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식
1. 청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윤식
박윤식은 1868년 1월 20일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신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궁내부 팔궁관을 역임했으나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린 뒤 사직했다. 이후 1906년 홍산에서 정재호(鄭在鎬)·김덕진(金德鎭)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킨 뒤 홍주에서 민종식과 합류해 그의 휘하에서 군량을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향관(餉官)에 취임하였다.
1906년 4월 정산·홍산·서천·남포 등지에서 의병대를 조직하고 총포와 탄약 등을 입수하여 홍주성을 공격하여 많은 적을 사살한 끝에 5월 홍주성을 함락할 수 있었다. 그러나 5월 7일 적의 불시 습격을 받아 홍주성을 빼앗겼다. 이후 재탈환을 모색했지만 끝내 일본군에게 체포된 뒤 서울로 압송되었고, 평리원재판소에서 종신유형을 선고받고 진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1907년 7월 진도에서 풀려난 그는 일본으로부터 고위 관직을 제안받았지만 끝내 거부하고 향리에서 항일사상 선양에 힘썼다. 그러다 1910년 한일병합이 선포되자, 부당함을 공언(公言)하다가 연행되어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날 밤으로 탈옥하여 1914년까지 은신생활을 하였다. 1914년 이후 귀향하여 전북 군산에서 은거 생활을 하다 1939년 1월 29일에 사망했다. 은거 중 항일의병투쟁에 관한 기록을 정리하여 <의거실기(義擧實記)>를 저술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박윤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2. 만주 방면 독립운동가, 박윤식
박윤식은 중국 동삼성에서 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의 대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1922년 평남 강동군에서 일본 경찰 100여명과 전투하였으며, 평북 의주군 옥상면의 일경주재소를 습격하여 일시 점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2년 1월 21일 옥상면에서 밀고에 의해 출동한 일경 10여명의 기습을 받고 1시간여에 걸쳐 교전하다가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박윤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