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심농
1. 개요
조르주 심농은 벨기에의 소설가이다. 그는 거의 500편의 소설과 많은 단편들을 낸 다작가였으며, 가상의 탐정인 쥘 메그레의 창작자로 가장 유명하다. 인간 심리의 치밀한 묘사로 문학적 인정을 받았다.
2. 유소년기의 삶과 교육
심농 가(家)의 근원은 Limburg[1] 지역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의 외가는 네덜란드 Limburg 출신이다. 어머니인 앙리에트 브륄은 네덜란드 & 독일계였고 아버지인 데지레 심농은 왈룬(Walloon)계였다. 그녀의 악명 높은 조상 중 하나가 Limberg에서 1720년대부터 1743년 교수형을 당할 때까지 도둑질을 일삼던 가브리엘 브륄이다. 후에, 심농은 브륄이라는 이름을 자신의 많은 필명 중 하나로 쓰게 되었다.
어쨋든 보험회사의 회계 사무실에서 일하던 데지레는 앙리에트와 1902년 4월에 결혼했고, 심농은 그들의 아들로 1903년 2월 13일 리에주 레오폴드 가 26번지[2] 에서 태어났다. 미신의 영향으로 비록 그가 13일에 태어났지만 12일에 태어난 것으로 등록되었다. 그의 탄생에 관한 이 이야기는 자신의 소설인 Pedigree의 도입부에서 언급된다.
1905년 4월 그의 가족은 리에주의 Outremeuse neighborhood에 있는 파스퇴르 가 3번지 [3] 로 이사했고 1906년 9월 21일 조르주의 남동생인 크리스티앙이 태어난다. 그는 곧 어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 되었고 조르주는 이에 대해 매우 원통해 했다. 1911년 심농 가는 역시 Outremeuse (fr) neighborhood에 있는 53 rue de la Loi로 이사했고 집이 넓어져서 하숙인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대체로 다양한 국적을 가진 도제들과 학생들이었고 이는 어린 심농에게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중요한 소개가 되어 주었다. 이는 그의 소설 중에서도 Pedigree와 Le Locatraire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3살 때 그는 Saint-Julienne nursery school에서 글을 읽는 법을 배웠고 1908년과 1914년 사이에 Institut Saint-André에 다녔으며 1차 대전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14년 9월에 예수회 학교인 Collège Saint-Louis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1917년 심농의 가족은 Amercoeur neighborhood에 있는 전(前) 우체국 건물에 이사를 했고 1919년 6월에 rue de l'Enseignement로 다시 이사한다.
아버지의 심장 문제를 핑계로 심농은 1918년 6월, 연말 시험도 보지 않은 채 학업을 접기로 결심한다. 그는 나중에 짧게 몇 개의 특이한 일들을 하곤 했다.
3. 경력의 시작
1919년 1월, 15살의 심농은 Joseph Demarteau가 편집하는 신문인 Gazette de Liège (가제트 드 리에주)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그의 담당은 단지 별 중요치 않는 흥밋거리 이야기들뿐이었지만, 이는 그에게 정치와 바와 싸구려 호텔을 포함한 도시의 지저분한 면뿐만 아니라 범죄학자인 에드먼드 로카드의 경찰 수법에 대한 강의들과 범죄, 경찰 수사에 대해 탐구할 기회를 제공했다. 또 빨리 편집하기의 미학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G.Sim (조르주 심)이라는 필명 아래에 150도 넘는 기사들을 썼으며 1920년대 초에 Le Martin에 이야기들을 제출하기 시작했다.
심농의 첫 소설인 Au Pont des Arches (아르슈 다리에서)는 1919년 6월에 쓰여져 그의 G. Sim이라는 필명으로 1921년에 출판한다. "Monsieur Le Coq"로 글을 쓰면서 그는 1919년 11월과 1922년 12월 사이에 800개가 넘는 재치있는 조각글들을 낸다. 그는 1922년 12월 Gazette에 글 쓰는 것을 멈춘다.
