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데리다

 



[image]
'''Jacques Derrida'''
'''이름'''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
'''출생'''
1930년 7월 15일
(알제리 엘 비아르)
'''사망'''
2004년 10월 9일 (향년 73세)
'''국적'''
프랑스 [image]
'''직업'''
철학자
1. 개요
2. 사상
3. 애도와 환대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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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세기 후반 프랑스, 미국의 포스트 모던 철학과 예일 학파를 대표하는 해체주의 철학자.[1] 에꼴 노르말 쉬페리외르(고등사범학교) 출신이다.
알제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는 유대인이었으며 그로 인한 차별과 서구 문명의 위선을 경험하며 자랐다. 이 차별의 경험은 그가 서양철학을 비판하고 해체(deconstruction)와 차연(difference)이라는 개념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서양의 형이상학적 철학과 로고스중심주의를 비판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들을 바탕으로 서구적인 이항대립의 체계를 해체하고자 했다. 한편 그는 차연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이는 차이이며 동시에 연기(postpone)인 것으로, 언어적 의미의 고정 불가능성과 연속적인 미끄러짐을 의미한다.
1967년에 한꺼번에 발표한 <목소리와 현상>, <그라마톨로지(기록학)에 대하여>, <문자기록과 차이>로[2] 프랑스의 신성 철학자로 떠올랐고, 1980년대 이후, 정확히 1990년대 초반부터는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오랜 침묵에서 벗어나 맑시즘, 민주주의, 유럽 국제법, 이민, 테러리즘, 종교 등 광범위한 주제에 걸쳐 적극적 발언을 내기 시작했다. 그가 오랫 동안 정치적 발언을 삼가고 '지적 유희'만 일삼는다는 비판을 받아왔기에 이러한 태도 전환을 '정치적, 윤리적 전회'라 부르기도 하지만 정작 데리다 본인은 부인했다. 이 시기에 쓴 대표작이 <법의 힘>, <마르크스의 유령들>, <환대에 대하여>, <우정의 정치학> 등 이다. 저술은 80여 권이 넘으며, 인터뷰나 논문은 100여 편이 넘게 남겼다.

2. 사상



계보적으로 니체의 적자이자 니체적 사유를 현상학적 사유의 비판으로 계승해내고 있는 철학자라 해석하는 견해가 주류이다. 들뢰즈, 푸코 등이 후기구조주의적인 방식으로 니체를 계승했다면, 데리다는 문예비평과 후기구조주의를 흡수하면서도 보다 정통적인 철학적 입장들에 대한 비판에 집중했다. 초기 데리다의 주요한 개념들, 이를테면 음성 언어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문자 언어의 조건(형이상학적인 근원과는 구분되는)으로서의 그라마톨로지[3], 에크리튀르[4]와 같은 용어들, 그리고 시대(époque)와 울타리(clôture) 개념에 대한 사유들은 롤랑 바르트를 비롯한 당대 학자들의 영향을 수용한 결과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니체적인 시대성 사유, 니체적인 비극 사유와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일반적으로 이항대립의 종언(fin)을 이야기한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다만 이항대립의 경계, 울타리를 이야기할 뿐 종언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니체가 이항대립적 사유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구적 사유의 근본이며 벗어날 수 없는 조건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데리다 역시나 이항대립을 해체하되 이항대립 그 자체가 종결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기에 제시되는 개념이 울타리라고 하는 개념으로, 그것은 어떤 이항대립적인 대립쌍의 경계선을 지시하는 개념이고, 헤겔적인 지양체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중용과는 다른, 니체적인 비극 개념에 더욱 가까운 양가성, 경계성에 집중하는 사유이다. 이를테면 개요 문단에서도 언급된 '차연'같은 개념의 경우, 시간적인 지연과 공간적인 차이의 경계적(혹은 양가적) 사유로 이해된다. 서구문명에서 시간은 늘 공간에 대해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하이데거의 실존적 사유에서는 인간 존재의 근거로까지도 이해되는 반면, 공간성이라는 개념은 늘 부차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한 배경에서 데리다는 시간성과 공간성이라는 대립쌍의 양가적인 속성을 포괄하는, 에크리튀르의 시대에 맞는 경계적 사유로 차연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의/기표의 이항대립과 같은 언어학적 형이상학 비판 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울타리 개념에 근거한 인식론은 존재론으로 이어지고, 데리다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도식을 존재 숭배이자 형이상학의 또 다른 형태라고 비판하며 유령이라는 개념에 대해 논의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하이데거까지를 포함한 기존의 존재론은 현전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이라는 이항대립에 근거하고 있는데, 하이데거가 제시하는 존재라는 개념도 서구철학의 전통에 비추어 본다면 현전적인 개념이며, 그러한 이항대립을 해체하기 위해 현전과 부재의 울타리에 있는 존재로 유령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데리다의 후기 철학은 그런 점에서 '유령학'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유령 개념은 문자 언어의 조건이라는 에크리튀르가 현전하지도 부재하지도 않으나 문자의 근거로 존재하는 유령적인 것으로 제시됨으로써 그의 초기 사상에서도 이미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유령학적 논의는 이후 후기식민지 담론과 스피박의 논의와 결합, 서발턴이라는 존재 양식에 대한 담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3. 애도와 환대


