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야바르만 7세
ជ័យវរ្ម័នទី៧, Jayavarman VII
(1125 ~ 1218)
크메르 왕국의 왕으로, 크메르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주요 업적으로는 영토 확장과 앙코르 톰 건설 등이 있다.
자야바르만 7세는 1125년 다란인드라반 2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 크메르 왕국은 수리야바르만 2세 사후 내전과 참족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러다 참족이 톤레사프 호수를 통해 크메르 왕국을 기습 공격하여 수도를 점령하고 왕이었던 트리부바나디티야바르만을 죽이자, 그는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승리하여 참족을 몰아냈다. 그 후 1181년 56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그는 37년간 나라를 다스리다 1218년에 사망했다.
특이하게도 그는 크메르 왕들 중 몇 안되는 대승불교 신자였다. 그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는 데에 두 부인의 많은 영향이 있었다.
왕위에 오른 후에도 참족의 침입을 몇 차례 물리쳤으며, 대외 정복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다.
그의 통치 기간동안 정복 활동뿐만 아니라 건축 사업도 활발했다. 앙코르 왕국의 수도[1] 였던 곳이자 캄포디아의 명소인 앙코르 톰이 자야바르만 7세 시기에 지어진 것이며, 앙코르 톰에는 바이욘, 프레아 칸, 타 프롬 등 수많은 건축물들이 지어졌다. 그의 어머니를 위해 지은 타 프롬 사원은 80,000명을 수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건축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그 외 도로, 병원, 쉼터 등 기반 시설도 많이 세워졌다.
대승불교 신자여서 빈민 구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그의 치세 동안 102개의 전통 병원들이 세워졌다.
크메르 왕국의 왕들 중 캄보디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왕이다. 캄보디아 시엔립에는 그의 이름을 딴 병원이 있을 정도. #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에서의 세종대왕 급이라고 보면 된다.
문명 6에서 크메르 문명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징기스칸 4에서도 시나리오 1의 앙코르 왕조 군주로 등장한다. 그냥 '자야바르만'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인도 문화권 군주 중에서는 능력치가 고른 만능형 군주.
(1125 ~ 1218)
1. 개요
크메르 왕국의 왕으로, 크메르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주요 업적으로는 영토 확장과 앙코르 톰 건설 등이 있다.
2. 생애
자야바르만 7세는 1125년 다란인드라반 2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 크메르 왕국은 수리야바르만 2세 사후 내전과 참족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러다 참족이 톤레사프 호수를 통해 크메르 왕국을 기습 공격하여 수도를 점령하고 왕이었던 트리부바나디티야바르만을 죽이자, 그는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승리하여 참족을 몰아냈다. 그 후 1181년 56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그는 37년간 나라를 다스리다 1218년에 사망했다.
특이하게도 그는 크메르 왕들 중 몇 안되는 대승불교 신자였다. 그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는 데에 두 부인의 많은 영향이 있었다.
3. 업적
왕위에 오른 후에도 참족의 침입을 몇 차례 물리쳤으며, 대외 정복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다.
그의 통치 기간동안 정복 활동뿐만 아니라 건축 사업도 활발했다. 앙코르 왕국의 수도[1] 였던 곳이자 캄포디아의 명소인 앙코르 톰이 자야바르만 7세 시기에 지어진 것이며, 앙코르 톰에는 바이욘, 프레아 칸, 타 프롬 등 수많은 건축물들이 지어졌다. 그의 어머니를 위해 지은 타 프롬 사원은 80,000명을 수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건축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그 외 도로, 병원, 쉼터 등 기반 시설도 많이 세워졌다.
대승불교 신자여서 빈민 구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그의 치세 동안 102개의 전통 병원들이 세워졌다.
4. 기타
크메르 왕국의 왕들 중 캄보디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왕이다. 캄보디아 시엔립에는 그의 이름을 딴 병원이 있을 정도. #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에서의 세종대왕 급이라고 보면 된다.
문명 6에서 크메르 문명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징기스칸 4에서도 시나리오 1의 앙코르 왕조 군주로 등장한다. 그냥 '자야바르만'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인도 문화권 군주 중에서는 능력치가 고른 만능형 군주.
[1] 원래 수도였던 야소다라푸라가 참족의 침입으로 약탈당한 후 자야바르만 7세가 재건한 수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