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image] '''알제리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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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인민민주공화국'''
'''الجمهورية الجزائرية الديمقراطية الشعبية'''
'''République algérienne démocratique et populair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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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بالشّعب وللشّعب'''
'''Du peuple et au peuple'''
'''국민에 의하여, 국민을 위하여'''
'''국가 정보'''
<colcolor=#006230> '''국가'''
맹세(아랍어: نشيد وطني جزائري)
'''면적'''
2,381,741㎢
'''인구'''
44,616,626(2021년) | 세계 34위
'''수도'''
알제
'''시차'''
UTC+1
'''공용어'''
아랍어, 베르베르어
'''국민어'''
아랍어, 베르베르어 (헌법상), 프랑스어 (사무 및 교육용)
'''종교'''
이슬람교(수니파)
'''화폐'''
디나르 (DZD)
'''GDP'''
명목 1683억 1800만$(2016)
'''1인당 GDP'''
명목 4,229$(2019), PPP 15,765$(2019)
'''국부'''
$2,520억 |세계 62위(2019년)
'''정치 체제'''
이원집정부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15위'''(2020년)[권위주의]
'''대통령'''
압델마지드 테분 (Abdelmadjid Tebboune)
'''총리'''
압델라지즈 제라드(Abdelaziz Djerad)
'''남북수교현황'''
'''남북동시수교'''
(대한민국: 1990년, 북한: 1963년)
'''대사관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서울) 대사관로
'''여행경보'''
'''여행자제'''
적색경보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
'''철수권고'''
카빌리 지역 6개주 산악지역(부메르데스, 부아라, 티지 우주, 베자이아, 보르즈부아레리즈, 지젤), 국경지역(튀니지(테베사, 엘웨드 동부, 오아글라 동부), 리비아(일리지 동부), 니제르ㆍ말리ㆍ모리타니(타만라셋 남부, 아드라르 남서부, 틴두프 남서부))[1]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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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징
2.1. 국호
2.2. 국기
2.3. 국가
5. 경제와 자원
6. 관광
8. 종교와 문화
8.1. 종교 탄압과 현재
8.2. 어느 정도 세속적인 문화
8.3. 언어
9. 외교
10. 문서가 있는 알제리의 도시
11. 알제리 캐릭터
12. 관련 문서


1. 개요


아프리카 북부 마그레브 지역에 위치한 아랍-베르베르 국가. 수도는 알제.
서쪽으로 모로코, 서사하라[2] ,모리타니, 남쪽으로 말리, 니제르, 동쪽으로 리비아, 튀니지와 국경을 접한다. 그리고 직접 국경을 접하진 않았지만 북쪽의 지중해만 건너면 바로 있는 주변국가들로는 스페인, 프랑스가 있으며 지브롤터와도 멀지 않은 편이다. 마르세유에서 알제까지의 거리가 마르세유에서 파리의 거리와 비슷하다!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가장 땅이 넓은 나라'''이다. 동시에 세계에서 10번째로 넓은 나라다. 아랍연맹 회원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영토가 넓으며, 북아프리카를 중동에 포함시킬 경우 중동에서 가장 넓은 나라가 된다. 국가별 국토 면적 순위 참조. 더불어 이슬람 다수 나라에서 가장 넓은 나라이다.(2번째가 사우디아라비아, 3번째가 인도네시아). 2011년 7월 9일부로 남수단이 독립하기 전에는 수단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10번째로 넓고, 그리고 아랍연맹에서 가장 넓은 나라였고 알제리는 아프리카에서 수단 다음으로 2번째, 세계에서 11번째로 넓으며 아랍연맹에서 2번째로 땅이 넓은 나라였지만, 남수단의 독립으로 알제리가 아프리카 및 아랍연맹 1위로 올라섰다. 여담으로 남수단 독립 이후로 아랍연맹에서 2번째로 넓은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아랍연맹에서는 이 두 나라만 면적이 20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다. 다만 그 중 대부분이 사하라라서 그 넓은 땅이 돈도 안되고 사람도 못사는 게 문제다. 그나마 사우디아라비아와 마찬가지로 그 쓸모없는 땅[3]에 자원은 많은 게 다행이라고 할까.
석유(세계 4위)와 천연가스(세계 5위), 망간(세계 3위), 수은(세계 3위), (세계 5위), 코발트(세계 2위)같은 자원 매장량 및 세계 점유율이 엄청나며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광석 및 석탄 및 온갖 자원이 수두룩하다. 땅이 넓다 보니 따스한 온대 지중해성 기후에서부터 더운 사막성 기후와 온대 기후 또는 스텝 기후지만 겨울이 내리기도 하고 추운 기후까지 골고루 존재한다.
바트나(Batna)는 알제리에서 가장 낮은 온도를 기록한 곳이다. 이곳의 최저기온 기록은 1945년 1월 4일의 영하 20℃. 아프리카 대륙에서 손꼽히는 기록이다. 위도상으로는 전라북도 고창군이나 울산광역시(북위 35도 30분)와 비슷한 위도에 있다.
북부의 지중해 연안과 아틀라스 산맥이 지나가는 고원이나 산지가 있다. 바트나가 바로 그 아틀라스 산맥이 지나는 고원, 산지 쪽에 위치해 있다. 바트나의 해발고도는 1048m이다. 이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사하라 사막에 속한다.

