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도
1. 후한 초기의 서예가
杜度
생몰년도 미상
후한의 서예가. 자는 백도(伯度)로 본명은 조(操).
후한 장제 때의 사람으로 경조 두릉 사람이며, 어사대부 두연년의 증손으로 제국상을 지냈다고 한다. 초서에 능해 장제의 총애를 받아 조서를 내려 두도의 장초서로 장계를 쓰도록 명령했다고 하며, 유명한 서예가 최원, 최식의 스승이다.
제자 최원과 함께 장초를 잘 썼기 때문에 두최(杜崔)라 묶어서 부를 정도였는데, 삼국시대의 위나라 사람인 위탄은 걸출하면서도 굳센 힘이 있지만 글자의 획이 가늘어 서리 내린 숲에 잎사귀가 없고 폭포수가 난다고 평했다.
그렇지만 위탄에게 두도, 최원 등과 평가받았던 장지는 편지를 통해 주사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때 자신의 초서에 대해 두도, 위침에 비해 부족하다고 했으며, 당나라의 장회관은 두도를 '뛰어나면서도 재빠른 변화가 가득 차 후세의 모범이 된다' 고 평가했다.
당나라의 문장가인 한유가 과도한 피휘 관습을 비판한 글인 〈휘변〉 에서, 부모나 조상의 이름자와 소리가 비슷한 글자까지 함께 피하는 것의 부당함을 논하면서 이 이름을 예시로 들었다. 두도의 자식들은 성씨인 杜가 부친의 이름자인 度와 음이 같으니[1] 자기 성씨까지 못 쓰게 되는 것이냐는 말.[2]
2. 삼국시대의 의사
杜度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의 명의.
고향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성품은 식견이 깊으면서 영민해 그릇이 부드러우면서도 깊어 교만하지 않아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에 힘썼다고 한다. 장중경이 자신의 의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일찍부터 제자를 가르쳤는데, 그 중에서 위침과 함께 가장 유명한 장중경의 제자였으며, 장중경에게 비전의 제조범을 받아 의술을 배우면서 명의가 되었다고 한다.
장중경의 제자이거나 일설에 따르면 경조 두릉 사람으로 위나라에서 재상을 했다가 관직을 버린 이후 장중경에게 의술을 배웠다고 하는 얘기가 있으며, 이 때문에 삼국시대에 살았던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명의들과는 달리 저서를 남겼는지 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2.1. 관련 사료
- 의부전록 의술명류열전
- 의설
[1] 현재의 한국 한자음으로는 '두'와 '도'로 조금 다르지만, 반절 기준으로는 '徒古(ㄷ+ㅗ)' 와 '徒故(ㄷ+ㅗ)' 로 거의 같고, 현대 중국어로도 둘 다 'dù' 로 동일하다.[2] 물론 위에 적힌 대로 본명은 '操' 여서 두조(杜操)인데, 후대에 위 무제 조조(曹操)의 이름자를 피휘하기 위하여 자를 써서 '度' 로 표기되어 전해진 것이다.