. 유대인의 피해의식?


홀로코스트를 다루고 있고, 스필버그가 유대인이라서 그런지 유대버그라면서 까거나 유대인의 피해의식이라 반응하기도 하는데, 유대인들의 피해를 다뤘다기보다는 휴머니즘과 나치의 폭력을 주제로 다뤘다는 반론이 있다.
실제로 비평가에 따라서는 이 영화는 유대인보다는 '''나치의 폭력성'''에 더 중점을 두었다고도 말한다. 영화 안에서 쉰들러는 유대인들에게 사랑을 느꼈다기보다는, 나치에게 사악함을 느꼈을 뿐이라는 것.
실제로 쉰들러는 후반까지 공장의 유대인들과는 그다지 교류를 하지 않고, 나치의 고위층과 더 교류를 한다. 그리고 영화 안에서 딱히 유대인들이 착하다거나 하는 묘사는 없다. 그보다는 '''나치가 저지르는 온갖 만행'''들을 보여줄 뿐이다. 이는 실제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쉰들러는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비정하기까지 한 사업가였다. 특별히 나치를 반대하지도 않았다. 단지 "내가 아는 사람들을 죽게 둘 수 없다"라는 최소한의 도덕을 지키고자 했던 것. 당시 시대를 생각해보면 이것만 해도 넘치도록 대단한 것이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면서까지 1,100여 명의 사람들을 살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폴란드를 떠나기 직전에는 유대인들에게 옷과 식량을 주는 등 자기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온정을 베풀던 다른 독일인 공장주에게 '자기와 같이 공장을 모라비아로 옮겨서 유대인들을 살려내자'[13]고 설득하기까지 한다! 이 사람이 그나마 양심적이라 자기만 발을 빼는 데서 끝냈으니 망정이지, 쉰들러의 의도를 게슈타포에게 밀고하기라도 했으면 쉰들러는 절대로 무사할 수 없었다. 아무리 유대인에게 동정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알고 있었다지만, "외부인"에게 쉰들러가 본의를 드러낸 건 정말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에 앞서 제3제국이 천인공노할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를 유대인의 피해의식으로 치부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애당초 한 개 민족을 혈통적으로까지 제노사이드하려한 사례도 그 사례가 적고 있어도 대체적으로 전근대에 국한된걸 생각해보면 홀로코스트는 그저그런 일이 아니다.
미국 영화들이 유대인에 유리한 것도 사실이고 너무 유대인의 피해만 많이 영화로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홀로코스트를 다뤘다고 유대인의 피해의식이라는 것은 편견이다. 똑같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다룬 작품들이라도 '''나치의 악행'''을 이 영화만큼 그대로 다룬 작품도 그리 흔하지 않다. 영화로는 피아니스트, 만화로는 정도뿐.
또한, 스필버그의 다른 영화 뮌헨을 보면 스필버그는 적어도 피해의식을 지닌 사람은 아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명작 피아니스트와 비교하자면 쉰들러 리스트는 주인공 쉰들러의 행적을 중심에 놓고 그와 대척점에 있는 아몬 괴트를 비롯한 나치의 잔혹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피아니스트는 물론 나치의 잔혹성도 그리긴했지만 좀 더 전쟁 속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다룬 편이다. 피아니스트에는 나치측 인물뿐 아니라 같은 유대인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유대인, 그리고 주인공의 친구인 유대인 경찰 이츠학을 비롯해 주인공을 이용해 사기행위를 저지르는 안텍 등 정말 다양한 인간들이 나온다. 그렇지만, 쉰들러 리스트에서도 자신들이 학살해 매장했다 증거 인멸을 위해 다시 유대인 수감자들을 동원해 파내어 소각로에 썩어가는 시신들을 던져 넣는 작업을 하다 반쯤 미쳐서 소리를 지르고 시체 더미에 발터 P38 권총을 난사하는 SS 하사(노르베르트 바이저[14] 분)의 모습이 나오는 등(1분 30초 무렵), 아주 단순한 인간 관계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9. 논란거리


영화사에 남을만한 작품이지만 당시 일부 영화계층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바로 가스실 장면 때문인데 이 장면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서스펜스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영화의 기능의 하나인 카타르시스와 이 영화와 같은 역사적인 고증으로 슬픔을 이루는 작품의 경우에 드러나야 하는 고발성이 서로 상충하여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쉰들러 유대인들이 행정착오로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던 사실 자체는 실제로 있었고, 이들은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쉰들러가 협상을 통해 구해냈다. 단, 이들은 처음부터 노동자로 분류되어 아우슈비츠로 갔기에 가스실에 들어간 게 아니라 '''진짜로 소독 처리를 받고 막사에 수용'''됐으며, 영화에서처럼 가스실로 끌려 가는 사람들과 교차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영화에서는 끌려갔던 쉰들러 유대인들만 구해낸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들 외에도 노동수용소에 있던 건강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유대인 150명 정도를 노동자 파견 명목으로 더 구해냈다.''' 그러나 이렇게 추가로 구한 유대인들은 쉰들러 유대인들보다 영양상태가 매우 나빴던 탓에, 아우슈비츠에서 쉰들러의 공장으로 오는 동안 열차 안에서 7명이 사망했다.
