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범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경범은 1898년 3월 11일 경기도 개성군 상도면 풍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9일 밤에 개성군 상도면 상도리와 대성면 풍덕리 일대에서 이기춘(李起春), 신선명(申善明)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했고, 일제 관헌들의 통신망을 차단하기 위해 개성과 광덕리 사이의 전신주 3개를 파손했다. 그러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해 그해 7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해 징역 2년으로 감형받았고, 10월 16일 고등법원에 상고했으나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1년에 만기 출소한 장경범은 대만으로 이주해 타이베이에서 와이셔츠 공장 중급 직공으로 일하다가 8.15 광복이 도래하자 1946년 5월 귀국해 서울에 안착했다. 그 후 그는 1946년 12월부터 1968년 12월까지 한국독립당 당무위원 겸 대표상임위원을 맡았으며, 1972년 1월 30일 서울 용산구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장경범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08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