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초나라)

 


'''초(楚)나라 20대 국군
4대 왕
장오
莊敖
'''
''''''
미(羋)
''''''
웅(熊)
''''''
간(囏)
'''아버지'''
초문왕(楚文王) 웅자(熊眥)
'''어머니'''
식규(息嬀)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72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674년 ~ 기원전 672년
1. 개요
2. 치세

[clearfix]

1. 개요


초나라의 제20대 군주. 4대 왕. 달리 도오(杜敖)[1], 도오(堵敖)라고도 한다.[2] 처음 휘는 웅간(熊艱). 사기 초세가의 주석에 의하면 囏(어려울 간)자와 艱(어려울 간)자가 같은 음으로 읽는다고 되어있다.

2. 치세


초 문왕이 죽고 웅간이 초나라 왕이 되었는데, 나라는 여전히 강하고 부유했다. 그러나 장오는 사치하고 사냥질만 일삼았기 때문에, 민심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중원을 노리고 있었다.[3]
장오 3년(기원전 672년), 결국 아우인 웅군이 그를 살해하고, 왕이 되니 그가 바로 초성왕이다.
[1] 사기에서 그렇게 전한다. 강희자전집운을 따와서 이때 반절이 동오절(董五切)이고 소리가 도(睹)와 같다고 서술한다. [2] 초사에서는 그렇게 전한다.[3] 단 당시에는 사냥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는게, 군사 훈련의 기능도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을 사냥하여 무기 사용 숙련도를 높이는 동시에, 추적과 몰이 등을 통해 지휘체계나 부대 단위의 움직임을 숙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