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종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정희종
鄭喜鍾
'''
<colbgcolor=#0047a0><colcolor=#fff> '''출생'''
1872년 10월 22일
한성부 창신동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사망'''
1943년 4월 10일
경성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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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희종은 1872년 10월 22일 한성부 창신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경 흥인배재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그러던 1919년 11월 20일경, 창신동에서 대동단(大同團, 朝鮮民族大同團) 단원 나창헌의 부탁을 받아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배포하였다. 이후 11월 25일경 나창헌의 의뢰를 받은 강정희(姜正熙)로부터 독립선언서 약 50장과 상해에서 보내온 여러 종의 선언서 약 50장을 받았다. 다음날 밤, 그것을 가지고 교회에서 알게 된 전대진(全大振)을 찾아가 11월 27일의 시위운동 사실을 알리고 배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 일이 발각되면서 체포된 정희종은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정치범죄처벌령), 출판법, 보안법 위반 및 사기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 200일 통산)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경성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3년 4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정희종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