4. 작업물들
1929년에 메그레 시리즈를 구상하기 시작해서 1930년 메그레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 '불안의 집'을 발표한다. 이후 꾸준히 메그레 시리즈를 써내어, 결국 장편, 단편 합쳐서 총 103편이나 되는(…) 메그레 시리즈를 썼다. 메그레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5억권이 넘게 팔려나간 메가 히트작이고 60편 이상의 극장용 영화와 300편이 넘는 텔레비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참고로 메그레 시리즈 영화들 중에는 프랑스의 거장 장 르누아르가 찍은 작품도 있다. 메그레 역으로 가장 유명한 배우로는 장 가방이 있다. 이 외에도 타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100여권의 다른 책들도 썼다.
심농은 1955년에 스위스로 이주했으며 1989년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당대의 작가들도 두루 인정한 뛰어난 작가다. 그를 추켜세운 이들만 해도 어니스트 헤밍웨이, T. S. 엘리엇, 알베르 카뮈, 발터 베냐민 등 거물들이다. 카뮈는 자기 작품인 이방인이 그의 소설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써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농은 코난 도일처럼 자신이 추리 소설 작가로만 알려지는게 싫어 다른 소설을 써서 역시 호평을 받았지만, 책이 잘 팔리지 않아 계속 메그레 시리즈를 쓰게됬다.
그외에도 작가로서 특기할 만한 점들이 몇 가지 있는데, 하나 같이 글쓰는 입장에서는 부러워 죽을 것들뿐이다. 우선 위에서 설명한 대로 엄청난 다작을,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해치웠는데 거의 질이 떨어지지 않고, 심지어 걸작 소릴 들을 만한 책들을 줄줄 썼다.[4] 1972년 69세가 될 때까지 메그레 시리즈를 양산했다만 1934년 이전에 나온 메그레 시리즈만 명작으로 보고, 그 후는 그냥 패스하는 분위기이다.
그의 추리소설의 큰 특징은, 사건 현장 주변에 흩어진 여러 물질적 증거를 취합하여 한치의 오차도 없게 날카로운 결론을 내리는 기존의 추리 소설과 달리 인물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즉, 메그레 경감은 그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성격을 파악해, 그들이 어떤 동기로 사건을 저지르게 되었는가, 하는 심리적 흐름을 따라가는 추리를 하여 범인을 잡아낸다. 그러다보니 인간성에 대한 깊은 고찰과, 당시 사회에 유행하는 정신적 사조 등이 소설 속에 담겨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위에 나온 것처럼 여러 순수 문학가들과 인문학자들까지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작품이 된 것이다. 특히, 심농은 당대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탁월하게 당대 프랑스 사회 속 '인간'을 그려내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다.
정력도 매우 좋아서 수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고, 당대의 명사들과도 교류가 많았는데 이는 모든 프랑스어권 탐정들의 시조인 실존 인물 외젠프랑수아 비도크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
메그레 시리즈는 열린책들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는데, 야심차게 메그레 시리즈 전집을 내자는 포부로 시작하여 2012년에 시리즈 19편 '메그레'까지 출간하였고[5] , 잠시(?) 쉬었다 2017년 8월에 다시 20권, 21권을 동시 출간하면서 발간을 재개하였다.
[1] 1815-39년까지의 Limburg 주를 말함[2] 현재는 24번지[3] 현재는 조르주 심농 가 25번지[4] 1930년대가 추리소설의 황금기였다고는 하나, 이중 문학적인 성취까지 얻어낸 경우는 거의 드문데, 심농은 그러한 평가를 얻어낸 그 극소수에 속한다. 20세기 역사를 다룬 에릭 홉스봄의 명저 '극단의 시대'에서도 "탐정소설을 진정한 문학으로 전환시킨 '''유일한''' 작가"라는 극찬을 하고 있다.[5] 19권에서 1차로 끊은 이유는 일단 오리지널 메그레 시리즈도 발간 당시 19권까지 낸 다음 10년간 발간을 쉬었다가 다시 발간이 시작된 것을 참조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