이전 설명에는 수용소장 아몬 괴트 SS 소령의 최후가 영화에서 "Heil Hitler"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것이 허구라고 적혀 있었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출처: Teege, Jennifer; Sellmair, Nikola (2013). Amon: Mein Großvater hätte mich erschossen. Reinbek bei Hamburg: Rowohlt.)
그리고 유튜브에 떠돌던 아몬 괴트의 처형 영상으로 알려져 있는 동영상도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Bloody Tales (2013)에 따르면 이 영상은 루트비히 피셔(Ludwig Fischer)의 처형 영상이라고 한다. 아몬 괴트의 죽음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고 한다.
황금의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에서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해당 곡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예루살렘을 회복한 6일 전쟁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해당 부분을 Halikha LeKesariya로 바꿨다.

10. 기타


  • 영화 초반부 레스토랑 씬에서 오스카 쉰들러가 SS 장교들과 한창 친목질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들 장교의 소매부분을 잘 보면 SS 특유의 커프 타이틀 위에 "SD"라고 적힌 패치가 붙어 있는데, SD(Sicherheits dienst의 약칭, 보안부)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제국중앙보안성(RSHA) 소속이다. 자세한 것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항목 참조.
  • 또한 장교들과 부르는 노래 중에 '즐거운 방랑자'라는 노래도 나오는데 이 역시 고증오류다. 독일어로는 'Mein Vater war ein Wandersmann'. VALDERI~ VALDERA~ 라는 후렴구가 유명하다. 흔히 독일민요로 착각되기도 하는데 그때문에 발생한 오류로 보인다. 실제로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곡으로 만들어졌다.
  • 이 영화도 스필버그의 많은 작품들처럼 존 윌리엄스가 음악을 담당했는데, 이작 펄만이 연주한 메인 테마가 매우 유명하다. 윌리엄스도 이 음악이 마음에 들었는지 약간 손보고 중간에 나오는 다른 OST와 합쳐 바이올린 협주곡을 만들기도 했다.
  • 영화 중 밤이 되자 독일군이 유대인들이 은신하고 있던 건물에 다시 들어가 청진기로 천장 벽을 짚어보는 등 수색하여 온갖 곳에 몰래 숨어서 겨우 살아남은 유대인들마저 모조리 학살해버리는데, 이 때 건물에서 한 독일군 장교가 아무 감정도 없는 듯한 표정으로 바흐의 영국 모음곡 2번 전주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군인들이 MP40을 정말 쉴새없이 난사해대는 통에 총소리와 피아노 연주가 함께 울려퍼지는 아이러니컬한 장면은 나치의 광기가 위대한 음악가를 배출하기도 한 문명인들에 의한 것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 피아노 소리를 듣고 온 다른 독일군들이 나누는 대화 또한 인상적인데, 한 병사가 바흐냐고 묻자 다른 병사가 모차르트의 곡이라고 말해준다.[15] 살육의 현장에서도 장교가 치고 있는 곡이 마치 열심히 일하다 쉬는 것처럼 바흐냐, 모차르트냐만 신경쓰고 있는 피도 눈물도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바흐의 곡임에도 모차르트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이 교양있는 체 하지만 실상은 무지한 상태임을 꼬집는 장면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 신체검사가 끝난 직후 노동가능으로 분류되어 좋아하던 유대인들이 아이들이 실려가는 트럭을 보고 그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눈이 뒤집혀 일제히 달려들고 경비병들이 통제에 실패하는 모습도 굉장한 명장면. 아이들은 어디 좋은 데라도 가는 줄 알고 어른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가슴아픈 모습이 나온다.[16] 서슬퍼렇던 SS들도 이 상황에선 감히 군중에게 쏘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서만 쏘고 단순히 시위를 말리듯 붙잡기만 한다.