2. 상징



2.1. 국호


프랑스어 국호 '알제리(Algérie)'에서 유래했다. 알제리의 어원은 아랍어 '알자자이르(الجزائر / al-Jazā'ir)'이며 알제리 아랍어 방언으로는 '알자이르(الدزاير / al-Dzāyīr)', 베르베르어로는 '자예르(ⴷⵣⴰⵢⵔ / Dzayer)'이다. 알제리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dz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알자자이르의 '알(ال)'은 아랍어 정관사이다. 통상적으로 아랍어권에선 국호에 대해서 정관사 알을 포함해 쓰지만 대내외적인 외래어 국호에서는 이를 생략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영향으로 유독 알제리만 세계적으로 정관사를 포함한 국호가 알려졌다.
원래 알자자이르는 수도 알제를 가리키는 아랍어 명칭이다. 수도 이름이 곧 국호가 된 것이다. 자자이르는 '자지라(جزيرة / Jazīra, '')'의 복수형 표현이다. 현재는 매립으로 인해 섬이 사라졌지만 베르베르인이 이곳에 처음 도시를 세울 시기에는 앞바다에 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제리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프랑스에서는 알자자이르를 '알제(Alger)'로 표기했고 국호에 대해서는 '~의 땅'이라는 의미의 접사 '-ie'를 붙여서 '알제리(Algérie)'라 지칭했다. 한국어 명칭은 이 프랑스어 명칭을 차용한 것이다. 다른 언어권에서는 '-ie'를 자국어식 접미사로 바꾼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영어의 '앨지어리어(Algeria)'나 독일어의 '알게리엔(Algerien)' 등이 대표적이다.
알제리의 정식 국호는 '알제리 인민민주공화국'이다. 이는 알제리 독립운동가들이 반불 독립운동을 벌이면서 소련의 도움을 많이 받고 사회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적 경제체제를 도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알제리는 독립 후 제3세계 진영에 속하면서도 오랫동안 친소 반미 경향을 보였다. 다만 21세기에 들어서 외교성향은 중립적으로 변했다.

2.2. 국기


알제리의 국기는 왼편에 초록색, 오른편에 흰색이 들어가고 중간에 붉은색 초승달과 별을 박아둔 국기이다. 초록색은 번영을, 하얀색은 순결과 평화를, 붉은색은 독립전쟁 당시 인민들이 흘린 피, 초승달과 별은 국교인 이슬람을 상징한다.
이 국기는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알제리 독립진영에서 1958년에 채택했으며, 1962년에 독립할 때 정식으로 국기로 채택되었다.

