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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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선수.
2000년 드래프트에서 캐나다의 야구팀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지명받은 베이였지만 2001년 마이너리그 상위 싱글A에서 부진한 성적을 찍고 이듬해 3월 오마 미나야에 의해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되었다. 다시 2002년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메츠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된 베이는 파드리스 소속으로 데뷔까지 했지만 2003년 8월 브라이언 자일스 트레이드에서 올리버 페레즈와 함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향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베이는 올리버 페레즈와 함께 '''대폭발'''했다.[2] 2004년 26홈런을 갈기며 .282 .358 .550라는 루키치고 매우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였고,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선정되었다.
이후로도 벅스의 스타플레이어로서 데이브 리틀필드의 유일하다시피한 업적으로 기록될만한 맹활약을 펼치며 올스타급 외야 거포가 되었다.
2008년 7월 말, 벅스의 리빌딩 차원에서 닐 헌팅턴 단장은 베이를 시장에 내놓았고, 매니 라미레즈의 LA 다저스행 딜에 끼어들어 보스턴 레드삭스로 베이를 보냈다. 레드삭스에서 그는 전임 좌익수 매니의 공백을 메꾸며 준수한 거포로서 맹활약했고 시즌 종료 후 테오 엡스타인 단장은 그에게 4년 $60M의 조건을 제시했지만 거절하고 FA 시장에 나와 레드삭스와는 공식적으로 결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오마 미나야의 뉴욕 메츠가 베이를 4년 $66M[3] 계약으로 데려갔다. 세간의 평은 오버페이가 크거니와 무릎건강에 대한 의문부호가 있던만큼 부상에 의한 리스크도 크다는 평가였다.[4]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0년 메츠로 온 베이는 첫 시즌부터 부상으로 인해 95경기 출전에 그치는 등 먹튀의 기미를 보였고, 2011년에는 123경기에서 12홈런 109삼진 .245 .329 .374에 그치는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장타력도 실종되어 똑딱질이나 해댔다. 과거 셰이 스타디움에 수맥이 흐르지 않느냐던 비아냥은 어느새 메츠 자체에 수맥이 흐른다는 말로 바뀌었다(...) 결국 베이는 '''어메이징'''해졌고, 이 계약을 추진한 오마 미나야 단장은 해고당했다.
메츠 팬들은 베이를 '''베레기'''로 부르며 빨리 계약이 끝나기만 바랐다. 그리고 계약기간이 1년 남은 2012년 종료 시점에서 연봉 1600만달러와 바이아웃 300만달러를 모두 받는 조건으로 방출이 결정되었다.
2012년 12월, 거포 보강을 노리고 있던 시애틀 매리너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시애틀에서도 11홈런을 쳐낸 것 외에 딱히 인상깊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8월 6일 방출되었다.
2014년에 결국 은퇴할 예정이라는 언급이 나왔다.
캐나다 출신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선수.
1. 선수생활
2000년 드래프트에서 캐나다의 야구팀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지명받은 베이였지만 2001년 마이너리그 상위 싱글A에서 부진한 성적을 찍고 이듬해 3월 오마 미나야에 의해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되었다. 다시 2002년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메츠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된 베이는 파드리스 소속으로 데뷔까지 했지만 2003년 8월 브라이언 자일스 트레이드에서 올리버 페레즈와 함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향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베이는 올리버 페레즈와 함께 '''대폭발'''했다.[2] 2004년 26홈런을 갈기며 .282 .358 .550라는 루키치고 매우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였고,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선정되었다.
이후로도 벅스의 스타플레이어로서 데이브 리틀필드의 유일하다시피한 업적으로 기록될만한 맹활약을 펼치며 올스타급 외야 거포가 되었다.
2008년 7월 말, 벅스의 리빌딩 차원에서 닐 헌팅턴 단장은 베이를 시장에 내놓았고, 매니 라미레즈의 LA 다저스행 딜에 끼어들어 보스턴 레드삭스로 베이를 보냈다. 레드삭스에서 그는 전임 좌익수 매니의 공백을 메꾸며 준수한 거포로서 맹활약했고 시즌 종료 후 테오 엡스타인 단장은 그에게 4년 $60M의 조건을 제시했지만 거절하고 FA 시장에 나와 레드삭스와는 공식적으로 결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오마 미나야의 뉴욕 메츠가 베이를 4년 $66M[3] 계약으로 데려갔다. 세간의 평은 오버페이가 크거니와 무릎건강에 대한 의문부호가 있던만큼 부상에 의한 리스크도 크다는 평가였다.[4]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0년 메츠로 온 베이는 첫 시즌부터 부상으로 인해 95경기 출전에 그치는 등 먹튀의 기미를 보였고, 2011년에는 123경기에서 12홈런 109삼진 .245 .329 .374에 그치는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장타력도 실종되어 똑딱질이나 해댔다. 과거 셰이 스타디움에 수맥이 흐르지 않느냐던 비아냥은 어느새 메츠 자체에 수맥이 흐른다는 말로 바뀌었다(...) 결국 베이는 '''어메이징'''해졌고, 이 계약을 추진한 오마 미나야 단장은 해고당했다.
메츠 팬들은 베이를 '''베레기'''로 부르며 빨리 계약이 끝나기만 바랐다. 그리고 계약기간이 1년 남은 2012년 종료 시점에서 연봉 1600만달러와 바이아웃 300만달러를 모두 받는 조건으로 방출이 결정되었다.
2012년 12월, 거포 보강을 노리고 있던 시애틀 매리너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시애틀에서도 11홈런을 쳐낸 것 외에 딱히 인상깊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8월 6일 방출되었다.
2014년에 결국 은퇴할 예정이라는 언급이 나왔다.
2. 이모저모
- 슬하에 2명의 딸과 1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 그래디 사이즈모어와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사이즈모어가 베이의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섰을 정도.
- 그의 아버지는 광적인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이었다고 하는데 짐 라이스와 칼 야스트렘스키가 우상이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하면 베이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뛰었던 시절, 아들의 결혼식에서 자신의 꿈이 아들이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레드삭스를 상대로 홈런 2개를 치고 결국은 파이어리츠가 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아들이 펜웨이 파크로 원정을 갔을 땐, 자신의 아들이 한때 칼 야스트렘스키가 섰던 자리에 서있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첫해인 2019년엔 단 한표도 얻지 못하고 그대로 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