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자전

 


1. 개요
2. 특징
3. 글꼴
3.1. 피휘자
4. 의의
5. 여담


1. 개요


강희자전(康熙字典)은 중국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의 칙명으로 편찬한 한자사전이다. 당대 유명 학자들을 초빙해 5년에 걸쳐 저술하여 강희 55년(1716)에 완성하였다.

2. 특징


후한 시대 《설문해자》 이후의 역대 자전들을 광범위하게 참고해 편찬하였으며, 12집(集) 119부(部) 분량에 4만 7035자를 수록했다. 부수 총 214개를 나누어 각 한자들을 부수에 배속하고, 반절에 따른 발음 표기, 훈고(訓詁), 자해(字解), 속/통자(俗通字)를 병기하는 등 사실상 현대의 한자사전의 포맷을 완성한 책이다. 그 외에도 역대 중국 왕조들의 수많은 시인, 문사들의 작품들과 인용과 교차검증을 함으로서 각 한자 뜻의 변천사까지 고증하기도 했다.
(예) 木부 1획 첫페이지 보기
하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만들어졌어도 일부 오류가 존재했는데, 1827년 왕인지(王引之)가 《자전고증(字典考證)》을 출판해 오류를 교정함으로써 어느 정도 수정되었다.
궁금한 자형은 이 링크로 검색하길 바란다. 단, 검색하자마자 뜨는 해서체 이미지 자형은 중국과 대만 기준이며 정자가 아닐 수도 있다. 강희자전자/본자는 스크롤을 좀 더 내려야 나타난다.

3. 글꼴


또한, 강희자전은 일부 글자에서 설문해자의 소전체를 바탕으로 변환한 글꼴 등을 채용해 소위 '강희자전체'라는 글꼴로 출간되었다. 전통적인 미관 때문에 대만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데 최근에는 남용된다는 지적이 있다. 어딜 가든 강희자전체가 있다고.
그 와중에 강희자전은 거의 한자 문화권 사전의 스탠다드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자전을 참고하는 바람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한자 문화권 각국에서 쓰이던 정자체가 강희자전체처럼 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에서도 구자체(舊字體)라고 불리는 소위 '옛날 한자'들은 거의 강희자전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중국어권에서는 도리어 필기자형에 맞게 표준 자형을 정하거나 아예 중국처럼 간략화를 해버렸고, 일본도 신자체를 정하면서 필기자형에 맞게 표준 자형을 수정했기 때문에, 한자를 잘 쓰지 않는 한국에서 쓰이는 한자의 자형이 오히려 다른 지역에 비해 강희자전체에 가장 가깝게 되었다.
아이폰에 쓰이는 한자가 강희자전체에 가까운 글꼴에서 필기 자형에 맞는 표준 자형으로 되어서 이런 불만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정자(한자)/각국의 표준자형 항목 참조.

3.1. 피휘자


사전이라고 얄짤없었다. 강희자전은 강희제 때 초판되고, 도광제 때 다시 편찬되었는데, 강희제와 도광제 사이에 즉위한 황제의 이름에 쓰이는 글자가 전부 피휘당했다. 정작 강희제의 선대 황제인 누르하치 등의 이름은 그대로 실었으면서... 글자를 찾을 때에는 피휘되기 전의 획수를 따지면 된다. 막상 펴보면 御名(황제의 이름)이라고 해놓고 획이 빠진 글자를 볼 수 있다.
해당되는 글자는 다음과 같다. 글자 모양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처리되었다.
  • 玄(검을 현), 燁(빛날 엽) : 강희제의 이름자. 玄의 마지막 획인 점과 燁의 마지막 획인 세로획이 삭제되었다. 玄이 들어간 다른 한자도 같이 처리되었다.
  • 胤(이을 윤) : 옹정제의 이름자. 마지막 획인 오른쪽 파임이 삭제되었다. 禛(복 받을 진)의 경우, 禛의 오른쪽 眞(참 진)의 첫 획 삐침을 짧게 써서 피휘된 것처럼 보인다.
  • 弘(넓을 홍), 曆(책력 력) : 건륭제의 이름자. 弘의 마지막 획인 점이 삭제되었고, 弘이 들어간 다른 한자도 같이 처리되었다. 曆은 暦으로 써서 일본 신자체와 똑같은 모양이 되었다.
  • 顒(공경할 옹), 琰(옥 염) : 가경제의 이름자. 顒의 마지막 두 획이 삭제되었으며 琰의 오른쪽 아래의 火는 又로 처리되었다.
  • 旻(하늘 민), 寧(편안할 녕) : 도광제의 이름자. 旻의 가운데에 있는 점이 삭제되었으며, 寧은 속자 寕으로 썼다. 寧이 들어간 다른 한자도 같이 처리되었다.
피휘자가 확장된 유니코드에 등록되기도 했다. 등록된 글자는 , , , , 이다.

4. 의의


강희자전 편찬 이래, 1900년대 이전 자전 중에서는 강희자전을 능가하는 자전이 없으며, 1900년대 이후 자전 중에서는 강희자전에 영향을 안 받은 자전이 없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현대 자전의 포맷(한자, 부수, 음, 뜻, 속자, 용례 등)을 정립하다시피 한 자전이며,[1] 그 분량에 있어서도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이렇듯 강희자전이 워낙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원래는 이 사전만을 뜻하는 고유명사였던 '자전(字典)'이 의미가 확대되어서 지금도 중국에서는 사전을 뜻하는 일반명사로 자전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이다.[2][3] 한국에서는 양(梁)나라 고야왕(顧野王)이 편찬한 옥편이 보통명사가 된 것과 같다.[4]

5. 여담


근원 김용준의 수필 '강희자전과 감투'가 2014년 수능 국어 과목에 출제된 적이 있다.

[1] 하지만 강희자전에서는 한자 하나하나의 뜻풀이에 중점을 둔 나머지, 숙어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2] 그 전까지는 자서(字書), 자해(字解) 등으로 주로 불렸다.[3] 명나라에서 출판한 자휘(字彙)가 보통명사가 되어 중화민국 정부가 대륙에 있던 시절 國音常用字彙(국음상용자휘)라고 한 적도 있었으나 현재 '자휘'라는 말은 '자전'이라는 말에 도태되었다. 현재 중국의 공식 자전도 新華字典(신화자전)이라고 하며, 1953년 초판하여 2011년 제11판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4] 하지만 양나라 때 편찬한 '옥편'은 부수 체계도 다르기 때문에 한국의 옥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에서 옥편이라는 이름을 쓴 최초의 예로는 조선 정조 때 편찬한 '전운옥편(全韻玉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