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황후 두씨

 


'''후한의 황후
章德皇后 | 장덕황후
'''
<colbgcolor=#a11> '''시호'''
장덕황후(章德皇后)
'''성씨'''
두(竇)
'''출생'''
불명
'''사망'''
97년
'''재위'''
'''후한의 황후'''
78년 ~ 88년
'''후한의 황태후'''
88년 ~ 97년
'''부군'''
장제(章帝)
'''가족'''
증조부 두융(竇融)
조부 두목(竇穆)
부친 두훈(竇勳)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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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장제(후한)의 황후로 대사도(大司徒) 두융(竇融)의 증손녀이다. 이름은 전하지 않으며, 할아버지는 두목(竇穆), 아버지는 두훈(竇勳), 어머니는 광무제의 손녀이자 동해공왕(東海恭王) 유강(劉彊)의 딸인 비양공주(沘陽公主)로, 황후는 그 맏딸이다. 그야말로 개국공신 가문과 황실이 인척을 맺은 결실이 그녀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사건에 연루되어 옥사하였기에 가세가 기운 형편이었다.

2. 생애


장제 건초(建初) 2년에 여동생과 함께 간택되어 장락궁(長樂宮)에 들어가 명덕황후 마씨를 알현하였는데, 마황후는 그녀의 행동거지와 미모를 남달리 여겼다. 장제 또한 그녀의 미모에 대해서 듣고는 주위에 그녀에 관해서 물었을 정도였다. 눈치가 빠르고 말주변이 좋았고 마음을 기울여 주위 사람을 대하니 명성이 날로 높아졌다. 이듬해에 그녀는 황후가 되고, 여동생은 귀인이 되었다.
이후 귀인 송씨가 황태자 유경을, 귀인 양씨가 화제(후한)를 낳았는데, 황후는 소생이 없어서 이들을 미워하며 황제에게 참소하여 송귀인을 자살하도록 만들고 유경을 청하왕으로 폐출시켰다. 또한 화제를 자기 아들로 삼아 양육하고는, 모함하여 양씨 일족을 주멸하고 양귀인 자매가 근심하다 죽게 만들었다.
장제가 사망하고 화제가 즉위하자 그녀는 황태후가 되어 임조칭제하였다. 선대의 마황후 때와는 달리 자기 일족을 챙기는데 우선하여 어머니 비양공주를 장공주로 높이고 탕목읍으로 3천호를 주었으며, 오빠 두헌, 동생 두독, 두경 모두 고관에 임명하고 대국에 봉작하니 마음대로 권세를 휘둘렀다. 장덕황후 또한 일족을 우선하긴 하였지만 어느 정도 선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제제를 가하여, 오빠 두헌이 잘못을 저지르고서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하게 한 적도 있었으나 그것도 일시적이었다.
이후 두씨 일족은 반역을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모두 주살되었다. 그녀는 화제 영원 9(97)년에 사망하였는데, 삼공을 필두로 하여 전한대 여태후를 폐출한 고사에 따라 태후의 존호를 삭탈하고 장제와 합장하지 말자는 주장이 일었으나, 화제가 친필 조서를 내려 이를 무마하였다. 18년을 재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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