  • 쉰들러가 떠난 이후, 유대인들이 공장 입구의 땅바닥에서 잠을 자는 것은 유대인들의 추모 풍습이다. 실제로 유대교 전통 장례식 때는, 유족들이 찬 마루바닥에서 자며 고인을 추모한다. 지옥 행성의 죄수에도 이게 묘사되어 있다.
  • 소련군 장교가 나타나자, 유대인들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했을 때 그 장교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라면 동쪽으로 가진 않을 거다. 그들은 당신들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로 전쟁이 끝난 직후까지도, 나치가 점령했었던 동유럽 지방에서는 유대인 차별 의식이 짙게 남아있었음을 보여주는 대사다.
  • 영화 마지막 장면에 오스카 쉰들러의 노력으로 생존한 유대인들과 그 후손, 당시 생존했던 에밀리 쉰들러 여사 등이 자신들을 연기한 배우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쉰들러 묘지에 참배하는 모습이 나온다. 즉 당시 실제로 생존한 본인들이 참배하는 것을 찍은 것이다. 특히 쉰들러의 묘에 장미꽃을 헌화하는 이는 바로 극중에서 쉰들러 역을 맡은 배우 리암 니슨. 카메라가 멀리서 촬영하는 시점이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충분히 알아볼 수는 있는 수준이다.
  • 2018년 재개봉시 스필버그는 집단적 증오가 조직화되고 산업화되면 학살이 일어난다고 지금이 (개봉 당시보다) 더욱 위험한 시대라는 발언을 하였다.##
  • 스필버그는 대학 영화과에 다니다 중퇴후 34년만에 졸업을 위해 재등록했는데 영화제작 수업 기말 과제로 이 영화를 제출했고 우수한 학점으로 수강 완료를 하였다고 한다.#
  • 한국판 아몬 괴트 성우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직접 지명했다. 그리고 한국판 성우 강구한은 호연을 함으로서 보답하였다.
  • 빨간 코트를 입은 여자아이를 맡은 배우는 스필버그와 18세가 되면 이 영화를 보겠다라고 약속했음에도, 11살 때 처음 영화를 봤다고 한다. 엄청 끔찍하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자랑스러웠다고 한다.

[1] 쉰들러의 공장의 회계사. 쉰들러의 심복으로 그 역시 유대인이었으며, 쉰들러 덕에 목숨을 건진 이들 중의 하나였다.[2] 대사집에선 twelve로 나오지만 영상에선 eleven이다.[3] 금으로 만든 나치 당원 뱃지.[4] 자기 공장을 나서다가 자신이 살린 유대인들에게 탈무드 글귀가 새겨진 금반지를 선물받자 오열하며 자책한다. 참고로 이 장면은 원작 소설에는 없었기 때문에 쉰들러를 너무 영웅화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5] 하지만 그렇게 미화적인 장면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핵심 정서인 '''양심과 인간성'''을 강조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인이라도 5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던 사람이 3명밖에 구하지 못했다면 충분히 선한 일을 했음에도 2명이 죽은 것이 자기 책임인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다. 실제로 남의 생사와 자주 마주하는 의사나 소방관들도 빠지기 쉬운 감정이다. 극중에서 인간성의 대비가 극단적이기 때문에 영웅화로 느껴지는 것이다. 조금 차갑게 해석해 본다면, 양심적인 선택을 한 사람이 오히려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정작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쉰들러가 나중에 당한 일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래도 그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오래 살지는''' 못했다.[6] 정확히는 명단에는 1,098명이 기록되어 있고 150여 명을 더 구했기 때문에 1,200여 명이 된다. 이 때문에 쉰들러의 묘비에도 1,200명이라고 적혀 있다.[7] 가끔씩 인터넷 중고서점에 물량이 풀리기는 한다.[8] 폴란스키는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부모는 다 무신론자이고 본인도 모태 무신론자다.[9] 위 폴란드 노인의 반유대주의적 폭언은 저 사람이 친독파 네오 나치여서가 아니라 좀 복잡한 사연이 있다. 반유대주의는 원래 독일뿐만 아니라 폴란드나 우크라이나, 발트 3국등 동유럽에서도 팽배했는데, 그 이유는 1차 대전의 패전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돌렸던 나치 독일과는 좀 다른 이유였다. 수백년 전 동유럽을 지배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에 정권을 장악한 폴란드인 귀족들은 독일인유대인 상인들을 들여와 경제권을 넘겨주었고, 자국 농민들이 부르주아로 성장하지 못하게끔 막았다. 