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신
1. 개요
董秦/李忠臣
(716년~784년)
중국 당나라 중기의 장수.
2. 생애
이충신은 716년에 태어났으며, 대대로 집안이 유주 계현에 살았고, 본명은 동진(董秦)이었다. 그의 증조부인 동문욱(董文昱)은 당나라에서 체주(棣州) 자사를 지냈고, 조부인 동현장(董玄獎)은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 녹사참군(錄事參軍)을 지냈고, 부친인 동신교(董神嶠)가 하내부(河內府) 절충(折沖)을 지냈다고 한다.
동진은 어린 시절에 종군하여, 유주 절도사 설초옥, 장수규, 안록산을 섬겼으며 절충낭장(折沖郎將), 장군동정(將軍同正)[1] , 평로군(平盧軍) 선봉사(先鋒使)까지 이르렀다.
안록산의 난이 발생하자, 동진은 유정신(劉正臣)을 따라 여지회(呂知晦)를 죽이고 유정신을 절도사로 추대하였으며, 자신은 병마사로 발탁된다. 또한 관군에 서서 곽자의, 이광필과 함께 반란군 토벌에 가담하였고, 여러 차례에 걸쳐 공적을 세워 759년에는 이충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고 농서군공으로 책봉된다.
섬서 절도사 곽영예와 신책 절도사 위백옥이 진수할 때, 이충신은 이들의 절도병마사가 되었고, 이후에는 태상경 동정, 회서11주 절도사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안주 자사, 채주 자사를 거쳐 검교사공과 변주 자사로 임명된다.
이렇게 이충신은 당나라에서 여러 공적을 세웠지만, 본래 성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였으며, 여색을 좋아하여 수하 장리의 처자들과 간통하면서 군중의 원한을 샀다. 게다가 이충신의 군대는 기강이 해이해져, 백성들의 불만도 산다. 이충신은 자신의 매부인 장혜광(張惠光)을 아장으로 삼았다. 하지만 장혜광은 이충신의 신임을 등에 업고 난폭한 짓을 자행하였다. 장혜광은 이충신의 절도부사가 된 이후에도 포악한 짓을 자행하였고, 이충신에 의해 아장으로 임명된 장혜광의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한 인물이었다.
결국 군중의 누적된 불만이 폭발하여, 대력 14년(779년) 이충신은 자신이 신임하는 장수인 이희열의 쿠데타로 변주에서 쫓겨나 단기필마로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달아난다. 이충신의 총애를 믿고 난폭하게 행동했던 장혜광 부자도 이때 이희열에 의해 살해되었다. 조정에서는 이충신의 잘못에 대해 추궁하지 않고 오히려 검교사공, 평장사로 삼았다.
이후, 대종이 세상을 떠나고 대종의 태자인 덕종이 즉위한다. 이충신은 고집이 세고 솔직하였지만, 글자를 모르고 독서를 모르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관직은 검교사공[2] , 평장사에 있었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결국 이충신의 이러한 울분은 주차의 난에서 이충신이 주차에게 가담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주차는 황제가 된 뒤에 이충신을 사공, 시중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784년 주차가 패배하자, 이충신은 번천에 있는 저택으로 달아난다. 이충신은 결국 이성(李晟)의 추격을 받고 붙잡혀 처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