2.3. 국가




3. 역사




4. 군사




5. 경제와 자원


경제적으로 자원수출이 전체 수출량 97~8%를 차지할 정도로 자원 수출량 의존이 너무 심한 게 문제. 때문에 자국 공업 생산 및 경제적 토대가 거의 없고, 알제리의 경제적인 위상도 천연자원의 가격에 의해 오르락 내리락 하고있을 정도로 불안정하다. 뭐, 알제리 내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려고 했던건 아니었지만 1980년대 유가 급락과 부채급증으로 중공업 투자정책이 실패로 끝나면서 망했다. 이것이 알제리 내전이 터진 이유 중 하나다.
사막이 많다지만 땅이 넓다보니 풍요롭고 따뜻한 기후를 가진 농경지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밀이나 여러 자국 소비되는 오렌지포도같은 과일과 채소와 올리브대추야자가 많이 재배되고 있어서인지 여기도 먹을게 꽤 싸다.
프랑스는 학살까지 저지르면서 여길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프랑스 제3공화국(1870~1940) 시절에 프랑스 헌법 상 '''프랑스 본토는 유럽 프랑스와 알제리 프랑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른 프랑스의 식민지는 프랑스 헌법 상 프랑스 땅이 아닌 별도의 통치기구로 관리했는데, 오로지 알제리만 프랑스 본토로 구성하여 프랑스 헌법을 적용했을 정도였다. 2차대전 이후에도 샤를 드골쿠데타 이전까지는 또다시 알제리를 프랑스 본토로 취급[4]했었다. 샤를 드 골이 쿠데타를 통해 프랑스 정권을 잡으면서 그제서야 알제리를 식민지 속주로 변경하고 이후에 독립시킨 것.
2차대전 당시 연합군 장군들 및 정치가에게 프랑스 측은 알제리는 프랑스 본토나 마찬가지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유는 알제리에 막대한 자원과 같이 풍요로운 농경지와 경치좋은 피서지에서부터 온갖 발전가능성이 큰 지리적 요소(수력 및 풍력같은 자연 자원의 개발 여건)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고대 유적지에서부터 온갖 관광자원이 될 것들도 꽤 많기에, 세계적인 관광 대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 그런 장점들 덕에 외세의 억압 속에서 빚어진 갈등과 여러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도 자원 수출에 너무 의존하는 천수답 경제의 전형적인 문제점을 겪고 있다. 아랍의 봄은 고유가 시기다보니 일단 지원금을 내주는 것으로 어떻게든 때웠지만 산업 다각화에 실패해서 2010년대 중반 들면서 유가가 급속히 하락하여 정부 재정이 급속히 줄어드는 바람에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이런 내부적 문제도 있는데다가 실업도 심각하여 청년실업률도 정부의 발표로는 10%를 넘지만 실제론 30%에 달하는 수준이다보니 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프랑스 및 유럽으로 가서 일하고 있는 처지이다. 설상가상으로 알제리는 갈수록 심해지는 사막화로 인해 물부족도 심각하며 식료품 가격들까지 계속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알제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 이집트에서부터 북아프리카와 아랍 전 지역에서부터 이스라엘과 터키와 이란까지도 똑같이 사막화 및 물부족 같은 문제들로 시달리고 있지만 말이다.

6. 관광


[image]
북아프리카의 국가 중 한국과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은 국가이며, 도착 비자나 전자 비자도 없어서 사전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한국과의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되어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주변의 튀니지, 모로코, 도착 비자나 전자비자를 받을 수 있는 이집트와 달리 등과 달리 사전에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만 갈수 있는데다가, 발급이 워낙 번거로울 뿐 만 아니라[5] 원칙적으로 외국인이 개별적으로 육상으로 이동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6] 여행 이야기가 많은 모로코와 튀니지와 달리 알제리는 여행을 갔다오거나 이들 국경을 접한 3개국 전체를 여행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별로 없는 편이다.
하지만 관광국가로서 인지도가 낮아서 그렇지, 알제리에도 좋은 관광지가 굉장히 많다. 한 예로 팀가드(Timgad)는 고대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의 명으로 건립된 도시로서 로마제국 당시의 도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받는다.[7] 위의 사진은 트라야누스 황제 개선문이다. 다만 팀가드를 직접 다녀온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수도 알제의 구시가지 카스바(Casbah)도 유네야기가 많은 모로코와 튀니지와 달리 알제리는 여행을 갔다오거나 이들 국경을 접한 3개국 전체를 여행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별로 없는 편이다. 카스바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이나 소매치기가 들끓는 것으로 유명하고 길도 미로처럼 되어있어 미아가 되기 십상이니 꼭 가고싶다면 반드시 가이드가 동행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방향으로 하자.
이 외에도 고대 가에툴리인들이 파놓은 지하수로 유적도 있고, 모스크 같은 아랍 이슬람 유적지도 있으며, 지중해 해안가의 도시들은 겨울에도 따뜻하고 여름에도 지나치게 덥지 않은 온난한 기후이며, 남쪽으로는 사하라 사막오아시스 투어도 가능하다. 특이한 경관도 있는데, 특히 동부의 콩스탕틴은 수많은 협곡으로 이루어진 도시로서, 그 협곡과 협곡을 이어주려 로마시대에 만든 아치꼴 다리와 수많은 로마시대 조형물들이 아름답게 남아 있는 곳이다.(유튜브를 통하면 콩스탕틴을 드론 촬영한 영상을 볼 수 있다.)
대형 호텔 및 알제의 대형 쇼핑몰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상점에서 신용카드를 받지 않아[8] 현지화로 반드시 환전을 해야 하므로 쇼핑하기에도 불편하다. 게다가 외화 반출 통제도 엄격해서 공항에서 출국시 깐깐한 세관원은 현지화 및 외화 보유여부를 엄격하게 체크하니 환전 관련 증빙을 잘 챙겨놓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다양한 유적과 환경이 있고 이슬람 극단주의도 제어되고 있으며 치안이 많이 불안한 나라도 아니라서,[9] 차후 비자 발급 난이도가 낮아지거나 무비자로 바뀐다면 이집트나 모로코, 튀니지 비슷한 관광 대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이다.