데리다는 '애도'와 '환대'라는 개념을 통해 이항대립의 불가능성을 서술한다.
나라의 국경이 이민자들에게 개방될 때, 조건적인 환대는 우리를 불가능성과의 관계 속에 자리 잡게 한다. 불가능한 “더 큰 환대”는 우리의 “조건적 환대”라는 행위 속에 길들어 있다. 여기서 완전히 환대하고자 하는 우리의 시도가 실패할 때, 불가능성은 나의 시도 속에 살아 있으며, 나를 타자와 새로운 관계에 들어서도록 유도한다.
“순수 환대”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든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러한 순수환대는 우리의 삶 속에서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불가능성”은 우리 세상의 사건들을 해체하고 변형하기 위해 제공할 것이 있다. 우리는 극복할 수 없는 이 “불가능성” 안에서 타자를 우리 안에 살아 있게 한다. 애도를 예시로 들자면, 애도가 완전히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당되는 타자의 상실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타자의 상실을 극복해 나가는 것을 애도의 실패로 인식한다. 즉, 애도는 성공하려면 동시에 실패해야 하는 행위인 것이다. 타자에 대한 논의 역시 이와 유사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타자”와 동일하다고 가정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부모로부터 독립된, 다른 존재로 인식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타자와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타자를 순수한 타자로 수용하길 욕망하더라도, 타자에 대한 우리의 체험은 항상 우리의 “조건들” 안에서 형성되며 제한된다. 따라서 타자 역시 데리다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불가능성은 우리는 항상 자기-폐쇄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일상적 체험이다. 우리가 타자에 대해 “순수 환대”하고자 하는 시도는 불가피하게 실패하지만, 그 불가능한 시도를 통해서 나는 해당 타자와 다른 종류의 관계 속에 들어서도록 하며, 그 과정에서 “나”는 폐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정체성을 새로이 구성하며 존재하게 된다.

4. 여담


상당한 훈남에 청년기에는 프로 축구 선수를 꿈꿀 만큼 활동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사진들을 봐도 꽤 미중년, 미노년(?)이다. 여러모로 전형적인 철학자의 이미지와는 대비되는 인물.
번역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철학자로 악명이 높다. 고려대 진태원 교수는 한국 데리다 번역의 문제점을 오랫 동안 고발해 오면서 또한 스스로 데리다 번역의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데리다 스스로 자신의 해체 철학을 글쓰기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의적인 표현을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의미의 반복 (불)가능성을 직접 실천하는데, 불어와 문장/문법 구조가 완전히 다른 한국어로 그 미묘한 뜻을 온전히 전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런 사정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채 번역이 진행되어 한국에 수용된 데리다 저서는 대부분이 오역 문제를 안고 있으며, 한국에서 데리다 수용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걸림돌 중 하나이다. 데리다의 글쓰기는 아주 난해하기로 악명 높고 무의미한 글로 지적 허세를 부렸다는 말까지 듣는다.

[1] 단, 자크 데리다 본인은 사람들이 자신을 해체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또한 '포스트모더니스트'니 '포스트구조주의자' 따위로 부르는 것도 반기지 않았다. 이는 데리다의 철학 사상을 고려해보면 당연한데, 그의 철학은 의미의 '반복 (불)가능성', 즉 의미란 것은 반복 가능함(동일성)과 동시에 반복 불가능함(차이)을 내정하게 되며, 따라서 대상의 의미를 고정적으로 규정하거나 환원할 수 없음을 핵심 주제로 하기 때문이다. 한편, '포스트 모던'과 '예일 학파'를 대표한다는 것 역시 미국 학계에서 일방적으로 붙인 측면이 크다.[2] 한국에는 <글쓰기와 차이>(동문선)로 번역되어 있으나 심각한 오역이라는 지적이 있다.[3] 구조주의적인 의미론을 대체하는 기록학의 개념으로, 언어적 의미의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과학적 언어학'에 반대하고, 문자언어를 언어의 조건으로 제시하며 내세운 개념[4] 글쓰는 행위 그 자체, 언어, 서체, 글쓰기의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맥락 등을 포괄하는 넓은 범위의 개념으로, 음성과는 분리되는 문자언어가 기능할 수 있는 고유한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