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습

 

趙襲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서예가. 자는 원사(元嗣). 조기의 사촌형.
경조 장안 사람으로 서예가로 서법의 명가로 알려져 있으며, 나휘와 함께 둘을 일컬어 나조(羅趙)라고 불렀다.
돈황태수가 되어 나휘와 나란히 초서에 뛰어나 초서에 뛰어나 관서 지방에서 중히 여겼으며, 자신의 재치있고 교묘한 솜씨를 뽐내어 스스로를 내세우자 사람들이 매우 의심했다고 한다. 중상시 당형의 형인 당현에게 종종 비난의 편지를 올려 당현의 미움을 샀으며, 영제 때 죽었다.
장지와 평소에 서로 친하게 지냈다고 하며, 장지는 자신의 글씨에 대해 최원, 두도와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나휘, 조습과 비교하면 여유가 있다고 했다. 소식의 시에도 종요와 장지에 뒤지지 않는다고 그대가 자부하는데, 나 역시 나휘나 조습에 비한다면 우월하다오라는 표현이 있다.
동 시대의 서예가인 조일은 비초서에서 장지의 초서를 양모하는 것이 따라하는 것이 지나쳤다고 비판하면서 그들을 따라하는 자들에 대해 나휘와 조습의 비웃음과 저지를 받으리라고 생각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