7. 스포츠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다. 국가대표팀에 대한 것은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한국에서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이 알제리를 그래도 가장 만만한 나라로 봤다가 제대로 털렸다. 사실 한국 말고도 세계적으로 알제리가 한국보다 밑이라고 평가했었지만...
그러나 축구 리그 열기도 너무 뜨거워서 또 문제. 2014년 7월 24일 알제리 리그에서 JS 카빌레와 USM 알제와의 경기 후 팀 패배에 흥분한 관중이 경기장으로 돌을 던졌고 JS카빌레 소속인 알베르토 에보세(24)가 돌에 맞아 사망했다. 알제리 프로축구협회는 이 사고로 리그를 무기한 중단했다.
그래도 2014년 CAF 챔피언스 리그에서 ES 셰티프가 AS 비타(콩고)를 상대로 2무를 거두고(2-2,1-1 원정 다득점 우위) 26년만에 우승(물론 다른 알제리 구단인 JS 카빌레가 이 대회를 우승한 적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1990년 일이다)하면서 알제리 구단으로서 첫 클럽 월드컵에 진출했다.

8. 종교와 문화



▲최근의 알제리 사람들의 생활문화

8.1. 종교 탄압과 현재


과거의 선교정보나 종교 관련 책에서는 기독교(카톨릭, 개신교 포함한 전체 종파)를 가장 증오하는 국가 중 하나라서 기독교 탄압은 일상이고 시민 중에 기독교를 믿거나 성경이 발견되면 경찰이 즉결처분하는 등의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로 알려져 있었다. 이는 알제리가 과거 프랑스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애먼 기독교인들까지 탄압하거나 사살하는 사례가 많아서였다.
알제리의 종교탄압은 다른 이슬람국가들 못지않게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그 원인은 과거 지배자들이었던 프랑스가 뿌린 원인이다. 실제로 130년이 넘는 프랑스 식민지 지배 및 알제리 전쟁으로 200만이 넘는 사망자를 냈고 프랑스의 종교탄압정책[10]으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증오가 컸다. 결국 독립초부터 기독교에 대한 차별 및 테러가 이어져왔다. 게다가 근래들어서는 1996년 순수하게 의료봉사와 지역주민들을 돕기 위해 파견되었던 가톨릭 수도자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서 집단으로 처형되는 사건이 있었으며[11] 이슬람 과격세력과 갈등 및 군부와 민간정부의 대립, 부족갈등과 같은 내부 문제가 깊어지면서 점차 민간정부 및 군부까지도 이슬람 근본주의를 고집하는 경향이 커져갔다.
21세기 넘어서도 이는 계속되었는데, 2003년에는 프랑스인 천주교 수녀들이 과격파에게 산 채로 난도질당해 간살되기도 했으며 2005년에는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를 난도질을 오랫동안 하며 고통스럽게 죽였는데 당시 프랑스가 알제리 지배에 대하여 책임없고 민간인 학살이라든지 여러 모로 부정하고 알제리에게 프랑스 지배를 긍정하라는 병크적인 정치인 발언으로 인해 반프랑스 감정이 커지면서 보복으로 살해당했다. 결국 이 사건들은 범인이 잡히지 않았는데 과격파도 과격파지만 알제리 정부가 일부러 묵인해준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2008년 오로지 이슬람만을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선교사들이 무조건 추방 및 입국 금지되었으며 56개에 이르는 교회들을 '''경찰 및 군대를 동원하여 강제 폐쇄하였다.''' 그나마 이후에는 극단주의는 살짝 사그러들고 2011년 이후 알제리 정부가 개신교회를 인정하는 등 # 유화책을 펴면서 그나마 기독교에 대한 차별도 약간은 줄어들었다. 다만, 2016년 들어서 또다시 기독교에 대한 테러와 박해가 늘었다고 한다. 참고1 참고2 즉, 극단주의가 사그러드는건지 다시 피어오르는건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정작 알제리에는 토착 기독교도들[12]도 살고 있는데 이들은 독립 이후에도 대대로 살아온 기독교도들과 공존하며 지내고 있다. 물론 극단주의가 심했을 때 피해를 입긴 입었다고 한다. 현재는 상황이 전보단 나아진 듯 하다고 하지만, 최근 기독교 박해가 또 다시 심해져 또 골치아픈 상황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은 대놓고 교회 등에서 종교행사를 하거나 예배를 드리진 못하고, 친목계나 월례회 등의 명목으로 모인 다음 예배를 드리는 수준으로 소수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형태다.

