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프랑수아 비도크

 

1. 개요
2. 관련 미디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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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프랑수아 비도크(Eugène-François Vidocq, 1775년 7월 24일 ~ 1857년 5월 11일)는 프랑스괴도, 탐정이다.
본디 범죄자였지만 후에 탐정으로 돌아섰다. 역사가들에게 현대 범죄학의 아버지 대우를 받는데, 일단 역사상 최초의 사립 탐정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프랑스 경찰의 시작[1]을 이 남자로 보기도 한다. 평생동안 무려 2만여 명에 가까운 범죄자를 체포했다고 한다.
잠복수사, 범죄 기록 등을 최초로 시도했지만 전과 때문에 이러한 업적은 한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자신이 범죄자였기에 범죄에 대한 지식이 많았던 점, 범죄에 대해 꼼꼼히 적어두었던 점, 그리고 뒷골목 세계에 해박했던 점이 탐정으로 활동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과학 수사가 발달하기 전이었으므로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증거와 증인에 의존해야 했고, 때문에 정보원을 심어두거나 갱조직에 직접 접근해 상부상조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얻어 사건을 해결했다. 그러다보니 뒷골목에서 명성을 얻어 프랑스 경찰들이 빈민가의 술집을 수색할 때 도움을 받기도 했다. 비도크가 나서서 자기 이름을 크게 외치면서 도와달라고 하자 술집 손님들이 수사에 협조한 것.
범죄 사건을 꼼꼼하게 기록해 수사에 참고하라고 경찰에게 신신당부한 일화에서 알 수 있듯 글 쓰는 능력도 훌륭했으나 소설을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글쓰기로 통하는 게 많았는지 빅토르 위고, 오노레 드 발자크, 알렉상드르 뒤마 등 유명 작가들과 절친한 사이였다.
소설 집필에는 흥미가 없었으나 사건 일지나 탐정에 대한 책은 몇 권 내 히트를 치기도 했다. 또 절도 사건을 몇 번 해결하고 보답으로 많은 돈을 받은 덕에 상당한 부자가 되었다.
사건에 대해 기록할 때는 꼼꼼했으나 천성이 호탕하고, 여성을 유혹하는 솜씨와 춤이 탁월했다. 정식으로 결혼을 하진 않았지만 일흔이 넘어서도 여성들을 만나며 행복한 노년을 즐겼다. 그리고 81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수많은 여성들이 몰려와서 유산 상속권을 주장했지만, 정작 그의 유산을 물려받은 건 그의 메이드였다. 30여 년을 묵묵히 일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 듯. 그 메이드도 자신이 상속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수많은 여성들을 만났으면서도 30년을 옆에 있어줬다는 이유로 전재산을 메이드에게 물려준 일은 큰 화제가 되어 여러 추측들이 난무하기도 했다. 단순한 고마움의 표현이라는 것부터 그토록 여자를 끼고 다녔으면서도 의외로 순정남이 아니었냐는 이야기까지.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형사 자베르와 범죄자 장 발장[2], 발자크의 보드랭, 모리스 르블랑아르센 뤼팽,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코난 도일셜록 홈즈 등의 모델이 이 사람이다. 또한 에드거 앨런 포우어거스트 뒤팽[3], 애거서 크리스티에르퀼 푸아로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관련 미디어



[1]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형사의 시작. 경찰 조직 자체는 이미 있었지만 다들 정복 경찰이었고 사복을 입고 거리로 나가서 정보를 수집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발상은 비도크가 처음 고안했다.[2] 장 발장은 도둑 시절의 비도크를, 자베르는 탐정 시절의 비도크를 모델로 하였다. 장 발장이 빵을 훔쳐 먹고 감옥에 갔는데 이건 비도크가 처음 감옥에 간 상황과도 유사하다. 비도크는 군 입대 영장을 받고도 불응했는데 결국 이것 때문에 탈영병이라는 꼬리표를 붙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렇게 오랜 도망 생활을 하다 빵을 훔쳐 감옥에 가게 된다. 반면 자베르는 경찰 시절 비도크의 안티테제격으로 나온 캐릭터라고 봐야한다. 비도크는 범죄자들과도 인맥이 많아서 나름 융통성있는 사람이었지만 자베르는 아주 꽉 막힌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3] 정작 뒤팽은 "비도크는 추측도 잘하고 인내심도 좋았는데 사고하는 방법을 몰라서 삽질을 많이 했다"라고 애둘러서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