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회규
[clearfix]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회규는 1857년생이며 경상북도 봉화군 청양면 의양리 출신이다. 그는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잇달아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나 의병 해산하는 권유하는 선유사(宣諭使)가 오자 의진을 해산하고 이문하(李文河)·심의승(沈宜承)·김운락(金雲洛)과 같이 한성부에 올라가서 경약소(京約所)를 설치하고 광화문에서 척양척왜(斥洋斥倭)의 상소를 올리다가 구금되어 수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06년 홍주에서 민종식이 이끄는 홍주의진이 홍주성을 공략했다. 그러나 5월 31일 일본군의 반격으로 홍주성이 함락되었고,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정회규는 이용규(李容珪)·곽한일·박윤식#s-1·김덕진·김운락·황영수(黃英秀)·박창로·이만식(李晩植) 등과 더불어 전 참판 이남규(독립운동가)#s-1 등과 결탁하고 민종식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여 재의거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1906년 10월중에 충남 예산(禮山) 지방을 중심으로 의사들을 규합하고 11월 20일(양력)을 기하여 예산읍을 공격하여 활동의 근거지로 삼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가 일진회원의 밀고로 이 사실을 파악했고, 11월 17일 새벽에 이들의 거점을 포위 습격하여 많은 동지들이 사로잡히고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때 몸을 피한 정회규는 다시 의병을 일으켜 황해도에서 일본군과 맞섰으나, 1907년 12월 23일 일본군에게 체포된 뒤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정회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