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
1. 개요
이종희는 의열단에 참여하고 광복군 제 1지대를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가명으로 이인홍(李仁洪), 이집중(李集中)이 있다.
2. 생애
이종희의 초기 생애는 전혀 알려져있지 않다. 상술한 두 가명을 썼기 때문에 일제는 패망때까지 이종희의 본명을 몰랐으며, 광복 후에 관련 학자들이 이종희라는 본명을 겨우 찾아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체를 꽁꽁 숨기는 바람에 비밀결사 독립운동가로서는 성공했지만 초기 생애나 출신도 밝힐 수 없게 됐다.
이종희는 1924년 10월에 일제의 기록에서 의열단원으로 기록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1919년 3.1 운동의 영향으로 중국으로 망명해 활동했다는 설과, 평범하게 설렁탕집을 운영하다 임시정부 설립 후 연통제나 교통국에 스카우트 되었다는 설이 있다.
아무튼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던 이종희는 1925년에 일제의 밀정인 김달하를 처단한다. 김달하는 구한말에 외교부 관리로 활동하다 국권침탈 후 중국에서 밀정짓을 하다가 처단된 것. 중국 신문에도 이 일이 올라왔으나 김달하를 죽어 마땅한 놈이라고 표현하며 동정을 느끼는 사람은 친일파 말고 아무도 없었다.
1925년 이후에는 의열단이 비밀리에 암살과 파괴를 벌이는 형태에서 무장단체 비슷한 활동으로 노선을 바꾼다. 이종희도 이 방침에 따라 황표군관학교에 입학해 중국군 초급장교가 된다.
만주사변이 벌어지고 의열단은 난징으로 본거지를 옮긴다. 그 뒤 중국 국민당과 협력하여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설립하고 중대장으로 복무하던 이종희는 김원봉의 요청으로 학교로 와서 교관을 맡는다. 그리고 김원봉과 함께 조선의용대와 조선의용군을 맡으며 독립군을 이끈다
1940년대 이후에는 김원봉 휘하의 조선의용대가 임시정부 하의 광복군 1지대로 개편된다. 거기서 김원봉은 부사령관을 맡고 오랜 동료인 이종희도 총무조장을 맡으며 활약한다. 그런데 1944년에 지병으로 인해 활동하기 힘들어지고 병이 낫지 않은 채 광복을 맞이한다.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을 포함한 독립운동가들이 개인 자격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돌아오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인물들이 많았다. 이종희도 가까스로 부산항에 도착하는 배를 타고 4개월간 고국 땅을 밟기 위해 출발했는데, 안타깝게도 부산에 도착하기 하루 전에 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다.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다.
3. 참고 자료
- 정상규 저.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휴먼큐브. 2017년. 259~26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