8.2. 어느 정도 세속적인 문화


이슬람이 대다수이고 명목상 국교이긴 하지만 이웃 모로코튀니지처럼 세속주의가 강하다고 한다.[13] 알제리 노래나 여러가지 뮤직비디오를보면 여성들이 히잡도 쓰지않는것을 볼수있다. 참고로 이 나라 주말은 토요일과 일요일 대신 금요일토요일이다.[14] 이런 탓에 알제리에서 일요일은 그냥 평일이다(...).
대 프랑스 독립투쟁때는 남성과 여성 차별없이 싸웠고 여성들도 많이 희생했다. 현재도 여성 대학진학률이 높으며, 법조계및 의료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반절을 훌쩍 넘어갈 정도로 사회참여도 또한 높다.
정작 프랑스에 거주하는 알제리계 이민자들 사이에서 오히려 이슬람 극단주의가 번지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의 이슬람 포교를 목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와하비즘 설파 및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비롯되었다. 알제리계 프랑스인 상당수가 원래 알제리 독립운동에 맞서서 프랑스 편에 든 사람들 후손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2011년 튀니지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알제리에도 불길이 번지고 있다. 혁명 전 튀니지 상황이 알제리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정책과 유통정책의 실패로 물가가 폭등하면서 실업자가 늘어나는 모습은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 상세 진행 상황은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 참조. 2019년에도 시위가 발생했고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4월 2일 사임했다. 2021년 2월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알제리 국민들의 반응은 좋은 편.
알제리에는 고등학교, 대학교 등록금이 없다.
2018년 10월 19일에 알제리는 직장에서 니캅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알제리 내 리비아 인근 지역 및 사하라 사막에 걸친 영토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해쉬를 핀다(같은 종인 대마초를 피기도 함). 보통 1시부터 3시 사이 일명 티타임에 차와 함께 피는 것이 전통처럼 보여지는데 아즈웨 아 테(Azer wei a tea)라는 전통 노래를 흥얼거리며 시간적 여유를 즐긴다. 이유는 1시부터 3시까지 일광량이 워낙에 강하다보니 일을 쉴 수밖에 없으며 오전동안 일한 심신을 달래주려는 성격이 크다. 이는 비단 교외 지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도인 알제나 지중해 해안 도시인 오란 등에서의 휴양지에서도 1시부터 3시 사이에 점심을 먹고 난 뒤 티타임을 가지는데 집에서건 공공장소에서건 공연히 이 해쉬를 흡연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마초와 달리 해쉬는 냄새가 거의 없고 역하지 않다는 것과 대마초는 하층민들만 핀다는 관념이 서려있어 대부분 해쉬를 흡연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고난 시기인 1990년대 대마초와 해쉬로 세금을 충당하려는 정부에 대해 많은 민중이 시위를 벌였으며 알제리 내에서는 이 소요사태를 'Hash crisis'라 일컫는다. 다만 이렇게 알제리가 모든 마약에 대해 관대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해쉬와 대마초를 제외한 나머지 향정신성 약물 등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으며 마약을 지나치게 남용하는 마약 중독자에 대한 대중의 시선도 좋지 않은 편이다.
한 알제리 국민에 따르면 술은 몸과 정신을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하고 건강에 안좋은 것에 비해 해쉬는 오직 정신을 편안하게 하는 기능만 있다고 한다. 해쉬라는 대마초를 문화적으로 정착시킨 최초의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작물로서 삼베가 아닌 기호 마약품으로서 대마초를 피기 시작한 지역도 중세 말, 근세의 수피즘 신비주의 명상가, 유랑 수행자들 중심으로 이슬람권의 중동과 북인도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마약'에 대한 인식과 대마초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다르다. 이란이나 아라비아 반도의 신정국가들 같이 술 한방울 마시면 외국인도 얄짤없이 처벌할 거 같은 억압적인 정치적 이슬람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들도 대마초에 대해서는 유독 관대한 면이 있다. 저런 나라들도 사실 자세히 알고 보면 마실 놈들은 다 마신다고 해도 표면적으로나마 엄격한 금주법을 미는 반면 대마초 관련해선 왠만큼 공공연하게 "나 잡아가줍쇼" 하지 않는 이상 공권력도 무해한 일탈 행위로 보고 넘어가는게 일반적이라 한다. 미국의 마약문화와 베트남전의 관계처럼 지리멸렬한 게릴라전 중심의 외지 주둔군 생활에 질렸던 군인들이 대마 빠는거 보고 본국에 돌아가서 그 문화를 전파한(...) 패턴도 스페인모로코서사하라 분쟁 시절, 프랑스군의 알제리 전쟁 시절에서도 발견되는 전형이다.

