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1. 개요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1] (全州生命科學高等學校)는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에 있는 공립 농업계 고등학교다.
2. 개교
1910년 3월 5일 개교했다.
3. 연혁
3.1. 1900년대
*1910년 03월 05일 공립 전주농림학교 설립
*1910년 06월 01일 개교식 거행
*1951년 08월 31일 전주농림고등학교로 개칭
*1962년 03월 17일 축산과 증설
*1965년 03월 22일 동중학교와 분리
*1969년 10월 02일 본관신축
*1970년 06월 01일 개교60주년 기념행사
*1977년 05월 10일 삼례농장 실습지 구입
*1992년 08월 03일 농업유통정보과 신설
*1998년 07월 14일 학과 신설 및 과명 변경 승인(10개 과 30학급)
3.2. 2000년대
*2003년 03월 01일 동물자원과->애완동물과로 개편
*2005년 05월 03일 학교기업 창업
*2005년 09월 01일 생물과학과->골프경영관리과로 개편
*2006년 03월 01일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교명 변경
*2006년 07월 24일 생명과학 바이오된장 상표 특허 등록
*2006년 10월 30일 애견훈련학교 개교
*2007년 05월 25일 골프 관리 실습실 및 Par3홀 실습장 준공
*2007년 07월 10일 친환경 농산물 인증
3.3. 2010년대
*2011년 06월 16일 생명자원과(4), 식품과학과(3), 환경산업과(3)로 학과개편 인가
*2011년 09월 01일 제19대 김진곤 교장 취임
*2014년 02월 13일 제100회 295명 졸업(총 23,501명)
4. 교훈
근면(勤勉)
성실(誠實)
협동(協同)
5. 교가
[image]
6. 학교 상징
교목 : 느티나무
교화 : 철쭉
7. 학과
- 생명자원과
- 식량자원과정
- 녹지조경과정
- 반려동물과정
- 화훼장식과정
- 환경산업과
- 농업토목과정
- 골프경영관리과정
- 산업기계과정
- 식품과학과
- 식품가공과정
- 식품조리과정
8. 역사
1910년 3월 농업기술 인재양성을 위하여 공립전주농림학교로 설립되어 같은 해 5월에 개교하였다. 사립함육학교에서 교지 일부와 건물 1동을 기증받고 필요한 교실을 증축하여 농과학생 50명으로 개교하였다.
1911년 11월에 전주공립농업학교로 개편하고 1914년 강습과를 신설하였으며, 1930년 3월에 수업연한을 3년으로 연장하였다가 1931년 3월 다시 5년으로 연장하고 토목과를 신설하였다. 1943년 7월 현재의 위치로 교사를 신축 이전하고 4년제로 개편하였으며, 1945년 10월에 재개교하여 초대 교장에 강용구(姜龍求)가 취임하였다.
1946년에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하고 1947년 8월 전주공립농림중학교로 개칭하였으며, 농업교육의 확충을 위하여 1948년에 축산과와 1949년에 원예과를 신설, 학급수 30학급에 학생정원 1,500명으로 확장하였다. 1950년 5월에 교명을 전주농림중학교로 바꾸었다가 1951년 8월 「교육법」 개정에 따라 전주동중학교와 전주농림고등학교로 개편하였다.
1964년 11월 원예과와 식품가공과를 신설하고 1965년 3월 전주동중학교를 분리하였으며, 1970년 12월에는 농업의 기계화 추세에 따라 농업기계과를 신설하여 농과·임과·축산과·원예과·잠업과·농업토목과·식품가공과·농업기계과 등 8개 학과로 편제하였다.
2020년 기준으로 누적 졸업생 약 24,719명 배출
9. 졸업생
10. 기타
10.1. 충혼탑
- 건립취지: 6.25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 조국을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학도의용군으로 입대하여 각지의 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전사한 28명 영령의 넋을 추모하고 이 분들의 공적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건립
- 비문내용: 아! 어찌 잊으랴.
血書쓰며 祖國을 위하여 戰線으로 出征하여 위태로운 祖國을! 젊은 피로써 막았도다.
전몰학도지원병 전우들이여 배움의 터전으로 우리들은 돌아왔건만 그대들 모습이
보이지 않음은 꽃다운 나이 푸른 꿈 배움의 뜻 이루지 못한 채 눈감았도다.
오늘 보아라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우리의 자랑 조국에 바쳐진 꽃봉오리
모두 아늑한 모교의 품안에 이제사 돌아와 조국의 영광과 더불어 영원히 여기 쉬나니.
10.2. 초대교장 강용구교장 선생님의 비문
雄美한 大自然이 깃든 古都完山 이 땅에 偉大한 敎聖 蒼岩姜龍求先生이 계시었다.
先生은 단기 四二二七 甲午에 晋州姜氏의 名門에 誕生 不遇한 倭帝下에도 民族開化의 先驅者로 水原農林(現農大)을 率先出衆畢業 警世濟民의 大志를 抱持하사 단기 四二五五年 若冠時에 우리 全農에 情들어 白髮이 星星토록 春風秋雨 四十餘星霜을 오로지 英才敎育에만 一路盡瘁 及其也 停年退任하시니 崇高한 生涯며 淸廉한 天稟 連綿不朽의 그 精神宏遠한 저 業績이 모두가 靑史에 輝煌할지니 이를 기리 龜鑑 삼고저 全北敎育同志 및 數千門生 微誠을 모아 이에 感佩의 表를 銘記하노라
단기 四二九三年 庚子 十二月 日
<管見>
1. 警世濟民에 대하여
0. 『周易』의 원문에 경제를 뜻하는 經世濟民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세상을 경영하여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위 비문에서 警世濟民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은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쉽게 誤字표기라고 단언하는 일은 위험스런 일이다. 왜냐하면 교육적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警世濟民인 “세상을 깨우쳐 백성을 구제한다.”라는 해석이 훨씬 타당하고 매끄럽기 때문이다.
2. 若冠에 대하여
0. 『禮記』에 20세를 칭하는 弱冠이라는 말이 나온다. 20세에 관례를 하기 때문이다.
위 비문에서 若冠이라고 표기된 것을 誤記라고 단정하는 일은 단순히 고전의 문자만을 숭배하여 다른 상황을 재단하려는 교조적 해석의 위험이 있다.
문장의 전후 맥락을 살펴 보건데 단기4227년에 탄생, 4255년에 본교에 부임하신 바 28세 때의 일이다. 20대이므로 弱冠으로 칭해도 되지만 전후 맥락으로 보면 若冠이라 표기해서 “20대 무렵”으로 해석해도 가능하다.
3. 논란의 소지에 대하여
비문에서 유명문구를 인용하되 한두 字를 변용하여 사용하는 경우 혼란을 유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으로 오히려 훌륭한 문장으로 재탄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피해야할 諱(휘)와 겹칠 경우는 다른 한자로 고쳐 쓰기도 한다. 다만 비문에 충실해서 읽어야 하는 것이 후손의 몫인 것 같다. ---문채병 拜
10.3. 그것이 알고싶다
그것이 알고싶다 도입부에서 홍수연양 자살사고가 방송되었는데 홍수연양은 텔레마케터로 야간 잔업과 그로 인한 정신적 문제의 심화, 상자의 꾸지람, 사측에서의 부조리한 사원복지 등이 누적되어서 자살한 사고 및 사건이다. 홍수연양이 다니고 있던 특성화 고등학교이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