반면 연방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던 폴란드인우크라이나인 농노들은 이들 폴란드 귀족과 독일, 유대 상인들의 밑에서 오랜 기간 착취당해야 했다. 이때 들어온 유대인들은 농노제가 없어진 이후에도, 그리고 나치가 쳐들어오기 직전까지도 폴란드 사회의 상류층에 위치해 있었다. 이 때문에 폴란드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 그 중에서도 서민들은 자국을 갈라먹고 식민지배하면서 학살을 일삼았던 독일(+러시아)뿐만 아니라 연방 시절에 폴란드 귀족에 빌붙었던 유대인들도 싫어했다. 거기다 나치 독일에게 유대인만 학살당한 게 아님에도 유대인 홀로코스트만 유명하니, 저 노인처럼 히틀러의 학살에서 유대인만 강조되는 것을 불쾌해하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한다.[10] '''물론''' 저 노인이 스필버그에게 품었을 불만처럼 독일의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 학살 또한 유대인 학살과 동등하게 재조명되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서방연합군과 소련의 공적에 가려 있는, 자유 폴란드군 및 기타 레지스탕스들이 바르샤바리비우 등지에서 불리한 상황에서도 끈덕지게 독일에 영웅적으로 항전했던 기록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짚고 넘어갈 점은 동시에 '''역사적인 반유대주의 때문에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옹호하거나 적극적으로 돕는 이들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도 18분 43초~54초에 폴란드인들이 게토로 이주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흙덩이를 던지면서 폭언을 퍼붓는 장면이 묘사된다. 하지만 현재 폴란드 정부는 과도한 민족주의와 '독일에 저항한 폴란드' 담론 활성화에 치우쳐 자신들의 유대인 학살을 망각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는 전술한 적대감 때문에 폴란드인 학살을 띄우면서 유대인 학살을 폄훼하기도 한다. 폴란드인 학살, 우크라이나인 학살, 유대인 학살 모두 각각 동등하게 발굴되고 알려져야 하지만, 수백년간 수많은 민족들이 흩어져 살면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집어지고, 중층되고, 얽히고설킨 동유럽의 상황은 이를 힘들게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치에게 억압받던 폴란드-우크라이나-유대 세 민족은 서로를 돕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지워지지 않은 역사적인 적대감과 결합한 생존 본능,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독일 때문에 서로에게, 특히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이 유대인들에게 몹쓸 짓도 많이 했다. 나치 독일이라면 학을 떼는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들이 가진 이런 복잡한 반유대주의 정서는 매우 유명하고, 현재까지 국제적으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11] 예고편에서 알 수 있듯, 25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에서 2018년 12월에 재개봉이 확정되었고, 대한민국에서도 2019년 1월 재개봉한다.[12] 영화에서는 폴덱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13] 쉰들러의 대사에 따르면 둘이 힘을 합치면 '''4천 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 만약 그 사람이 쉰들러의 설득에 응해서 둘 다 성공했다면, 쉰들러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했다고 해서 역사에 더 위대한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쉰들러가 1100명을 구했으니, 3천 명 가까이 구한 그 공장주가 더 주목을 받게 되는 건 당연하다.[14] 독일 배우로, 24년 뒤 나치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설정의 대체역사물 게임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에서 아돌프 히틀러를 연기한다.[15] 의미심장하게도 이 부분은 영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나온다.("Was ist das? Ist bach?" "Nein, Mozart")[16] 노동불가능으로 분류되는 아이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도착 즉시 가스실로 보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