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당경

 


명칭
장당경(藏唐京)
이칭,별칭
당장경(唐藏京),장장평(庄庄坪)
시대
고조선
유형
도읍지
위치
현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문화(文化)면(?)
장당경(藏唐京)은 고조선의 도읍지로 알려진 곳이다. 당장경(唐藏京)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고조선조에서는 고기(古記)를 인용해 단군이 요임금 즉위 50년된 해인 경인년에 평양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조선이라 일컬었다. 그후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겨서 1500년을 다스리다가, 무왕(주)(周武王)이 즉위하고 기자(箕子)를 조선후에 봉하자 도읍을 다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1] 삼국유사에는 장당경이라고 하였으나 고려사,세종실록,신증동국여지승람등의 문헌에는 당장경으로 기록되어있다.
삼국유사의 기록대로라면 고조선의 도읍지는 평양성→아사달→장당경 순으로 옮겨졌으므로 장당경은 3번째 도읍지가 된다.
그위치에 대해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서는 고려사의 장장평은 단군이 도읍했던 당장경의 잘못전해진 지명이라 하여 문화현[2]의 동쪽에 있다고 하였으며 중국의 대릉하유역이나 유주[3]일대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고고학계의 통설을 보면 고조선은 초기에는 요서에 위치해있었다가(십이대영자 문화) 점차적으로 요동반도와 한반도 일대로 세를 확대하며 영역을 넖히고 중심지도 요하로 옮긴것으로 보이는데(정기와자 문화) 이 설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면 장당경도 선양 근교에 위치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만 유적이 발굴되기에는 여러가지 난항이 있다.
[1] 기자조선이 실재하였다고 가정할경우 기존에는 기자가 오면서 단군조선이 끝나는것으로 이해됐지만, 이기사를 보면 기자가 온후에도 단군이 따로 도읍을 옮겨간것이 되므로 기자와 단군이 양립했을수도 있다.[2] 현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3] 하북성북부및 요동성서부일대를 가르키던 고대중국의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