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후한)
1. 중국 후한의 문학가이자 발명가
張衡
(78 ~ 139)
하남 남양의 서악 출신으로 자는 평자(平子).
혼천의로 유명해 흔히 발명가로만 알려진 천문학자 겸 문학가로 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집안이 몰락해 친구들의 도움으로 겨우 학교를 다녔으며, 열심히 배우면서 재능도 뛰어나 성적이 훌륭했고 16, 7세에 낙양에서 유학하면서 학문을 닦다가 30세를 넘어서 문학의 재능을 인정받아 낭중이 되었고 대표작으로 반고의 양도부를 모방한 양경부로 불리는 동경부, 서경부, 귀전부 등을 남겼다.
태사령이 되면서 영헌 등을 저술하거나 수력으로 움직이는 혼천의, 지진을 측정[1] 하는 지동의 등을 발명했으며, 당시에 환관과 외척들이 권력 투쟁을 벌이던 시기로 장형은 질시를 받아 수도에서 쫓겨나 하간상이 되었다.
138년에 낙양으로 돌아와 상서를 역임하다가 139년에 병으로 사망한다.
마블 코믹스에서는 셀레스티얼을 말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의외로 문학가의 모습이 재평가된건 일본이 레이와(令和) 연호를 발표하고 나서다. 해당 연호는 일본의 만엽집에서 발췌하였는데, 장형이 지은 『歸田賦(귀전부)』에 「仲春令月、時和氣淸」라는 구절이 '令', '和' 두 글자가 모두 등장할 뿐아니라 문장의 구조나 내용까지 거의 같기 때문이다. 즉, 일본의 고전에서 발췌한게 아니고 사실상 중국의 고전에서 발췌한 셈이기 때문이다.
2. 후한 말 오두미도의 교주
張衡
(? ~ ?)[2]
후한 말의 인물.
패국 풍인 사람으로 자는 영진(靈眞). 오두미도의 제2대 교주. 아내는 노씨, 자녀로 장로, 장옥란 등을 두었다.
아버지 장릉이 죽자 이를 계승해 도술을 받들어 행했으며, 장형은 양평화에서 대낮에 승천했다. 이후 장로가 계승했고 사후에는 오두미도의 삼장이라 불린 사람 중 한 명이 되었으며, 장로가 자신을 계사(系師)라 자칭할 때 장로의 조부인 장릉을 천사(天師)로 칭해진 것과 동시에 장형도 사사(嗣師)라 칭해졌다.
경정문장구명의 제8 신선 조목에 따르면 장형은 북방귀제로 봉해졌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노식이 176년 9월에 유비, 공손찬을 불러놓고 천하의 일에 대해 근심할 때 한중 지방에는 장릉, 장형 부자로 이어지는 오두미도라는 것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식으로 언급되며, 장로에 대해 소개할 때 장형에 대해서는 장릉이 죽은 뒤에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백성들 중에 자신의 도를 배우려는 이가 있으면 쌀 닷말을 거두고 받아들여 세상 사람들이 그의 무리를 쌀도둑이라 불렀다고 했다.
3. 후한 말의 인물
張炯
생몰년도 미상
하내 사람으로 197년에 원술에게 상서로운 징조를 알렸으며, 이에 원술은 황제를 자칭하면서 중나라를 건국했다.
3.1. 창작물에서
소설 삼국지 금수저 하후충전에서는 방사로 태산에서 구헌 황화수은을 가져와서 가루를 내어 조금씩 차에 타면 태산의 기운을 몸에 받아드릴 수 있다면서 원술에게 진상했으며, 태산의 정상에서 복괘를 보았다면서 황제를 칭할 것을 권했다.
중나라의 국사가 되어 권력을 휘둘렀고 궁궐을 숙위하는 자들에게 뇌물을 챙겨주며 친분을 쌓았는데, 자신이 뇌물을 챙겨준 부장에게 처가 얼마 전에 득남하지 않았냐면서 부인에게 맛난 거나 사 주라고 말한다. 그 부장이 이런 거 말고 액운 쫓는 부적 한 장 써달라고 하면서도 뇌물을 챙기자 부적도 바탕이 되어야 효험이 있다면서 부인에게 보양식을 먹이고 며칠 뒤에 찾아오도록 하면서 관상을 보고 맞는 부적을 써 주겠다고 했다.
원술에게 군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먼 친척이라 소개한 장개양을 보내 유총에게 군량을 받아낼 것을 진언했다. 장형의 지시를 받은 장개양이 낙준을 암살했으며, 본래는 유총을 암살하려 했지만 유총을 허도로 보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유총 대신 낙준을 암살하도록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