8.3. 언어


공용어는 아랍어를 지정하고 있다. 알제리에서 쓰이는 아랍어는 아랍어 방언에 속하는 마그레브 방언을 쓰고 있다. 그리고 알제리는 프랑스의 지배와 영향으로 프랑스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지배와 탄압의 영향으로 알제리는 프랑코포니에는 가입하지 않고 있다. 그외에도 베르베르어랑 약간의 영어,러시아어도 사용되고 있다.
압델라지즈 제라드 총리는 알제리에서 교육방송TV 개국행사에서 아랍어, 프랑스어외에도 영어, 중국어도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적극 권장했다.#

9. 외교




10. 문서가 있는 알제리의 도시



11. 알제리 캐릭터



12. 관련 문서


[권위주의] 3.77점[1] #[2] 서사하라는 알제리에서 공식 승인하고 적극 지지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승인하는 나라가 많지 않은 미승인국가다.[3] 다만 알제리는 항구 도시같은 곳이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요충지이며 일부 지역은 기후도 좋아서 프랑스가 영원히 차지하려고 했다.[4] 헌법상 프랑스 본토가 유럽 프랑스와 알제리 프랑스로 구분됐기에 프랑스 제3/제4공화국 당시에는 헌법상 알제리 사람들에 대한 차별도 금지됐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라 제대로 지켜질 리 만무.[5] 비자 신청, 발급 과정이 2~3 주 정도 걸린다고 한다.[6] 원칙적으로는 테러집단 등의 위협으로 부터 알제리 정부가 외국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군 병력을 대동하여 이동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이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므로 놀러온 관광객에 군 병력 및 차량이 따라붙을 리가 만무하다. 목적지 공항에 도착한 순간 현지 경찰의 밀착마크가 시작되므로 개별 여행은 꿈도 꾸면 안된다.[7]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로마인 이야기' 제10권에서도 직접 소개하고 있다.[8] 심지어 공항 면세점에서도 현지화 현금박치기를 해야한다.[9] 물론 정부의 통제력이 미약한 사하라 사막이나 아틀라스 산맥 인근 지역에서는 IS나 알카에다를 추종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단체들이 종종 테러를 벌이며 치안을 위협할 수 있고, 지방의 중소도시로 가면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 및 인종차별때문에 불쾌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어딜가든 신변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한다.[10] 성지 메카 순례를 금지하거나 프랑스인 거주지역에 이주 금지, 다만 허드렛일같은 일 하는 사람만 예외.[11] 자비에 보부아 감독의 <신과 인간>은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12] 특히 콥트 정교회콥트 가톨릭 교회가 대표적이다. 다만 콥트 가톨릭 교회 신자들의 경우 본래 콥트 정교회 신자였다가 프랑스 치하에서 콥트 가톨릭으로 개종한 경우도 있는지라 이런 경우에는 무슬림들과 콥트 정교회 신자들에게 모두 매국노의 후손으로 취급받기도 한다.[13] 프랑스 식민 영향과 정부의 세속주의 추구도 있긴 하지만, 원래 다수를 차지하는 베르베르족의 여권은 이슬람 도래 이전에도 열악하지 않았다. 아랍인의 침략에 저항한 베르베르족 족장도 여성이었다. 심지어 알제리에는 근본주의 이슬람에서 금지하고 있는 위인의 동상까지도 세워져 있다.[14] 그나마도 2009년 이전에는 목요일과 금요일이 주말이었다. 목금 주말제가 서방과의 교류의 지장을 준다고 목요일 대신 토요일을 주말에 넣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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