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례

 

[image]
성명
장경례(張慶禮)
생몰
1913년 4월 6일 ~ 1997년 12월 1일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북정
사망지
서울특별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장경례는 1913년 4월 6일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북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光州女子高等普通学校)에 재학 중이던 1928년 11월에 동교생 장매성(張梅性), 고순례(高順禮), 박옥련, 남협협, 이금자(李錦子) 등과 함께 광주사범학교 뒷산에 보여 조국의 독립과 여성 해방을 목표로 삼은 항일학생결사 소녀회(少女會)를 조직했다. 그들은 소녀회 결성 후 동지를 포섭하는 한편 매달 한 번 씩 월례연구회를 통해 항일의식을 고취시켰으며, 1929년 6월에 결성된 독서회 중앙본부와도 긴밀하게 연락했다.
독서회는 친목 단결 및 재정활동 지원을 위해 학생소비조합을 조직하고 각 학교 독서회 및 학생들로부터 자본금을 출자하게 했다. 이때 광주여고보에서는 소녀회가 주동하여 자본금 30원을 출자했다. 또한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자, 소녀회는 부상 학생을 치료하고 식수를 공급하고 돌멩이를 운반하는 등 남학생들의 시위를 도왔다. 그러나 소녀회 조직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면서, 장경례는 1930년 1월 15일에 체포되었고 그해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러야 했고 학교에서도 퇴학 처분을 받았다.
장경례는 출옥 후 잠시 유치원 교사로 일하다가 광주에서 백화점을 경영하고 있던 허명학과 결혼했다. 그 후 가사에 전념하던 그녀는 1954년 11월 3일 전남여자고등학교로부터 명예졸업장을 수여받았고, 198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으며,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1997년 12월 1일에 서울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그녀의 유해는 1997년 12월 3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